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07월 02일 16시 10분 KST

무성애자인 나에게 섹스는 이런 느낌이다

연애, 결혼, 섹스는 무성애의 기준이 아니다.

무성애자란 일반적으로 ‘성적 끌림을 지속적으로 경험하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여기서 ‘성적 끌림‘(Sexual attraction)은 ‘끌린 상대와 성적으로 접촉하고자 하는 정서적 반응‘을 의미한다. 무성애자들은 상대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더라도, ‘로맨틱 끌림’(Romantic attraction: 끌리는 상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정서적 반응)을 느낄 수 있다.

무성애자 모임은 ‘로맨틱 끌림의 강도와 방향은 로맨틱 지향성이기 때문에 성지향성인 무성애와 별개‘라며 ‘연애, 결혼, 섹스는 무성애의 기준이 아니다. 무성애자도 각자의 이유로 연애를 하거나 결혼과 출산을 원하기도 하고 섹스에 참여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반성애자/반로맨틱‘(Demisexual/Demiromantic: 정서적 유대감이 쌓인 상대에게만 성적 끌림/로맨틱 끌림을 느끼는 사람),  ‘회색무성애자/회색무로맨틱‘(Grey-Asexual/Grey-Aromantic: 무성애/무로맨틱과 유성애/유로맨틱 사이의 성지향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 등등 다양한 범주가 있다. (출처: 무성애의 가시화(Visibility)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의 모임 ‘무성애 가시화 행동 무:대’무성애 커뮤니티 에이스그래피 바로 가기

고등학교 때 나는 공개적으로 무성애자라고 밝혔다.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무성애자. 내 친구 에릭이 처음 알려준 말이다. 고등학생 시절, 미 클리블랜드 동쪽의 어느 행사에 갔다가 에릭의 친구 저레드가 우리를 집까지 차로 태워다 주었다. 토론대회였는지, 저레드 부모님 집에서의 파티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뒷자리에 앉은 우리는 에릭에게 남자친구에 대해 물었다. 에릭은 내가 본 남자아이 중 가장 눈썹을 잘 관리하던 아이와 헤어진 뒤였다.

에릭은 이 질문에 코웃음을 쳤다. “난 아무도 안 만나. 난 무성애자야.”

집에 들어온 나는 구글에서 무성애자(asexual)를 검색했다. 웹사이트와 온라인 커뮤니티가 나왔다. 에릭은 몇 달 뒤에 무성애자라는 이름을 버리고 펜실베이니아 이리 출신의 완벽주의자 졸업생 대표와 사귀기 시작했지만, 나는 천천히 무성애자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였다.

고등학교때 나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LGBT 인권 활동가였다. 에릭과 함께 학생 평등 인권 연합 모임을 매주 가졌다. 우리는 학생 안내서에 퀴어 인권 보호가 추가되어야 한다고 항의했다. 동성애자의 역사와 트랜스 이슈에 대해 교육하는 사회학과 심리학 수업 행사도 조직했다. 지역 대학의 퍼킨스에서 댄 새비지[미국 작가이자 LGBTQ 활동가]와 팬 케이크를 먹은 적도 있었다. 학교의 메이크업/특수 효과 교사와 함께 증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실제 멍과 흉터와 똑같은 분장을 하고 학교 안을 걷기도 했다. 우리 몸에는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써서 붙였다. 비슷한 범죄 이야기를 구내식당 벽과 창문에 붙였다.

교사와 친구들은 자연스레 내가 게이라고 생각했다. 난 그걸 굳이 꺼리지도 정정하지도 않았고, 내 정체성은 규정되지 않은 채 한동안 애매한 상태로 있었다. 그리고 나는 무성애자라고 커밍아웃했다. 그건 진실이었다. 학교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젠더, 아름다움, 욕정에서 크게 떨어져 있는 기분이었다. 흥미롭기는 했지만 종교와 마찬가지로 나를 움직이게 만들지는 못했다. 내가 파악할 수 없는 투명하고 공기 같은 섬유로 짜여진 것 같았다.

