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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0일 17시 42분 KST

우울증 치료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저자가 건네는 말 (인터뷰)

저자는 회사에서 언제나 '네네'라고 답하는, '무한긍정'의 아이콘이었다.

채널예스
저자 백세희씨 

“왜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드러내지 않을까? 너무 힘들어서 알릴 만한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걸까? 난 늘 알 수 없는 갈증을 느꼈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공감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대신 내가 직접 그런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나 여기 있다고 힘차게 손 흔들어 보기로 했다. 누군가는 자신과 비슷한 내 손짓을 알아보고, 다가와서 함께 안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백세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중에서

61만3000명. 보건복지부의 ‘2016년 정신건강 실태조사’가 집계한 한국의 우울증 환자 숫자다. 전체 국민의 1.5%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병원 등을 찾아 도움을 구하는 이들의 비율은 15%에 불과하다. 미국(39.2%), 오스트레일리아(34.9%), 뉴질랜드(38.9%)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우울증은 효과적인 치료법이 많이 개발돼 있어 조기에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이 우울증 치료법으로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기, 전문가와의 상담 등 ‘말하기’를 제안하는 이유다.

그러나 여전히 우울증 환자와 정신과 병원을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신의 우울증을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는 일은 쉽지 않다. 출판사 편집자 출신인 백세희(28)씨가 쓴 우울증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용기 있는 고백’인 이유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백씨의 ‘우울증 치료 일기’다. 백씨가 지난해 6월부터 올 초까지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의사와 주고받은 대화, 일상의 경험과 감정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냈다. 지난 1월 크라우드 펀딩 누리집 텀블벅에서 1292명의 후원을 받아 마련한 2000만원으로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책을 만들었다. 입소문을 타고 소규모 독립출판 서점 등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3쇄까지 찍은 책은 2300부 판매를 돌파했다. 20일 1인 출판사 ‘흔’을 통해 정식 출간됐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읽은 누리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내 얘기라는 생각에 많이 공감했고 울고 싶어졌다”, “우울증과 관련해 많은 정보를 얻었다”, “(책 제목에 대해) 이 감정선 너무 적절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백씨는 19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방금 전까지 ‘오늘은 기필코 죽고 말겠어’라고 생각을 했으면서 친구의 농담에 뒤집어지게 웃고,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는 남자친구의 말에 끌려 너무 맛있게 떡볶이를 먹는 내 모습이 싫으면서도 우스웠다”며 “그때의 기억이 생각 나 책 제목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로 짓게 됐다. 웃으면서 고통을 짊어지고 사는 게 내 정확한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기분부전장애(심한 우울 증상을 보이는 주요우울장애와는 달리, 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 진단을 받은 건 1년 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소심하고 마음이 약하다’라고만 생각했던 백씨는 고등학생 시절 남들보다 쉽게 우울감에 빠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겐 우울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싫었다. 책이 나오기 전까진 백씨의 부모도 딸의 상태를 전혀 몰랐다. “엄마, 아빠가 알면 슬퍼하는 게 싫어서” 철저히 자신의 증상을 숨겼기 때문이다.

Evgeny555 via Getty Images

백씨가 처음 정신과의 문을 두드렸던 건 스물 두살 때인 6년 전이었다. “통통하고, 공부를 잘 못 하고, 남학생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던” 고등학교 때와 달리 다이어트와 편입에 성공했고, 좋은 남자친구를 만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외적인 요소’가 바뀌어도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공허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백씨 스스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없었고, 정신과 치료에 대한 불편함과 두려움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몸을 다쳤을 때 주변 사람이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의사 선생님이 ‘이거 별것 아니에요.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말하면 마음이 오히려 편해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제 상태에 대한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정신과에 갔었어요.”

그러나 잔뜩 기대를 하고 찾아간 정신과 병원은 “동네 이비인후과와 다를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백씨는 자신이 겪는 문제의 원인을 의사가 같이 고민하고 설명해주기를 바랐지만, 의사는 “증상이 뭐죠? 약 처방해 드릴게요”라며 ‘건조한 진료행위’를 이어갈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찾아간 다른 병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병원에 가도 별것 없구나”라고 실망한 백씨는 그 뒤 치료를 포기했다.

대학을 졸업한 백씨는 출판사에 입사해 5년 동안 한 직장에 다녔다. 회사에선 자신의 우울함을 철저히 감추며 지냈다. “저는 남들에게 ‘미움받을 용기’가 없었어요. 남들이 저를 뒤에서 욕하는 건 아닐까 두려움이 컸죠. 비난받는 게 너무, 정말 싫거든요.”

