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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가해가 더 힘들다' : 성폭력 피해자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들

2차 가해란 ‘피해자의 행실이 불량해 범죄를 자초한 것’이라는 식으로 성폭력 피해자를 모욕 또는 배척하는 행위다.

ⓒbearsky23 via Getty Images

아직도 여성에게 예쁘다는 말은 칭찬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성인지감수성도 처참한 수준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에게 ‘예뻐서 그래’라고 말하는 건 심각한 2차 가해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가 서울시 측에 피해를 호소했을 때 들었던 답변도 “예뻐서 그랬겠지”였다.

지난 22일 열린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 측의 두 번째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의 광범위한 2차 가해 사실이 폭로됐다. 피해자는 서울시 인사담당자에게 피해를 호소했지만, 돌아온 건 다음과 같은 말뿐이었다. “30년 공무원 생활 편하게 해줄 테니 다시 비서로 와달라.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 예뻐서 그랬겠지. 시장에게 직접 인사 허락을 받아라.”

고 박원순 서울시장 
고 박원순 서울시장  ⓒ뉴스1

 

명백한 ‘2차 가해성’ 발언들이지만, 비단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직장 내 성폭력’을 다루는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2차 가해가 비일비재”하다고 입을 모은다. 피해자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흡사 ‘2차 가해는 이렇게 하자’는 매뉴얼이라도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2차 가해란 ‘피해자의 행실이 불량해서 범죄 피해를 자초한 것’이라는 식으로 성폭력 피해자를 모욕 또는 배척하는 행위로, 피해자는 1차 피해뿐 아니라 2차 가해 때문에 심각한 고통을 겪는다. 전문가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2차 가해 사례를 유형별로 정리해봤다. 

 

1. 왕따, 뒷담화, 회유 등으로 피해자 입지를 위태롭게 만든다

“피해 내용이 회사에 알려지는 순간, 내부에 찍혀요. 피해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비밀보장이 되지 않고 피해자의 ‘뒷담화’로 이어져요. 오랫동안 같이 일한 가해자를 감싸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회사 분위기를 흐린다‘고 비난받아요. 경찰에 고소라도 하면 ‘회사 망신이다’ 같은 이야기로 피해자를 주눅 들게 만들어요.” -직장갑질119 활동가 김유경 노무사 (돌꽃노동법률사무소)

“피해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말은 ‘네가 좀 참아라’ 같은 회유예요. 좋지 않은 소문을 각오한다고 해도, 피해자가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 때가 많아요. 피해자는 오히려 퇴사를 하고 가해자는 떳떳하게 회사를 다니게 되죠.” -한국여성의전화 김윤정 활동가

 

2. 피해자의 용모나 복장, 태도 등을 탓한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색안경을 끼고 ‘복장’을 지적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에게 ‘왜 거부하지 않았냐’고 말하는데 과연 그 상황에서 피해자가 뿌리칠 수 있었을까요?” -직장갑질119 법률스텝 김유경 노무사 (돌꽃노동법률사무소)

“왜 그 당시에 신고를 하지 못했나, 4년 동안 도대체 뭘 하다가 이제 와서 나서게 된 건지도 궁금하다.” - 고 박원순 피해자 기자회견 직후 한 아나운서의 ‘2차 가해’ 발언

″가해자가 본인보다 직급이 높고 사회적인 영향력이 클 경우 피해를 당하자마자 불편함을 바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사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서 피해자가 생업을 포기할 각오가 아니면 문제 제기를 하기가 어려워요.”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이수정 교수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3. 가해자를 옹호한다 (feat.”우리 시장님 그럴 분 아닌데~”)

“피해자는 ‘그럴 사람이 아닌데 오해하는 거다’라는 발언을 많이 듣게 돼요. ‘그 사람 평소에 성실하고 (나에게) 인사성도 밝다’ 같은 말은 고민을 어렵게 털어놓은 피해자를 더 위축되고 무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한국여성민우회(일고민 상담소)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피해를 사소하게 취급하는 반응이 이어져 더 이상 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 고 박원순 피해자 측이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곧바로 고소하지 못한 이유를 밝히며 한 말

 

4. 가해자에게 나쁜 의도가 없었음을 강조한다

“가해자 대부분이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반박하지만, ‘어떤 말’을 하면 성희롱이라는 기준은 없습니다. 성희롱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피해자에게 있어요.” - 한국여성의전화 김윤정 활동가

“가해자의 ‘업무상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위계 성희롱(성폭력)은 피해자가 그 상황을 거부하거나 뿌리치기 힘듭니다. 피해자가 불쾌감과 수치심을 느꼈다면 가해자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 직장갑질119 법률스텝 김유경 노무사 (돌꽃노동법률사무소)

 

동료의 피해 사실을 목격했다면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는 오래된 속담이 있다. 그 돌이 개구리를 죽이려고 던진 게 아니었다고 한들, 그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행하는 자들이 ‘악의 없이’ 한 말들에 용기 낸 피해자는 다시 숨어버리고, 상처받는다.

동료가 ‘성폭력 피해’를 털어놨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경청하는 것이 제일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말한다. 피해자가 더 숨지 않으려면 회사도 ‘나몰라라’ 하지말고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피해여성을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 초대한 스마트폰 화면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여성을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가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녹번동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피해여성을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 초대한 스마트폰 화면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은 30인 이상의 근로자가 있는 사업장에 고충처리위원회을 구성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운영과 징계 절차는 따로 법에 명시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는 게 맹점이다.

김유경 노무사(직장갑질119 법률스텝)는 회사 내 신고 시스템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조사위원회도 관리자 직급인 내부 직원으로 구성된 경우, 가해자와 관계가 있거나 직급이 비슷하기 때문에 조사의 객관성이 떨어진다. 용기 내어 사내 센터에 신고를 해도 가해자와 업무에서 분리조차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민우회(일고민 상담소) 관계자는 ”남성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자를 같은 동료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성희롱이) 발생한다. 회사 안에서의 위치와 업무가 다르더라도 모두가 동등한 분위기를 조성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가 용기낼 수 있게 ”성희롱 해결에 대한 좋은 선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직장뿐만 아니라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잘 해결해야한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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