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울 : 어려운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간단하게 소개해주시죠.
고진달래 : 저는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첫 제 현장은 2004년의 천호동 집결지였어요. 그 때는 이제 여성부 지원이 없었던 때여서, 수녀님이랑 같이 활동을 했고, 천호동에는 ‘소냐의집’이라는, 수녀님이 운영하는 곳이 있었어요. 거기서 1년 8개월 정도 하다가, 이룸으로 넘어온 거죠. 이룸이 여성주의자들이어서, 확실히 종교인들이 지원하는 곳과는 많이 달랐거든요. 그래서 이룸에 합류했고, 합류하자마자 청량리 집결지는 제가 담당했고, 그 때는 저희가 사업이 두 군데로 나뉘어 있었거든요. 하나는 집결지, 하나는 상담소라고 해서 집결지 외의 산업형 여성들이 도움 요청할 때 상담하는 곳이 있어서 두 군데가 있었는데, 저는 집결지팀에서 일을 했죠. 그러다 잠깐 몇 년 이룸을 나와서 상담심리사로 일하다가, 다시 재작년에 이룸으로 복귀했죠. (웃음)
유나 : 저는 2013년에 이룸에 입사를 해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상담소 일을 계속 했었고, 집결지가 아닌 현장을 더 많이 봤죠. 이룸도 이룸의 흐름에서 집결지에 집중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제가 입사하던 즈음에 그랬죠. 제가 이룸 활동 시작한 2013년 즈음에는 사실 집결지에 거의 나가지 않았고, 집결지 아웃리치(Out-reach: 도움과 충고가 필요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나서는 일)에 집중하지 않았고,
고진달래 : 산업형이 워낙 넓었기 때문에, 그 때는 집결지 아웃리치보다는 맥양주집 아웃리치에 더 많이 집중했었고, 온라인에 더 집중했었어요. 왜냐하면 이룸 내부에서도 집결지에만 집중하는 게 맞냐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런 것에 집중하던 때였고, 유나가 하는 상담들은 법률,
유나 : 그렇죠, 법률지원이 많아요. 채무 관련된 부분이 가장 많이 하는 상담이에요.
고진달래 : 네, 그 상담을 이룸에서 유나가 제일 많이 했죠.
2004년 성특법 제정 당시의 반성매매 운동 : ”집결지 현장과 연결될 수 있는 통로가 매우 제한적이었어요”
터울 : 이룸이 2004년에 창립됐고 같은 해에 성매매특별법(이하 성특법)이 발효되었는데, 그 전에는 윤락행위등방지법(이하 윤방법)이 그 때까지 있었고, 뭔가 흔히 반성매매 운동이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사실은 역사가 짧더라고요. 그 때부터, 원래 ”요보호시설”로 들어가던 돈이 상담소로 지원되게 되고, 국가 예산이 그 때부터 들어오게 되는데, 이 때가 사실 2000년 군산 집결지 화재 사건 이후에 다소 급박하게 일이 진행됐던 것 같아요. 창립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고진달래 : 제가 사실 창립 멤버는 아니에요. 창립 멤버들이 이룸을 만들고 그 다음에 얼마 되지 않아서 제가 투입된 거라서,
유나 : 아마 달래가 소냐의집에 들어갔을 때가 이 법이 만들어졌을 거예요.
고진달래 : 맞아요, 법 만들어지기 전이었었죠. 그래서 지원금을 안받는 상태에서 소냐의집에서 활동을 했었었는데, 그 때는 여기가 종교단체이다보니까, 수녀님이 그 지역에서 20년 동안 그냥 혼자 들어가계셨던 거예요. 조그만 방 하나를 얻어놓고. 그래서 집결지에 들어가 계셨죠. 그런데 집결지는 접근하기 너무 어려운 곳이에요. 되게 공을 많이 들여야 되는 곳인데, 업주랑 ‘삼촌‘들? 깡패들의 경계를 낮추기 위해서는 되게 많은 노력을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소냐의집에서 했던 것들은 진짜 손수 대추차를 끓여서 나갔었어요. 그래서 업주부터, ‘삼촌’들부터 만나서 들어간 거였죠. 이룸 같은 경우에는, 이룸은 지원금 받기 전에 전쟁없는세상과 사무실을 같이 쓰면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지원금 없이 각자 알바 하면서, 전화 하나 놓고 그냥 긴급전화 받는 걸로 시작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정부지원금을 준다는 얘기가 나와서,
터울 : 그게 몇년도였나요?
