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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개방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

ⓒhuffpost

“미국이 종전하고 불가침 약속하면 우리가 왜 핵을 갖고 어렵게 살겠습니까. 개혁개방은 중국식보다 베트남식으로 하고 싶습니다.” 4월27일 도보다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했다는 말이다. 김정은의 비핵화와 경제발전, 북-미 관계 개선 의지가 이 말 속에 압축되어 있다.

북한은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에서 경제운용에 시장경제 원리와 자율책임 경영을 허용했다. 중국의 초기 개혁정책을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외개방 없이 제도개혁만으로는 만성적인 북한의 경제난을 해결할 수 없었다. 2011년 12월 권력을 승계받은 김정은은 개혁 드라이브를 멈추지 않았다. 2012년 ‘6·28 조치’로 협동농장의 포전담당제와 국영기업의 책임관리제를 도입했고, 경제단위의 자율권을 확대했다. 2013년에는 5개의 중앙급 경제특구와 22개의 지방급 경제개발구를 지정했다. 2014년 ‘5·30 조치’로는 기업소들의 자체 권한을 강화하여 경영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는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공표했다.

ⓒ뉴스1

그러나 2017년 세계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북한의 식량 사정이 세계 27번째로 열악하며, 토지 생산성은 1990년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김정은의 연이은 개혁조치에도 불구하고 경제상황은 1990년대에 비해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이는 북핵 제재로 외부자본이 들어올 수 없는 상황에서 제도개혁만으로는 북한 경제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배경에서 그동안 경제제재를 자초한 핵문제와 해외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개방을 한데 묶어 풀어나가겠다는 김정은의 ‘통 큰 결단’이 도보다리에서 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그런데 경제발전을 위해 비핵화를 결정해도, 해외투자 유치의 충분조건인 북-미 수교는 미국 내 제도와 법적 절차 때문에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김정은이 중-미 수교(1979년 1월)를 확정해놓고 2주 전에 개방개혁을 결정한 중국식보다는 개방개혁부터 시작(1986년 1월)한 뒤 해외투자 유치와 경제발전을 이루고 대미 수교도 마무리한 베트남식을 말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에 대한 높은 경제의존도가 북한에 대한 내정간섭으로 이어지는 데에 대한 우려도 한몫했을 것이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북한에 중국식 개혁개방을 권유해왔다. 그러나 김일성과 김정일의 ‘이중적인’ 중국관은 중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불가근불가원’의 자세로 중국을 상대했다. 이런 선대의 중국관이 김정은에게도 고스란히 전수되어 중국식보다 베트남식을 선호한 이유일 수도 있다.

김정은이 ‘평화의집’ 방명록에 쓴 “새로운 력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력사의 출발점에서”라는 글귀는 김정은의 비핵화와 경제발전에 대한 의지를 함축하고 있다. 이것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낸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좋은 결과가 기대되는 이유다. 이제 북한의 비핵화는 기정사실이고 북한의 개방은 곧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발전의 촉매제인 해외투자를 우리가 먼저 선도할 필요가 있다.

조선조 개혁가 조광조는 “얻기 어려운 것은 시기요, 놓치기 쉬운 것은 기회다”라고 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일본이나 중국보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북한의 개방과 투자유치에 나선다면 북한 경제의 일본화나 중국화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이 함께 그려나가는 ‘한반도 신경제지도’에는 평화와 번영이 담길 것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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