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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 탈의 시위한 활동가는 "이 시대에 여성으로 태어나 다행"이라고 말한다 (인터뷰)

"적절한 시기에 태어나, 세상을 많이 바꾸고 갈 것이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이가현

ⓒ한겨레

여성의 젖꼭지는 위험하다. 몇 해 전 미국에서 대학교수가 수업 중 모유 수유를 한 일을 두고 크게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한 살짜리 아기가 갑자기 열이 올라서 놀이방에 보낼 수 없게 되자 싱글맘인 교수가 아기를 강의실에 데리고 왔는데, 아기가 칭얼거리자 수업 중에 젖을 물렸다는 것이다. 이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 학생이 이 일을 트위터에 올렸고 이것이 곧바로 학생신문에 실리면서 파문이 확산되었다. 일부 학생들은 교수가 강의 중 모유 수유를 한 것이 ‘프로답지 못한 태도’라고 비난하며 수업에 방해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교수는 즉각적으로 반박했다.

“누가 내 젖꼭지를 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설사 봤다 해도 뭐가 문제인가? 대학교수도 자기들처럼 젖꼭지가 있다는 걸 알았다면 그걸로 그만이다.”

여성의 몸이 숭배의 대상이 되는 건 이 사회가 요구하는 정확한 규격과 취향에 맞췄을 때뿐이다. 여성이 ‘보여지는 몸’에 규격화되지 않고 자기통제권을 주장할 때 여성의 몸은 음란하거나 불결하거나 불쾌한 것으로 낙인찍힌다.

“찌찌면 찌찌지, 찌찌가 별거냐!”

최근 20대 여성들이 중심이 된 불꽃페미액션이란 그룹이 페이스북코리아 사옥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며 시위를 벌였다. 이번에도 젖꼭지가 문제였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아 옷 위로 유두 자국이 보이면 ‘방탕하고 부주의한 여성’이란 낙인을 찍는 사회 풍토에 저항하기 위해 ‘내 몸은 음란물이 아니다’란 구호를 내걸고 가슴을 드러내는 단체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그걸 음란물로 분류해 페이스북이 이 단체의 계정을 정지시킨 데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경찰은 가슴을 드러내는 여성 시위대들을 담요로 가렸고 공연음란죄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위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란 반응과 ‘눈살 찌푸리게 하는 과도한 행동’이란 비난이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어떤 생각으로 이런 퍼포먼스를 벌였을까? 미투 운동과 몰카(불법촬영 영상) 편파수사 반대 시위의 핵심에 선 젊은 여성들의 격렬한 외침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불꽃페미액션의 가슴노출 시위에 참여했던 활동가 중 한 사람, 이가현을 만났다. 공식 대표나 대변인 체제를 가지지 않은 여성그룹의 일원으로, 그는 한 개인의 의견을 전할 뿐이지만 나는 그가 사회적으로 성장하고 발언하게 된 과정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지난 5일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그를 만날 때까지, 난 이가현이란 이름과 불꽃페미액션에서 일한다는 것 외에 그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약속 시간보다 늦은 게 미안하다는 듯 수줍은 미소를 띤 채 그가 어색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이가현씨(뒷줄 가운데)가 2017년 6월 회원들과 함께 삭발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이가현씨(뒷줄 가운데)가 2017년 6월 회원들과 함께 삭발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가현씨 제공.

차라리 잡혀갈 걸 그랬나?

- 페이스북에서 본 사진엔 삭발머리였는데, 지금은 아니군요.

= “좀 자랐어요.”(웃음)

- 삭발은 왜 했던 거예요?

= “특별히 어떤 투쟁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스타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어요. 주변에선 ‘아니 뭐든 (투쟁 목표를) 걸고 깎아야지, 그렇게 그냥 깎아버리면 어떻게 하냐?’고 하는데(웃음) 전, 그냥 한 거예요. 친구들이랑 다섯이서 같이.”

