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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한센인 일상 담은 '사슴섬 간호일기' 마지막편이 나왔다

  • 이진우
  • 입력 2018.06.10 20:04
  • 수정 2018.06.10 20:08
ⓒ뉴스1

국립소록도병원 간호조무사회는 한센인과 함께 살고 있는 소록도 간호조무사의 경험담을 담은 13번째 ‘사슴섬 간호일기’를 출간했다고 10일 밝혔다.

‘사슴섬 간호일기’는 편견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한센인의 고달픈 삶과 애환, 그들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슴섬 간호일기’는 1993년 처음 출간됐다.

마지막으로 출간되는 13번째 ‘사슴섬 간호일기’에는 지난 책에 실린 글 63편, 2016년 병원 개원 100주년을 맞아 소록도를 다시 찾은 간호조무사 동문 글 8편, 자원봉사자 이야기 등 총 93편이 수록돼 있다.

편집을 도운 고은아 전 회장은 “23년간의 책 작업은 소록도에서 일하는 간호조무사의 역할과 수고를 기록하기에 충분했다”며 ”책을 발간하면서 기른 능동적인 의식과 자긍심은 한센 어르신들을 돌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고 말했다.

아래는 지난 2011년 출간된 ‘사슴섬 간호일기’ 중 일부의 내용이다.

진 아주머니의 편지 묶음 / 김영선(간호조무사)

녹생리 3병동, 그곳엔 삶의 진한 모습들이 있다.생생한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참으로 소중한 가슴 울리는 이야기들이 있다. 319방에는 진 아주머니가 혼자 사신다. 그 분의 행동이나 마음씀씀이는 나를 슬프게도 하지만 내가 나날의 일과를 충실히 보낼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어느날 아주머니께서 서랍 정리를 하시다가 편지 묶음 한 뭉치와 큼직큼직하게 쓰여 있는 서투른 볼펜 글씨의 양면지 한 다발을 내게 보여 주셨다. 빛바랜 낡은 편지 묶음은 숨겨진 지난 세월의 한덩이 애닳픔처럼 내 시선에 들어왔다.

아주머니의 허락을 얻어 편지 묶음을 끌러 보았다. 그것은 몇 년 전 아주머니가 신생리 독신사에 계실 때 이웃에 사시던, 지금은 정착지에 나가 있는 어느 아저씨로부터 온 편지들이었다. 편지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모아진 것이었다. 그 아저씨의 간곡한 호소와 기다림의 시간들이 차곡차곡 모아져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우리들의 여생, 뭐 꺼릴 것이 있겠소. 서로 좋아하는 사람끼리 어깨 기대고 삽시다.’ ‘이곳에 올 때까지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겠소.’ ‘올 겨울 나고 새봄에는 이곳에서 만납시다.’

그리고 맨 나중에 온 것으로 보이는 몇 통의 편지가 있었다. 첫 번째 도착한 편지로부터 1~2년이 지난 후의 것이었다. ″당신과 닮은 여인과 함께 살기로 했소. 당신을 너무 빼어닮아 당신인 양 느끼며 살아가겠소.. 늘 건강하시오. 어려운 일 있으면 주저 말고 연락 주시오.′ 한 남성의 너무나 아름다운 기다림과 아픈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아주머니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왜 그 아저씨께 가지 않으셨어요?”

아주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창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주머니는 이곳에 오기 전 결혼해서 세 자녀를 두고 있었단다. 소록도에 온 얼마 후 남편은 세 자녀를 데리고 다른 여자와 재혼했는데, 비록 떨어져 있지만 자식을 놔둔 채 어떻게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가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자식들 이름을 하염없이 부르고 계셨다.

아주머니는 또 하나의 편지 다발에서 1981년 9월로 우체국 소인이 찍힌 초등학교 3학년짜리 막내딸의 편지를 보여 주셨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많이 보고 싶어! 하지만 오빠가 참으래. 왜 참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오빠는 그냥 기도하면서 엄마 건강해지기를 빌으래. 그리고 내가 많이 크면 세민이와 함께 엄마 보러 갈 수 있다고. 엄마, 나 얼만큼 크면 엄마 보러 갈 수 있어? 오늘 삼촌이 다녀가셨어. 삼촌이 우리를 보고는 눈물 흘리셨어. 엄마, 나 학교 끝나고 애들과 많이 놀았어. 그래서 잠이 와. 그렇지만 오빠가 엄마한테 편지 쓰고 자라고 해서 지금 졸린 것을 참고 있는 중이야. 엄마 다음에 또 쓸게. 안녕! 막내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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