고진달래 : 정부지원금이 아마, 내가 청량리 사업할 때쯤이었으니까, 2005년 전후였었던 것 같아요. 2006년부터는 우리가 현장지원센터 받고 청량리 사업을 했었으니까. 그런데 센터 받고도 상담소는 운영했었으니까, 그 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른 성폭력상담소나 가정폭력상담소에 비교해서는 굉장히 늦은 거죠. 그리고 성폭력이나 가정폭력도 마찬가지로, 그 때도 그냥 여성주의자들이 맨 처음부터 시작한 거였잖아요. 시작했다가 제도화됐던 것처럼, 성매매랑 우리 미군 기지 앞 기지촌 운동도 그냥 여성주의자들이 들어가서 했던 거죠. 그러다 지원금 받으면서 여성주의자가 아니라 사회복지사 기준으로 상담사들이 들어온 거죠.
터울 : 80년대에 막달레나공동체 생겼을 때도 종교인이 시작했었는데, 자료를 읽어보면 여성주의 운동 안에서도 성매매 이슈가 주요한 이슈로 자리잡게 된 게 2000년대부터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역사가 짧은 셈인데, 그걸 보고 의외였던 기억이 있어요.
유나 : 저도 궁금하긴 했어요. 왜냐하면 <성매매의 정치학>(2006) 이런 책 보면, 성특법 만들어질 때 대체 여성학자들 다 어디에 있었냐, 이런 성토가 나오잖아요. 왜 이렇게까지 성매매 이슈가 등장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때 당시 여성주의자였던 달래는, 현장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소냐의집에 갔잖아요. 담론이 없지는 않았을 텐데.
고진달래 : 그 때 제가 성매매 현장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그 때가 20년 전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논의랑 너무 똑같은 이야기가 그 때도 있었어요. 여성학 세미나를 하면, 다른 문제들은 거의 뭐 논쟁 없이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성매매는 늘 논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 때도 성노동 얘기 나왔고 성노동이냐 반성매매냐가 나왔는데, 그 때 민주노동당 선배들이랑 토론을 하는데 민노당 남자 선배들은 너무 성노동을 지지하는 거예요. 나는 너무 반박을 하고 싶은데, 나도 경험이 없고 그들도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누가 이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직접 만나야겠다는 오기에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한번 보자, 이런 마음으로, (웃음)
터울 : 민주노동당의 남성 선배들은 성노동을 어떤 맥락에서 이해하셨던 거예요?
고진달래 : 이건 노동이라는 거예요.
터울 : 아, 노동 헤게모니 때문에 노동이라고 얘기한 거예요?
고진달래 : 맞아요. 딱 그거예요. 되게 심플하고, 이건 노동이기 때문에.
터울 : 그런 성노동 논의의 역사가 되게 깊군요. 민노당 때부터.
고진달래 : 네, 그러면서 성매매 현장에 들어갔죠. 그리고 성매매 쪽은 여성주의자들 한테도 사실 그 때는 매력있는 곳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매력있는 현장은 아니었던 같아요. 기지촌 같은 경우엔 기활(기지촌활동) 가면서 어느 정도 접근도도 있고 그랬는데, 성매매 쪽은 되게 거리감 있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 관심이 있더라도 들어갈 현장이 사실 열려 있는 곳이 없었고. 기활은 아예 활동가들을 받았는데, 집결지 같은 경우에는 상담소들이, 여성주의자들이 들어갈 만한 곳이 사실 없었고,
터울 : 기활 같은 경우에 활동가들을 받았다는 주체는 어디였나요?
