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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6일 20시 15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6월 26일 20시 15분 KST

33세에 사춘기를 겪고 있는 트랜스 여성의 삶을 사진 시리즈로 기록했다

“나는 로렐라이가 겪고 있는 일과 내가 사춘기 때 겪었던 일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사진가 제니퍼의 말이다.

JENNIFER LOEBER
“Lorelei, reflecting,” 2013

주의: 이 기사에는 누드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니퍼 로버(Jennifer Loeber)사진 시리즈 ‘걸’(Gyrle)의 첫 사진은 1987년에 ‘히피 캠프’에서 찍은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버크셔 산맥에서 찍었다.

흐릿한 이 사진에서는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기묘할 정도로 흐린 이 사진에서는 두 명의 얼굴만 의도적으로 또렷하게 나와 있다. 오른쪽 위에는 제니퍼 로버가 있다. 아직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되기 전의, 옆 가르마를 한 모습이다. 사진 가운데에는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미소를 짓는 맥이 있다.

이 사진만 봐서는 제니퍼와 맥에 큰 관심이 가진 않는다. 맥과 제니퍼는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하고 있지 않다. 사실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였지만 가깝지는 않았다. 수십 년 뒤에 치솟는 여성성의 힘겨움과 승리에 대한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되리라는 것은 둘 다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맥은 이미 자신이 ‘남자아이인 척하는’ 여자아이라고 생각했다.

JENNIFER LOEBER
오른쪽 위에 제니퍼 로버가 있으며, 사진 가운데에 덥수룩한 머리의 맥이 있다. “Lorelei (Mac) and Jennifer,” 1987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내가 여성이라는 걸 늘 알고 있었다.” 로렐라이 에리시스(Lorelei Erisis)가 설명했다.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하기 전부터도 스스로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호르몬 대체 요법을 시작하고 이름을 맥에서 로렐라이로 바꾸었다.

제니퍼는 전혀 몰랐다. 80년대에 제니퍼는 로렐라이가 자신에게 반했다는 것도 몰랐다. 로렐라이가 반한 첫 여성이 제니퍼였다. “그녀는 뉴욕에서 온 쿨한 펑크 소녀였다. 당시 나는 어색하고 커밍아웃하지 않은 트랜스 아이였다.” 로렐라이의 말이다.

제니퍼는 몰랐지만, 제니퍼가 로렐라이에게 미친 영향은 아주 강력했다. 로렐라이가 33세에 성전환을 시작할 때, 제니퍼의 여성적 행동을 전형으로 삼았을 정도였다.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나라는 여성은 내가 만났던 여성 제니퍼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고 로렐라이는 말한다.

JENNIFER LOEBER
“Lorelei, in the backyard,” 2016 

여성성을 상상하고 연기하는 것은 시스젠더 및 트랜스 여성들에게 익숙한 일이지만, 보편적인 하나의 경험이란 없다.

어머니, 교사, 셀러브리티에게서 가져온 다양한 여성성의 표현을 시도해볼 수 있다. 우리가 젠더 정체성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는 다양한 영향과 발상에 따라 정해진다. 제스처, 말투, 여러 해에 걸쳐 이뤄진 패션과 미에 대한 생각들에 따르게 된다.

로렐라이가 성전환을 할 때는 트랜스 여성들이 취할 수 있는 주류 이미지가 없었다. 그래서 캠프에서 보았던 제니퍼의 이미지를 일부 가져와 젠더 정체성에 적용했다.

몇 년 뒤 제니퍼는 그러한 과정을 현실에 재현했다. ‘걸’은 로렐라이가 여성성을 경험한 이야기다. 그러나 4년에 걸쳐 작업한 이 사진들은 제니퍼 자신이 성인이 되는 이야기, 로렐라이가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성년이 되는 이야기의 유사성을 탐구하고 있기도 하다. 두 여성의 삶은 별개인 동시에 엮이기도 했다. 이들이 여성성을 이해하고 연기하는 모습이 사진에 담겨 있다.

JENNIFER LOEBER
“Lorelei, in the Florida sun,” 2013 

제니퍼와 로렐라이는 캠프 후 연락이 끊겼지만, 15년 정도 후 페이스북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제니퍼는 로렐라이가 트랜스로 커밍아웃했다는 것을 페이스북으로 알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난 뒤인 2012년 제니퍼는 로렐라이에게 흔치 않은 제안을 했다. 제니퍼는 집에서 나체로 있는 여성들의 사진 시리즈를 작업 중이었다.

타고난 연기자인 로렐라이는 즉시 수락했다. “나는 내 몸이 딱히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언제나 편안했다.” 제니퍼의 아파트에서 촬영했고, 두 사람 모두 자연스럽고 편하게 진행했다. 이번 시리즈에서 시스젠더 여성이 아닌 사람은 로렐라이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여성성이 로버의 작품에 실렸다는 것을 기뻐했다.

