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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나를 자주 때렸다

[물기 없는 자리①]

  • 채이든
  • 입력 2018.05.24 17:02
  • 수정 2018.05.29 16:11
ⓒhuffpost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작가 채이든은 최근 매스컴에서 쏟아지듯 나오는 아동 학대 관련 기사에 가슴이 아팠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해자가 되어 학대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안타까워 글을 썼다고 한다.

1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은
강변을 따라 들어선 공장들이 회색이었고
가로수처럼 서 있는 전봇대도 회색이었다.

매일 시장에 따라갔다가 돌아오면서
강둑 기슭에 자리 잡은 회색 동네가 보이면
한 손에 엄마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에 큰엄마 손을 잡고 그네를 탔다.

전봇대 사이에 얽힌 검은 고압선들이
발을 돋우면 눈앞에 다가왔다가
발을 디디면 눈에서 멀어지는 바람에
머릿속이 조금씩 울거렸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우리 가족이 사는 집과
할머니가 사는 큰집이 붙어있었다.
나는 언제든지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오후가 되도록 할머니를 만나지 못한 어느 날, 우리 집 대문을 열고 골목을 내다보았다. 몇 번이나 골목을 훑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맞은편 집 담장에 그림자 한 뼘이 드리워졌을 때, 나는 큰집으로 건너갔다. 큰집 별채와 안채를 기웃거리고 부엌으로 큰엄마를 찾아가서 물었다.

ⓒInsung Jeon via Getty Images

“큰엄마, 할머니 어디 있어요?”

“글쎄, 큰엄마도 잘 모르겠어.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할머니가 집에 안 계셨어. 딱히 말도 남기지 않으셨고. 참! 창고에서 지게가 없어졌던데 할머니가 갖고 나가셨나 봐. 어디로 가셨을까?”

“큰엄마, 할머니 언제 와요?”

“글쎄, 그것도 잘 모르겠구나. 어서 돌아오셔야 할 텐데. 어머나! 날이 벌써 저무네? 저녁밥 지으려면 서둘러야겠다. 방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을래? 걱정하지 마. 할머니는 곧 돌아오실 거야.”

안방으로 들어와서 텔레비전을 켰다. 그런데 화면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할머니를 기다리는 사이에 창문 밖이 컴컴해졌다. 저녁밥 짓는 소리 너머로 큰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든아, 대문으로 나가볼래? 할머니가 돌아오신 것 같다. 큰엄마도 금방 따라 나갈게!”

솥단지를 옮겨 나르는 큰엄마를 뒤로하고 대문으로 달려나갔다. 그런데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양철 대문을 비집고 들어온 손가락만 보다. 주름진 손가락은 빗장을 끌러내려고 움직이고 있었다. 벌어진 대문 틈으로 언뜻 할머니 얼굴이 보였다.

“할머니!”

나는 할머니를 부르며 발을 굴다. 대문을 열어줘야 하는데 내 손은 빗장까지 닿지 않았다. 할머니도 대문 밖에서 나를 불렀다.

“이든아, 이것 좀…… 아니다. 할무니가 할 테니 그냥 두어라.”

대문은 잠시 후에 열렸고 할머니 모습이 보다.

“괜찮아. 할무니 괜찮으니까 어여 안으로 들어가. 어여.”

나는 할머니를 보고 얼어붙었다. 할머니는 나뭇짐을 높이 쌓은 지게를 지고 있었다. 커다란 나무가 할머니 등에 통째로 업혀있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마당 안으로 겨우 들어왔다.

“어머님, 세상에! 그게 다 무슨 짐이에요? 산에서 땔감을 구해오신 거예요? 이리 주세요. 어서 저한테 건네주세요!”

내 뒤에서 큰엄마가 할머니를 보고 외쳤다. 큰엄마는 할머니의 지게를 건네받고 창고로 옮겨가서 나뭇짐을 쏟아부었다. 할머니가 마당 수돗가에 앉아서 얼굴과 손을 씻었다. 나는 할머니 곁에 쪼그려 앉았다. 할머니가 말했다.