유나 : 새움터에서 받았었어요. 새움터만 열려 있었어요. 달래랑 저는 세대가 완전히 다른데, 저 학교 다닐 때 총여학생회에서도 제가 총여 활동을 2007년부터 했거든요. 2006년까지는 거길 갔대요. 새활이라고 불렀던 것 같아요, 새움터로. 그런데 그냥 뚝 끊겼어요. 전혀 저 때에는 안 갔거든요. 그런데 거기만 열려 있었고, 거기로 어쨌든 극소수의 여성주의자들이 가긴 갔는데, 왜 갔는지, 가서 뭘 했는지에 대한 역사가 잘 남겨져 있지는 않고, 그 때 이후로 저 때부터는 막달레나공동체 한 곳이 조금 열려있는 느낌의 성매매 현장이었어요. 그래서 누구는 자원활동도 하러 가고, 그 정도로만 연결감이 있었지, 논쟁·이슈가 아니라 거리감없이 내 운동이라고 여기는 건 우리 때도 마찬가지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논쟁은 엄청 했죠.
고진달래 : 물밑에서는 하죠, 늘.
터울 : 자료 찾아보면서 되게 의외였던 게, 저는 사실 퀴어운동 하는 입장에서 여성주의 운동이라고 하면 그런 선입견이 있었거든요. 여성가족부가 있고 이러니까, 뭔가 되게 오래됐고 역사도 깊고, 재원도 많고 자원도 많겠거니-라는 느낌이 있는데, 보니까 2004년에 성특법 생기고 그해 바로 한터전국연합회가 생겼으니까, 사실상 반성매매 운동이 생기자마자 성노동자 운동이 생겨났던 입장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2004-2006년 즈음에 반성매매 운동과 성노동자 운동의 현장이 공존하고 있던 시기였던 것 같고, 성노동자 운동에 대해 일군의 여성주의자들이 당혹스러워하고, 포주의 이야기를 듣는 당사자 여성에 대해 일견 당연하다고 이해하는 목소리가 성특법 정책 입안자들에게서도 나오던 때였는데요. 자연히 현장은 훨씬 더 복잡하고 복마전을 하게 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2006년경 청량리 집결지 현장과 이룸의 활동 : ”여성단체의 이름으로 집결지에 진입한다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고진달래 : 그런데 저는 그 시기에 실제로 성매매 현장의 여성을 많이 만나지 못했었어요. 왜냐하면 성특법 만들어질 때 집결지 여성과 관계가 있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듣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소냐의집은 만들어지기 전쯤까지도 스스로 여성단체라는 걸 숨겼거든요. 이게 전략이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걸 대놓고 접근하거나 접점을 만들지는 못했어요. 그냥 딱 종교의 이미지로 현장을 계속 접근한 상태여서,
터울 : 진짜 의외네요. 현장에서 그 정도로 여성주의적 방향을 밝힐 수조차 없었던 셈이군요.
고진달래 : 맞아요. 그런데 집결지를 가보면,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정말 살벌하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늘 살얼음이었던 것 같아요. 눈 마주치지 마라, 이런 것부터, 말 섞지 마라,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을 위협해서가 아니라, 늘 수녀님이 말씀하시길 ‘우리가 거기서 내쳐질 수도 있다’는 긴장들이 있었기 때문에,
터울 : 그리고 거기엔 축적된 경험들이 있었겠군요.
