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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의 성차별 문제가 아픈 여성을 더 아프게 만든다

여성들이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의학계에서 여성들의 증상을 설명하기 위한 과학적 연구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Getty Images

몇 년 전 나는 독감을 심하게 앓았다. 일어나 보니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손가락 관절이 아팠다. 몇 주 지나자 발목과 발가락도 아프기 시작했다. 곧 무릎과 팔꿈치에도 통증이 느껴졌고, 밤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구글 검색 결과 좋지 않은 징후 같았고, 나는 류머티즘 전문의를 찾아갔다. 류머티스성 관절염 진단을 받았다. 면역 체계가 전염성 병원체가 아닌 내 몸의 관절을 공격하는 자가면역 질환이다.

미국인들 중 무려 5천만 명이 자가면역 질환을 앓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4분의 3은 여성이며, 나와 마찬가지로 한창나이 때 발병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몇 달 만에 진단을 받은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찍 치료를 받은 덕에 류머티스성 관절염은 곧 나았고 나는 몇 년째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자가면역 관련 질병 협회에 의하면 자가면역 질환 환자들은 평균 4년 동안 의사 4명을 찾아가고서야 올바른 진단을 받으며, 이중 절반 가까이는 진료 시 ‘만성 투덜이’로 낙인찍힌다고 한다.

나는 여러 해 동안 페미니스트 작가였지만, 아프기 전까지는 젠더 편견이 질병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환자가 받는 치료의 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러나 자가면역 질환을 앓고 난 뒤 탐구해 보기 시작했다(묘하게도 자가면역 질환은 대중과 의료계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는 것 같다).

그 결과 나는 여성 건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며, 여성의 증상 호소에 대한 믿음 역시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미국 의료계의 뿌리 깊은 문제이며, 여러 여성이 잘못된 진단을 받거나, 제대로 진료를 못 받은 채 계속 아프게 하는 원인이다.

젠더 이슈는 '격차'에 대한 이야기다. 임금 격차, 재산 격차, 오르가슴 격차. 의료계에는 오래전부터 지식 격차가 존재했으며, 1990년대 여성 건강 옹호자들은 이 문제를 널리 알리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국회의원들과 손을 잡았다. 당시 미국 국립보건원은 미국 건강 증진을 위해 세금으로 진행하는 연구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많이 포함되는지를 기록하지 않았으며, 중요하고 기초적인 여러 연구는 남성만을 대상으로 했다.

한편 FDA는 가임기 여성 전부를 초기 약 시험에 참가하지 못하게 했다. 여성들이 배제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중에 갖게 될 자녀들에 대한 위험 등 가부장적 우려도 있었지만, 연구자들이 남성만을 연구하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이유였다. 호르몬 변화와 생리 주기 때문에 여성들은 균등성이 낮은 연구 대상 집단으로 간주되었다. 즉, 연구자들이 여성을 배제한 이유로 댄 핑계는 오히려 여성을 포함하는 것이 정말 중요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중요한 차이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993년 대중의 항의가 일자 의회는 국립 보건원이 자금을 대는 임상 연구에 여성들을 포함하도록 하는 연방 법을 통과시켰다. 지식의 차이가 어느 정도는 좁혀졌지만, 2015년의 리뷰에서는 “충분한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국립 보건원 연구들을 다 합쳐 보면 여성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지만, 심장병, , HIV 등 여러 분야에서는 아직도 많이 포함되지 않고 있다.

또한 한 운동가의 표현에 따르면 연구계 대다수는 ‘여성을 더하고 섞는다’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보통 남녀가 모두 연구에 포함되지만, 연구자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남녀간의 차이를 밝히기 위한 연구 결과 분석을 하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임상 연구 이전의 경우, 연구소에서 사용하는 쥐들은 지금도 수컷들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성과 젠더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등장했다. 의약품의 대사 작용, 똑같은 병의 다른 증상, 여러 질병의 유병률 등 정말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의학계에서 새로운 과학 지식이 실제로 적용되는 데는 15~20년 정도가 걸리며, 이러한 새로운 정보들은 임상 관행은 고사하고 의학 교육에도 아직 적용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최고의 의사들조차 여성을 치료할 때 남성을 대상으로 할 때만큼 유효한 수단들을 갖고 있지 못하다. 국립 보건원의 여성 건강 연구소장은 2014년 뉴욕 타임스에 “우리는 남성의 생물 작용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여성의 생물 작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Martin Barraud

여성들에게 주로 영향을 미치는 질병들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1990년대 초기에 여성 건강에 대한 경고를 날렸던 운동가들은 의료 관련 단체들이 이런 질병들을 완전히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팻 슈로더(민주당-콜로라도) 의원은 당시 “당신이 두려워하는 일에 자금을 지원하게 된다.”고 표현했다.

남성들이 대부분인 연구 커뮤니티에 주어지는 자금 지원이 아주 적음을 볼 때, 이들은 여성들이 흔하게 겪는 건강 문제를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자가 면역 질환, 부인과 장애, 만성 통증 등이 이에 해당된다. 문제는 사실 더 깊다. 여성들의 여러 질병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질병이라고 보지조차 않는다.

여성들이 진료를 받을 때 신뢰받지 못한다는 문제가 여기서 생긴다. 여성들이 말하는 증상을 의료진이 믿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이 문제는 히스테리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구 의학에서는 수세기 동안 성차별적 이론을 내세워 여성들이 호소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들을 ‘방황하는 자궁’(wandering womb)의 탓으로 돌려왔다.

그러다 19세기 말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나타나, 히스테리는 심리적 장애로 보여지게 되었다. 정신적 고통이 육체적 증상으로 간주하게 된 것이다. 의사들은 여러 질병의 근원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으나, 설명하기 힘든 육체적 증상은 환자의 무의식 때문이라고 편리하게 치부하곤 했다.

