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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8월 27일 18시 08분 KST

아파트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위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단지가 늘고 있다

"한낮 무더위를 피하기엔 충분하다"

“덥다고 어디 에어컨 쉽게 쓸 수 있나요. 주민 민원 들어오기 전에 알아서 조심해야죠.”

한겨레/최예린 기자
지난 25일 설비업체 직원들이 대전 대덕구 한 아파트 경비실에 미니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는 모습을 이 아파트 경비원이 바라보고 있다.

한낮 기온이 33℃를 넘은 지난 25일 대전 대덕구 한 아파트 경비실에서 만난 경비원 ㄱ씨는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트는 게 마음 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비실에 에어컨이 설치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찜통더위에도 웬만하면 선풍기만 튼다고 했다. 혹시나 주민 민원이 들어올까 조심하며 더위를 참는다는 설명이었다.

이날 ㄱ씨가 일하는 경비실에는 미니태양광 발전설비 2개가 설치됐다. 1개당 1시간 동안 335W의 전기를 생산하는 시설이다. 설치 작업에 함께한 지역 시민단체 에너지전환 ‘해유’ 사회적협동조합의 신대철 사무국장은 “한낮 무더위를 피하기엔 충분한 전기”라고 설명했다.

경비실 지붕에 미니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ㄱ씨는 “이런 걸 두면 이제 눈치 덜 보고 조금은 마음 편히 에어컨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전 대덕구는 지난달 22일 관내 아파트 경비실 50곳에 무상으로 미니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유’의 제안을 구가 수용하고 대전시 노동권익센터가 설치에 필요한 일부 재원을 부담했다. 미니태양광 설비업체인 ㈜대양이엔씨도 힘을 보탰다. 지금까지 대덕구 11개 아파트에서 경비실 50여곳에 태양광설비 무상 설치를 신청했다.

애초 대전시의 미니태양광 설비 설치 지원은 공동주택(아파트) 베란다가 대상이었다. 올해부터 지원 대상에 아파트 경비실도 포함됐는데, 설치비용(72만원) 가운데 75%는 시비, 10%는 구비로 지원하고 15%(10만8천원)는 아파트에서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대덕구의 경우 대전시 노동권익센터가 아파트 부담분을 대신 내기로 했다. 올해 지역 노동환경 개선 목적의 사업비를 경비실 환경을 개선하는 데 사용하기로 한 결과다. 대신 경비실 미니태양광 설비 설치를 지원받는 아파트와 ‘경비노동자 고용안정에 관한 업무협약’을 함께 맺어 경비원 노동여건 전반의 개선을 도모할 계획이다.

서울시 제공
서울시 ‘경비실 태양광 미니발전소 무상설치 지원사업’ 홍보 포스터.

대전지역에서의 이런 시도는 한 아파트 주민들의 작지만 큰 노력이 계기가 됐다. 대전 서구 녹원아파트 주민들은 지난해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과 함께 미니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했다. 그 노력의 중심에 있던 녹원아파트 주민 황유미(39)씨는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할 경우 각 세대에서 100원씩 추가 전기료를 부담하면 되는데 이마저도 경비원분들이 주민 눈치를 보는 상황이 벌어져 미니태양광 설치를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시에서 무상으로 미니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준다는 소식을 접한 황씨는 대전시에 문을 두드렸으나 아파트 베란다 설치 지원용 예산을 경비실에까지 쓰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결국 대전충남녹색연합의 도움으로 녹원아파트 경비실 11곳 중 5곳에 미니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게 됐고, 이 아파트의 이야기는 대전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대전시는 올해부터 미니태양광 설치 지원을 아파트 경비실에도 할 수 있도록 길을 텄고, 대덕구의 ‘무상 보급 사업’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대전 대덕구처럼 미니태양광을 무상으로 보급하는 정책은 서울시에서 시작됐다. 2018년 548곳, 지난해 970곳의 경비실에 미니태양광을 설치한 서울시는 올해 1000곳에 이어 2022년까지 총 4500곳에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니태양광 설치 지원 대상을 경비실까지 확대한 지방자치단체도 늘고 있다. 광주시는 대전시처럼 올해부터 아파트 경비실도 미니태양광 설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부산·경남의 경우엔 올해부터 베란다에 미니태양광 설치를 원하는 가구가 일정 규모(부산 30가구, 경남 10가구) 이상일 때는 해당 아파트 경비실의 미니태양광 설치비용 전액을 지원하기로 했다.

홍춘기 대전시 노동권익센터장은 “사실 경비실에 미니태양광 설치를 할 때 아파트에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아파트 가구 수를 생각하면 그리 큰돈은 아니다”면서도 “대덕구, 서울시 등의 사례가 알려져 각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원 노동환경 개선에 더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