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20년 11월 16일 17시 07분 KST

영국 경찰이 연쇄살인 피해 여성들에 대한 편견 조장한 과오를 40년만에 공식 사과했다

피해자 중 절반은 성노동자였다.

Keystone via Getty Images
사건의 피해여성들

1970년대 중반 영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여성 13명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 피터 서트클리프가 13일 사망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웨스트요크셔경찰의 총책임자는 40여년 만에 당시 사건 대응 방식에 대해 피해자 유족들에게 사과했다.

경찰은 당시 피해 여성들에 대한 편견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피터 수트클리프 사망: 웨스트요크셔 경찰을 대표하여 존 로빈스 서장이 낸 입장.

웨스트요크셔 경찰서장 존 로빈스는 오늘 피터 수트클리프의 죽음과 관련해 경찰을 대표하여 의견을 밝혔다.

 

피해 여성에 대한 편견

이 사건은 1975~80년 잉글랜드 중부 요크셔 지방을 중심으로 13명의 여성이 살해된 사건이다.

BBC에 따르면, 당시 경찰과 검찰, 기자들은 이 사건 피해자의 절반을 차지한 성노동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웨스트요크셔경찰의 고위 관계자들은 살해된 13명의 여성 중 일부에 대해서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말하면서 마치 다른 피해자들(성노동자 피해자들)은 그렇지 않다는 투로 묘사했다. 

이에 첫 번째 희생자 윌마 맥캔의 아들은 사과를 요구했다. 사건 당시 그의 아들은 5살이었다. 그는 ”엄마는 가정적인 여성이었는데, 엄마는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닌 이유로 맞은 역경을 헤쳐나가고 있었다. 단지 일부 나쁜 결정, 어떤 위험한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들에 대한 대가를 목숨으로 치렀다”고 말했다.

경찰의 편견은 단지 언행이나 태도에 그치지 않고 수사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가디언에 따르면 경찰은 성노동자 아닌 여성만을 ‘죄가 없는 젊은 여성(실제로 경찰이 사용한 표현)‘이라고 불렀다. 성노동자 여성뿐만 아니라 ‘일반 여성’들이 목숨을 잃은 뒤에서야 뒤늦게 사건을 심각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경찰은 또 여성들에게 밤늦은 시간에 밖에 나가지 말라고 요구함으로써 공공안전 유지의 책임을 여성들에게 떠넘기기도 했다.

1979년 수사를 지휘했던 조지 올드필드는 TV에 나와 살인범을 향해 ”내가 너를 잡기 전에 이 전쟁에 더 많은 ‘노리개(pawns)’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너를 잡겠다”고 연설했다. 그렇다. 이런 형사들에게 여자들은 그런 존재였다.

또 당시 이 사건을 맡은 웨스트요크셔 경찰서의 한 베테랑 형사는 기자 회견에서 이런 말도 했다.

″용의자는 매춘부를 싫어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수의 사람들도 그렇다. 경찰은 매춘부들을 계속 검거할 방침이다. 하지만 (용의자) ‘리퍼’는 지금 아무런 잘못이 없는 소녀들도 죽이고 있다.”

게다가 당시 사건의 담당 검사는 재판에서 다음과 같은 차별적인 발언을 남겼다:

″(피해자들 중) 일부는 매춘부들이었지만 이번 사건의 가장 비극적인 점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는 점이다. 마지막 6건의 범행은 완전히 존중 받을 만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또 이 사건을 취재하던 여성기자가 성노동자로 오인되는 사건도 있었다. 당시 맨체스터의 피커딜리 라디오에서 일하던 젊은 기자 조안 스미스는 이 사건을 취재한 몇 안 되는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맨체스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성노동자로 오인됐다. 이 기자회견 바로 전에 경찰관들은 사건 조사를 위해 이 지역 성노동자를 불러모은 상태였다.

 

″오늘날에도 그 당시에도 잘못이었다”

로빈스 웨스트요크서 경찰서장은 성명에서 ”경찰이 사용한 언어와 어조를 통해 유족들에게 더 많은 고통과 불안을 준 데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사회적 배경을 핑계로 삼지도 않았다. ”(경찰의 대응이) 요즘 기준에서 잘못인 것처럼 당시에도 잘못된 것이었다.” 

그는 이어 당시 경찰의 차별적 대응이 ”고인의 유족들에게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썼다. ”현 웨스트요크셔 경찰서장으로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허프포스트 일본판 기사를 번역, 편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