- 머리가 자랐는데 이제 다시 삭발 안 해요?

= “삭발이 의외로 관리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세수하면서 머리까지 다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두피 기름이 바로 만져지고 냄새도 나니까 샴푸도 더 자주 써야 했어요. 요즘엔 볕이 뜨거워서 모자를 썼지만 통풍이 안 되어서 가려웠고요.”

거침없고 솔직한 답변에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아마도 그는 ‘여자가 왜 삭발을 해?’ 하는 사회적 통념에 도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한번 해보니 생각보다 편하지는 않고 그래서 다시 삭발할 생각은 접었지만, 적어도 그는 납득할 수 없는 금기에 ‘왜 안 돼?’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몸으로 부딪혀 직접 답을 구하고자 했을 것이다.

- 제가 사전에 찾아볼 수 있는 개인 정보가 많지 않았어요. 몇 년생이세요?

= “1992년이요.”

- 그럼 만 26살이군요. 학생인가요?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12학번이고요. 올해 2월에 졸업했어요.”

- 지금은 어떤 일 하세요?

= “가장 많은 시간을 불꽃페미액션 활동 하는 데 쓰고 있고요. 서울 광진구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번 페미니즘 가르치고 있어요.”

- 그걸로 생업이 되나요?

= “과외도 하고 여기저기 기고도 하고, 좀 힘들어도 활동가로 살면서 할 수 있는 일만 하려고 해요.”

- 이번 시위에 대해서 공연음란죄로 기소할 수도 있다고 경찰이 말했다던데, 그 뒤로 어떻게 되었어요?

= “직접 연락은 못 받았고 어떤 기자분 통해서 경찰이 기소 안 하기로 했다고 전해 들었어요.”

- 여성의 신체를 음란물로 보지 말라고 시위했는데 그 시위에 대해 공연음란죄를 적용하느냐 마느냐 따지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네요. 만약 기소가 되었으면 어땠을 것 같아요?

= “다른 분들이 ‘나도 잡아가라’ 하면서 같이 가슴 까고 경찰서 앞에서 동조 시위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럼 더 시위가 확산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지난번에 그냥 체포돼서 잡혀갈 걸 그랬나봐요.”(웃음)

ⓒ한겨레

새 시대의 운동은 재밌어야 한다

- 불꽃페미액션은 어떻게 만들어진 그룹이에요?

= “2016년 3월쯤 여자끼리 농구나 해보자 해서 모인 사람들이었는데….”

- 농구 잘하세요?

= “전혀요. 그중에 농구 잘하는 사람 한 명도 없어요.(웃음) 주로 여성주의에 관심 있는 여성들이었는데, 그렇게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강남역 살인사건이 터진 거예요.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나 싶었죠.”

- 강남역 사건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걸 보면서 희망을 가졌나요?

= “희망보단 절망을 많이 느꼈어요.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잖아요. 근데 그게 나의 일일 수도 있다고 깨닫는 순간 삶이 무서워진단 말이에요. 누가 쫓아오면 어떡하지? 누가 여기 칼 들고 숨어 있으면 어떡하지? 이런 공포가 몰려오면서. 대체 어떻게 살라고 이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미투 운동이 희망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나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절망스러운 일이죠.”

이름도 조직도 없이 시위에 참가하다 보니 기자들이 자꾸 어디 소속이냐고 물어왔다. 이름이라도 있어야겠다 싶어서 ‘불꽃’, ‘액션’처럼 각자 좋아하는 단어들을 묶어서 ‘불꽃페미액션’이라고 칭하기로 했다. 처음엔 자발적으로 모인 10명 남짓한 멤버가 전부였지만 지난해 2월부터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고 회원을 모집하기 시작해서 지금은 200여명이 모인 단체가 되었다. 20대와 30대 초반 여성이 대부분이고 대학생보다는 직장인 비중이 큰 편이다. 특별히 대표나 집행부를 뽑지는 않는다. 앞장서 활동하는 자원자들이 ‘우즈’(땔감)란 이름으로 집행부 역할을 대신하는데 특별히 위계나 고정된 역할 없이 돌아가면서 그때그때 역할을 분담한다.

