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영(포스트식민퀴어연구회), "토론문", <소수자 성매매 : 성적소수자 성매매에 대한 보고서>, 2014.11.18, 96쪽. 게이 성매매에 대한 화두 : 퀴어인가 남성인가 : ”언젠가는 해야 될 이야기의 밑작업을 오늘 나눈 것 같아요”
터울 : 전 사실 이번 호 특집으로 게이 성매매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당사자를 섭외해 인터뷰하고 싶었는데, 그 전에 그걸 다루기 위해서 해야 할 밑작업들이 너무 많다고 느꼈어요. 왜냐하면, 가령 게이 사회 안에서, ”몸을 판다”는 하위문화적 수사나 농담이 별 이물감 없이 꽤 널리 사용되고 있거든요. 이를테면 ”우리 모두 창녀야”라는 말이 이성애자들한텐 그냥 이상한 소린데, 게이들 사이에선 때로 뭔가 너무 뼈저리게 맞는 말 같이 와닿는 느낌도 있고,
유나 : 그게 정말 왜 그럴까요?
터울 : 모르겠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한 묘사충동이 너무 있는데, 이것들을 꺼내어 본격적으로 다루어 보기에는 뭔가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유나 : 그런 감수성의 차이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제 기억에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모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에서 3년 전인가 어떤 생애사 인터뷰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어요. 그 자리에 저랑 다른 이루머 한 명이 가서 발제자 얘기를 잘 듣고 있었는데, 발제자가 보통 자료집엔 없는 재밌는 에피소드를 덧붙이잖아요. 그 중의 하나가, 이 생애사 인터뷰에 참여한 게이가 굉장히 유흥을 즐기고 다니신 분이라는 거예요. 게이 성산업의 대표적인 구매자, 소비자였던 거예요. 그래서 과거에 업소에서 어떻게 놀았는지를 얘기해주는데, 업소 종사자, 게이 성노동자의 항문에다 나무젓가락을 넣었다던가, 그런데 그 얘기를 발제자가 웃긴 에피소드로 얘기하고, 그걸 듣고 다 웃는데, 나랑 이루머 둘이서만 벙쪄서, 우리 둘만 이러고 보고 있는 거죠. ”이게 웃겨?” 우리 입장에서, 정말 전혀 웃기지 않은 얘기고, 일단 이 발화자가 성노동자가 아니고, 그곳에 손님으로 갔던 사람 얘기인데, 어떻게 이 얘기를 듣고 모두가, 인권운동 단체 포럼에 온 사람이면 어쨌든 활동하는 사람일 거고, 발제자도 개인적으로 아는 활동가였는데, 어떻게 다 웃지? 저는 이 장면에서의 괴리가 잊혀지지가 않아요. 이 차이가 뭘까,
터울 : 저로서도 되게 화두예요, 그런 부분이.
고진달래 : 그런데 그런 부분은 게이여서 그런 거예요, 아니면 남성성으로 묶어서 얘기할 수 있는 거예요?
터울 : 그걸 잘 모르겠어요. 그건 보는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편한 대로 얘기하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으로선 제 생각은, 아직 ‘모르겠다’는 거예요.
고진달래 : 아까 터울이 ‘퀴어 성매매‘라고 얘기하고, 그게 ‘이성애 성매매‘와 분명히 다르다, 퀴어 성매매는 다르다고 얘기할 때, 그 때의 ‘퀴어‘가 사실 잘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어요. 그냥 이건 ‘게이 성매매’가 아닌가 싶은 거죠. 왜냐하면 레즈비언들은 자기 성매매할 때 구매자가 남자이니까, 내가 레즈비언이어도.
터울 : 그건 사실 제도로서의 이성애 성매매에 가까운 것 같아요.
유나 : 트랜스젠더 성매매도.
