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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 의혹 폭로 글에 무분별한 비난·보도 자제해야 하는 이유는 한 사람의 '삶'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렸다가 이후 ‘사실무근’으로 판명되어도 피해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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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사진 ⓒpixabay

 

매일 여러 제보가 들어온다. 이 또한 하나의 제보였다. 내용은 단순했다. “○○○ 선수가 술값 2000만원을 갚지 않고 있습니다.”

○○○는 이미 은퇴한 선수였다. 얼마 뒤 해당 선수와 가까웠던 이로부터 얘기를 들었다. “○○○가 지인이 불러서 간 자리에서 같이 술을 마셨는데 해당 술집에서 지금 그 지인의 외상값까지 전부 갚으라고 하고 있다고 하네요. 이런 사실을 언론에 제보하겠다면서요.”

○○○는 단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협박을 당하고 있는 듯했다. 일단 언론에 이름이라도 나게 되면 여론재판에 몰리게 되고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지금껏 자신이 쌓은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당시에는 한창 프로배구에서 시작된 과거 학폭 문제가 프로야구계 쪽으로 번지는 터였다.

여론재판의 힘은 세다.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렸다가 이후 ‘사실무근’으로 판명되어도 이미 해당 선수는 모든 것을 잃은 뒤다. 익명이라면 그나마 낫지만 실명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해명은 변명이 되고 만다. ○○○도 이를 알았을 테고 해당 술집도 알았을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한 번 마녀사냥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헤어날 길은 전혀 없다.

제보를 받고 2시간 즈음 지났을까. 이메일을 보냈던 이는 “내가 이름을 잘못 알았다. 착각했다”라고 했다. 과연 그랬을까. 만약 제보에만 의존해 썼다면 ○○○는 회복 불가능한 여론재판에 휘말렸을 수도 있다.

비단 ○○○ 뿐일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학폭 사건이 터진 뒤 무언의 압박을 받는 선수들이 꽤 될 것이다. 속으로 전전긍긍 앓으면서 기억나지도 않는 일에 합의를 하는 선수도 더러 있을 테고. 그만큼 ‘마녀사냥’의 무서움을 간접적으로 체감했다.

프로배구 쪽 얘기지만 삼성화재 블루팡스 선수였던 박상하는 20여년 전인 중학교 시절 학폭 문제가 불거지면서 유니폼을 벗었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가 불거지자 폭로자를 자처한 김 모 씨는 ‘14시간 감금 폭행’ 등의 의혹 제기가 거짓이었다는 점을 실토했다. 박상하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같은 중학교에 다녔다는 이유로 자신의 학폭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박상하의 이름을 이용한 것이었다. 김모씨는 자신의 의혹 제기가 사실이 아니었다는 ‘사실확인서’도 제출했다.

박상하는 억울함에서 벗어났지만 이미 삼성화재에서의 그의 선수생활은 끝이 났다. 법률적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학폭 가해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음은 물론이다.

비난받기, 혹은 비난하기 쉬운 온라인 시대다. 대나무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는 오픈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몰아가기식 보도나 무조건적 비난에 일평생 일궈온 커리어가 무너지기도 한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싶지만 아궁이를 그냥 쑤시기만 해도 굴뚝에서 연기는 난다. 우물 안으로 돌팔매질하기 전에 앞서 전후 과정을 꼼꼼하게 따져봐도 늦지 않다. 그 돌멩이에 한평생 한길만을 파온 선수의 미래가 파탄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론도, 팬도 ‘포즈’(∥), 버튼(잠깐 멈춤)이 필요한 때가 분명 있다.

 

한겨레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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