고진달래 : 네, 맞아요. 그래서 우리가 간판을 걸고, 여기가 여성부 지원을 받는 곳이라는 걸 밝힌 것도 좀 이후였던 것 같아요. 지원금을 받고 나서 1-2년 정도까지도. 이게 여성부 돈입니다-라는 걸 대놓고 말을 못했죠. 그렇기 때문에 소냐의집 상황에서는 뭔가 여성들이 어떻게 느끼냐, 어떤 상황이냐라는 걸 아주 들어가서 이야기를 들어보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터울 : 그러면 이룸에 오셔서도 비슷했나요?
고진달래 : 제가 이룸 들어와서는, 이룸은 더 했어요. 이룸은 현장 들어가기가 너무 어려웠었어요. 청량리는 천호동 규모보다 훨씬 컸고, 여기에 이권 개입을 하는 깡패들도 너무 많았고, 우리가 진짜 1-2년은 들어가서 기싸움을 되게 했던 것 같아요. 그 때는 저희가 젊은 애들이었잖아요. 20대 후반? 제가 27살에 들어갔으니까요. 그 때 여자애들이 옹기종기 다니면, 뒤에서 깡패들이랑 업주들이 그렇게 욕을 하고 다녔었거든요, 쫓아다니면서. 기싸움을 한 거죠. 그런데 우리가 밀리지 않고 그래도 꾸준히 가다보니까, 한 1-2년을 공들였던 것 같아요, 여기도 마찬가지로. 그런데 종교단체는 그래도 빽이 있으니까, 함부로 수녀님을 해코지를 못하잖아요. 우리는 늘 긴장하면서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사무실 앞에 똥도 갖다놓고. 여성들과 늘 이간질을 시키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젊어서 그걸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여기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곳이란 생각을 못했어요. 나이 먹고 이러면서 기사 보고 영화 보면서, 아 정말 그 시절 조직폭력배들이 우리를 죽일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을, 그 때는 진짜 못했던 것 같아요.
유나 : 당사자 언니들의 경계보다는 업주들의 경계가 너무 심했던 거군요.
고진달래 : 너무 무섭게 심했죠, 우리는.
유나 : 성특법 관련한 돈을 받아서 하는 애들이라는 건 다들 알았어요?
고진달래 : 그렇죠, 여성단체가 들어왔다는 것도, 청량리의 이룸은 어쨌든 여성단체라는 걸 까고 들어왔기 때문에, 더 긴장을 했던 것 같아요.
유나 : 언니들은 딱히 그것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고 그랬던 건 없었나봐요. 너네가 여성단체 뭐 그거 법 만들어갖고 그런 애들이라느니 그런 얘기들은,
고진달래 : 그러지는 못했어요. 왜냐하면 언니들에게 그런 얘기까지 들으려면 만나야 되는데, 우리가 들어갔을 때쯤엔 만날 수 있지를 못했거든요. 업주가 문을 안 열어주고, ‘삼촌’들이 그렇게 욕을 해대니까, 만날 수가 없었지.
터울 : 그럼 현장 여성들과 만나는 게 가능해진 건 어느 시점부터일까요?
고진달래 : 이룸이 2006-2008년간 청량리에서 자활 사업을 했었어요. 정부 지원을 받아서. 그 시절에 처음 우리한테 마음을 열어주었던 여성들은 쪽방촌의 여성들이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훨씬 접근이 용이했어요. 실제 막고 있는 '삼촌'들이 없었고, 여성들은 너무 절박했고, 조금이라도 지원해준다고 하면 좋아하셨으니까. 그리고 그러면서 여성들 한두명만 우리 편이 되면서, 그분들이 입소문을 퍼뜨려주신 거예요. 이룸에서 이거 해준단다, 해준단다, 맨 처음에 늘 우리가 싸웠던 소문은, "너네 이거 지원받으면 이름 올라간다, 기록 남는다, 실명 공개된다"였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게 아니라는 설명을 우리가 드리면서, 여성들이 입소문을 내주면서 여성들과 만나게 됐고, 유리방의 여성들은, 유리방도 아마 한두명의 여성들과 끈을 갖게 되면서 그 여성이 다른 여성들을 소개해주었던 것 같아요. 천호동 같은 경우에는, 아웃리치를 하다가 업주가 안본 틈을 타서 제 연락처를 주거나 이러거든요. 몰래 줘요. 그러면 그 여성이 필요할 때 문자를 주고 몰래 만나거나 이러면서 끈을 갖거든요. 천호동 때는 우리가 많이 써먹었던 게 '검정고시 공부하자'는 거였어요. 그게 저희 전략 중의 하나였어요. 여성들이 몰래 신청하게끔 하고, 업주 몰래 같이 시험보러 가고, 아니면 과외하고, 저희가 과외 같이 하면서, 그러면서 끈이 만들어졌던 여성들이었고. 청량리는 어떻게 그 무서운 업주 눈을 피해서 끈을 만들게 됐는지... 사실 잘 기억이 안 나네요.