터울 : 네, 그건 판매자 주체의 정체성이 문제가 아니라, 제도화된 성매매 안에서 구매자 입장에서의 상품 다양성이 핵심인 경우니까요. 그런데 제가 퀴어 성매매라고 얘기했던 건, 게이들 사이에서의 1:1 성매매, 때론 판매자와 구매자와 감정적 연대가 있기도 한 그런 현상들 안에서, 그 주체가 게이가 아니라 트랜스젠더퀴어일 수도 있기 때문에, ‘게이 성매매’라고 질러 이야기할 수 없었던 게 있어요.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이성애자 남성 구매자가 성소수자 판매자와 성매매하는 경우는 결국 제도로서의 이성애 성매매의 연장일 것이란 생각을 어렴풋이 갖고는 있는데, 사실 이건 다시 면밀하게 잘라서 봐야 될 것 같아요.
고진달래 : 여전히 제3세계, 가난한 나라에서는 팔려가는 사람이 여전히 있거든요. 제가 가봤던 네팔은 되게 심해요. 인도로 팔려가는 양상이 너무 심해요, 네팔은. 그리고 여자아이만 팔려가는 게 아니라 남자아이도 팔려가거든요. 그 남자아이가 성매매 대상이 되는 건 대개 남자이고, 많은 연구에서 태국에서 아동 성매매를 하는 사람이 게이이기도 하다고 언급하고 있고. 이럴 때 이 아이를 사는 사람이 게이일 때, 이건 게이의 남성성...의 문화를 안 건드릴 수가 없는 거죠.
터울 : 게이 성매매에 분명히 남성성이 일정하게 연루된다고는 생각하는데, 저는 남성성과 퀴어/성소수성이 둘다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고진달래 : 맞아요. 그래서 우린 내부에서도 이걸 ‘퀴어 하위문화’로만 말하기에는 빈 부분도 있다-는 것도 덧붙이고 싶었던 거죠.
터울 : 저도 고민이에요. 그리고 이걸 정리하는 일을 떠안을 자신이 없어서 아직은 모르겠다고, 화두로 남기겠다고 말씀드렸던 거였고요.
고진달래 : 이걸 이야기할 때 터울이 느끼는 부담은 뭐예요?
▲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자유발언대 게시물 (2013.6.24) 터울 : 우선 구글에 ‘게이 성매매’ 쳐보면 아시겠지만, 마치 HIV/AIDS처럼 게이 성매매가 곧 게이커뮤니티의 모든 것인 것처럼 호도하는 낙인 섞인 기사들이 많아요. 이건 게이커뮤니티 내에 성매매가 어쨌든 존재한다는 차원의 문제를 떠나서, 그 위에 게이커뮤니티에 엄연히 작동하고 있는 낙인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런 부분이 있죠.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판단했을 때 게이커뮤니티 안에서, 여성주의 사조 안에서 시작했던 성매매 담론이 시작부터 자기 얘기로 안 들리는, 폐색되는 부분이 일정하게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건 여자 얘기야”, ”이성애 얘기야”, 이렇게 되는 게 있고,
유나 : 아, 여자 얘기고 이성애 얘기다... 완전 분리된 채로 사고되는 거군요. 게이 성산업이랑 성매매 담론이.
터울 : 네, 아예 묶어서 생각하지를 않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그런데 그건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틀린 부분도 있겠죠. 그러니까 이런 것들을 처음부터 쪼개서 이야기하기엔 지금 제 입장에선 너무 부담스러운 게 있는 거죠.
유나 : 사실 그게 반성매매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아요. 게이 성매매를 반성매매 단체에서 ‘성매매’로 끌어와서 이야기하는 순간, 성매매가 여성문제라는 것, 젠더문제라는 걸 갖고 운동하기에도 벅찬데, 그걸 끌고 오면 젠더 문제라는 게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고진달래 : 그러니 아슬아슬한 두 축이 만났네요. 다른 쪽에서는 ‘그거 여자 문젠데 왜’, 이렇게 인식되는 거고.