“춥다. 바람이 차가워. 방에 들어가 있어. 먼저 들어가 있어.”

둑을 넘어오는 차가운 강바람이 마당과 수돗가를 휩쓸었다. 할머니가 수건을 집어 들었고 나는 안방으로 들어와서 아랫목에 앉았다. 조금 전과 달리 화면이 눈에 들어와서 금세 텔레비전에 빠져들었다. 귓등으로 할머니와 큰엄마가 주고받는 이야기가 들려 왔다.

“어머님, 어서 방으로 들어가세요. 제가 저녁상 금방 차려서 들어갈게요.”

“이런, 내 옷이 너무 더러워졌네. 내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와야겠는데.”

“우선 방으로 들어가세요. 힘드신데 진지부터 드셔야죠.”

“아휴, 깨끗이 청소해놓은 방에 지저분한 옷을 입고 들어가면 미안하지…….”

“예? 안방은 아직 청소 안 했어요. 밥 먹고 하려고요. 어서 들어가세요.”

큰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가고 할머니는 마루 끝에 걸터앉았다. 할머니가 안방 쪽으로 몸을 숙이고 곁눈질로 방바닥을 보았다. 나도 할머니를 따라서 몸을 숙이고 곁눈질했다. 방바닥에서 눈이 마주치자 할머니는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청소를 안 하기는…… 걸레질을 얼마나 깨끗이 했는지 장판이 반짝반짝 빛나네.”

할머니가 몸을 일으키고 겉옷을 매만졌다. 부엌에서 큰엄마가 나를 불렀다.

“이든아, 이리 와서 할머니 좀 도와드려라.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시게 도와드려라!”

그 말에 내 몸이 벌떡 일으켜졌다. 나는 아랫목에서 마루로 달려 나왔고 할머니가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할머니는 털실로 짠 옷을 입고 있었고 옷에 박혀있는 것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내가 손을 내자 할머니가 말했다.

“괜찮으니까 놔둬. 거의 다했어. 할무니 혼자 할 수 있으니까 다시 들어가 있어.”

“할머니, 나도 할래. 나도!”

“아서라. 도깨비 풀은 뾰족해서 손 다쳐. 산에서 붙어온 거라 지저분해.”

“할머니, 나도 할래! 나도 할래!”

“그래? 그럼 여기 소매에 붙어있는 것 두 개만 뽑아.”

나는 소매에 붙은 도깨비 풀을 뽑아냈다. 할머니가 부엌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쪽 찐 머리에 붙은 나뭇잎도 떼어냈다. 그리고 손에 든 나뭇잎을 보자마자 겁을 먹었다. 나뭇잎은 색깔이 어두웠고 바스락 소리를 냈다. 생김새도 별나 보다. 내 손가락을 닮아있었다. 나는 한동안 나뭇잎을 바라보다가 바닥에 내려놓고 손가락을 올려보았다. 내 손은 나뭇잎보다 작았고 손등은 핏줄이 비칠 만큼 투명했다.

문득 즐거운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할머니를 껴안고 큰 소리로 웃었다. 할머니도 나를 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저녁상을 내오는 큰엄마를 불다.

“얘 웃는 것 좀 봐. 얘가 왜 이렇게 웃지? 응? 뭐가 이렇게 신나서 자꾸만 웃는 거지?”

시멘트로 포장된 골목길 끝에 널빤지 다리가 놓여있었다.
널빤지 다리는 먼지 날리는 흙길로 이어졌다.
흙길 모퉁이에 높은 담장이 둘러있었고 하얀 철문이 달려있었다.
작은 성당이었고 우리 집과 가까웠다.