커밍아웃하자 사람들은 2005년에 할 수 있었던 만큼 최선을 다해 받아들여 주었다. 사회학 교사는 내 생각을 존중해 주라고 수업 시간에 말했다. 이것이 지금 이 순간의 내 생각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내 친구들은 내가 누군가와 섹스를 하고 싶다면 누구랑 하고 싶을지 물었다. 에릭은 지난번에 헤어지고 나서 무성애자가 된 기분이 들었지만 극복했다고 말했다. 무성애자라는 분류가 잠정적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강조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 말은 존중받았다. 내가 지어낸다고 의심을 품은 사람은 없었다. 어머니는 계속 내게 뭔가 할 말이 없는지 캐물었다. 나는 무성애자라고 말했고, 어머니는 잠시 눈을 깜박인 후 다시는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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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 가서 남자친구를 사귀자 내 친구들은 무성애자라는 단어를 버렸다. 연애를 하고 섹스를 하겠다고 하면 친구들은 “그럼 넌 이제 무성애자 아니야?”라고 말했다. 나는 젊고 무척 예민하며 속눈썹이 긴 독일어 전공자를 사랑했다.

우리는 3년 동안 사귀면서 몇 달 동안만 성관계를 가졌다. 나는 내가 무성애자다, 아마 그런 것 같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상처를 받았다. 취해서 내게 헤어지자고도, 내가 원하지 않는 섹스를 하도록 꼬드기기도, 맨정신으로 사랑을 확언하기도 했다. 내가 거부한 것 때문에 그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다. 그는 속았다고 느꼈다. 나는 마음이 아플 정도로 그의 애정과 관심을 원했지만, 내 하반신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가 갈색 머리를 땋은 뻐드렁니 여성과 잤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가 내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을 때 내가 울자 그는 짜증을 냈다. 내가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해 아무 손길도 원하지 않을 때도 그랬다. 내가 기쁨이 아닌 좌절 때문에 천정을 바라보는 것을 지켜보았고, 병원에 가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마지막 말에 화가 났다. 내게 잘못된 것이 없음을, 고쳐야 할 것이 없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서 원했던 것은 추운 옥탑방에서 함께 지내기, 집에서 파티를 열었을 때 함께 웃기 같은 것이었다. 나는 스리섬, 섹스토이, 남녀가 섞인 파티에서 바닥을 굴러다니기, 밤이 되면 하는 열정의 흉내는 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동안은 하고 지냈다.

내 몸이 섹스가 가능하다는 게 문제였다. 슬퍼지고 흥미는 없었어도, 구역질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나를 만질 때마다 온몸이 짜릿해지는 동시에 지쳤다. 내 성기는 감각은 없었어도 잘 기능했다. 육체적 쾌감이 문득 느껴질 때마다 역겨웠다. 내가 원한 게 아니었다. 내가 통제할 수도 없었다. 잠시 악마가 씌인 것 같았다. 탈출할 수 없는 노예가 된 것 같았다. 그는 내 몸이 육체적으로 반응하는 것을 ‘네가 꾹 참으면 같이 지낼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한 번은 그가 나를 자기 무릎 위에 앉히고 삽입한 채 우는 나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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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기 싫어.” 울음이 나와서 괴로웠다.

“나도 알아.”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거의 공감하는 것 같이 들렸다. “넌 하기 싫지.” 그는 내 속옷 위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몸은 반응했다. “하지만 해야 하지 않아?”

그를 달래려 시도할 때마다 슬픔이 치솟았다. 나는 절정 그 자체를 강압, 불화, 죄책감과 연관 짓게 되었다. 내가 시카고의 대학원에 가게 되어 우리는 헤어졌다.

