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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09일 10시 35분 KST

죽은 아버지와 사라진 딸

[소설 '리셋' 챕터 ⑪]

huffpost

조광희 작가의 미발표 신작장편 ‘리셋’은 새로운 감각의 스릴러 소설로, 현직 서울시장의 요청을 받고 전임 시장이 연루된 비리를 파헤치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속도감 넘치는 필치로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뜻하지 않은 음모에 휘말리면서 21세기 한국사회의 다양한 민낯과 부패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매주 월, 수, 금 오전에 업데이트된다.

11

동호는 페리윙클 블루빛 블라우스를 입은 선우의 손목에서 빛나는 은빛 팔찌를 보았다. 비싸지 않은 장신구를 멋지게 활용할 줄 아는 선우였지만, 그 팔찌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 ‘어느 녀석이 사 주었을까?’ 동호는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리는 자신이 짜증스러웠다.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커피숍은 프랑스 학교 맞은편에 있어 오후 2시의 서래마을을 살펴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서양 아이들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 놀이터로 가는 말레이 여인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동호와 선우는 베란다 쪽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카페 안쪽에는 선글라스를 끼고 태평해 보이는 한국 여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자리가 멀어서 어떤 이야기인지는 들릴 듯 말 듯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단어들에 비추어보면 음식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동호가 페퍼민트 차를 마시며 말을 던졌다.

“예쁘네.”

“이 팔찌? 이제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사회화가 좀 되셨네.”

은빛 팔찌는 우동 면발 굵기의 금속이 뱀처럼 선우의 오른쪽 손목을 두 번쯤 감으며 뒤엉킨 형태였다.

“조사는 진전이 있었어?”

“좀. 수장고에 갔었어.”

“실제로 대단해?”

“밖에서 건물만 보았어. 들어가면 건조물 침입이야. 변호사는 어지간하면 법을 지키지. 그런데 깜짝 놀랄 일이 생겼어.”

“어떤?”

동호는 선우에게 모두 말하고 싶다는 마음이 일어남과 동시에 ‘이제 우리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가 되면 말해줄게. 참, 그 화랑에 근무하는 편윤미라는 큐레이터를 알아?”

“들어본 것 같은데. 혹시 검은 단발머리에 키가 큰 여자 아닌가? 왜?”

“부동산 개발 회사하고 화랑을 연결하는 고리인 것 같아서. 뭘 좀 알아내려고 한 번 만났는데 연락이 두절됐어. 찾아도 협조할지는 모르겠지만.”

“수장고에 가봤다는 그 화백한테 물어볼까? 바로 전화해볼게. 잠깐만.”

무슨 일이든 즉시 실행하는 선우의 성격은 여전했다. 그 점에서 둘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선우는 베란다 끝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며 통화를 했다. 동호는 길 건너 편의점을 바라보았다. 한 남학생이 편의점에서 쏜살같이 나오더니 도로를 무단 횡단하여 골목으로 사라졌다. 뒤를 이어 청바지와 금빛 별이 달린 검은 티셔츠를 입은 여학생이 나오더니 남학생이 뛰어간 골목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서 있다가 도로를 따라 서래마을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그 사이에 통화를 끝낸 선우는 담배를 마저 피우고 있었다. 담배를 끈 그녀가 자리로 돌아왔다.

“놀랄 이야기네.”

“왜?”

“이분이 수장고에 갔을 때 편윤미가 안내를 했대. 잘 기억하고 있더라고. 그 부동산 개발 회사 이름이 뭐였지?”

“부학개발.”

“그래, 그 회사 회장하고 사귄 모양이던데.”

“정말? 그 회장은 싱글인가?”

“그건 모르겠고.”

“그럼 미술관에는 회장 덕에 들어온 건가?”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일은 잘했대. 태도도 좋고. 그리고 그 회장도 예사 사람은 아니라고. 화백께서 편윤미 씨가 안내를 잘해줘서 밥을 사준다고 만났대. 물론 ‘어떻게 한번 해볼까’ 해서 만났겠지. 같이 점심을 먹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오더니 편윤미 씨 손목을 잡고 질질 끌고 가더래. 깜짝 놀라서 그 남자와 시비했대. 그런데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무시무시해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고. 나중에 알아보니 그 회장이었다고. 편윤미한테서 얼마 있다가 사과 문자가 왔는데, 심장이 떨려서 답장도 못 했다고. 고급 정보를 줬으니 커피값은 내는 거지?”

카페에서 나온 두 사람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동호는 142번 버스를 탔다. 버스가 한남대교를 건널 때 전화가 왔다. 연 박사였다.