일요일마다 나는 성당에 갈 수 있었다.
볕이 좋으면 또래 아이들과 잔디밭에 둘러앉아서
수녀님이 들려주는 하늘나라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날,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착한 사람들의 혼이 머무르는 하늘 위 아름다운 장소.
수녀님의 손끝을 따라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집채만 한 뭉게구름이 떠 있었다.

내가 아는 멋진 장소는 시장이었고
내가 아는 아름다운 장소는 성당이었다.
나는 구름이 숨겨놓은 천국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수녀님에게 물었다. 착한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고.

“착한 일을 해야 해요.”

수녀님이 대답했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였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세요.”

잔잔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착한 일을 해요. 천국에 갈 수 있어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 착한 일을 해요.”

며칠 지난 어느 저녁에 나는 할머니를 도와드렸다. 도깨비 풀을 뽑아내고 나뭇잎도 떼어냈다. 나뭇잎이 내 손가락을 닮아서 겁이 났지만, 이내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었다. 나는 그날 착한 일을 했으니까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기뻐했다.

ⓒPridannikov via Getty Images

 2

우리 집은 단칸방이었다.

아궁이를 갖춘 부엌이 붙어있었고 방 안에 낮은 서랍장과 이불 한 채, 라디오가 있었다. 초저녁이 되면 나는 큰집으로 건너갔다.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만화를 보았다. 내가 만화를 볼 때 큰집 안방은 비어있었다. 할머니는 별채에, 큰엄마는 부엌에, 큰아빠는 회사에 있었다.

언젠가 큰엄마가 며칠 동안 집을 비웠고 외지에서 일하는 삼촌이 큰집에 들다. 삼촌이 나에게 물었다.

“이든아, 큰엄마가 보고 싶지 않아? 큰엄마가 어디에 가셨는지 알아?”

“몰라.”

“큰엄마는 시골에 가셨어. 아기 낳으러 가신 거야!”

삼촌은 나에게 장난감을 보여주었다. 아기에게 줄 선물이라고 했다. 달걀처럼 생긴 장난감은 뭉뚝한 부리를 누르면 앞으로 넘어졌다가 맑은 소리를 내며 도로 일어섰다.

큰엄마가 돌아오던 날, 큰집 안방에 처음 보는 사람이 누워있었다.

‘누구지? 어디에서 왔지? 왜 여기에 있지?’

갑자기 나타난 사람 때문에 어리둥절했는데 할머니가 안방으로 들어왔다. 할머니는 나에게 누워있는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갓난아기니까 조심해서 봐야 한다. 큰엄마가 며칠 동안 집에 없었지? 친정에서 아기를 낳고 집으로 데려온 거야. 얘는 동생이고 남자 아기야. 너한테 사촌 동생이 생긴 거야.”

그날부터 큰집 안방은 한시도 비어있지 않았다. 늘 아기가 누워있었고 큰엄마와 할머니가 아기 곁에 함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텔레비전을 볼 때 소리를 줄였다.

어느 저녁에 아기가 자다 깨 울었다. 할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다독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잦아들었을 때 할머니가 혼잣말을 했다.

“어디 보자. 방에 불이 골고루 들어왔으려나…….”

할머니는 아기를 다독이던 손으로 방바닥을 쓰다듬었다. 이곳저곳을 짚어보기도 했다. 나는 할머니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다.

“할머니. 뭐 해요?”
“방바닥이 따뜻한지 알아보는 거야. 아기를 따뜻한 자리에 눕혀야 해서.”

따뜻한 자리는 아랫목이었다. 그래서 아랫목을 가리켰는데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거긴 너무 뜨거워서 안 돼. 차가워도 안 되지만, 너무 뜨거워도 안 되는 거야.”

따뜻한 자리를 골라낸 할머니는 이불을 끌어당기고 아기를 내려놓았다. 아기가 깊이 잠들었는지 확인하고 할머니는 나에게 팔을 벌렸다.

“이리 와. 너도 안아줄게. 어여 와.”

나는 내 발소리에 아기가 깨어날까 봐 뒤꿈치를 들고 걸어가서 할머니 무릎에 앉았다.