터울 : 그래서 이것들을 같이 이야기할 때 굉장히 세심해져야 하는 것 같아요. 이걸 막 이야기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생기는 느낌이 있어서, 저는 이걸 화두로 남겨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고진달래 : 네, 맞아요. 천천히 하죠 뭐. (웃음)
유나 : 아마도 긴 얘기가 될 것 같아요.
고진달래 : 그리고 언젠가는 해야 되겠지만, 어쨌든 그 밑작업을 오늘 한 셈이네요.
터울 : 그리고 이건 이성애와 퀴어가 어떻게 관계맺는가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둘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사실 당사자도 그렇고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이성애자는 말할 것도 없고, 어떤 성소수자들은 이성애에 대해 여러 이유로 아예 신경쓰기 싫어하기도 하고요. 그 부분에 대한 입증도 사실 이 게이 성매매의 정리를 위해 필요한 것 같아요.
고진달래 : 네, 이해가 돼요. 생각해보니 우리 어려운 걸 하고 있네요. 아슬아슬한 이야기들을.
유나 :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웃음) 좀처럼 건드리길 싫어하는 얘기니까.
고진달래 : 그러니까 성노동이라고 말하는 게 훨씬 더 편한 거지, 퀴어 쪽에선.
터울 : 그렇죠, 그런 부분이 좀 있죠. 왜냐하면 성매매에 얽힌 여성주의 이론 프레임워크를 그냥 받아안기가 너무 부담스러우니까요. 현재로선 정리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고,
고진달래 : 네, 복잡하니까. 차라리 성노동으로 말하는 게 훨씬 편할 수 있겠네요. 거기에 앞으로 균열을 한번 내보는 거죠 뭐.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연대단체 목록 (2017.10.20. 현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연대활동 : ”성판매 여성들이 경험하는 현실들이 다 엄연한 사회적 차별인 거죠”
터울 : 힘든 얘기를 했으니 아름다운 얘기로 좀 넘어가보겠습니다. (웃음) 양성평등과 성평등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아실 텐데요, 성평등 관련해서 이룸에서 성명서를 쓰시기도 하셨고, 또 이룸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에 연대 단체로 참여 중이시잖아요.
고진달래 : 차제연에 반성매매 단체 누가 들어가있어?
유나 : 아마 이룸만 들어가있을 거예요.
고진달래 : 이룸 전 활동가인 ‘숨’이 있을 때 차제연에 들어가게 됐는데, 숨이 그 안에서 성매매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성매매 여성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얘기했었어요.
유나 : 성평등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저는 이걸 설명하는 게 힘들어요, 너무 당연한 거니까. 여성주의자로서 반성매매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성매매라는 이슈나 성산업은 성차별과 연결되어있고, 여자로 계속 만드는, 나의 성별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 사회에서 여자로 위치짓게 만들어버리는 과정과 장치이고, 저 사람을 남자로 만드는 장치이고, 그렇게 여자를 여자로 만들고, 남자를 남자로 만들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굉장히 공고한 장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도 있잖아요. 이것이 화폐와 자본화, 이런 것과 연결되면서 복잡해지고, 더 분석할 게 많아지고 이런 거랑 별개로, 우선 페미니스트로서는. 그러니까 양성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자기 목소리를 낼 때 같이 하는 거죠. ”남자랑 여자가 정해져있다, 남자랑 여자랑 평등하면 된다” 라고 얘기를 하면, ”아니 그 둘은 정해져있는 게 아니고 계속 이 사회가 만들고 있잖아, 그 둘의 권력관계 자체를 문제제기하지 않으면 성매매는 계속될 거야” 라고 대답하게 되는 거죠. 따라서 이 얘기를 하는 데에는 성평등이란 개념을 안 갖고 올 수가 없고, 그래서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서 성명서에도 그런 생각이 배어들었던 것 같아요. 차제연의 경우는, 처음에 차제연 되기 전에 반차별공동행동 시절부터 이룸도 연대단체로 참여했었고요, 그때부터 죽 같이 해왔죠. 사실 이룸에서는 성판매 경험 여성들이 경험하는 현실들이 다 차별투성이인 거고, 사회적 차별들인데 아무도 차별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것들, 이런 얘기들을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같이 하고 싶었고, 지금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노르딕 모델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간접차별이라든가를 통해 이런 얘기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법 모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터울 : 맞아요, 노르딕 모델이 형법이나 처벌법으로서가 아니라 그렇게 차별금지법 등을 통해 구현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으니까요.
