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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충동구매] 보복 소비는 역시 작고 비싼 것

소비 예찬 에디터의 4월 쇼핑 후기

  • 황혜원
  • 입력 2020.05.08 17:51
  • 수정 2020.05.08 18:07

소비 예찬론자. 지금껏 소신과 취향에 맞춰 쇼핑하고 있다 믿어왔다. 하지만 소신 무엇, 그냥 ‘야-나두’ 쇼퍼였다. 좋아하는 연예인이 추천하면 사고, 단톡방 링크 보고 사고, 페이스북 광고도 놓칠까 봐 이미지로 저장해두었다가 사고. 그렇게 매월 산 것들을 정리한다.

ⓒ구찌코리아 홈페이지

지난 4월 카드값이 정말 적게 나왔다. 산 것이라곤 몇 권의 책과 온라인 클래스 수강권, 집에서 영상을 찍으며 놀았던 쿄호젤리 정도랄까. 그래서 갑자기 남아버린 월급으로 우선 영자 언니 추천 진대감에서 현금으로 한우 차돌삼합을 배불리 먹었으며, 더 기쁜 마음으로 ‘구찌 립스틱‘을 사게 됐다. 그 후로 지금까지 마구마구 택배가 오는 중이다. 억눌린 소비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현상을 ‘보복 소비(revenge spending)’라 하는데, 구찌 립스틱은 그 보복 소비의 트리거가 됐다. 4월의 소비를 정리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5월의 내가 너무 무섭다.

What. 구찌 립스틱

Who. 회사원A

”구찌잖아요. 구찌고요. 구찌니까요!”
”구찌잖아요. 구찌고요. 구찌니까요!” ⓒ(위) 회사원A 영상 캡처, (아래) 구찌 401 쓰리 와이즈 걸 루즈 아 레브르 사틴

Q. 구매 계기 ‘에르메스 립스틱‘을 사기 위해 회사원 A의 제품 후기 영상을 보고 ‘구찌‘로 갈아탔다. 이렇게 적고 보니 부자 된 것 같은 호사스러운 멘트가 아닐 수 없으나 진짜 부자는 두 개 다 거침없이 살 것이다.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지 에르메스의 이름값과 기갈나도록 예쁜 패키지 말고는 ‘립스틱‘으로써 특장점을 찾기 어려웠고, 그러던 차에 영상 말미에 나타난 ‘구찌 립스틱’에 현혹돼버렸다. 차라리 그 돈으로 구찌를 2개 사는 게 좋겠다는 아주아주 합리적인 결론에도 다다랐고.

Q. 현혹 포인트 ”구찌잖아요. 구찌고요. 구찌니까요!”라고만 하기에는 지난 두 달간 친구 생일 선물로 ‘구찌 립스틱’을 여러 개 구매했던 영향이 한, 20%는 있다. 겨울 쿨톤, 봄 웜톤 친구를 위한 립스틱을 2개씩 총 4개를 보냈는데, 색상을 잘 골랐다고 칭찬받았다. 같은 컬러라도 매트, 쉬어, 사틴 등 발림성과 특성에 따라 나누어져 에르메스보다 발색이 다양하며 껍데기뿐 아니라 내용물도 명품에 가깝다는 친구들의 평이 결정타를 날렸다.

Q. 후기 삶을 사랑하고 싶을 땐 립스틱이 바르고 싶어진다. ‘나’라는 세상에 활기와 충만감을 주고자, 3개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다. 지금 누군가 ‘X소리‘라고 소근거린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구찌 크리에이티브디렉터인 알렉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가 지향하는 것처럼 ‘립스틱은 핸드백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물건‘임에 틀림이 없고, 스르륵 밀려 올릴 때마다 ‘행복’이 올라온다. 꾸역꾸역 밀어 넣은 자기 합리화의 소관이라도 ’402 벤타인 푸시아 루즈 아 레브르 브왈’, ‘401 쓰리 와이즈 걸 루즈 아 레브르 사틴’, ‘2 노 모어 오키드 봄 아 레브르 립밤’은 뚜껑만 봐도 상반기 행복지수를 100점을 찍고도 남는다.

