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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씨는 장애인 아니고 학벌 좋은 여성" 안희정 변론에 대한 일침

장애, 학력, 혼인 경험은 '성적 자기결정권'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안 전 지사가 성범죄 피해자를 비난하는 전형적인 논리를 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뉴스1

수행비서를 위력으로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첫 재판이 열린 지난 2일 안 전 지사쪽 변호인이 변론 과정에서 했던 표현을 두고 부적절하다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안 전 지사쪽 변호인이 위력에 의한 성관계가 아니었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성적 자기결정권 여부를 결혼 여부나 학벌 등을 기준으로 삼아 주장했기 때문이다.

안 전 지사쪽은 이날 오전 서울서부지법 형사 11부(재판장 조병구)의 심리로 진행된 재판에서 “언론에 나와 피해를 호소했다고 해서 이성 간의 성관계나 스킨십이 성폭력이 될 수는 없다”며 위력에 의한 성관계가 아니었음을 강조하고 나섰다. 문제가 된 표현은 이를 뒷받침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안 전 지사쪽 대리인 오선희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는 “(김지은 전 정무비서는) 아동이나 장애인이 아니고 혼인 경험이 있는 학벌 좋은 여성으로서 안정적인 공무원 자리를 버리고 무보수 자원봉사로 일을 할 정도로 주체적이고 결단력 있는 여성”이라며 “(이런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이 제한되는 상황에 있었다고 보는 건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로 볼 수 없는 정황들도 공판 과정에서 입증할 것”이라며 김 전 비서의 행실에만 초점을 맞추는 주장도 이어졌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지방법원에서 '안희정 성폭력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방청을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지방법원에서 '안희정 성폭력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방청을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이에 대해 한국여성의전화 김수정 활동가는 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학벌이나 결혼 여부로 (개인의) 주체성을 판단할 순 없다”며 “당사자가 실제로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을만한 상황이었는지 그 맥락을 고려해야 하는데 (권력관계를 감안할 때) 절대적으로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다. 이런 식으로 사건 자체가 아니라 피해자의 이력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저열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법적으로 성범죄 피해를 여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학력이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이선경 변호사는 “성범죄 피해 여부는 학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실제로 엘리트, 전문직 여성들도 직장에서 성추행·성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이유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또 안 전 지사쪽의 표현이 성범죄 피해자에게 부과되는 고정관념을 재생산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체적인 여성이면 성범죄 피해를 입었을 리 없다는 식의 주장은 (반대로 보면) ‘짧은 치마 입고 다니는 여성은 문제를 유발한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만 보여주는 것”이라고 짚었다.

누리꾼들도 변론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나섰다. 한 누리꾼(@yt******)은 “피해자가 스스로 택해서 안희정 캠프에 올 정도로 결단력이 있는 사람이었음을 굉장히 강조하는데 ‘정치인 서포터가 되겠다=정치인과의 성행위에 동의한다’는 뜻이 아님은 다 아는 상식”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누리꾼(@ev******)은 “전국적으로 피해자의 사생활을 까발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페이스북 등에는 “여성, 장애, 저학력을 한꺼번에 비하한다”, “성적 자기결정권 행사 여부를 장애인에 빗대는게 제정신인가”, “장애인이고 저학력이라면 강간해도 된다는 이야기인가” 등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한국여성대표연합은 이날 공식 트위터를 통해 “혼인 경험을 가진 여성이라도 함부로 범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며 “더 이상 2, 3차 가해를 하지 말라”고 밝혔다.

한편, 안 전 지사쪽이 2일 재판에서 ‘김 전 비서가 피해사실을 곧바로 주변에 알리지 않은 점’을 거론한 것도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안 전 지사쪽 오선희 변호사는 “(고소인은) 운전기사로부터 받은 성추행 피해 사실은 (지인에게) 상세하게 피해를 호소한다. 이와 같은 피해도 이렇게 상세히 지적했는데 피고인(안희정)에게 받은 피해는 호소한 적이 없다”는 점을 들며 ‘위력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에 대해 이선경 변호사는 “(안 전 지사가) 지위가 높으니까 말하기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안 전 지사가 잘못되면 캠프 사람들도 미래가 불투명해지는 상황이다. 그런 환경에선 더욱 이야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늦게 신고한다고 해서 있었던 사실이 없었던 걸로 되는 게 아니고, 합의되지 않은 관계가 합의된 것으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그 사실만 갖고 (혐의에 대해) 판단하기는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김수정 활동가 역시 “왜 바로 이야기 하지 않았느냐는 비난은 (성범죄 피해자에게 가하는) 전형적인 주장”이라며 “상대방이 나한테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일 때는 당연히 바로 이야기를 하기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왜 피해를 바로 이야기할 수 없었는지 이유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미투’ 관련해 제대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며 “수많은 여성들이 용기있게 고발한 걸 한국사회가 얼마나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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