유나 : 되게 구체적으로 법조항을 이렇게 가야 한다기보다, 노르딕 모델의 발상에서, 이것이 가장 많이 공격받는 포인트가, ”차별적이다, 왜 똑같이 성매매했는데 판매자인 여자만 처벌 안 받냐”이고, 저희는 이것에 대해서 대항하는 건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같이 이야기하는 차별의 범위들, 내용들이 성판매 여성의 차별 상황과 함께 너무나 얘기할 만한 내용들인 거죠. 즉 첫째로 성판매 여성이 차별받는 현실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로서 차별금지법을 쓰고자 하는 것과, 둘째로 노르딕 모델 같이 우리가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이 차별과 연결되어있다는 걸 그 연대체 안에서도 얘기하고 싶은 마음? 크게는 이 두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이번에 페이스북 페이지 ‘성판매여성 안녕들하십니까’의 댓글들, 엄청난 혐오와 차별의 댓글을 보면서도, 이런 걸 혐오발언으로 우리가 문제제기할 수 있다면, 차별금지법 제정과 연결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됐죠. 역량이 좀 부치긴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연대할 예정입니다.
성매매 현장이 활동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 : ”이 모든 이해 안되는 게 자기 탓이고 자기 팔자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터울 : 마지막 질문입니다. (웃음) 이 성매매 현장이나 성매매 여성과, 활동가분 본인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 궁금해요.
유나 : 전 이 질문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이 질문에 되게 몰입했어요. (웃음)
터울 : 저같은 경우에도 게이커뮤니티에서 힘도 받고, 때로는 실망도 하고, 그래도 결국은 또 그들을 염두에 두면서 글을 쓰고, 그런 여러 가지 감정들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그것들이 저를 구성하는 요소인 거죠. 반성매매 활동가 입장에서, 이 성매매 현장이나 성매매 여성과 어떻게 관계맺으시는지, 왜냐하면 당사자는 아니시니까요. 그게 되게 궁금했어요.
고진달래 : 저는 이룸에 다시 컴백한 거잖아요. 컴백할 때, 이룸 말고는 다시 하고 싶은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성매매밖엔. 왜냐하면 내가 떠날 때, 성매매에 대해 어떤 답을 얻지 못하고 떠난 거에요. 그 때는 한창 지원만 하고 여성만 하다가, 여기까지가 내 역할인가보다 하고 한계를 느껴 나갔던 거거든요. 그런데 현장 밖에서 살면서도 늘 나한테는, 이걸 내가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건 지원을 넘어서야 되는 것, 우리가 활동가라면 여성들의 지원을 넘어서서 뭔가를 해야 된다는 게 나한테 있었고, 재작년에 다시 돌아오면서 그걸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에요. 그런데 여성들은 나한테 그런 것 같아요. 그 여성이 왜 이 일을 겪고 있고,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봤다’는 부채가 있어요. 내가 봤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알려야 될 의무가 있는 것 같고, 여성들의 삶은 정말 모순덩어리의 집약체에요. 가정에서부터, 사회에 나와서 겪는 일들도, 남들이 그냥 이런 얘기를 하면 이해가 안되는 것들을 겪고 있는 거고, 이건 사회문제 중의 하나인데, 내가 그걸 봤는데도 아무 것도 못하고 나온 거죠. 그래서 나한테는 너무 명확했던 것 같아요. 단순히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내가 이 여성을 지원해서-로 끝날 수 없는 어떤 책임이 나한테는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과 올해 많은 활동도 했고, 연대도 했고, 이제 작업장 연결하는 것도 해야 되는 책무가 나한테 있는 거죠. 그리고 알려야 될 책무도 나한테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해야지만 내가 내 일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터울 :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꿔서, 이 현장을 대하시면서 본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어요?