- 조직 운영 방식이나 의사 결정 방식이 일반적인 시민단체하곤 많이 다른 건 같아요.

= “시민운동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원칙을 그렇게 정했어요. 시민단체의 병폐를 많이 봤거든요. 대표 중심으로 돌아가고, 대표를 정치인 만들려고 성과를 몰아주고, 같이한 사람들은 지워지고, 실질적인 결정권자는 주로 남성이고 여성들은 얼굴 역할이나 하는 거, 이런 것에 환멸을 느꼈으니까요. 우리는 모두가 같이 논의하고 그 성과가 모두의 공으로 돌아가게 하자, 남성 없이 여성끼리 해보자, 그렇게 합의했죠.”

- 지금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정서는 분노라고 봐요. 분노가 출발점일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운동을 지속하기엔 부족하지 않나요?

=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불꽃페미액션 시작할 때도 우리 하고 싶은 거 하자, 재밌는 거 하자, 그렇게 작정했고 그래서 ‘천하제일 겨털대회’도 하고 만우절에는 ‘천하제일 마초대회’도 하고….”

- 겨털대회는 ‘겨드랑이털 대회’죠?

= “네. 여성들은 겨드랑이털이 자라기 시작할 때부터 엄청 부끄럽게 여기면서 당연히 제모를 해야 한다고 여기잖아요. 저도 레이저 제모 받아봤거든요. 전부 다섯 번을 받아야 한다는데 한 번 받고 포기했어요. 어휴….”

- 왜 중단했어요?

= “너무 따갑고 불편한 거예요. 연고도 계속 발라야 하고 귀찮아서 다시 안 갔어요. 그리고 곰곰 생각해 보니 굳이 털을 없애야 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내 겨털을 죽이지 말고 사랑해보자(웃음), 그런 의미에서 시작한 행사예요.”

- 여성이 남들의 시선에 맞추기 위해 자기 몸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정형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런 의미군요. 천하제일 마초대회는 뭐예요?

= “술자린데, 모여서 아저씨 흉내를 내는 거요.”

- 아하!(웃음)

= “엄청 웃겨요. 그 자리에선 다 꼰대가 돼요. ‘너 몇 살이니?’ 해서 나이 다 까고, ‘언니들한테 술 따라라’ 하고(웃음). 분노를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즐겁게 활동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겨털대회도 하고 삭발도 하고 가슴 까는 것도 하고 이런 식으로 재밌게 해보려고 해요. 새 시대의 운동은 귀엽고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운동이 무거울 필요는 없잖아요.”

ⓒ한겨레

‘착한 여자 신드롬’에서 벗어나기

- 지금 새로운 페미니즘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건 20대 젊은 여성들이죠. 왜 지금, 왜 20대 여성일까요?

= “저나 제 주변의 경험을 돌아보면 20대가 되기 전까지는 거의 차별을 모르고 살았거든요. 남자한테 지지 마라, 너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어, 여자라고 못할 것이 없다, 저도 엄마한테 늘 그런 얘길 들으며 자랐어요. 그랬는데 사회를 접하고 보니 성폭력이 만연하고 여자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도 훨씬 어렵고.”

- 요즘엔 초·중·고, 대학교까지도 여학생들 성적이 더 우수하고 리더십이 강한 경우가 많죠. 그런데 여학생들이 좌절하고 여성의 문제를 실감하는 게 언제부터예요? 취업 준비할 때부터?

= “(잠시 생각하다가) 제 경우엔, 성폭력이 무서워지면서부터인 것 같아요. 고2, 고3쯤 되면 슴만튀, 엉만튀 같은 걸 보고….”

- 슴만튀, 엉만튀?