터울 : 그러니까 만났던 여성분들 중에 이런 분이 있고 저런 분이 있고 이런 차원이 아니라, 너무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사실은 집결지 내의 통치라는 것이 뭔가 너무 폐쇄적이고 완결적이고, 이게 국가가 개입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그 통치 자체는 온존하고 있는 것이, 더 밝혀져야 할 특질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고진달래 : 그렇죠, 아주 조직적이죠.
유나 : 특정한 제국같은 느낌? 분명 그 안에 명확한 권력관계들이 있고, 위에 있는 사람들이 뭔가 장치들을 쓰면서 그 안에서 행동을 규제시키는데, 그 위가 누군지 모르는 거예요.
터울 : 그 위가 국가도 아닌 어떤 느낌인 거죠?
유나 : 네, 국가도 아니에요. 그런데 알 수 없는데 계속 그 힘이 발휘되고, 접근이 차단되고, 사실 미아리는 여전히 그런 것 같고요. 영등포도 사실은 마찬가지인 거죠.
고진달래 : 청량리가 그나마 자유롭다고 할 정도니까요. (웃음)
터울 : 저는 그걸 학자들이 아직 충분히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그 집결지 통치의 성격이 무언가에 대해. 그것 때문에 사실은 사람들이 집결지 성매매를 쉽게 생각하거나, 반성매매 단체가 현장에 나가있다니까 마치 당사자 여성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아무튼 들으면서 느껴지는 게, 자원이 적음과, 통치를 뚫는 것에 대한 어려움인 것 같아요.
고진달래 : 접근하는 게 너무 어렵죠.
이성애 성매매 현장에서의 남성 성구매자 : "상담 사례에서 구매자 남성들의 행태가 하나같이, 심지어 변명까지 똑같아요"
터울 :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서, 남성 구매자의 얘기를 먼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게이인권운동이나 게이커뮤니티에 있는 입장에서는, 이성애자 남성에 대해서 잘 피해 다니기도 하고, (웃음) 너무 트라우마틱해서 잊어버리고 싶은 것도 있고, 그런 것 때문에 그들에 대해 생각을 잘 안하려고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게이들한테 물어봐도, 이성애자 남성은 이제 나랑 상관없는 사람, 결혼식 때나 보는 사람, 그런 느낌인 거지, 이성애자 남성을 둘러싼 이성애 제도나 이성애 성매매가 어떤 구체적인 폭력을 낳고 있는지에 대해 간과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여쭙고자 하는데, 성매매 현장에서는 그 안에서 성구매자가 거의 남성일 거고, 포주도 남성들이 많을 것이라, 남성들에 의한 폭력들이 현장에 만연해있을 것 같아요. 그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좋겠어요.
유나 : 우선 구매자, 포주 뿐만 아니라, 성산업에 남자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사채업자, 보도(보조도우미)실장, 웨이터, 모든 이들이, 여성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남성들이에요. 그 공간에서 관리자로서 뭔가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남성이 많은 것 같아요.