고진달래 : 저는 그 전에는 인간을 이해한다, 심리학, 이런 건 우스웠던 거였거든요. 심리학? 사람 마음 알아서 뭐해? 이랬는데, (웃음)
유나 : 너무 어울리는데? 너무 그랬을 것 같아요. (웃음)
고진달래 : 그러다 여성들을 보면서, 내가 되게 겸손해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삶에도 어떤 라벨링을 할 수 없다, 그리고 현장의 여성이 맨처음에는 불쌍하고 그랬거든요. 안쓰럽고, 불쌍하고, 너무 마음이 아프고 그랬는데, 그렇게도 말할 수 없을 만큼 되게 인간의 삶이 복합적이라는 걸 배운 것 같아요. 그렇게 나는 여성을 보면서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여성의 생명력, 살아내는 것에 대해서, 어떤 삶을 쉽게 말할 수 없다는 걸 제가 배운 거죠. 저는 그리고 여성들의 삶을 잘 관찰하다보면, 다른 사람 이해 안될 게 없어요. 그리고 저걸 이해해야지만 내가 살기 때문에, 상담심리학을 그래서 나는 그 뒤에 공부한 거였어요. 어쨌거나 이해해야 하니까. 저들을 이해해야 되니까. 그리고 저들 뿐만 아니라 저들을 둘러싼 악을 내가 이해해야 되잖아요. 그 업주와 남자들과, 이런 것들을 어떻게든 이해해야 되고, 그 이해된 언어를 나는 또 세상에 알려야 되기 때문에, 이해의 폭이 넓어진 건 맞는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해서. 징글징글해 죽겠어 진짜. (웃음)
터울 : (웃음) 너무 좋은 말씀이네요. 유나쌤은 어떠세요?
유나 : 한계를 계속 마주하는 것? 할 수 없는 게 너무 많고,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던 것 같고, 그냥 그런 거다-라는 걸 받아들이게 된 게, 이 현장을 만나고 이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원하든 원치 않든 서로에게 개입하면서, 나의 한계, 당신의 한계, 이 사회의 한계들을, 밑바닥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너무 나를 무기력하게 하고, 너무 우울하게 하고, 나를 섹스하지 않게 하고, (웃음) 나를 되게 힘들 게 하는데, 왜 나는 이걸 계속 하고 싶고, 붙들고 싶을까. 막 앞으로 5년 계획 세우고 이런 걸 왜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면, 아까 달래가 다시 돌아오면서 했던 생각이랑 비슷해요. 이 끝없는 한계들과 이 끝없는 절망 속에,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것들에 대해, 다들 개인탓 하거든요. 다들 자기 팔자에요. 아니 대체 나랑 저 언니들이 뭘 그렇게 차이나는 선택들을 해서, 이렇게 다르게 살지? 전 이해가 안돼요. 사실 난 아직도 인간을 이해를 전혀 못하겠고 세상을 이해 못하겠는데, 이 이해 안되는 것들을 자기 탓으로 가져가는 것만은, 그것만은 같이 붙어서 막을 수 있겠다, 자기 탓으로 가져가지 않게. 그래서 언니들 만나면 전 다 설명해요. (상담소의 지원금-편집자 주)이 돈이 어디서 나오고, 왜 나오는 거고, 국가가 왜 이 돈을 지원해야 되는 건지, 이게 사회의 책임이고, 이 사회가 굴러가는 한 축인 거고, 또 이건 이 여성들 뿐만 아니라 우리도 다 알아야 하는 거니까, 이거 알리는 일을 계속해야 되는 거고, 언어를 만들어야 되고. 되게 좋게 말하면 창조적인 분노를 주는 만남들, 되게 안좋게 말하면 나를 한없이 무력하게 만드는 만남들.
