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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의 길냥이 집사'는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사람이다 (인터뷰)

"물론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 집에 이연복이 산다'며 좀 봐주기도 합니다"

ⓒ한겨레

교육부가 지난해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직업을 조사했더니 요리사가 과학자, 법조인, 가수를 제치고 4위에 올랐다. 요리사가 교사, 운동선수, 의사 다음의 인기 직업이 된 데는 유명인이 된 요리사 영향이 컸다. ‘냉장고를 부탁해’ 등 방송 요리프로그램의 고정출연자인 중식 요리사 이연복(58·사진)씨는 그런 셀럽의 하나다.

그러나 이씨가 학대받고 버려진 동물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물권의 옹호자라는 사실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대중적 인기인이지만 그의 동물 사랑은 순전히 개인적이고 ‘가엾은 것들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됐다. ‘애니멀피플’이 그를 첫 손님으로 초대한 것은 그가 동물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중식당 목란에서 이씨를 만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책가방 대신 중국음식 배달통을 들었을 만큼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 “그래도 또래 아이들처럼 수업 빼먹고 더우면 뚝섬 가서 강수욕하고 겨울이면 한강에서 얼음을 지쳤죠. 서울 변두리가 모두 논밭이어서 메뚜기 잡고, 과일 서리하러 말죽거리에 가기도 했어요. 물병에 올챙이나 송사리를 넣고 밥풀 주며 기른다고 했다가 며칠 안 가 모두 죽은 기억도 납니다. 메뚜기는 기름에 달달 볶아 먹었어요.”

-기억나는 반려견이 있나요?

= “셰퍼드를 두 번 길렀고 그레이트데인 품종의 큰 개를 두 마리 기르기도 했는데 별다른 기억은 없고 모두 잃어버려 찾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쪼코’가 가장 애틋한 개 

 

-당시 큰 개를 잃어버리면 대개 고기로 팔려갔는데, 안타까웠겠습니다.

= “개를 오래 기르다 보면 동물이 아니라 가족 같은 애틋함이 생기는 것 같아요. 저녁에 힘들어 퇴근하면 꼬리 흔들며 달려드는 매력 때문에 개에게 빠지지요. 산보 나가자고 졸라대니 자연히 활동량이 늘어 운동도 되고요.”

그가 중화민국 대사관 요리사와 일본에서의 창업을 거쳐 1998년 서울에 돌아와 중식당 목란을 연 뒤 그를 애견인으로 만든 개가 있었다.

-부인과 여행 가서 찍은 기념사진마다 함께 나오는 개가 있네요.

= “푸들 믹스견 쪼코입니다. 여행 갈 때마다 데리고 갔죠. 우리 부부에게 동물 사랑을 일깨워준 개인데….”

-어떻게 기르게 됐나요?

= “압구정동에 식당을 냈을 때였어요. 직원이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온 겁니다. 길거리에서 어느 할머니가 파는데 달랑 혼자 남은 것이 불쌍해서 사 왔다는 거예요. 그때는 이미 여기저기서 파양당하던 늙은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을 때였어요. 너무 바쁘게 살던 때여서 지인에게 분양해 주는 게 좋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아내와 딸이 일주일만 보살피고 보내자는 거예요. 그 일주일 동안 그만 정이 들어서 키우게 됐죠. 그 강아지가 바로 쪼코예요. 10년쯤 살았는데 많이 아팠어요. 큰돈을 들여 고관절 수술을 한다, 별짓을 다 했는데 결국 세상을 떠났지요.”

ⓒ한겨레
ⓒ한겨레

-흔히 강아지를 사서 기르는데, 주로 개를 입양해 길렀네요.

= “주위에 버려진 개나 고양이를 발견해서 불쌍하니 누가 입양해 주면 좋겠다고 알려옵니다. 그러면 페이스북에 올려 분양할 이를 찾아주죠. 그렇게 분양한 고양이나 개가 수십 마리는 될 겁니다. 될 수 있으면 유기견을 키웠으면 좋겠고, 고양이를 진짜 좋아한다면 명품 고양이보다 길고양이 새끼를 분양받아 길러 보세요.”

이씨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팔로워가 15만명이 넘는다. 그는 이 공간을 통해 유기동물 분양뿐 아니라 동물학대 등에 관한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투견 ‘베토벤’을 위한 글에서 “인간에게 복종하기 위해 동족을 죽여야 하고 그래야 주인한테 칭찬 받고 어쩔 수 없는 동족 싸움 이제 그만 합시다”라고 했고, 길고양이를 잡아 사고팔아도 처벌이 불가능한 동물법을 두고는 “대한민국은 왜 유독 동물법에 약한 걸까?”라고 질타했다.

-고양이도 기릅니까?

= “기르지는 않고 길고양이 밥을 줍니다. 새끼 고양이가 쓰레기통 뒤지는 모습이 가엾어서 밥 주기를 시작했지요. 연희동에 살면서 밤이면 아내와 함께 집과 공원을 돌아다니며 밥을 줍니다.”

-집에도 고양이가 있나요?

= “단독주택인데 고양이들이 수시로 들락거립니다. 대문 열고 들어가면 양쪽에 고양이 집이 있고 계단 올라가면 또 집이 여러 개 있어요. 언제든 먹으라고 사료도 갖다 놓고요. 추운 날이면 고양이가 와서 자고 갑니다. 대문에 출입통로를 뚫어놓아 무시로 드나들어요.”

-정이 들어 이름을 붙여준 고양이도 있겠네요.