시카고에서는 굉장히 매력적인 남성과 사귀었다. 나는 그에 대한 감탄과 부러움을 욕구로 잘못 생각했다. 사랑에서 이런 실수는 드물지 않다. 나는 그 사람과 자고 싶은 걸까, 그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나는 그게 뭐가 다른지를 몰랐다. 그가 원하는 것은 훨씬 더 명확했다. 매일 섹스하기를 원했다. 그는 섹스를 하지 못하면 바람을 피우고 화를 냈다. 가끔은 두 가지를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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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1세였고 우울했다. 낯선 도시에 와 있었고 비참할 정도로 외로웠다. 너무 외로워서, 나를 만나러 온 할아버지가 나를 보자마자 딱해서 울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이 매력적인, 요구가 많은 남성에게 계속 몸을 내주었다. 나는 거의 가만히 있었고 가끔 몸을 떨었다. 그 대신 잠자리에서 나누는 다정한 대화와 그와의 긴 산책을 얻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학대를 견뎠다. 나는 눈물이 흘렀고 불편했지만, 몸에 전류처럼 흐르는 느낌은 강렬했다. 나는 통제력을 잃는 게 싫었다. 그가 나를 눕히고 삽입할 때 내 몸이 흔들리는 게 싫었다. 마치 내가 원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가 원하던 경험들을 공허하게 해가며, 여러 남성 및 여성들과 섹스를 해보았다. 댄 새비지도 내가 그러길 원하지 않았을까. 나는 젊고 이성애자가 아니며 인습을 타파하는 거침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는 새해 파티에서 데님 뷔스티에를 입은 여성 위에 올라타 그녀의 젖꼭지를 빨고 싶었다. 내가 그런 걸 원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원했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다.

시카고에서 연기자, 코미디언, 인지 과학 전공의 학생과 그의 생물학자 여자 친구, 대학 중퇴자, 오하이오주 출신의 다른 대학원생과 만났지만 아무 느낌도 없었다. 2010년 봄에는 한 주 동안 새로운 사람 세 명과 잤다. 나로선 신기록이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까지, 내 마음은 딴 데 가 있었고 지루했다.

당시 내 몸이 진정으로 타올랐던 상대는 마르고 약간 붉은색이 도는 금발의 사서였다. 내 남자친구가 나를 두고 계속 바람을 피우던 상대였다. 그녀는 수줍음이 많았고, 입과 코가 컸다. 그녀가 나에 대해 쓴 성애물을 남자친구의 컴퓨터에서 발견했다. 나는 그걸 읽으며 울었고 소름 끼치는 기쁨에 몸을 떨었다. 한 번은 그녀가 공격을 당해 몇 시간 동안 통화하며 이야기를 듣고 달래주었다. 우리는 나름대로는 사랑하는 사이였다. 나는 매주 몇 시간 동안 온라인에서 그녀의 사진을 보았다. 아주 먼 곳에 살았지만 나는 그녀의 몸매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며칠마다 한 번씩 그녀에 대한 판타지를 생각했다.

이끌림이라는 게 보통 이런 느낌일까. 넌더리가 날 정도로 강력하고, 죄책감이 강하게 들었고 슬펐다. 하지만 아름답기도 했다. 다른 삶이었다면 우리는 좋은 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공유한 남성 때문에 다 망쳤고, 그는 우리 둘 다에게 트라우마를 주었다. 내 섹슈얼리티는 그로 인해 더욱 내 안으로 뒷걸음질 쳐 들어갔다. 그뒤로 약 5년 정도 내 섹슈얼리티는 겨울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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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파트너와는 거의 6년 가까이 만나고 있다. 그를 볼 때면 내 동공이 커지고 시선이 부드러워지는 게 느껴진다. 매번. 그를 처음 만난 날부터, 그와 눈이 마주치면 가슴이 찌릿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섬세하고 예쁘다. 짙은 색의 머리는 반짝거리고, 팔은 근육질이지만 아주 날씬하다. 그의 배와 가슴에 검은 털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자란 것도 좋고, 흉골 부분이 움푹 들어간 것도 좋다. 아몬드 모양의 눈, 웃을 때 눈이 사라지고 잔주름이 생기는 것도 좋다. 내 몸과 마음에서 그에 대한 끌림을 느낀다. 그가 좋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알기 전부터 그랬다. 직감할 수 있었고 이번 경우 내 직감은 옳았다. 나는 그를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완벽해, 당신은 완벽해, 당신은 정말 완벽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함께 한 지금은 나는 그를 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이 빌어먹을 찐따놈아 사랑해.