 

“강 변호사님, 편 전무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기사는 이미 보셨죠?”

“직원들이 알려줘서 여기로 오는 택시 안에서 읽었습니다. 급히 저를 찾은 것은 그 때문이죠?”

“아닙니다. 그건 그거고. 아까 언론 체크하는 팀에서 어떤 기사를 보고 제게 링크를 보내주었는데, 이십 분도 채 안 되어서 기사가 사라졌어요. 팀에서 바로 캡처해두었으니까 읽어보세요.”

동호는 연 박사가 텔레그램으로 보내준 인터넷 매체의 캡처 화면들을 살펴보았다. 그 사이 연 박사는 커피를 끓이기 시작했다. 동호는 소파에 앉아 등을 뒤로 젖히고 기사를 읽었다.

 

서울시가 민상철 전임 시장 재직 당시에 있었던 B개발의 유통복합단지 건설과 관련한 인허가 문제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복수의 서울시 관계자가 밝혔다. 이미 감사원 감사도 있었던 사안에 대해 다시 조사한다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정치권에서는 차기 대선 구도와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만일 인허가 과정에서 민상철 전 시장이나 그 측근이 관여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 치명적일 수 있다. 아예 출마를 못 하거나 하더라도 약세를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낙마를 하거나 판세가 위축되면 그 반사이익은 현 시장에게 돌아간다. 개혁 성향의 고 시장에게 가장 버거운 상대가 전임 시장인 민상철 의원인데, 그가 위기에 처하면 고 시장으로서는 해볼 만한 게임이 된다.

그러나 건설업계에서는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당시 B개발이 민 전 시장 라인으로 구성된 인허가 업무 담당자와 인허가 담당 위원회만 믿고 너무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시각이다. 감사원 감사에서는 관련자들이 입을 맞추어서 문제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는데, 자금 흐름까지 들여다보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 감사원 관계자의 전언이다.

한편 B개발은 몇 달 전 출소한 전 임원 P에 대하여 큰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 임원 P가 서울시 및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 B개발에 대하여 불만을 표출하면서 비리 증거를 제공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과연 서울시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SergioProvilskyi via Getty Images

이 기사 옆에는 <부학개발 장 회장은 누구인가>라는 박스 기사가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부터 사업을 시작하여 수천억 대 재산을 모았으나 여전히 베일에 싸인 인물이라는 소개와 함께 그의 남다른 인생역정을 적어놓았다.

“기자가 무슨 냄새를 맡은 모양이군요. 입이 가벼운 서울시 관계자는 누굴까요?”

동호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연 박사는 커피 잔을 입에서 뗐다.

“짚이는 사람이 있지만, 기자들에게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서 안달인 사람들이야 언제나 있으니까요. 하지만 단속을 좀 해야겠네요. 이 건이야 그렇다 치고, 중요한 국면에서 저렇게 입이 가벼우면 일을 그르치죠.”

“기자의 의도가 뭘까요? 기사만으로는 사실 명확한 내용은 거의 없는데.”

“부학개발에 경고를 보내는 것이겠죠. ‘우리는 뭔가 알고 있다. 우리 입을 막으려면 광고를 좀 실어라’ 하는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큰 기사를 준비하다가 암초에 걸려서 일단 포문을 연 것일 수도 있고. 예를 들면 편 전무를 만나서 취재하다가 갑자기 그 사람이 사라져서 곤혹스러운 상황이라든가.”

“제가 그 기자를 한번 만나보면 어떨까요?”

“글쎄요. 좀 음흉한 놈이라서 어떨지 모르겠네요. 자칫하면 도리어 취재를 당할 텐데……. 하기야 이미 서울시가 움직인다는 것이 드러난 마당이니. 강 변호사님이 이 업무에 관여하는 자문 변호사인데 기사 때문에 궁금해한다고 말해볼게요. 오프 더 레코드로 둘이 한번 만나보라는 취지로 말해보고, 만일 만나겠다고 하면 연락처를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전화벨이 울렸다. 동호는 의자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창밖으로 남산타워가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프런트입니다. 유철구라는 손님이 오셨는데, 아시는지요?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누구신지 여쭈어보았습니다.”

“올려 보내세요.”

동호는 전화를 끊고 책상 위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모아서 옷장 안에 넣었다. 어둡게 해두었던 조명을 밝히고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현관 벨이 울렸다. 문을 열자 뿔테 안경을 쓴 기자가 배낭을 들고 서 있었다. 동호는 방 안을 기웃거리는 듯한 그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자를 소파로 안내하고 음료수를 권했다. 기자가 ‘팩트 체커’라는 회사명이 적힌 명함을 내밀었고 동호는 지금은 명함이 없다며 그에게 양해를 구했다.

