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20년 06월 12일 14시 49분 KST

트럼프의 반대에도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남부연합 퇴출'에 가세했다

노예제 존치를 주장하며 미국을 탈퇴해 남북전쟁을 일으켰던 남부연합 장군들의 이름을 딴 군사 기지들의 이름을 바꾸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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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는 노예제 존치를 주장하며 남북전쟁을 일으켰던 남부연합의 상징들을 겨냥하고 있다. 남부 지역 백인들을 핵심 지지층으로 삼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혀왔다.

미국 공화당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원 군사위원회가 미합중국을 탈퇴해 남북전쟁(1861-1865년)을 일으켰던 남부연합(Confederate States) 장군들의 이름을 딴 군 기지와 장비들의 이름을 바꾸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같은 제안을 ”검토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축했음에도 공화당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들과 힘을 모은 것이다. 

공화당 의원 14명과 민주당 의원 13명으로 구성된 상원 군사위는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민주당)이 제안한 국방수권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고 11일(현지시각) 밝혔다.

국방 정책과 예산을 다루는 이 법안에 새롭게 삽입된 조항에 따르면, 국방부는 3년 내에 남부연합 장군들의 이름을 딴 군사 기지의 이름을 바꿔야 한다. 

남부연합 장군들의 이름이나 남부연합을 기념하는 명칭이 붙은 군사 장비들도 모두 이름을 바꾸도록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일찌감치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만큼 이 법안이 시행될 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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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연합의 수도였던 리치몬드에 세워진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E. 리 장군의 동상이 낙서로 뒤덮여있다. 주 정부는 이 동상을 조속히 철거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리치몬드, 버지니아주. 2020년 6월10일.

 

이같은 조치는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다시 불이 붙은 ‘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를 계기로 남부연합과 그 상징물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인종차별과 백인 우월주의 문화에 대한 자각이 흑인 노예를 계속 부릴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하며 미국을 탈퇴해 남북전쟁을 일으켰던 남부연합에 대한 일종의 재평가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흑인을 겨냥한 총기 난사 등 잔혹한 혐오범죄를 저지른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남부연합기를 자랑스레 기념한 사례가 잇따르면서 남부연합과 그 상징물들은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전락했다. 

‘블랙 라이브스 매터’ 시위대는 미국 곳곳에서 남부연합 관련 상징물들을 그래피티로 뒤덮었고, 쓰러뜨렸다. 지방 정부들은 남부연합을 기념하는 동상들을 철거하고 있거나 철거를 검토하고 있다.

앞서 미국 해군과 해병대는 남부연합기를 내거는 행위를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남부 백인 남성들을 핵심 팬으로 둔 탓에 ‘백인들의 잔치’로도 불리는 자동차 경주대회 나스카(NASCAR)도 경기장 안팎에서 남부연합기를 금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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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남부연합 장군들의 이름을 딴 군사 기지들을 "미국의 위대한 유산의 일부"라고 지칭하며 명칭 변경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같은 남부연합 퇴출 움직임에 대해 반대 의견을 분명히 밝혀왔다. 남부 백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 지역의 핵심 지지층들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남부연합 장군들의 이름을 딴 기지들을 ”미국의 위대한 유산의 일부이자 승리와 자유의 역사에서 일익을 담당한 곳들”로 지칭했고, ”이 위대하고 전설적인 군사 시설들의 이름을 바꾸는 것은 검토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수정안을 제안한 민주당 워렌 상원의원을 ”처참히 실패한 대선(경선)후보”로 조롱하며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여기에 말려들지 않기를 바란다!”는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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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포트 브래그 기지.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을 지휘했던 브랙스턴 브래그 장군의 이름을 따왔다.

 

하지만 과거 남부연합 소속이었던 미주리주를 지역구로 둔 로이 블런트 상원의원(공화당)은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 기지를 예로 들며 명칭 변경에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앞으로도 군인들의 이름을 따서 기지 이름을 짓고자 한다면, 남북전쟁 이후에도 위대한 군인들이 수없이 나왔다.” 블런트 상원의원이 기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남북전쟁 당시 핵심 전투에서 패배한 뒤 물러났던 브랙스턴 브래그 장군이야말로 ”남부연합군을 통틀어서 최악의 지휘관이었을 것”이라며 ”기지 이름을 따오기에는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말했다.

제임스 랭크포드 상원의원(공화당, 오클라호마)는 기지 명칭 변경을 직접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애초에 이 인물들의 이름이 기념되기 시작한 이유를 떠올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동상과 기념물들의 상당수는 말하자면 ‘우리(남부연합)은 통합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하기 위해 그 자리에 들어섰던 거다.” 

마이크 라운즈 상원의원(공화당, 사우스다코타)은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동의한다”면서도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우리나라에 맞섰던 인물들의 이름을 기지들에 계속 붙여야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뉴욕타임스(NYT)는 명칭 변경 제안에 반대 의견을 밝힌 공화당 의원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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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왼쪽에서 두 번째)의 조각상이 미국 의사당 내 'National Statuary Hall'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 민주당은 남부연합 지도자 11명의 조각상을 철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번에 통과된 법안과는 별도로 미국 의사당 건물에서 남부연합 지도자들의 조각상들을 철거하자는 움직임이 민주당 주도로 추진되고 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민주당)은 남부연합 지도자들이 ”″반역을 저질렀는데도 그 조각상들이 의사당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이름들은 기지들에서 빠져야 하고, 조각상들도 의사당에서 빠져야 한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의사당의 조각상들은 각 주가 선정해 기증하는 방식으로 설치됐다. 철거를 요청할 권한도 각 주 정부에게 있다. 현재까지 7개주에서 조각상 교체에 착수한 상태라고 NY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