= “집고양이처럼 따르는 ‘기절이’가 있어요. 새끼 때 사료를 먹다가 질식해 죽을 뻔한 것을 아내가 응급조처해 살려냈지요. 기절했다 살았다고 해서 붙여준 이름이지요. 나이가 15살쯤 됐는데 옛날에는 터줏대감이었는데 요새는 늙어서인지 툭하면 다른 고양이에게 얻어터져 상처를 입어요. 전에는 우리가 차에서 내리면 마중을 했는데 이제는 저쪽 담벼락에서 여기 있다고 신호를 보내죠. 그 밖에 배트맨, 순둥이, 알록이 등이 있지요.”

ⓒ한겨레

-동네에서 ‘고양이 집’으로 유명하겠어요.

= “물론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중에 ‘저 집에 이연복이 산다’며 좀 봐 주기도 합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적개심을 품는 사람도 있지요.

= “2015년에 밥 주던 고양이가 한두 마리씩 죽기 시작했어요. 뒷산에 묻어주곤 했는데, 어느 날 아침 출근하려는데 차 옆에 보란 듯이 고양이를 죽여 달걀판으로 덮어놓았더라고요. 그 꼴을 보고 화를 참을 수 없어 페이스북에 ‘너를 잡으면 똑같이 해주마’라고 쓴 게 문제가 됐죠. 댓글에서 찬반 논란이 전쟁 수준이어서, 결국 그 글을 지웠어요.”

-길고양이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을 어떻게 봅니까?

= “고양이 싫어하는 사람도 다 이유가 있겠죠. 고양이만 봐도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고양이 자체만 보지 말고 얘도 하나의 생명이다, 이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길고양이가 너무 번식하는 걸 막기 위해 우리 집에 오는 길고양이는 모두 포획해 중성화 수술을 한 뒤 다시 그 자리에 놓아주는 티엔아르(TNR)를 합니다. 한 20∼30마리는 했을 텐데, 처음엔 개인 비용을 들여 했는데 이제는 서대문구청에 연락하면 와서 해 줍니다.”

 

소의 눈망울 보고 고민에 빠진 스타 요리사

 

-한 해에 고양이가 잡아먹는 야생조류가 37억마리에 이른다는 미국 조사가 있습니다. 그런 측면의 문제도 있죠.

= “사실 식당 앞에서도 고양이 밥을 줬어요. 그런데 비둘기들이 모여들더라고요. 고양이가 종종 비둘기를 죽였어요. 화단에 비둘기를 묻고 작은 비석까지 세웠어요. ‘비둘기 여기 잠들다’, 이렇게요. 손님들이 비둘기를 싫어해서 결국 식당 앞에서는 고양이 밥을 주지 않아요.”

-어떻게 생명에 대해 그렇게 각별하게 생각하게 됐지요?

= “개나 고양이도 하나의 생명인데 길거리에서 차에 치이고 하는 모습을 보면 참 안쓰럽더라고요. 퇴근하다 비쩍 마른 개가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을 보고는 마트로 뛰어가 핫바를 사서 던져준 적도 여러 번 있어요. 단지 동물로 태어났지만 똑같은 생명인데… 반려동물이고 농장동물이고 불쌍한 모습을 보면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라고요.”

-중식 요리는 재료를 가리지 않잖아요. 일반인은 먹을 생각도 안 하는 소재도 쓰던데.

= “저도 아무 생각 없이 요리해 왔어요. 샥스핀 요리를 상어 지느러미로 만든다는 건 알았지만, 상어를 어떻게 잡는지는 몰랐지요. 그런데 방송 촬영하면서 상어 등지느러미를 베어낸 뒤 산 채로 바다에 집어 던지는 모습을 보았어요. 즉시 매장에서 샥스핀 메뉴를 없앴지요.”

-특별한 재료가 아니라도 가축을 기르는 방식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 제기가 있어요.

= “제가 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농부를 만나고 그 식재료로 요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친환경적으로 잘 기른 소의 눈망울을 보여준 뒤 이게 그 고기로 만든 요리입니다, 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짠해서 못하겠습니다.”

-닭은 어떻습니까?

= “닭도 고민입니다. 돼지도 그렇고요. 팔딱팔딱 살아 있는 동물을 촬영한 뒤 가져다 요리한다는 게… 가축이라도 죽을 땐 어쩔 수 없다 해도 살 때만큼은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데 너무 빽빽하게 키우고 있어요.”

-은퇴 뒤 유기견 센터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 “아내는 2~3년 뒤 은퇴하면 땅값 싼 데 가서 유기견을 돌보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해요. 개 한 마리 기르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혼자 청소하고 밥 먹이고 감당할 수 있겠냐고 묻죠. 마음 맞는 사람들이 함께하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체계적으로 추진하면 뒤에서 돕겠습니다.”

-개나 고양이를 집에서 기르려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 “자기 능력이 안 되면 집에서 기르면 안 됩니다. 외롭게 방치하면 소리 내 울고 그러면 이웃 항의 들어와 파양하게 되죠. 새끼 때 이쁘다고 데려다 놓고 좀 크면 갖다 버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가족 같은 동물을 버린다는 건 그 사람의 성격장애나 나아가 범죄성향과도 관련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동물 문제 가운데 무엇이 가장 시급하게 고쳐져야 할 것 같습니까?

= “동물에 대한 법이 강화돼 동물 학대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또 ‘개 공장’이 없어져 무분별하게 애완동물을 증식해 싸게 팔고 나중에 쓰레기처럼 버리는 일을 막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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