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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입법' 진통 : 자율주행차가 속도위반하면 과태료는 누가 낼까?

국내에선 사고에 대한 책임은 사례별로 가린다는 계획이다.

자율주행차가 판교역 주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차 지붕과 앞뒤 번호판 위에 자율주행을 위한 카메라와 센서가 달려 있다.
자율주행차가 판교역 주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차 지붕과 앞뒤 번호판 위에 자율주행을 위한 카메라와 센서가 달려 있다. ⓒ한겨레

 

자율주행차가 속도위반하면 과태료는 누가 낼까. 또 자율주행차가 신호를 어겨 사람이 다치면 누가 책임을 져야 할까. 자율주행차 시대가 가시권에 들어왔지만, 운전대를 잡게 될 인공지능(AI)의 잘잘못을 가리는 입법은 여전히 진통을 겪고 있다. 자율주행 상용화의 선두를 달리는 미국에서도 이 질문에 대한 일관된 답을 찾기 힘들다. 국내에서도 고도의 자율주행에 대비한 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관련 논의와 입법 움직임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2단계까지는 사고 나도 ‘운전자 책임’

2016년 5월,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고속도로.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직진하던 테슬라 모델S가 오른쪽 도로에서 이미 교차로로 진입한 트랙터 트레일러의 측면에 충돌했다. 충돌 직전 모델S의 속도는 시속 120㎞. 운전자는 사고 현장에서 사망했다. 조사 결과 모델S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오토파일럿’의 통제로 주행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오토파일럿이 하얀색 트레일러를 밝은 하늘로 착각해 브레이크를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 당국은 운전자 과실로 결론지었다. 자율주행 2단계에 해당하는 오토파일럿의 경우 여전히 사람에게 더 많은 역할과 의무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사고를 조사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보고서에서 “오토파일럿은 (완전 자율주행이 아닌)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으로, (오토파일럿을 이용하는) 운전자는 계속해서 주의를 집중해 도로 환경을 주시하는 동시에 충돌을 피하도록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도로교통안전국의 결론은 새로운 의문을 남겼다. 도로교통안전국 분류상 자율주행 3단계부터는 사람이 주행 환경을 주시할 의무가 없고, 4단계부터는 비상시에 개입할 의무도 없다. 널리 받아들여지는 미국 자동차공학회(SAE) 분류도 비슷하다. 최소한 자율주행 4단계부터는 사람에게 100%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존의 국내외 도로교통 관련 법은 모두 인간 운전자를 전제로 하고 있다. 법 위반으로 인한 민사·형사·행정 책임 모두 운전자가 지는데, 여기서 운전자는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다. 기술 상용화에 앞서 개념 정립부터 다시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자율주행 단계별 행위 주체
자율주행 단계별 행위 주체 ⓒ한겨레

 

완전 자율주행이어도 사람 책임?

관건은 사람 대신 자율주행 시스템, 즉 인공지능을 법적인 운전자로 볼 것인지 여부다. 직관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앞으로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되면 운전자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완전 자율주행이 법적으로는 ‘완전 자율’이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이다. 2017년 개정된 독일의 도로교통법을 보면, 고도·완전 자율주행의 경우에도 자율주행 기능을 작동시킨 사람이 운전자다. 비상시 개입 의무가 여전히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주행 환경을 주시할 의무는 없지만, 시스템이 개입을 요구하거나 자율주행 기능을 사용할 만한 요건이 아닌 경우에는 사람이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때문에 사고 등으로 인한 책임도 기본적으로 사람이 진다. 제조사는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다.