로렐라이가 촬영에 응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성전환을 고려할 때 그런 이미지들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에서 트랜스 이미지를 찾아보려 해도 포르노만 잔뜩 나왔다. 나는 포르노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내 친구 중에는 훌륭한 성인물 연기자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제니퍼가 트랜스의 신체를 정상화하는 식으로 보여준다는 게 좋았다.”
JENNIFER LOEBER

제니퍼는 같은 해에 로렐라이의 사진을 다시 보고 “[로렐라이의] 이야기에 훨씬 더 많은 것이 있음”을 깨닫고 다시 연락했다. “어쩌면 몇 년 동안” 로렐라이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기록하고 싶다고 했다. ‘걸’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번에도 로렐라이는 주저 없이 수락했다. 그 뒤로 몇 년 동안 제니퍼는 1년에 네 번 정도 매사추세츠에 가서 5일씩 머무르며 트랜스 여성으로 살아가는 로렐라이의 일상을 세세히 기록했다.

제니퍼는 로렐라이가 허리까지 기른 금발 머리를 찰랑거리며 청록색 하이힐을 신어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로렐라이가 샤워하고 나와서 면도하다 생긴 작은 핏방울을 들여다보는 것도 보았다.

제니퍼는 로렐라이에게 포즈를 취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주의를 끄는 순간이나 행동이 있으면 “움직이지 마!”라고 외칠 때가 있었다. 그 결과물인 스냅샷 사진들은 고조된 현실을 담고 있다. 특정 순간들에 포착된 진정한 이야기가 있다. 순수 미술과 포토저널리즘 사이에 위치한 사진들이었다.

JENNIFER LOEBER
“Jennifer (age 10), imitating Cyndi Lauper; Lorelei, making cosmetic choices,” 2012 

제니퍼는 몇 년 동안 이 시리즈를 작업하면서, 작품에 대한 구상이 바뀌었다.

“나는 로렐라이가 겪고 있는 일과 내가 사춘기 때 겪었던 일이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제니퍼의 말이다.

아티스트와 대상, 관찰자와 관찰 대상의 관계가 허물어졌다. 제니퍼는 여성이 되었던 자신의 경험과 로렐라이의 경험을 견주며, 자신을 도움을 주는 캐릭터로 설정했다.

제니퍼는 로렐라이의 사진과 십대 초반 자신의 사진을 나란히 두었다. 스타일, 포즈, 페르소나를 실험하던 시기의 사진들이다. 묘할 정도로 비슷한 사진들이 많다. 여성들이 자아를 찾아갈 때 시도해 보는 여러 가지 여성성이 드러나 있다.

로렐라이는 호르몬 요법으로 두 번째의 사춘기를 맞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는 16세 여성과 호르몬 수치가 같았다. 광고를 보면서 울었다. 십대 소녀와 똑같이 짜증도 냈다.”

JENNIFER LOEBER

‘걸’에서 제니퍼는 자신의 경험과 로렐라이의 경험을 동일시하지는 않았지만 유사성을 드러냈다. 어릴 적의 제니퍼와 성인이 된 로렐라이는 기이할 정도로 비슷할 때가 있다. 로렐라이는 이게 우연의 일치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캠프에서 제니퍼가 맥(로렐라이)에게 주었던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제니퍼의 사춘기는 나의 때늦은 사춘기에 영향을 주었다. 내가 그녀의 영향을 받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강렬한 이미지 중 하나는 로렐라이의 어머니가 등장하는 사진이다. 로렐라이와 어머니는 알몸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로렐라이의 머리 일부는 핑크색, 어머니의 머리 일부는 청록색으로 염색했다. 모녀는 닮았다. 로렐라이와 제니퍼의 비슷함도 떠오르지만, 가족 간의 유대와 육체적 유사성을 넘어선 훨씬 더 깊은 유대를 암시한다.

JENNIFER LOEBER
“Lorelei, with her mother,” 2013 

제니퍼는 이 시리즈의 교훈이 달콤쌉싸름하다고 한다.

“여성들은 시스젠더든 트랜스젠더든 불가능한 기준을 요구받는다. 로렐라이는 내가 십대에 겪었던 일들을 겪었다. 어색하고 매력적이지 못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녀가 나와 똑같은 일을 겪는 것을 지켜보자니, 위안이 되는 동시에 우울했다.”

모방은 실망보다 위안이 되었다. 로렐라이는 두 여성의 서로 다른 인생 경험에 놀라운 연관이 있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정상이라는 느낌이 들어 좋다.” 로렐라이의 말이다.

 

* 허프포스트US의 기사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