“혹시 아이스커피가 있나요? 캔 음료도 좋습니다만.”

“있습니다. 밤 시간이라 일부러 다른 것을 드렸습니다.”

동호는 캔 커피를 꺼냈다.

“사무실은 아닌 것 같고, 임시 거처네요.”

“미국에서 체류하던 차에 잠시 들어와 있다가 갑자기 이 업무를 맡고 있는 중입니다.”

“이 업무 때문에 들어온 것은 아니시고요? 한때 고 시장님의 선거 캠프에 계셨더라고요. 중책은 아니었고.”

“형님 때문에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그런 인연이 있다 보니 요청을 받고 수락했습니다. 마침 귀국해 처리할 일들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일을 보는 중입니다.”

기자는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렇게 쉽게 설명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기사에 썼다시피 결국은 대선으로 이어지는 사안이고. 민 의원과 회장은 지금 초비상일 텐데.”

동호는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며 기자를 쳐다보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캠프에서 상당히 공을 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신뢰가 있었으니 이런 건을 맡겼겠죠. 저부터 솔직히 말할 테니 딜 합시다. 저는 편 전무랑 만났습니다. 부학개발과 민상철 의원 사이에 정치자금이 수수되고 있다고 장담하더군요. 증거가 있냐고 하니까, 곧 넘기겠다고 했어요. ‘왜 그런 행동을 하느냐, 회장이 버렸냐?’라고 물으니까 개새끼라더군요. 가만히 안 두겠다면서. 감옥까지 갔다 왔는데 푸대접을 하니 앙심을 품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회장이 협박성 협상에 응할 사람도 아니고. 그러다가 곧 자료를 건네주겠다던 사람이 연락이 두절됐어요. 전화기는 꺼져 있고. 어제 호기심 많은 등산객이 등산로 옆에 땅을 파서 뭔가를 묻은 흔적이 있다며 신고를 했죠. 경찰이 신고된 장소를 파본 끝에 시체를 발견했고. 오늘 뉴스 들으셨죠?”

“들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만나거나 연락을 주고받지는 못했습니다.”

기자는 캔 커피를 홀짝거리며 말을 던졌다.

“사는 게 너무 힘듭니다.”

동호는 ‘이게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인가’ 하고 기자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사십 대 후반의 그는 몹시 쪼들려 보였다. 소파에 던져둔 검은색 배낭은 인터넷에서 최저가로 구매한 상품처럼 보였다. 티셔츠와 면바지도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현관에 벗어둔 운동화도 보나마나 마찬가지리라. 옷차림에 단돈 만 원 더 쓰는 게 부담스러운 기자의 삶이란 얼마나 위태로운가.

“지금은 사장과 저 둘뿐인 인터넷 매체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갑자기 큰 광고가 들어와서 몇 달 지낼 만할 때도 있지만, 사는 게 구차해서 너무 싫습니다. 일간지에 다닐 때 운동권들하고 어울리지 않았어야 하는데……. 노사협상이 타결돼 파업을 끝낼 때 보니까, 그자들은 회사랑 화기애애한 분위기더군요. 그런데 회사가 저는 절대 용서 못 한다는 겁니다. 신문사 회장한테 막말을 했다고. 그대로 남아 있을 수가 없더군요. 사표를 던지고 나왔는데, 한국 사회에서 전직 기자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습니까? 제가 엄청난 글쟁이도 아니고. 이 년 만에 이혼까지 당하고 나니 남는 것이라고는 오기뿐이더군요. 우연히 팩트 체커 사장을 만났어요. 혼자서 운영하는 매체니까 자기가 사장도 하고 기자도 하고 다 하고 있었죠. 전에는‘ 저런 매체는 왜 안 없어지나’ 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저와 비슷한 길을 먼저 겪은 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었습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무어라도 해야 하는데, 배운 것이라고는 기자 노릇뿐인 인생. 변호사님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라이선스 있는 분들은 절대로 모릅니다. 그 동네도 요즘은 어렵다지만, 맨주먹뿐인 것과 자격증이라도 있는 건 다르죠. 그날 사장과 네 가지만 합의했습니다. 첫째, 죽지 말자. 둘째, 센 놈만 팬다. 셋째, 허위 기사는 쓰지 않는다. 넷째, 주는 돈은 받자. 그렇게 살아온 것이 오 년이 되었습니다. 아직 행색이 초라하지만, 아무튼 살아남았습니다. 두 아이의 양육비를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습니다.”