= “여고생들 가슴 만지고 튀는 아저씨들. 엉덩이 만지고 튀는….”

- 아, 바바리맨의 변종인가요? 대체 어떤 인간들이!

= “여학생이 지각을 해서 택시를 탔는데 택시 아저씨가 준 껌을 받아서 학교에 와서 먹고는 점심시간까지 못 일어났다, 그런 얘기도 듣고요. 학원 끝나고 택시를 잡았는데 앞문을 열었더니 남자 하나가 웅크리고 숨어 있더라는 얘기도 들리고요.”

- 진짜요? 끔찍해라.

= “너무 무섭잖아요. 그렇게 당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생기면서, 여자에겐 이런 공포가 그냥 일상이구나 깨닫게 되면서 큰 좌절과 공포를 느끼죠. 어떻게 저항할 생각을 못 하고 내가 조심해야 하는 문제라고 느끼다가 새롭게 눈을 뜨게 된 계기가, 제 경우엔 메갈리아, 강남역 살인 사건, 박근혜 퇴진 운동 같은 거였어요.”

- 메갈리아의 미러링(여성 혐오를 뒤집어 보여주기)에 대해선 여러 논란이 있죠.

= “제가 볼 땐 그것도 일종의 ‘즐거움의 운동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면 안 된다’는 우려가 있지만 여성들 입장에서는 우리끼리 못 했던 이야기를 터놓고 할 기회를 메갈리아가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어요.”

- 자기 안의 터부를 깨고 여성들 간의 연대감을 느끼게 했다는 말씀인가요?

= “제가 알바노조 하면서 최저임금위원회 앞에 가서 막 소리 지르면서 시위한 적이 있는데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내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나쁘다고 외쳐보는 게. 엄청 해방감이 들더라고요. 메갈(리아)도 비슷한 경우죠. 그동안 내 잘못이라고 여기고 나 자신에게 돌려왔던 혐오감정을 ‘내 잘못이 아니네. 네 잘못이잖아’ 하면서 대놓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엄청난 해방감을 줬어요. 여자들이 어디서나 착하게 굴고 싸우면 안 된다고 배워왔는데,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은 거죠.”

 

비교적 차별 없는 교육환경에서 성장한 소녀들이 상존하는 성폭력과 성차별의 현실에 부딪히며 겪는 좌절과 분노는 ‘착한 여자 신드롬’을 깨고 나오는 것으로 새로운 출구를 찾는다. 이들에게 더는 ‘당연한 것’이란 없다. 거꾸로 보기, 비틀어 보기, 뒤집어 보기…. 미러링은 단순한 혐오 기법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관행을 의심하고 거부할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월경을 불결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느끼게 만드는 문화에 대항해 ‘월경 페스티벌’을 열고, 여성의 털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드는 문화에 대항해서 ‘겨털대회’를 열고, 여성의 가슴은 언제나 ‘정숙하게 가리고 섹시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강제하는 문화에 대항해서 ‘브래지어 안 하기 운동’을 벌이는 것. 그 모든 것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몸과 삶에 대해 완전한 자결권을 가진 존재로 당당히 서고자 하는 여성들의 거친 몸부림이다.

 

‘밥 먹일 연대’의 경험

 

- 불꽃페미액션을 하기 전부터 여러 영역에서 활동해 본 경험이 있나 봐요. 알바노조도 하고.

= “대학 때 청소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하는 동아리가 있었어요. 그분들을 위한 컴퓨터교실, 한글교실, 영어교실 같은 걸 했죠. 대학교 1학년 때는 그냥 술 먹고 연애하고 놀다가(웃음) 2학년 때부턴 좀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분들과 식대 인상 투쟁을 같이 했어요. 그 당시 한 달 식대를 만원 받으셨거든요.”

- 한 달에 만원이요?

= “네, 한 끼에 400원꼴이죠. 진짜 이건 말도 안 된다 싶어서 대대적으로 학생들과 함께하는 연대기구를 만들었죠. ‘밥 먹일 연대’라고.”

