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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프인터뷰] '플로리다 프로젝트' 션 베이커는 월세만 밀리지 않는다면 계속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최근 한국을 찾은 션 베이커 감독을 만났다.

ⓒAUD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마냥 아름다운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로 불리는 미국 디즈니월드 근처의 모텔촌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인 무니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란다. 줄담배와 욕설을 일삼는 엄마와 ‘매직 캐슬(마법의 성)’ 모텔에서 지내며 나아질 여지가 전혀 없는 가난한 삶을 산다. 정작 디즈니월드에는 갈 여유가 없지만, 전혀 낙담하지 않는다.

션 베이커 감독은 이전부터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풀어왔다. 플로리다주 노숙자 지원 정책을 다룬 이번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는 불편한 주제일지 모르지만, 영화 곳곳에 따뜻함이 베어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홍보를 위해 최근 한국을 찾은 션 베이커 감독에게 무니가 바라보는 세상과 어른들의 눈에 비치는 무니의 삶에 대해 물었다. 이 아이들을 열악한 상황에 처하게 한 건 누구일까? 아이들의 순수함과 동심이 되레 아프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주인공인 무니와 잰시는 모텔 위에 뜬 무지개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무지개 끝엔 황금이 있대.” 션 베이커가 그린 무니의 세상에 악당은 없었다.

ⓒYoonsub Lee / HuffPost Korea

한국에 열성 팬들이 많다. 그 인기를 알고 있었나? 한국 팬들 사이에서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인기를 끈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솔직히 최근까지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정말 감사하다. 좋은 배급사를 만나 기쁘다. 영화에서 다룬 보편적인 주제가 한국을 포함한 해외 관객들의 공감을 산 덕이 아닌가 싶다. 내게 영향을 준 감독 중에 한국 감독이 많다. 그중에서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를 가장 좋아한다. 그는 ‘오아시스’에서 사회에서 버림받은 소외계층 사람들의 사랑을 그려 그들에게 존경을 표했다. 영화를 보고 정말 큰 감명을 받았다. 그의 신작이 칸 경쟁 부문에 진출해 너무 기쁘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나?

=이 영화는 어린 시절과 우정, 그리고 모성애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작품을 통해 이 세상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자세한 내용은 특정 집단이나 장소 등에 한정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큰 주제는 이 세상 어디에 살든 공감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에 대한 영화를 언젠가 만들고 싶었다. 나는 1920~30년대 방영된 단편 코미디 시리즈 ‘아워 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사실 내 모든 작품에는 ‘꾸러기 클럽‘, 즉 ‘아워 갱‘에 대한 암시나 언급이 있는데, 이번 영화는 완전한 헌사와 다를 바 없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현시대의 꾸러기 클럽’을 만들고자 했다.

‘아워 갱(Our Gang)’은 1930년대 대공황 시절을 그린 코미디 시리즈로, 등장인물 대부분이 가난한 아이들이다. ‘꾸러기 클럽(Little Rascals)’는 ‘아워 갱’을 각색한 페넬로페 스피리어스 감독의 1994년 작. (편집자 주)

플로리다주 키시미의 ‘히든 홈리스’ 문제를 언제 처음 접했나?

=공동 각본가인 크리스 베르고흐 덕에 처음 관심을 두게 됐다. 플로리다주 키시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기사를 잔뜩 보내줬는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라고 불리는 디즈니월드에서 고작 1마일 떨어진 값 싼 모텔에서 거주하며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그 전까지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AUD

키시미는 디즈니월드와의 근접성과 그 풍경 때문에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가난과 행복의 병치를 보여주는 듯했다. 생각해보시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 바로 밖에서 아이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정말이지 유일무이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내가 이 영화의 배경을 플로리다로 정한 이유다.

‘히든 홈리스(hidden homeless)’는 주 단위로 모텔 등 단기 숙박 시설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편집자 주)

촬영 전에 오랜 취재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안다.

=10년 전,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뉴욕에 살며 도매업에 종사하는 서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과 레바논 출신인 가게 주인들의 관계를 그린 영화였는데, 이 주제에 대해서도 영화를 찍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장소와 이민자들에 대한 관심은 있었지만, 그마저도 지나가면서 본 게 다였다. 조사를 위해서는 기자들이 취재하는 것처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이방인에 불과했으니까. 사람들에게 다가가 자기소개를 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알려주며 이야깃거리를 찾는 방식이었다. 그 후에는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그런 방식으로 사전 조사를 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다. 키시미의 모텔들을 옮겨다니며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과 운영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Yoonsub Lee / HuffPost Korea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이 아이들의 시선에서 촬영됐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관객들이 직접 무니와 여름을 보내는 것처럼 느끼기를 바랐다. 그들이 무니의 친구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무니가 삶을 바라보는 방식대로 찍어야 했다. 6살의 무니는 상상력이 넘치고, 모든 것에 감탄하는 시선으로 삶을 살아나간다. 이런 시선을 등장인물들의 성격뿐만 아니라 제작 스타일에도 더했다. 코미디와 파토스의 완벽한 균형을 맞추는 것도 중요했다. 만약 한쪽으로 조금이라도 치우치면 무례하거나 몰이해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 장면은 아이폰으로 촬영했다. 디즈니월드의 정식 허가 없이 비밀리에 찍었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가 뭔가?