고진달래 : 질문을 듣고 왜이리 멍하죠? (웃음)
유나 : 왜냐하면 우리한텐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라, 어디부터 설명해야 될지 사실 되게 난감해요. 그 공간에 있는 사람을 사실 성별로 분리해서 그렇게 인지하지 않아요. 그냥 우리에게 온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 대부분 남성일 뿐인 거고, 사실 그 위치에 여성이 있기도 해요. 업주의 위치에. 구매자는 거의 전무하지만. 구매자들은 기본적으로, 돈을 내고 섹스를 하러 온다는 것 자체가 의미하는 바가 있잖아요. 원나잇을 하러 가는 게 아닌 거죠. 내가 하고자 하는 행위를 하러 가는 거죠. 내가 너에게 화폐를 준 만큼, 내가 원하는 대로 넌 행동해라-라는 마음가짐으로 오기 때문에, 통제권이 구매자에게 있다는 것이 저는 제일 큰 부분인 것 같아요. 그 통제권의 권력관계 자체가 화폐를 쥐고 있는 자가 일단 권력에서 더 위에 있죠. 그런데 여기에 젠더 권력관계가 포개지는 거죠.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자기 육체를 어떻게 쓰느냐, 이런 것들 자체가 너무 다른 사람과 밀폐된 공간에 있으니까, 온갖 일들이 다 벌어지는 거죠.
터울 : 고통스러우시겠지만, 소개해주신다는 마음으로 구체적인 예를 좀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유나 : 학력 계층 상관없이 성구매자들이 참 치졸하구나... 여성들이 만나는 구매자들, 각자의 위치와 계층, 벌이, 사회적 지위는 모두 제각각 달랐지만, 그들 모두가 당당하게 성구매를 요구하고, 필요에 따라 부인하고, 거리낌 없이 치사했어요. '네가 10대라 양심에 걸려서 삽입은 못하겠다'며 학교로 찾아와 오럴을 시킨다거나, 초소형카메라로 불법촬영을 해놓곤 뻔뻔하게 발뺌하다가 처벌받을 것 같으니 합의를 종용하며 집을 찾아오거나, 콘돔을 끼는 척 하고 사정할 때 빼버린다거나, 온갖 짓 다 시켜놓고 사정 못했다고 돈 안 준다거나, 성매매 이후 다시 안 만나준다고 개인정보로 스토킹해서 '주변에 니가 이 일 하는걸 알리겠다' 협박하고, 성매매 과정 중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 여성에게 지금 촬영중인데 네가 이대로 가면 영상을 뿌려버리겠다 협박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참 다들 당당해요. 밖에서 마주치면 나는 인사하기도 싫은데 먼저 다가와서 ‘왜 부끄러워하니, 우리가 뭘 잘못했니’ 말 걸고... 여성들은 이들이 언제든 자신을 해코지할 거란 걸 알아요. 성매매과정에서 구매자들이 당당하게 요구하고 뻔뻔하게 추행하고 희롱했던 걸 몸이 기억하니까. 실제로 그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대응하긴 힘들고, 그렇다고 경찰에 신고하기도 어려워요. 왜냐면 경찰은 내 편이 아니야. 내가 처벌받을 수도 있고, 단속이나 함정수사 과정은 엄청 반인권적이거든요. 조사 과정에서 문제도 많아요. 핸드폰 압수하고 구매자 이름 불지 않으면 못 보내준다고 협박하는데 누가 그 사람 믿고 말하겠어요?
구매자들의 변명도 똑같아요. 예를 들며 10대 성매매 같은 경우에는 "이 애가 청소년처럼 보이지 않았다", "몰랐다", 증인신문을 재판에서 받을 때 질문이 그런 거예요. "그 때 염색을 하고 있지 않으셨습니까?" 그 쪽 변호인측이 하는 질문이 다 그런 종류의 거예요. "화장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처럼 하고 다녔던 것 아닙니까?" 끊임없이 얘가 성인으로 보였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 왜냐하면 성인 성매매는 별로 처벌이 세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식의 변명이 똑같아요. 성인 성매매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일단 기본적으로 성인 성매매의 성구매로 걸린 사람은 별로 겁을 내지 않아요. 성인 성구매 정도로 처벌받는 것에 크게 겁을 내지 않아요. 처벌이 적으니까. 형량도 적고 초범으로 걸렸으면 사실 거의 뭐가 없기 때문에, 그걸 염려하면서 엄청난 변명을 하지 않아도 돼요.