- 밥 먹일 연대!

= “학교 잔디밭에서 주먹밥 만들어서 학생들 나눠 주면서 학생들의 지지와 지원을 구했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대자보도 열심히 쓰고 거기에 100원짜리 4개 붙여서 ‘총장님, 이 돈 드릴 테니 밥 사드세요’ 하기도 하고.(웃음) 그렇게 싸워서 식대를 7만원 올렸어요. 제겐 첫 투쟁 경험이었는데 아주 성공적이었죠.”

-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겠네요.

= “사람들 밥 먹이는 것도 즐거웠고요. 난 아무것도 모르지만 뭔가 부당하다는 건 알겠는데 사람들이 모이니까 그걸 바꿔낼 수 있구나 깨달았죠. 그때 같이 연대해줬던 게 학교 안의 알바연대 회원들이었어요. 그때부터 알바연대 활동을 시작했죠.”

이가현은 알바연대에서 배운 노동법대로 당시 알바를 하던 액세서리숍에 휴게시간(노동자가 근무 중 사용자의 지휘·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시간) 준수와 주휴수당 지급을 요구하다가 해고당했다. “아르바이트생이 당돌하게 이것저것 요구해서 잘랐다”는 게 사측이 밝힌 그의 해고 사유였다. 시급 6천원에 하루 5~6시간을 일하면서 10분도 쉴 틈이 없었던 직장에는 여전히 아르바이트생 100여명이 60여개 점포에서 일하고 있었다. 알바연대를 바탕으로 새롭게 결성된 알바노조와 함께 이가현은 본사와 단체교섭을 벌이고 협약을 체결했다. 모든 매장에 휴식용 의자를 설치하고 주휴수당과 야간수당을 지급한다는 전향적 합의안이었다. 이가현에게 사회운동은 매번 소소하나 효과가 있는 즐거운 활동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그런 일을 하는 활동가로 살고자 한다.

- 그런 활동이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세요?

= “그럼요. 나쁜 사람한테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해야 더 평등하고 좋은 사회가 될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 ‘최저임금 만원’을 의제화하는 데 알바노조가 결정적 역할을 했죠. 그래서 최저임금이 오르는 바람에 자영업자들이 다 망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아요.

= “그게 저희가 최저임금 만원 운동을 벌이던 2013년부터 계속 나왔던 얘기예요. 그런데 진짜로 자영업자를 망하게 만든 게 뭘까요? 알바노조가 자영업자들이랑 연대하면서 얻은 결론은 임대료, 권리금, 건물주의 문제였어요. 자꾸 자영업자와 알바노동자의 갈등으로 몰아가는 건 부당해요.”

- 사회적 약자 간의 싸움으로 만드는 거죠.

= “맞아요. 그렇지만 다 똑같은 사회적 약자는 아니에요.(웃음) 차이 속에서 연대하는 법을 배워야죠. 어떤 토론회에 가니까 영세 자영업자들이랑 알바노조랑 붙여놨는데 이래선 해법이 안 나오죠. ‘네가 힘드냐, 나도 힘들다’ 하고 있으니. 자영업자들이 힘들다 해도 알바노동자랑 똑같이 힘든 건 아니잖아요. 교통비 없어서 걸어 다니고 밥 먹을 돈 없어서 삼각김밥 먹는 건 아니니까. 사회적 약자들이라 해도 다 똑같은 건 아녜요. 평등하지만 차이가 있다는 걸 솔직히 인정하면서 함께 연대하는 방법을 찾아야죠.”

  

사람은 변할 수 있다

 

- 요즘 페미니즘 내에서 성소수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뜨거운 논쟁이 일고 있죠.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주의 운동의 주체로 인정할 것이냐, 그들이 주장하는 여성적 정체성이란 걸 진짜 여성성이라고 볼 수 있느냐에 대해서요. 한쪽에선 브래지어를 벗고 탈코르셋 운동을 하자고 하는데, 평균보다 짙은 화장을 하고 더 섹시한 몸매를 가지려고 하는 트랜스젠더 여성들도 있으니까요.