3

엄마는 나를 자주 때렸다.
내가 말을 안 듣는다고 했다.
내가 말썽을 피우면 엄마는 회초리를 들었다.
그리고 내가 울면 입을 때렸다.
하루는 회초리를 맞는데 너무 아파서
엄마가 하는 말을 귀담아들으려고 했다.
그런데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내 귀에 들리는 건 엄마의 고함과 내 울음소리다.
엄마가 때려도 나는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돌아서면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엄마는 또 회초리를 들었다.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다. 엄마는 방에서 다림질을 했고 나는 곁에서 구경했다.

“물을 더 떠와야겠네. 이든아, 엄마 물 떠올 테니까 다리미에 손대지 말고 있어. 뜨거우니까 절대로 만지면 안 돼!”

엄마는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물그릇을 들고 수돗가로 나갔다. 나는 다리미를 만지고 싶었지만, 엄마가 손대지 말라고 해서 만지지 않았다. 다리미에 연결된 전깃줄만 살짝살짝 건드렸다. 나는 다리미와 전선이 다른 물건인 줄 알았고 엄마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으로 들어온 엄마가 나를 보고 몹시 화를 냈다.

“이걸 왜 만져! 왜! 이게 얼마나 뜨거운 줄 알아? 뜨거운 거라고 말했어, 안 했어? 왜 말을 안 들어? 다리미에 데여 죽고 싶어?”

엄마는 다리미를 번쩍 들었다. 다리미를 어깨 위로 올리고 던져버릴 자세를 취했다. 나는 넙죽 엎드려서 계속 빌었다.

엄마가 나를 보고 웃은 날도 있다. 자고 일어나서 밖에 나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방에 있으라고 말했다. 나는 문턱에 서서 부엌에 있는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엄마, 나 나가서 놀면 안 돼?”

“오늘은 밖에 나가면 안 돼. 방에서 놀아. 좀 이따 오후에…….”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엄마의 대답은 물소리와 그릇 부딪히는 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엄마, 나 골목에 나가도 안 돼?”

“안 된다고 했잖아! 이거 마치면 좀 이따…….”

나는 엄마 등에 대고 다른 것을 물었다.

“방에서 뭐 하고 놀아? 뭐 하고 놀면 되는데?”

엄마는 일어나서 앞치마에 손을 닦고 벽에 걸린 개다리소반을 꺼내주었다.

“방에 종이하고 연필이 있을 거야. 여기 상에다 종이 놓고 그림 그리고 있어.”

종이는 금방 찾았는데 연필이 통 보이질 않았다. 볼펜만 있어서 엄마에게 물어봤더니 엄마는 볼펜으로 그림을 그려도 된다고 했다. 나는 앉아서 그림을 그렸고 설거지를 마친 엄마는 빨랫감을 추려 들고 수돗가로 나갔다. 엄마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림 그린 종이를 내었다.

“엄마, 나 그림 다 그렸어. 이제 나가서 놀아도 돼?”

“안 된다고 여러 번 말했지? 좀 이따 오후에……. 아니 그런데 이게 뭐야? 이 그림 정말 네가 그린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다. 엄마는 종이를 찬찬히 훑어보고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뽀뽀!”

엄마가 “뽀뽀”라고 말하면 나는 엄마 입술에 입을 맞췄다.

“아유 예뻐라! 이번엔 키스!”

엄마가 “키스”라고 말하면 나는 혀를 조금 내고 엄마 입술에 침을 묻혔다.

“아유 귀엽다! 아유 예쁘고 귀여운 내 새끼!”

내가 뽀뽀와 키스를 하면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내 얼굴에 볼을 비볐다. 나는 엄마 품에 안겨서 몰래 이맛살을 찌푸렸다. 나는 입술에 침을 묻히는 게 싫었다. 그리고 엄마가 아주 무서웠다.

 * 소설 ‘물기 없는 자리’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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