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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피해자에게 일어나는 일들

사과만 했으면 끝날 일이었다

박기태씨는 변호사로서 해당사건을 조력하였습니다. 아래 사건은 당사자 A의 동의를 받아 게재하였습니다. - 편집자

 

흔한 성추행 이야기

A라는 여성이 술자리에서 추행을 당했다. A는 여의도의 자산관리 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A의 직속 상사인 B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거래처 사장 C를 비롯한 사람들이 모이는 회식이 있다고 참여할 것을 권했고, 일 욕심이 있던 A는 여기에 응해 참여했다. 모임에는 네다섯명의 남자가 있었고 A는 홀로 여성이었다.

 

ⓒSouth_agency via Getty Images

 

회식의 2차는 접객원이 나오지는 않으나 구조는 룸살롱과 다를 바 없는, 밀폐된 룸형 술집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술집에 가는 것이 여의도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었기에 큰 경계를 하지 않았는데, 술을 마시던 중 거래처 사장 C가 A에게 키스했다. A는 C의 가슴팍을 밀어내려고 하였으나 밀어지지 않았고,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이 A와 C를 떼어냈다. A는 방 밖에서 울면서 화장실에 다녀온 B에게 자신이 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말했다.

여기까지는 실제로 일어났던, 그리고 아마 오늘도 일어날 흔한 추행의 이야기이다. 끔찍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추행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다음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성추행 피해자에게 벌어지는 일들

- 본인이 아닌 직장 상사에게 사과하기

A는 C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제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실수했다면 죄송하다,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 문자였다. A는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서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변호사를 통해 뭔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사과문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C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변호사가 C에게 왜 사과를 하지 않느냐 묻자, ‘나는 B에게 이미 다 사과했다’라고 이야기하였다. C는 B에게 ‘야, 미안하다고 전해줘’ 정도로 이야기했고, B는 ‘뭐 그정도로 문제 있겠냐’라고 답한 것이다. B는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걔도 그러려고 한건 아닐텐데 그냥 넘어가, 어차피 고소해도 사건도 안 될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상황을 겪은 A는 C를 고소하기로 결심했다.

 

ⓒJose A. Bernat Bacete via Getty Images

 

- 꽃뱀 만들기

C는 A에게, ‘뭐가 필요하냐, 돈이 필요하냐’라고 캐물었고, A가 돈을 받기 위하여 자기에 대해 안좋은 이야기를 퍼뜨린다는 이야기를 다른 곳에 하였다. A가 고소를 하기 전 회사 상사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회사 상사들은 이미 이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A가 고소득의 금융회사 사원이라는 것, A가 고소를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잃을 것이 훨씬 많다는 점은 아무도 감안하지 않았다.

 

- 목격자와 입을 맞추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A와 C를 보았던 사람들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떼놓은 적은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B, C와 친분을 가진 사이였으므로, 기억이 난다 해도 당연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을 터이다. 그리고 사건을 담당한 경찰은, 이런 참고인들의 진술을 보니 기소가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 어려운 상황을 이용하기

A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B뿐이었다. 당시 상황은 못 봤더라도, 최소한 방에서 나온 뒤에 바로 추행 사실을 알렸다는 점을 진술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B는 A에게 밤에 전화를 하고, 집 근처에 찾아와 술을 마시자고 하기도 했고, 손도 잡으려 했고, 급기야 사귀자는 이야기도 했다.

B는 A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 A는 B의 이런 행동을 매몰차게 거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귈 수는 없다, 형사 건이 끝나고 다시 이야기하자’는 태도를 유지했다. B는 이렇게 A가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술에 취해 전화했다. 그러던 중 A는, B와 C가 아직 거래를 하고 있고, 술도 함께 마시고 어울려 다니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B는 경찰에게 ‘나는 본 것이 없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고, 진술을 한 날 다시 A에게 전화를 해서 사귀자고 했다. A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B와 사귀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는 없었다.

 

A는 무엇을 잘못했을까?

A가 처음 원했던 것은 오직 사과를 받는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자신이 당한 피해를 이야기했다고 해서, A는 꽃뱀이 되었고, 상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사람이 되었고, ‘별난 아이’로 낙인찍혔다. 반면 가해자는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았다. 가해자의 회사는 아직도 A의 회사와 거래를 하고, 목격자들은 함께 어울려 다닌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은 A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는 것 같지만, 모든 참고인들이 모두 그런 일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기소가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떻게 생각해도 A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A가 피해를 말한 뒤 A의 삶은 붕괴되었다. 그런데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한다.

 

ⓒRyanKing999 via Getty Images

 

분명 A는 피해자인데, 상황을 보니 마치 A가 잘못한 것이 된 것 같다. A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증거가 불충분할 것 같으니, 고소를 하지 말았어야 했나? 정말로 피해를 입었는데? A가 직장 상사와 사귀기라도 했어야 했나? 목격자들에게 연락을 해서 회유라도 해야 했었나? 바로 그 자리에서 고소했어야 했나? 아니, 아예 남자들만 있는 회식에 따라 가지를 말았어야 했나?

A의 토로를 듣고, 어릴때 동네 형에게 맞고 들어온 날을 생각했다. 나는 자책했다. 내가 힘이 약해서, 내가 용기가 없어서, 이렇게 맞고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잘못한 것은 내가 아닌 나를 때린 형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때리면 안 되니까.

A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잘못이 있다면 가해자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사회의 잘못이다.

 

* 이 글은 필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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