= “그 문제에 대해서는 불꽃페미액션 내에도 다양한 입장이 공존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은 퀴어 운동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운동은 사회에서 정상이라고 정해놓은 성 규범, 그러니까 ‘여자는 어떤 신체를 가져야 하고 성격은 어떠해야 하고 남자는 어떠해야 하며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좋아해야 한다…’ 이런 젠더구조에 반대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페미니즘 운동과 퀴어 운동이 서로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보거든요. 페미니즘 운동의 주체가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생물학적 여성으로만 여성의 범주를 한정하는 게 타당한가에 대해선 질문이 필요해요. ‘시스젠더 여성’(생물학적으로나 성정체성 면에서 모두 여성인 자)과 트랜스젠더 여성의 차이를 무시해선 안 되겠지만 공통되는 경험이나 의견을 바탕으로 연대하면서 여성 인권을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 페미니즘이 세상을 더 좋게 바꿔낼 수 있을까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 “개개인들의 변화인 것 같아요. 뭐가 더 평등하고 더 많은 사람들한테 좋은 일일까 생각해 버릇하는 거요. 지치고 퉁명스러운 알바노동자를 접할 때 그들의 노동조건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는 것, 여성들의 경우엔 일상적으로 성추행하는 아저씨에 대해 용기 내서 경찰 신고라도 한번 하는 것, 그렇게 개개인의 실천이 개인적 일상을 조금씩 바꿔갈 때 변화가 오지 않을까요?”

- 개개인의 변화가 가능한가요? 인간이 변해요?

= “음…, 전 되게 마초였거든요. 여자 마초.(웃음) 힐도 10㎝ 이상만 신고 다니고, 화장 안 하면 밖에도 안 나가고, 다이어트로 3주 만에 5㎏, 8㎏ 빼고. 그러다가 바뀐 거예요. 각자 일상이 너무 바쁘고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그렇지, 사람이 마음만 먹는다면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제겐 있어요. 그렇게 다는 안 바뀌더라도 언젠가 이들은 죽을 것이고 또 새로운 사람이 태어날 거잖아요.”

- 한 세대가 가고 새 세대가 오는 것을 통해서도 사람이 바뀐다고요?

= “저희 엄마는 고졸로 공기업에서 평생을 열심히 일해 오셨지만 무능하고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할 엄두를 못 내셨어요. 남편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죠. 늘 ‘내 딸만은 더 똑똑하게 키워서 나와 다르게 살게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다들 자기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렇게 변화를 꿈꾸죠. 저처럼 엄마의 못다 이룬 꿈과 기대를 받으며 자란 딸들이 굉장히 많을 거고, 저희 다음 세대는 또 저희가 못다 이룬 무언가에 대한 기대를 받으며 자라겠지요.”

- 헬조선이라 불리는 이 나라에서, 여성 혐오와 성폭력과 차별로 여성의 생명과 존엄이 위협받는 이 시대에, 여성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음…, (잠시 침묵) 적절한 시기에 태어나서 세상을 많이 바꾸고 갈 것이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웃음) 이번 생은 열심히 (페미니즘) 운동하고 다음 생에는 꼭 만수르로 태어나고 싶어요.(웃음)”

26살 이가현이 깔깔깔 웃는데, 54살 먹은 나는 콧등이 시큰해져서 따라 웃지 못했다. 지혜는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 게 확실하다.

녹취 이수현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 언론학 박사. 새로운 소통기술과 시민참여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연구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는다. 사람 사이의 수평적 그물망이 어떻게 거대한 수직의 권력을 제어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의 따뜻함이 어떻게 얼어붙은 세상을 되살리는지 찾아내는 일에 큰 기쁨을 느낀다.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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