터울 : 중요한 정보네요.
유나 : 처음에 그래도 하는 얘기가 똑같죠. "합의 하에 했다", 특히 조건만남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변명하고, 업소에서 만나서도 "합의 하에 했다"고 변명하죠.
고진달래 : 집결지 같은 경우에는, 이제 청량리가 그나마 일이 편하다고 한 이유는 술을 안 팔아도 된다는 거예요. 미아리나 천호동은 술상이 들어가는데. 그러면 그게 왜 그렇게 힘들어?-라고 하면 그 안에서 쇼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무슨 알까기, 알낳기, 뭐 회치기, 폭포수 만들기, 이런 식의 쇼를 해야 되는데, 이게 너무 괴로운 일인 거죠. 술을 여성이 마셔야 되기도 하고, 쇼도 해야 되는데, 이 쇼가 집결지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룸살롱에서도 그러거든요. 안마시술소에서도 여성들이 뭔가, 단순히 성매매를 하는 게 아니라 몸을 타면서 남자들에게 어떤 쇼를 해줘야 한다거나, 이런 것들을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걸 보면, 곳곳에 그런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유나 : 그 남자들한텐 그게 놀이야. 놀이고 쾌락이야.
고진달래 :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거죠, 우리가 질문하는 건. 어떻게 이게 놀이가 될 수 있고 쾌락이 될 수 있다는 거죠.
유나 : 그것도 그렇게 공통적으로.
고진달래 : 그렇죠. 제가 이번에 상담받은 여성은, 구매자가 남자친구가 된 거예요. 그런데 구매자가 남자친구가 돼서 헤어지는 과정이 너무 힘든 거예요. 왜냐하면 협박을 계속 하는 거죠. 네가 여기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알리겠다, 그래서 여성이 "도대체 나한테 뭘 원해?"라고 물어보면, 나와서 자기랑 자달라는 거예요. 한 마디로 돈 안 주고 "꽁씹"하자는 거예요. 바라는 건 그것밖에 없는 거죠. 그 남자 머릿속에는 이 사람을 사랑해서, 좋아해서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이 사람은 내가 "꽁씹"할 수 있는 여자인 거죠. 너무 치졸해요, 이런 걸 보면.
이성애 성구매자 남성이 구성되는 방식 : "남성의 머릿속에 이 여자가 얼마짜리 여자지?-라는 게 들어가는 순간 이미 끝난 거죠"
터울 : 저는 이런 얘기를 들으면, 퀴어 성노동에서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일정한 심정적 연대라든가 이런 게 존재한다고 연구에서도 얘기하고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실제로도 그런 면이 있는데, 이성애 성매매의 구매자는 대체 왜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구려처먹었는가, 그게 너무 궁금해요.
유나 : 그래도 되니까.
고진달래 : 그래도 되니까, 맞아요.
유나 : 그래도 되니까. 사실 간보고 하는 거잖아요. 우리 뭐 할 때 다 간보고 다리 펴잖아요. 때려도 되니까 때리는 거고 함부로 해도 되니까 함부로 하는 거고.
고진달래 : 나는 여성을 얼마 주고 산다, 이걸 어릴 때부터 배우잖아요, 남자들은. 그러면 머릿속에서 이 여자가 얼마짜리 여자지?-라는 게 들어있는 순간 끝난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물며 얘는 그렇게 돈 주고 살 수 있는 여자, 없는 여자로 구분하는 것 자체도, 여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는, 도구로 보는 것의 아주 기본적인 사고방식인 것 같아요.