나는 그를 원한다. 가끔 막연히 다른 사람들을 원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무성애자다. 누군가를 보며 저 사람이 내 안에 깊이 들어왔으면 하는 욕망을 느끼는 건 점점 드물어진다. 나를 홀리는 사람과의 섹스 판타지를 떠올리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그들의 이마에 키스하거나 젖은 몸을 타월로 닦아주는 생각을 주로 한다. 심지어 내 파트너와도 거의 그렇다. 지금도 내 몸엔 감각이 없고 느낌은 흐릿하다. 리비도는 낮지만 동면 상태는 아니다. 내 뇌가 연기에 자극이라도 받은 것처럼 강력한 힘에 나는 씰룩거리고 숨을 훅 들이켜며 느낀다. 그게 지나가고 나면 나는 다시 머리가 또렷해지고, 텅 비고 합리적이 된다. 나는 내가 늘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젠더와 욕망의 세계들을 예나 지금이나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사랑과 포옹을 좋아한다. 내가 가졌으면 좋겠다 싶은 몸들을, 신체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좋아한다. 게이 바 뒤쪽이나 호텔 욕조에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마음속으로 노래를 부르고 자꾸 눈길을 보낸다. 길을 가다 아름다운 얼굴을 마주치면 미소를 짓고 얼굴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지만, 통통하고 귀여운 코기를 만날 때만큼은 아니다.

나는 사람과의 섹스에 대해 판타지를 품지 않는다. 나를 유혹할 수 있는 현실의 섹스는 거의 없다. 내게도 페티시가 있지만, 실제로 시도해 보면 눈물이 나거나 꼼짝도 못 하게 되었다. 현실에서 겪게 되면 공허하고 무서운 기분이 든다. 젖꼭지에서는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고, 한 달의 절반 정도 내 성기는 간지러움이 들고 접촉을 원하지 않는다. 뇌에는 슬픔이 가득 찬다.

내 몸에 대해 이상한 기분이 들지만, 쾌감과 같은 느낌들은 불쑥 들었다 말았다 한다. 클리토리스가 커지고 리비도가 올라가는 자극도 싫다. 하체를 더 민감하게 만드는 모든 게 다 싫다. 너무 민감한 동시에 너무 둔감하다. 내가 섹시한 것도, 감정 없이 연기하듯 섹스하는 영상을 보는 것도 싫다.

내가 섹스를 할 때는 내가 원할 때뿐이다. 내 몸이 그때그때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철저히 지킨다. 나는 파트너의 눈을 보고 이로 그의 귓불을 문다. 그의 가슴 털을 잡아당긴다. 그가 내 품에 안겨 몸부림치거나 헐떡일 때 흥분을 느낀다. 내가 그를 짜릿하게 만드는 것은 감당할 수 있다. 정말 좋다. 내 성기와 마음이 부푼다. 내가 스스로 짜릿해 하는 것은 싫다. 예외가 아주 가끔 있긴 하다.

나는 무성애자라는 명칭을 쓰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언제나 무성애자였다. 나는 무성애, 무젠더, 양성애자라는 묘한 조합이다. 이 세 가지 모두 언제나 진실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랑하려 하고 사랑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사랑의 화려함을 받아들이려 한다. 내가 누구를 어떻게 만지는지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을 때 내 몸이 흥분을 느끼는 것을 받아들이려 한다. 내 몸의 중립성을 즐기려 하고, 내 몸과 같은 몸들이 흔히 하는 행동을 예상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전원을 껐다 켰다 할 수 있다. 고쳐야 할 것은 없다.

 

* 허프포스트US의 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