동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자신에게 바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기자에게 위협감을 느꼈다. ‘취재원을 긴장시키면서 협조를 구하는 나름의 방식일까?’ 둘 사이에 삼십 초쯤 침묵이 흘렀다.

“유 기자님, 혹시 미래화랑을 아시나요?”

“잘 모릅니다만…….”

“한번 취재해보세요.”

“더 이야기를 해주시면 어떨지.”

“부학개발과 자금으로 엮여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이상 말씀드리기는 어렵네요. 저도 조사 중이라서.”

“알겠습니다. 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이만 일어서지요.”

“제게도 뭐 하나는 주셨으면 좋겠는데.”

동호의 말에 기자는 일어나다 말고 다시 앉으며 말했다.

“몰타라는 나라 아시나요?”

“기사단으로 유명한 나라말인가요?”

“네. <말타의 매>라는 영화에 나오는 말타가 바로 몰타지요. 강아지 중에서 몰티즈라는 놈들 있죠? 그놈들 고향이 몰타랍니다. 조세피난처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돈이 거기서 세탁되고 있다는 정황이 있나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전에 편 전무를 만났을 때 뜬금없이 몰타에 가보았느냐고 묻더군요. 제가 가보았을 리가 없죠. ‘말타의 매’니, 몰티즈니 하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곧 다른 화제로 돌렸는데, 넌지시 단서를 준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민상철 의원의 측근하고 밥을 먹다가 잠깐 여행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일부러 유도했죠. 자세히 이야기는 안 하는데, 몰타를 가봤더군요. 드문 일이지요. 기사 검색을 해보니 민 전 시장이 재직 중에 이탈리아를 몇 번 갔는데, 시칠리아에도 간 적이 있더군요. 시칠리아는 몰타에서 가장 가까운 섬입니다. 그때 몰타도 갔겠지요. 아무튼 저도 계속 취재 중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만난 적 없는 겁니다. 만났어도 여행 이야기만 한 겁니다.”

기자가 코웃음을 치며 일어섰다. 동호는 그를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했다.

 

정미는 편윤미의 페이스북을 계속 살펴보았다.

“사무장님, 못 찾겠어요. 소재를 알 만한 단서가 딱히 보이지는 않네요.”

“집 근처 건물 같은 거 나온 사진 없어? 무심코 자기 동네 카페를 자랑한 거라든가?”

“없어요. 말수가 많지 않아요. 자기 방 사진이 하나 있는데, 창문 밖으로 무슨 빌딩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기태는 일어나서 정미의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책이 펼쳐진 심플한 책상 위에 대만제 트위스비 만년필과 아이패드 따위가 놓여 있었다. 편윤미가 어느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찍어서 올린 사진이었다.

“책상 옆의 의자가 근사해 보이는데. 좀 더 키워봐.”

기태는 의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장미색의 리클라이너 의자였다.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 정미가 무서운 속도로 이미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노르웨이 ‘피오르’라는 브랜드의 제품이었다.

 

“이 리클라이너는 매장에 없네요.”

정미는 카탈로그 속 장미색 리클라이너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매니저가 카탈로그를 들여다보았다.

“창고에 하나 있는데, 그건 네이비블루입니다. 주문하면 이삼일 내로 가져다드릴 수 있습니다.”

“장미색은 없나요?”

“그건 본사에 주문해야 하는데, 그러면 삼 주 정도 걸립니다. 네이비블루를 조금 싸게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얼마나?”

“이십만 원 할인해서 백오십만 원에 드리겠습니다.”

“눈으로 직접 색깔을 보면 좋겠는데……. 사실 장미색은 한 번 봤어요. 제 친구 집에 갔더니 있더라고요.”

“저희가 작년 초인가 어느 손님에게 배달해드린 적이 있는데……. 본사와 정식으로 독점계약을 맺고 구입하는 곳은 저희뿐입니다. 맘대로 수입해서 비싼 값에 파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곳은 애프터서비스에 문제가 있나요?”

“그럼요. 저희는 국산 제품처럼 확실하게 서비스합니다.”

매니저는 의자에 앉더니 컴퓨터를 두드렸다.

“혹시 친구 분이 방배동 푸르지오에 사시나요?”

정미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네. 편윤미 맞네요.”

“저도 기억납니다. 친구 분이 미인이시던데.”

“그래요? 저하고는 취향이 좀 다르시네요. 어차피 사면 여기서 사야 할 텐데, 장미색으로 할지 네이비블루로 할지 정하고 다시 들를게요.”

“다른 것들도 좀 더 보고 가세요. 그리고 제가 쿠션도 서비스로 드릴 수 있어요.”

정미는 매장을 나오며 기태에게 편윤미의 아파트 주소를 메시지로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