완전 자율주행의 직관적인 정의와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때문에 법 개정 당시 국회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좌파당(Die Linke)은 “언제 사람이 다시 차량 제어권을 인수해야 하는지 불분명하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소비자 권리를 침해해 오히려 시장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동맹 90(Bündnis 90)과 녹색당(Die Grünen)은 “(개정안이) 주로 소비자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는 만큼 독일이 목표대로 자율주행차 시장 선두를 차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미국 “기업 책임져야” 입법 추진했지만…

소비자보다 제조사에 더 많은 책임을 지우려는 시도도 있었다. 미국 교통부는 2018년 10월 낸 ‘자율주행 3.0’ 계획에서 “운전자나 운행자의 개념이 인간뿐 아니라 자율주행 시스템을 포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도로교통안전국도 2016년 유권해석을 요청하는 구글에 “도로교통안전국은 차량에 탑승한 사람이 아닌 구글의 자율주행 시스템이 ‘운전자’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라고 답한 바 있다.

미국 통일법위원회(Uniform Law Commission, ULC)는 좀 더 구체적인 대안을 내놨다. 2019년 말 통일법위원회는 자율주행 상용화와 관련해 각 주 입법기관이 참고할 수 있는 법안을 발표했다. 도로교통법 위반 등에 대한 책임을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관여한 업체가 지도록 하는 것이 뼈대다.

먼저 완성차 업체는 자율주행차를 판매하려면 각 주에 ‘자율주행 제공자’를 등록해야 한다. 자율주행 제공자는 완성차 업체일 수도 있고, 부품 업체일 수도 있다. 자율주행 기능이 작동하는 동안에는 자율주행 제공자가 운전자다. 위원회는 “자율주행차가 속도위반하면 자율주행 제공자가 과속 티켓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법안이 각 주에서 도입될지는 의문이다. 통일법위원회 법안이 실제 입법으로 이어진 사례가 적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업체 유치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한 만큼 제조사 책임을 명문화하는 입법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지난해 3월에는 도로교통안전국도 “운전자 개념을 수정하기에는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며 입장을 선회했다. 캘리포니아주 법도 자율주행차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을 운행자로 보고 있다. 운전석에 아무도 없을 경우에는 자율주행 기술을 작동시킨 사람이 운행자다.


국내서는 “일단 사례별로 판단”

국내 상황은 어떨까.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7월부터 자율주행 3단계 출시를 허용하고 있다. 국토부 안전기준상 3단계는 지정된 영역에 한해서 자율주행 시스템의 책임 아래 차로 유지 주행이 가능한 수준이다. 이때 운전자는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된다. 다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는 사람이 직접 운전할 것을 시스템이 즉시 요구할 수 있다.

사고에 대한 책임은 사례별로 가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자율주행차 사고조사위원회가 그 역할을 맡는다. 부착이 의무화된 자율주행차 기록장치 등에서 정보를 수집해 사고를 조사하고 민사 책임과 과실 비율을 따진다. 다만 기본적으로는 기존과 같이 차량 소유자나 운전자가 책임을 진다. 조사 결과 차량 결함이 인정된 경우 제조사에 구상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임시방편에 가까운 제도인 셈이다. 특히 형사 책임에 대한 구체적 규정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자율주행차가 도로교통법을 위반해 사고를 내면 운전자의 적절한 대처 여부 등을 놓고 법정에서 시비를 가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안 요소가 있는 셈이다. 또 현행 제도가 자율주행 3단계를 전제로 한 것인 만큼 4·5단계 허용 전에 완전히 새로운 법체계가 도입될 가능성이 있다.

최근 자율주행 상용화 속도를 염두에 두면 보다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는 지난해 11월 자율주행차 종류에 운전석이 없는 형태의 차량을 추가하기로 했다. 지난달 캘리포니아주는 처음으로 무인자동차를 이용한 유료 배달 서비스에 허가를 내줬다. 실생활 속에서도 ‘인간 운전자’라는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기술 개발 수준이 그리 높지 않고, 운전자의 명확한 의사를 바탕으로 하는 작동이 대부분이어서 당장 문제가 발생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운전자 개념과 형사 책임 등은 앞으로 유관부처와 함께 면밀히 의논해가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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