유나 : 유흥업소에서 노는 것 자체도, 성기결합 없이도 사실 추행하고 침범하는 놀이인 거잖아요. 이 여성은,
고진달래 : 그럴 수 있는 여성인 거죠.
유나 : 가령 스타킹은 신으면 안돼, 업소 여성들은. 언제든 침범에 대해서 웰컴이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싫어, 그런데 싫다고 거기서 박차고 나갈 수도 없어, 하지만 "골뱅이를 파려고"(성구매자가 손가락으로 성판매 여성의 질구를 헤집는 일-편집자 주) 애를 쓰지, 남자들은. 그런 상황들이 놀이이고, 그걸 누가 못 보는 데서 하는 게 아니라, 다 보고 있는 데서 다 같이 하고 있는다는 건 사실 문화인 거죠. 개개인 남성들이 언제부터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되게 학습받아온, 이것이 즐거움이 되게 된, 남성의 섹슈얼리티로 연결되어있다고밖엔 생각이 안 돼요.
터울 : 저는 이걸 보면서, 이런 현장을 많이 보면, 젠더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잖아요. 퀴어운동에서는 남성만이 남성성 갖는 게 아니고, 교차될 수 있고, 그게 어떤 그룹에선 자신을 설명해줄 되게 핵심적인 논리이기도 한데, 이 현장들을 보게 되면 너무 남성이 가해자인 거예요, 그냥. 그래서 성차별로서 젠더를 주장하는 게 너무 이해가 되는 거예요, 이 현장들을 보면. 남성이 실제로 가해를 하고, 그 가해의 양상이 다 똑같고, 그게 왜 그런지, 이성애 성구매가 어떻게 이렇게 조직돼있는지, 이것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퀴어운동, 특히 게이인권운동에선 사회적으로 억눌려온 섹슈얼리티를 말하고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게 중요할 수 있는데, 그런 섹슈얼리티의 자율로만 다른 현장을 보게 되면 그냥 성매매는 알아서 돈 주고 하는 거고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고, 이런 인상을 갖게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이성애 성매매 현장에서 너무 나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고진달래 : 맞아요. 그러는 순간 또다른 구조를 놓치는 거죠. 어느 순간 나는 내 몸 팔 테니까 너 나 돈 줘, 이런 식으로 성매매가 굴러온 게 아닌 거고, 그 전부터 어떤 구조가 있었고 이 구조는 국가가 만들어놓기도 했고, 이런 남성들의 연대 의식은 그 전부터 갖고 있는 거잖아요. 남자들이 중학교 때 모여서 빨간 비디오 보잖아요. 그러면서 어떻게 여자를 저렇게 대상화하면서 그들끼리 뭔가 공유한 것처럼,
유나 : 그건 너무나 오래된 유구한 전통인데, 포르노를 보면 싹 그런 게 해결되지 않아요? (웃음)
터울 : 저는 너무 희한한 게, 게이 포르노랑 이성애 포르노랑 참 많이 달라요. 게이 포르노는 어지간하면 둘이 좋아하고, 카메라가 탑바텀을 그래도 공평하게 잡아요. 그런데 이성애 포르노는 뭔가 끊임없이 여성만 비추든지, 여성이 괴로워하는 것들이 많이 나오든지 하더라고요. 게이 포르노 중에도 물론 상대를 괴롭히는 내용이 있긴 하겠으나, 보통은 둘이 재밌게 섹스하네-란 느낌이 드는데, 이성애 포르노를 보고 있으면 그런 느낌이 전혀 안나는 거예요. 둘이 재밌는 게 아니라 한명만 재밌는 거죠, 어지간하면.
유나 : 여성이 괴로워하는 게 여성이 즐거워하는 걸로 전환되는 내용이 포르노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그렇게 학습되는 게 당연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