회사에서 ‘무능력한 사람’으로 찍혀 동료들의 험담 소재가 되진 않을까 매일 전전긍긍했다. 회의나 워크숍, 술에 취했을 때, 자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과의 대화는 습관적으로 녹음했다. 이 녹음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기 위한 도구였다. 긴장한 상태에선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을 잘 못 한다는 백씨는 “상대와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어떤 태도로 말하는지, 상대방에게 바보처럼 보이진 않았는지를 알고 싶어 녹음을 들으며 매일 나 자신을 평가”했다. 백씨의 주치의는 이런 행동에 대해 “자기 자신을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감시하는 것 같다”고 자제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여전히 ‘녹음 습관’을 끊지 못했다. 정신과 상담도 ‘현재진행형’이다.

백씨는 하루 종일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느라 퇴근할 때면 진이 다 빠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과 회사에 의존했다. “회사는 돈을 받고 성과를 내는 곳이잖아요. 회사에서 일을 하면 제 ‘쓸모’를 확인받는 것 같았어요. 회사라도 다녀야 제 존재 가치가 있는 것 같고, 숨을 쉬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죠.”

타인의 시선을 의식했던 만큼 회사에서 백씨는 ‘남들에게 보기 좋은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언제나 “네네”라고만 답하는 ‘무한긍정’의 아이콘이었다. 그렇다고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겉으론 괜찮은 척했지만 속으론 끙끙 앓았다. 회사생활 5년 차였던 지난해, 꾹꾹 눌렀던 백씨의 마음이 한꺼번에 터져버렸다.

도서출판 '흔'

“견딜 수 없는 우울감에 밤마다 눈물이 났어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 너무 멀쩡한 거죠. 남들처럼 회사에 가고, 일하고. ‘나 우울증인가? 아닌가?’ 스스로 짜증이 날 만큼 헷갈리더라고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병원에 가보자’는 생각에 백씨는 몇 년 만에 정신과를 찾아갔다. 하늘이 도왔을까? 그 병원에서 그는 “되게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 30분 동안 상담을 받고, 집에서 500개 항목의 검진 문항을 작성한 끝에 그는 기분부전장애 진단을 받았다.

“우울증 관련 책에 나온 증상을 보면 ‘난 이 정도는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증이 아닌 줄 알았어요. 우울감이라는 게 굉장히 유동적이다 보니 어느 날은 행복하고, 어느 날은 좀 우울하고, 어느 날은 정말 죽고 싶고 그래요. 기분부전장애도 2년 이상 기분이 좋은 날보다 나쁜 날이 지속된 사람들에게 내리는 진단이라고 들었어요.”

백씨는 우울증을 치료하면서 “(너 정도면) 얼굴도 예쁘고, 학교도 좋고, 재능도 있어서 글도 쓰는데 웬 우울증이야?”라는 주변의 반응이 가장 이상하고 싫었다고 토로했다. “그렇게 따지면 못 생기고, 뚱뚱하고, 좋은 학교에 못 갔고, 재능이 없으면 우울해도 된다는 건가요? 우울함이나 행복에 자격을 부여할 수 있나요?”

그는 자신의 책이 인기를 얻는 데 대해 “독자들에게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고 밝혔다. 자신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독자가 많았다는 사실에 “겉모습은 멀쩡해 보여도 속마음은 곪아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저처럼 ‘애매하게’ 속이 곪아 자신의 우울증을 인정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보고 일종의 ‘연대감’도 들었어요. 제 책을 읽고 ‘내 마음이야’라고 느끼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익명의 에스엔에스에 숨어 고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해요.”

하지만 이 정도까지 인터뷰를 하고도 끝내 이해할 수 없다 싶은 점이 있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정신과 문을 두드리고,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힘차게 손 흔들어 보기” 위해 용기를 내서 책까지 펴낸 사람이 어떻게 우울증 환자일 수 있을까? 백씨가 답했다.

“용기 있고, 주체적인 사람은 우울하면 안 되나요? 누구나 행복할 수 있듯이 누구나 우울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렇다. 당장 죽고 싶어도 눈앞의 떡볶이는 맛있는 거고, 씩씩한 사람도 아플 때는 아픈 거다. 우울증도 감기처럼 일상이 될 수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