=현실적으로 조합원으로만 이루어진 촬영진을 모두 데리고 디즈니월드에 가서 35mm 카메라로 촬영하는 건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이폰으로 이 장면을 찍으면 조용히 판을 안 벌이고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아이폰으로 이 장면을 촬영하면 영화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지 분석하고 고민해야 했다. 관객이 볼 때 35mm 카메라에서 아이폰으로 촬영 기법이 바뀐 것을 느낄텐 데, 그 변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까? 그 해석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션 베이커는 2015년 개봉한 영화 ‘탠저린’의 모든 장면을 아이폰으로 촬영한 바 있다. (편집자 주)

작품이 다큐멘터리와 비슷하다는 평도 있다.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해봤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다. 영화에 현실성을 가미하도록 다큐멘터리 제작 기술을 사용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을 존경한다. 시간과 돈은 헌신하지만 정작 되돌려 받는 건 많지 않으니 말이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시간과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하지만 당장은 그럴 인프라가 없다.

ⓒYoonsub Lee / HuffPost Korea

편집도 직접 하는 걸로 안다.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혼자 암실에 앉아 영화를 편집할 때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에서 연출의 반을 차지하는 건 편집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영화에 대해서만 하는 이야기다. 작품을 직접 편집하는 사람으로서 균형이나 이야기 전달 속도를 정할 때 가장 큰 자유를 느낀다. 편집 방식에서 나만의 색과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브리아 비나이트를 캐스팅했다고 들었다. 이전에는 연기 경험이 없던 그를 캐스팅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그 계기를 콕 짚어 말하기는 어렵다. 핼리 역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를 찾고 있었다. 핼리는 딸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 어머니 역할이다. 그래서 화면에 할리우드 스타가 등장한다면 연기력이 얼마나 훌륭하던 관객들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에서 브리아가 올린 사진을 봤다. 브리아는 나를 웃게 만들었다. 직접 올린 영상을 보니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었고, 브리아에게 기회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곧바로 캐스팅한 것은 아니다. 오디션을 봐야 했다. 브리아를 올랜도로 불러 아역 배우들과 대본을 읽도록 했는데 정말 빛이 났다. 배우로서의 가능성과 열의를 봤다. 캐릭터에 맞는 외모나 연기력보다 더 중요한 건 열의라고 생각한다.

무니 역의 브루클린 프린스와 핼리 역의 브리아 비나이트. 
무니 역의 브루클린 프린스와 핼리 역의 브리아 비나이트.  ⓒAUD

앞으로도 파격적인 캐스팅 방식을 지속할 예정인가?

=난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신선한 얼굴을 보는 게 정말 좋다. 다행히 신인배우 캐스팅 전적이 꽤 좋은 편이다. 영화 ‘스타렛’에서는 86세 배우가 연기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았다. ‘탠저린’에서는 마야와 키키가 연기에 처음 도전했는데, 특히 마야의 경우는 트랜스젠더 여성으로는 최초로 고담어워즈를 받았다.

ⓒ(주)미로스페이스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노바 엔터테인먼트/ HuffPost Korea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경우 예산 규모가 더 큰 만큼 리스크도 높았다. 그러나 내 전적 덕분에 재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 대형 스튜디오는 신인 발굴에 있어 모험을 즐기지 않는 것 같다. 나는 되려 신인이 주연을 맡는 것이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악역은 누군가?

= 만약 이 영화에 악당이 있다면 그건 특정 인물이 아니라 임대 주택 위기(affordable housing crisis)나 불경기, 연방 자금 지원 부족 등일 것이다.

ⓒAUD

당신의 작품은 할리우드 특유의 영화 제작 방식에서 벗어난다. 아이폰으로 영화를 찍고, 연기 경력이 전무한 배우들을 캐스팅한다. ‘할리우드의 이단아’라는 이미지가 굳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나는 주류 영화가 추구하는 관습적인 스토리텔링 기술에 맞서 싸우곤 한다. 영화를 세 부분으로 나눠 주인공-악당의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기술 말이다. 나는 관행과 규칙을 깨는 감독들을 선망해왔다. 베르노 헤어조크나 짐 자무쉬 같은 감독들은 영화 기법에 대한 접근이 다르다. 나는 그런 점에서 짜릿함을 느낀다. 월세만 밀리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이렇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게 내 목표다. 사실 난 해외 관객들에게 더 다가가고 싶다. ‘세계 영화’라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미국 내에서 인정받는 건 크게 관심 없다.

 

영상 촬영: 이윤섭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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