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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20~50대 여성 노동자들이 크게 공감하고 있다

"거래처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직위 대신 '예쁜 애'로 소개됐을 때 할 말을 잃었다" - 전자 회사 직원 (27세)

영화 스틸컷 
영화 스틸컷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하루하루 버티는 마음으로 죽어라 노력했어요.”

상업고등학교 졸업 뒤 40년 가까이 일한 공기업에서 퇴직을 앞둔 최영숙(가명·59)씨는 회사 생활을 이렇게 돌아봤다. 두꺼운 코트로 교복의 학교 문양을 가리고 다녔지만 사회에 나와선 ‘고졸’을 가릴 수 없었다. 은행에 취직했지만 짬을 내서 야간대학을 다녔고, 1980년대 초반 대졸 공채로 공기업에 입사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지만 곧 낙담했다. “아침에 일찍 출근해 다른 고졸 여직원들과 함께 남직원들의 자리를 정리하라”는 요구를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도 업무 대신 커피 타기, 사무실 정리 등 온갖 잡무를 떠안는 고졸 여성 노동자들이 나온다. 1995년 직장이 배경인 영화가 연일 흥행(3일 100만 관객 돌파)을 이어가는 가운데 영화 속 ‘자영’(고아성)에게 공감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온라인에는 ‘2020년의 자영씨’들이 ‘25년 전 자영씨’를 보며 “지금 나와 내 옆자리 여성들의 이야기 같다”고 쓴 관람평이 이어진다.  

5일 <한겨레>는 20~50대의 사무직 여성 노동자들에게 ‘자영씨’에 왜 공감하는지 물었다. 이들은 “영화 속 자영씨의 고군분투가 남 일 같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59세 김정희씨 ”여직원 승진하면 남직원이 역차별이라고”

상고 졸업 후 40년 넘게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정희(가명·59)씨는 입사 초반 남직원들과 동등한 처우를 받기 위해 사내 직급전환 시험을 치러야 했다. 난도가 상당한데다 임원들이 자의적으로 눈 밖에 난 여직원들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어 ‘고시’라 불렸다. ‘토익 600점을 넘기면 대리로 승진시켜준다’며 고졸 여직원들의 ‘노력’만을 강조했던 영화 속 설정과 겹친다. 그는 “그동안 차별이 많이 사라졌다”면서도 “실적 좋은 여직원들이 승진하면 남직원들이 ‘역차별’이라고 투덜대거나, 커피 심부름 등 잡무는 여직원이 맡는 경향은 지금도 있다”고 말했다.

 

27세 박모씨 ”‘예쁜 애’로 소개된다”

최근 대기업에 취직한 20대 여성들도 선배 세대와 정도만 다를 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토로했다. 박아무개(26)씨는 상고 졸업 후 대형 기계 회사에 들어갔다. 당시(2012년)는 정부가 고졸 채용을 장려하고 기업들도 고졸 공채를 확대하던 때였다. ‘5년간 일하면 대졸 사원과 같은 직급으로 승격할 수 있다’고 들었지만 그는 “어린 여직원이란 이유로 책상을 닦고 과일을 썰게 하는 일이 잦았다”고 말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8년을 다녀도 회사에선 줄곧 ‘여자애’로 불렸던 영화 속 인물들처럼 여성들은 ‘동료’로 인정받지 못한다.

2013년 상고 졸업 뒤 금융회사에 취직한 박아무개(27)씨는 “상사가 ‘요즘 대학생들이 스펙 쌓느라 힘든데 너 정도면 거저 취업했다’고 말할 때 큰 상처를 입었다”고 털어놨다. 2017년 대학 졸업 뒤 전자 회사에 취직한 오아무개(27)씨도 “영화처럼 원피스 유니폼을 입진 않지만 ‘여자는 꽃’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남아 있다. 거래처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직위 대신 ‘예쁜 애’로 소개됐을 땐 할 말을 잃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영화처럼 회사와 사회는 “차별은 없지 않냐”고 되묻는다. 지난 9월 대한상공회의소의 여성 노동자 300명, 기업 인사 담당자 300명 대상 설문조사에서 노동자들은 71%가 ‘회사 생활 전반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하다’고 답했지만 인사 담당자들은 81%가 ‘성차별이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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