고진달래 : 나는 작년에 우리 이룸이 이 여성들이랑 재개발과 이런 걸 겪어내고, 작업장까지 만든 과정에서 내가 배웠던 건, 여성들이 개별적으로 만난 게 아니라 집단으로 조직한 거잖아요. 조직을 하고 이끌어가려면 나만 해서 될 일이 아닌 거예요. 유나가, 별이, 기용이, 차차가 같이 붙어서 이걸 만들어가야 되고,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건강해져야 되는 거예요. 우리 누구 하나도 나가 떨어지지 않게 같이 움직여야 되는 걸 또 고민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이번에 ‘작업장 하겠다고 뜨개질할 실을 모아주세요’ 라고 할 때, 이게 이룸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전 그걸 이번에 배운 것 같아요. 그 힘을, ‘여성들한테 우리 이렇게 실을 모았어요’ 라고 얘기하니까, 여성들도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기도 하는구나’ 라는 걸 배우고. 맨 처음 여성들 지원할 때는, 우리가 드러내면 안된다고 생각하고, 여성 하나만 잘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전체 이룸의 힘, 그리고 우리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의 힘이 보태져야 되는 일이구나, 이게 또 여성들한테도, 여성들의 힘을 기르는 데 필요한 일이겠구나-라는 걸 배운 거죠.
유나 : 항상 이런 걸 얘기하고 나면, 나는 당사자가 아닌 활동가로서 한 이 말들이 어떻게 들릴 것인가, 예를 들어 그 여성들과 현장을 만나면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라고 했을 때 이 질문에 몰입했던 건, 사실 (언니들과 저는) 다르겠죠. 당사자와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너무 다르겠는데, 나한테는 사실, 내 세계관에 되게 커다란 부분이 되어버린 거예요. 이걸 설명할 수가 없어요. 아까 얘기했던 무기력, 분노, 이런 건 사실 붙여본 거죠. 문장을 만들어본 것일 뿐이지, 사실 되게 설명되지 않는 어떤 연결감?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났어, 노래방에서 났대, 그럴 때 내가 먼저 떠올리는 건 어, (보조)도우미 여성이면 어떡하지? 너무 그럴 수 있겠다, 이후에 아니라는 게 기사화되고, 이 이슈에 여성들이 붙었어요. 그럼 도우미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이슈화되는 거 아닐까? 그렇게 나의 사고가 흘러가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 그런데 이 영향을, 내가 받은 이 영향, 나의 사고가 달라지는 방향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터울 : 사실 설명이 될 필요도 없고 설명을 굳이 하실 필요도 없는 것인데, 거기에서 저도 언어를 붙이자면, 달래쌤이 이야기하셨듯이 우리가 어떻게든 연결돼있다는 걸 발견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첫번째인 것 같고, 두번째는, 아까 좋은 말씀 해주셨는데, 이 모든 걸 팔자소관으로 만드는 비참함에서 벗어나는 것, 사실은 팔자소관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이 모두가 연결되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끊어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하거든요. 사실 끊어버리면 얼마나 살기 쉬워요, 성매매 내 문제 아니고 퀴어 내 문제 아니고 모르겠고 내 것만 살고 싶고 이건데, 이게 사실은 되게 비참한 삶의 양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퀴어 관련 활동하면서 느끼는 것들은, 사실 퀴어는 훨씬 신경 안써도 될 것만 같은 어떤 느낌이 있고, 성매매도 유사한 게 있는 것 같아요. 아무리 그게 이론적으로 이어져있고, 어떻게 연결되어있다고 할지라도 확신범적으로 잊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되게 비감해지면서도, 저는 제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그러는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연결돼있다는 걸 포기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걸 팔자라고 설명하지 않는 것.
유나 : 내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터울 : 방금 두분과 대화 나누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정리해본 거네요. (웃음)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고진달래, 유나 :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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