기본적으로 ‘여름 쿨톤 라이트‘이고 수박색의 대명사로 알려진 바비브라운 워터멜론이 주황색으로 발색 된다. 그래서 ‘빨간 립스틱‘을 고를 때 무조건 핑크빛이 섞인 컬러를 고른다. 입술이 건조해서 매트립은 패스. ‘벤타인 푸시아‘는 쨍한 핫핑크 컬러로 푸른 기가 많아 물 먹은 발색을 자랑하는 레브르 브왈 라인으로 사들였다. 뭉근하게 발려 마치 립밤처럼 느껴질 정도고, 은은하게 발색돼 레이어드 용으로 딱 맞다. 물론 쨍한 발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비추고, 개인적으론 쫀득거리는 느낌이 좋다. ‘쓰리 와이즈 걸‘은 후기를 찾아봐도 몇 개 없다. 찾는 색상이 언제나 늘 잘 안 팔리는 색상이라 ‘이것이다’ 확신했다. 역시나 분홍이 들어간 레드다. 레브르 사틴 시리즈로 발색력과 지속력이 괜찮다. 립밤의 경우 민트색에 금색 구찌 각인 때문에 샀지만, 다른 색상에 비해 향이 그나마 괜찮으며 립밤치고 색감이 있다.

Q. 총평 48,000원으로 행복을 샀다.

 

What. 단테의 신곡-지옥 편

Who. 문가영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위) 문가영 인스타그램, (아래) 민음사

Q. 구매 계기 최근 tvN ‘책 읽어 드립니다‘라는 교양 프로그램을 몰아보고 있는 중 배우 문가영이 ‘신곡’을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았다. 어쩜 예쁜 얼굴로 말도 조곤조곤하게 하는지, 뇌섹녀에 반해버렸다.

Q. 현혹 포인트 ‘지금이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문가영은 “18살에 좋아하던 영화 ‘세븐‘이 신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기에 찾아보면서 빠져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그녀가 단테를 좋아할 수 있던 배경에는 타고난 이해력도 있었겠으나 독일에서 태어나 유럽 문화권의 특수성, 종교 등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동양 문화를 흡수한 한국인 여고생이(저요) 십 수년 전에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이 최애라고 말하진 않았겠으나, 어쩔 수 없는 유럽 문화의 문턱을 ‘지금은 넘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Q. 후기 스물이던 그때는 있어 보이는 책을 읽고 싶었고, 마침 그해에 단테 신곡 완역본이 새로 출간되었다. 겨드랑이에 끼고 다닐 줄이나 알았지 솔직히 책의 오 분지 일도 이해하지 못했다. 세계사, 세계 지리를 만점 받았다며 글로벌한 인재로 착각했던 것을 깨닫기에는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거로 기억한다. 우선 지옥의 문을 닫지 못했으니 천국의 문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당연히 몰랐다. ‘죽음 편’부터 다시 시작했다.

어느 문화권에서건 ‘지옥‘을 그려내고, 지옥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역시 ‘배신 지옥‘이다. 조선 시대 불경인 ‘불설수생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신과 함께‘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지옥인데 예부터 ‘배신‘은 가장 큰 죄로 본다. 이는 성경에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 유다의 배신이었던 것과 연관이 있기도 하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누군가의 믿음을 배신하고 감추려 하며 그것이 상대의 삶을 얼마나 무너뜨리는지를 요즘 ‘부부의 세계’로 잘 보고 있지 않은가. 마음이 깨질 것처럼 아픈 배신의 감정을 자신을 깨뜨리는 거울로 벌한 신과 함께나 영원히 얼음 속에 처박혀 온몸이 찢기는 고통으로 표현한 신곡을 떠올려보니 믿음의 무게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됐다. 

Q. 총평 ′천국의 문을 열면 만나게 될까 나의 답을 진짜 답을 찾고 싶어-′ 

What. 클래스 101- 타로카드 편

Who. 김민아

'저, 내일 로또 1등 당첨될 수 있을까요?'
'저, 내일 로또 1등 당첨될 수 있을까요?' ⓒ(위) ‘주가 빛나는 밤에‘ 영상 캡처, (아래) 클래스101 온라인 타로 강의 캡처

Q. 구매 계기 JTBC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 룰루랄라가 제작하는 웹 예능인 ‘주가 빛나는 밤에‘에서 방송인 김민아가 ‘타로카드’를 배우는 모습을 보고, 타로도 온라인으로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Q. 현혹 포인트 압구정 구슬 언니를 비롯해 강남역 타로 스타 천막 앞을 시시때때로 들락거렸으며, 합정역과 이대역, 신사동의 수많은 타로 가게를 경험해온 타로 마니아. 하지만 3년 전부턴가 발길을 뚝 끊었다. 언제나 옳은 구술 언니는 여전히 보고 싶지만, 20대의 답정너는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타로 가게 찾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 남자친구 생겨요?‘, ‘일은 잘될까요?’와 같은 뻔하고도 어리석은 물음을 내뱉는 자신이 별로라는 생각이 든 순간, 타로에 쓰는 돈이 아까워졌다. 그런데 영상을 보는 순간 왜 한 번도 스스로 타로를 볼 생각을 못 했던 건지! 아까운 돈 쓸 필요 없이 원하는 대로 뒤집어 볼 수 있다!

