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20년 09월 20일 11시 59분 KST | 업데이트됨 2020년 09월 20일 11시 59분 KST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사망이 미국의 보수화에 미칠 영향 : 낙태, 건강보험, 환경규제

긴즈버그의 사망은 미국인들의 삶에 직접적이고도 중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Jonathan Ernst / reuters
췌장암 합병증으로 사망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을 추모하는 시민들이 연방대법원 앞에 모여든 가운데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긴즈버그는 여성과 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판결을 내려왔다. 2020년 9월19일.

워싱턴 (로이터) - 미국 연방대법원의 진보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사망은 미국 사회와 법 집행에 있어서 중대한 함의를 갖는 사건이다.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6 대 진보 3이라는 보수 절대 우위의 구도를 확고히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트럼프가 긴즈버그의 후임 대법관을 지명할 경우 미국 사회는 여러 면에서 우경화를 체감하게 될 전망이다.  

 

임신중단(낙태)를 비롯한 사회적 이슈들

연방대법원이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통해 임신중단을 합법화한 이래로, 보수진영은 이 판결을 뒤집으려고 시도해왔으나 늘 역부족이었다. 트럼프가 긴즈버그의 자리에 확고한 보수적 인물을 앉힌다면, 연방대법원이 임신중단 권리를 뒤집을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보수 연방대법관들은 총기 보유 권리 확대, 개인의 종교적 권리 강화, 투표권 제한 같은 다른 사회적 이슈들에서 훨씬 더 과감한 입장을 취하게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해서 기후변화 같은 이슈에 대해 중대한 법안을 통과시킨다 하더라도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이 이같은 진보적 법안들을 폐기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사형제 폐지 같은 진보적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더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최근 연방대법원이 6대 3으로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판결을 내린 것에서 보듯, 상황에 따라서는 다른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Alexander Drago / reuters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 추모 인파가 연방대법원 앞으로 모여든 가운데 한 남성이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레인보우 깃발을 흔들고 있다. 2020년 9월18일.

 

불투명한 오바마케어의 미래

단기적으로는 긴즈버그의 빈자리가 가장 크게 느껴질 재판은 11월10일에 열린다. 보수 진영에서 오바마케어 법안에 대해 제기한 소송의 구두변론이 진행되는 날이다. 오바마케어 법안은 2010년 시행됐으며, 2012년에 연방대법원에서 5대 4로 법안 유지 결정이 나온 바 있다. 긴즈버그는 다수의견(5명) 쪽에 섰다. 그의 후임자가 이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때까지 트럼프가 지명한 후임이 인준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연방대법원은 보수 5 대 진보 3의 현재 구도 그대로 판결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이번에 연방대법원으로 올라와서 10월5일부터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또 다른 사건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11월4일, 연방대법관들은 특정 연방 법률에 대해 종교적 권리에 따른 예외가 어디까지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심리를 벌이게 된다. 필라델피아시는 시 정부가 운영하는 위탁 보육 프로그램에서 가톨릭 사회복지 기관의 참여 신청을 금지했다. 이 기관이 (법을 어겨) 동성커플의 신청을 거부한다는 이유에서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도 있다. 연방대법원은 12월2일에 민주당이 다수인 하원이 제기한 소송을 심리할 예정이다. 러시아의 2016년 미국 대선개입을 수사한 로버트 뮬러 특검의 수사보고서를 공개하라고 민주당이 트럼프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낸 사건이다.

Alexander Drago / reuters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평생 여성 인권과 소수자 인권, 사회 진보를 위해 싸웠다. 미국 젊은층은 이런 그에게 래퍼 Notorious B.I.G.에게서 따온 ‘노터리어스(Notorious) R.B.G’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연방대법원장의 균형자 역할

앤서니 케네디 연방대법관의 은퇴 이후 지난 2년 동안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트럼프가 긴즈버그의 후임을 지명할 경우, 그의 영향력은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체 9명인 연방대법관들 중 이념적으로 가운데에 있는 로버츠는 그동안 (자신을 뺀) ‘진보 4 또는 보수 4’ 구도 속에서 어느 한 쪽의 편에 서느냐에 따라 5대 4로 최종 판결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었다.

연방대법원이라는 기관과 사법기구의 독립성 수호를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로 알려진 로버츠는 주요 판결에서 세 차례 긴즈버그와 함께 진보 편에 섰다.  

지난 6월 그는 루이지애나주의 엄격한 임신중단 규제법을 폐지하는 데 힘을 보탰고, 수많은 ‘드리머(부모와 함께 미국에 불법적으로 입국한 자녀들)’에 대한 보호장치를 폐지하려는 트럼프의 시도를 저지하는 데도 기여했다.

로버츠는 큰 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릴 때면 중재에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중재자의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 더 보수적인 동료 연방대법관들을 놀라게 할 때도 있었다.

일례로 지난 7월, 그는 뉴욕 검찰이 트럼프의 금융 기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 반면 민주당 주도의 하원 위원회가 비슷한 문서를 확보하지는 못하게 한 두 건의 판결문을 모두 작성했다. 

긴즈버그가 사리진 지금, 로버츠는 직접 균형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게 됐다.

Alexander Drago / reuters
임기 중에 이미 두 명이나 대법관을 지명하는 '행운'을 누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긴즈버그의 후임자를 조속히 지명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어서 본인이 사임하거나 사망해 결원이 생길 경우에만 대통령이 대법관을 지명할 수 있다.

 

정부기관들에 대한 전쟁 

보수 진영과 기업들은 연방기관들의 권한을 약화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해왔으며, 연방대법원은 이미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보수 성향 판사가 6명으로 늘어나면 소위 ‘행정국가(administrative state)에 대한 전쟁’은 확대될 수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건 1984년의 기념비적인 판결, 즉 연방법의 적용 범위를 해석할 때 법원은 연방정부 관료들의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판결이 위험에 처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 판결이 번복될 경우, 앞으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서 환경 규제나 소비자보호 관련 규제를 도입하더라도 보수 대법관들로 채워진 연방대법원이 이같은 시도를 제한함에 있어서 훨씬 더 큰 힘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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