‘히스테리’라는 단어는 잘 쓰이지 않게 되었으나, 이 개념은 지금도 생생히 살아있다. 브리케 증후군, 신체화(somatization), 신체형 장애(somatoform disorder), 전환 장애(conversion disorder), 정신신체증(psychosomatic), 정신병학적(psychogenic), 기능 장애 등의 용어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요즘 의학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은 아마도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증상”일 것이다. 이 말 자체가 정신병학적 기원을 암시하고 있지는 않으나, 현실적으로는 그런 경우가 많다.

환자들에게 우울증, 불안, ‘스트레스’가 있다는 진단이 흔히 내려진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계속 경험하는 증상을 최소화하고, 정상적인 것처럼 말하고, 아예 믿을 수 없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환자들은 정확하지 않은 여러 진단을 받지만, 보통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다. 증상들은 ‘다 당신 머릿속에 있다는 것’이다.

(어떤 표현으로 부르든 간에) 히스테리라는 개념은 ‘휴지통(wastebasket)’ 진단으로 쓰여왔다. ‘ Putting a Name to It: Diagnosis in Contemporary Society’의 저자 앤마리 골드스타인 주텔에 의하면 의학계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전부 몰아넣을 수 있는 진료 분야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근원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다 정신병학적 근원이라고 해버렸다는 것이다.

정신병학적 증상을 보이는 전형적인 환자는 늘 여성이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증상을 묵살 당하는 환자들이 주로 여성이었음은 놀랍지 않다. 1980년대에 연구자들은 신체화 장애의 주요 증상들을 기억하기 위한 연상 기호를 만들었다. “신체화 장애는 여성들을 괴롭히고 의사들을 짜증 나게 한다”였다. 현재 1차 진료를 받는 환자 중 3분의 1, 전문 진료소를 찾는 환자의 3분의 2 정도는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된다. 그리고 이중 약 70%는 여성이다.

여성들이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의학계에서 여성들의 증상을 설명하기 위한 과학적 연구를 많이 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이 두 가지 문제가 몇십 년 전부터 인지됐왔음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지식에 대한 격차와 신뢰의 격차가 서로를 키워왔기 때문이다.

한편 이러한 지식의 격차 때문에, 여성들은 건강 염려증이 있고 히스테리를 부리는, ‘머릿속에만 있는’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편견이 생긴다. 예전의 혈관 조영술로는 감지할 수 없는 ‘여성적 패턴’의 ‘이례적’ 심장병 증상이든, 몇 년 동안이나 모르고 지냈던 자가 면역 질환에 따른 피로든, 남성을 대상으로만 시험된 의약품의 발견되지 않은 부작용이든, 여성이 설명할 수 없는 증상 때문에 의사를 만날 때마다 여성들은 증거도 없는 증상에 대해 불평한다는 인상이 강화된다.

이러한 편견은 여성의 질병을 인지하지 못하는 의학계의 잘못 때문에 생겼다. 이는 역으로 작용해, 여성들에 대한 의료 시스템의 인식에 영향을 준다. 의사들은 여성들의 증상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의학적 설명이 없을 것이라 성급하게 결론 내리고, 연구를 빨리 접어버린다. 자기 충족적 예언의 영향이다. 의사들의 진단 실수에 대한 피드백이 아주 드물어서 이 문제는 더욱 오래 지속된다. 항우울제 처방전을 주어 보낸 여성 환자가 나중에 다른 의사에 의해 올바른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의사들은 여성 환자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환자였겠거니 라고 생각해 버린다.

여성들 전체에 대해서도 자기충족적이 된다. 여성들이 감정적 고통을 ‘신체화’한다는 것이 의학적 ‘팩트’에 따른 설명이라고 간주되는 한(벌써 한 세기 이상 과학적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증상들은 철저한 과학적 연구에 의해 의학적으로 설명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로 인해 섬유근육통, 외음부통, 간질성 방광염, 만성 피로 증후군, 화학적 과민증 등 여성들이 더 많이 걸리는 병에 대해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설명이 자주 나온다. 정신병학적이라고 간주되기 때문에 의학계에서는 이런 질병들을 거의 연구하지 않고, 연구비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Getty Images/iStockphoto

의학계의 젠더 편향에 따른 피해를 정량화하기는 힘들지만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발병 초기에 치료할 때 회복률이 훨씬 높은데, 나처럼 운이 좋지 못해 자가 면역 질환이 ‘스트레스’ 탓이라고 진단받고 초기에 치료받지 못하여 영구적 장애를 입은 여성들은 얼마나 될까? 뇌졸중이나 심장 마비 등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증세가 왔는데 응급실에서 남성들만큼 빨리 치료받지 못해 죽은 여성들은 얼마나 될까?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증상으로 여성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은 세월을 다 합치면 얼마나 될까?

의학계 내부에 존재하는 체계적 젠더 편견을 바로잡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 환자들의 생사와 건강을 가를 수 있는 폐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편견을 고침으로써 우리는 아직 알지 못했던 지식을 잔뜩 얻을 수 있다. 이 편견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을뿐더러 과학적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인류 절반의 건강을 방치함으로 인해 우리는 정말 많은 지식을 얻지 못했다.

여성의 복잡하고 다양한 신체를 연구하고 이해했다면. 주로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는 질병에 대한 진실을 시급히 밝혀내야 하며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여성들의 경험담을 신뢰했다면...우리는 인류의 건강과 질병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었을까?

지금으로선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제 알아내야 할 때다.

 

* 허프포스트US의 Medicine Has A Sexism Problem, And It’s Making Sick Women Sicker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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