Q. 후기 온라인으로 다양한 클래스를 들을 수 있는 ‘클래스101’ 사이트에서 구입했다. 타로 카드 관련 강의가 총 2개가 올라와 있으며, 그 중 호수쌤의 강의를 선택했다. 다른 강의는 5월에 오픈 예정이라 무료하고 시간 많던 4월엔 그러할 인내심이 전혀 없었다.

우선 카드로 미래 운세를 점쳐보고 싶다면 타로 78장의 카드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 묻고 더불로 갈 수 있을 정도로 돈이 달린 고 요망한 카드라면, 78장이 절로 마음속에 저장되었겠으나 어제 먹었던 점심 메뉴도 깜빡할 때가 많은데 처음 보는 카드를 외우기가 쉽겠는가. 그런데 걱정할 것이 없는 게 초보자도 쉽게 카드를 외울 수 있도록 ‘생일수’ 구하기를 알려줬다. 생일수는 양력과 음력 생일을 활용하는 타로 버전의 사주 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을 특정할 수 있는 숫자와 카드를 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 카드는 7번 ‘전차카드’로 경주마처럼 앞을 향해 달려가는 저돌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을 뜻한다. 이렇게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생일 수를 구하다 보면 이것만으로도 중요한 22장의 카드를 쉽게 외울 수 있다. 생일수만 구하는데도 마치 내가 타로점을 볼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은 즐거운 덤.  

Q. 총평 온라인 클래스로 코로나19를 이겨냅니다- (클래스 101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습니다. 지원이야 해주신다면♥)

Q. 구매 클래스 101,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봐요. 마인드 힐링 타로카드(월 43,900원 / 5개월)

 

What. 쿄호젤리

Who. 수많은 포도젤리 시식 영상

쭈니 오빠, 솔직히 간장 없는 묵 정도는 아이잖아요. 그찮아요.
쭈니 오빠, 솔직히 간장 없는 묵 정도는 아이잖아요. 그찮아요. ⓒ(위) '와썹맨-Wassup Man' 영상 캡처, (아래) 디담 홈페이지

Q. 구매 계기 스타킹이 똑 나가는 바람에 롭스에 들렀는데, 문 앞에 달랑달랑 ‘쿄호젤리‘가 걸려 있었다. 분명히 우리나라에는 들어올 수 없어서 일본에서 직접 사거나 ‘직구’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들었건만 눈앞에 떡하고 나타나다니 살 수밖에.

Q. 현혹 포인트 얇은 막을 바늘이나 이쑤시개로 톡 터뜨려 먹는 ‘거봉’ 맛의 젤리. 일본 내에서 유행함에 따라 지난해 이맘때쯤 쿄호 젤리 먹방 영상이 유튜버 사이에서 인기였다. 보는 사람마저 먹고 싶게 만드는 가지각색의 영상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다만 당시에는 일본 내에서 판매되는 양만도 감당할 수가 없어서 1달 반에서 2달은 기다려야 먹을 수 있었다.

Q. 후기 반백살 와썹맨은 쿄호 젤리가 아무 맛도 안 나는 심심한 묵 같다고 했었다. 묵은 간장이라도 찍어 먹지 이것은 뭐냐며, 묵 먹고 포도 먹으면 이 맛이라고 혹평을 거듭했다. 하지만 ‘내 입엔 맛있어!’  똑같은 제품이 아니라 완전히 비교는 불가하나 톡 터뜨려 먹는 재미, 한입에 호로록하고 넘어가는 부드럽고 연한 식감, 무엇보다 과즙이 흥건할 정도로 촉촉하고 단맛까지. 생각보다 중독성이 있다. 실제로 거봉을 먹을 때처럼 껍질을 벗기면 나타나는 촉촉한 속살을 보는 재미도 쏠쏠해 자꾸만 까고 싶어진다.

Q. 총평 두 봉지를 샀고, 하나 남았다.

Q. 구매 디담거봉젤리 210g(7개), 롭스(6,000원), 11번가(3,260원), 쿠팡(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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