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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모든 여성들에게 영감을 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삶을 다룬 영화와 책

긴즈버그는 자신이 속해있던 시대의 차별을 극복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한 진보를 이끌었다.

  • 허완
  • 입력 2020.09.20 15:08
  • 수정 2020.09.22 13:31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1933-2020.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1933-2020. ⓒ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미국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사망 소식이 발표된 금요일(현지시각) 밤, 워싱턴DC의 연방대법원 앞에는 1000여명의 애도객들이 운집했다. 추모 행렬은 다음날인 19일에도 이어졌다.

그 인파 속에는 올해 13세인 소녀 블레이크 로저스도 있었다. ”법률가가 되고 싶었는데 제가 정말 할 수 있을지 잘 몰랐었거든요.” 그가 워싱턴포스트(WP)에 말했다. ”그랬는데 긴즈버그 대법관님이 말하는 걸 듣게 됐고, 그는 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성과 어린 소녀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셨어요.”

1933년에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긴즈버그는 일생 동안 미국 사회에 만연했던 성차별을 몸소 경험했고, 돌파해냈을 뿐만 아니라 성별에 근거한 차별을 ‘합법’으로 규정한 법 조항들을 하나씩 무너뜨려가면서 시대의 진보를 이끌었다.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 놓인 추모 화환. 2020년 9월18일.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 놓인 추모 화환. 2020년 9월18일.  ⓒAlexander Drago / reuters

 

그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법률적 권리를 갖는 시민으로 대하는 것이 바로 여성과 남성 모두의 권리를 향상시키고 보호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긴즈버그는 그 신념에 따라 강인한 의지와 선의, 그리고 지혜로 한 걸음씩 세상을 바꿔냈다. 긴즈버그가 미국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지점이다.

긴즈버그가 밀레니얼 페미니스트와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문화적 아이콘’으로 등장하게 된 건 2013년 경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그의 삶을 다룬 영화와 책이 쏟아져나왔고, 그 중 일부는 한국에도 소개됐다.

허프포스트는 ‘노터리어스 RBG’ 긴즈버그의 삶을 다룬 영화와 책을 모아봤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2018)

 

미국 역사상 여성으로는 두 번째로 연방대법관이 된 긴즈버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가 자신의 시대에 겪었던 차별들을 극복하고, 이 시대의 차별들과 맞서 싸우면서 ‘아이콘’의 지위를 얻게 된 배경이 잘 요약되어 있다.

원제 ‘RBG’인 이 영화의 한국어판 제목은 긴즈버그가 남성 일색의 보수적인 대법관들 사이에서 꾸준히 진보적 소수의견(반대 의견, dissent)을 냈던 것에서 착안한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인 만큼 그의 실제 연설과 발언들이 곳곳에 삽입됐다.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을 밟고 있는 발을 치워달라는 것뿐입니다” 같은 유명한 발언을 생생한 그의 목소리를 듣다보면, 미국 사회와 법 제도의 불합리한 차별에 또랑또랑하게 반대 의견을 내왔던 ‘거인’ 긴즈버그의 삶을 만나게 된다.

2018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으며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비롯해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작 후보에 올랐다. 

 

세상을 바꾼 변호인 (2018) 

 

같은 해에는 긴즈버그의 삶을 다룬 극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도 관객들에게 선을 보였다. 원제는 ‘On the Basis of Sex(성별에 근거해)‘로, 성별에 근거한 차별을 아무렇지 않게 용인하는 수백개의 법 조항을 하나씩 무너뜨려 온 긴즈버그의 ‘투쟁’을 상징적으로 요약한 제목이다.

영화는 긴즈버그가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한 500여명 중 9명 뿐인 여학생으로 첫 수업을 들으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긴즈버그가 1993년 연방대법관에 지명되기 전 컬럼비아대 교수와 ACLU(미국자유인권연맹) 내 ‘여성의 권리 프로젝트’를 이끄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벌인 삶과 법정에서의 싸움이 영화의 핵심 서사를 이룬다. 

긴즈버그의 동반자였던 남편 마틴 긴즈버그의 역할도 비중있게 다뤄진다. 긴즈버그는 생전에 남편을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나는 우리가 만났던 18세의 나이에 집에서든 직장에서든 여성의 일이 남성의 일과 똑같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동반자와 삶을 공유하는 대단한 행운을 누렸다.”

 

노터리어스 RBG

아이린 카먼, 셔나 크니즈닉  /정태영 번역 / 글항아리 / 2016년

 

밀레니얼들 사이에서 래퍼 ‘노터리어스 BIG’에서 따온 별명 ‘노터리어스 RBG’라는 별명을 얻으며 팬덤 현상을 불러온 긴즈버그의 평전. 2015년에 출간됐고, 국내에는 2016년에 번역, 소개됐다.

여성, 법원, 정치 등을 담당해왔던 MSNBC 기자 아이린 카먼, 뉴욕대 로스쿨 재학 중이던 2013년에 ‘노터리어스 RBG’라는 별명의 시초로 알려진 블로그를 개설한 셔나 크니즈닉은 긴즈버그의 인생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조명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긴즈버그의 이력과 발언, 주변 인물들,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그의 삶을 종합적으로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는 시대의 차별에 굴하지 않고 장벽을 뛰어넘어 시대를 바꿔낸 위대한 거인이자 때로는 퉁명스럽고 유머러스하며 어떤 면에서는 보수적인 ‘개인’이 있다.

긴즈버그가 관여했던 주요 기념비적인 재판들을 상세한 주석과 함께 소개한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긴즈버그의 말 - 평등을 향해 걸어온 대법관의 목소리 

루스 베디어 긴즈버그, 헬레나 헌트 지음 / 오현아 번역 / 마음산책 / 2020년

ⓒ마음산책

 

긴즈버그의 신념이 담긴 ‘말’을 통해 그의 삶을 조명한 책이다. 법정 의견서와 언론 인터뷰, 강연, 포럼 등에서 했던 주요 발언과 글들을 집대성했다. 2018년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책의 원제는 ‘Ruth Bader Ginsburg: In Her Own Words’다.

″여성의 권리라는 표현은 다소 문제가 있다. 인간의 권리다.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을 모든 인간의 권리다” 같은 말에는 성별에 따른 제도적 차별을 철폐하려 했던 긴즈버그의 신념이 잘 담겨있다. 진보적이면서도 신중하고 꼼꼼한 법률가의 면모도 소개된다. 

특히 긴즈버그가 연방대법관 시절 써내려갔던 주요 사건에 대한 소수의견서(반대의견서)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한국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환경과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이 사건들을 꿰뚫는 원칙과 가치에 대한 긴즈버그의 신념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다.

 

허완 에디터 wan.heo@huff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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