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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30일 10시 00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3월 30일 10시 00분 KST

아내 살해 혐의로 교도소에 간 친구를 만나다

[소설 '리셋' 챕터 7]

huffpost

조광희 작가의 미발표 신작장편 ‘리셋’은 새로운 감각의 스릴러 소설로, 현직 서울시장의 요청을 받고 전임 시장이 연루된 비리를 파헤치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속도감 넘치는 필치로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뜻하지 않은 음모에 휘말리면서 한국사회의 민낯과 부패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14일부터 매주 월, 수, 금 오전에 업데이트된다.

7

동호에게 교정 시설들은 언제나 생경했다. 예산을 쓰고 싶지 않은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범죄자들의 인권도 보호하고 있다고 생색내려는 국가의 의도가 드러났다. 동호는 낡은 의자에 앉아 승철을 기다렸다.

동호는 미국에서도 승철과 한 달에 한 번 꼴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동호는 편지를 받으면 며칠 안에 답장을 보냈으나, 승철은 언제나 한 달 가까이 지날 무렵에야 편지를 보냈다. 갇혀 있는 사람이니만큼 더 열심히 편지를 할 것 같은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동호는 그것이 그의 자존심을 드러내는 한편, 친구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승철의 마음이 오히려 동호를 불편하게 했다.

승철이 면회실로 들어왔다. 승철은 걸어오면서 천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규칙적인 생활 덕분인지 예상보다 말쑥한 모습이었다.

“건강해 보이네.”

“실제로 건강해. 너는 살이 빠진 것 같네.”

“좀 가벼워졌어. 서울에서보다 술 마실 일이 없어서 그런가 봐. 뭐, 들어오자마자 연이어 마시고 있지만.”

“어떻게 예고도 없이 들어왔어? 어머니는 건강하셔?”

“건강하시지. 스위스에 계신다고 말했던가?”

“스위스 사람과 재혼하셨잖아. 너 잠깐 결혼식 다녀온다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 무척 아름다운 호수가 있는 곳이었다고.”

“스위스에 멋진 호수야 많지. 루체른에 살고 계셔.”

“맞아. 참, 이번에는 그냥 쉬러 온 거야?”

“아니, 무슨 일이 하나 있기는 해. 별일은 아니고.”

FOTOKITA via Getty Images

동호는 승철의 손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의 손을 자세히 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짧고 강인해 보이는 손가락들이 거무튀튀한 피부로 덮여 있었다. 저 손이 원래 짙은 색이었는지, 교도소 내의 노역이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오른손 손등에 남아 있는 혜성 모양의 상처는 동호도 알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학교 운동장에서 함께 오토바이를 배운 적이 있었다. 승철은 동호를 피하려다가 농구대를 들이받으면서 넘어졌다. 다행히 손등을 심하게 긁힌 것 외에 별다른 상처는 없었다. 일주일 후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고, 두 사람은 예정대로 교토로 여행을 떠났다. 교토 숙소 근처 라멘집에서 소바를 먹고 있을 때, 승철은 손등을 붕대로 감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또 다른 한국인 학생들이 우동을 먹고 있었다. 그중 한 여학생이 붕대를 감은 손으로 젓가락이 아닌 숟가락을 들고 소바를 떠먹는 승철을 보며 웃었다. 승철은 그 여학생에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하고 말했다. 몇 년 후에 그들은 결혼했다. 그리고 14년 후 그 여학생이 죽었고, 법원은 승철이 그녀를 죽인 것으로 인정했다.

몇 년간의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승철은 지혜롭지 못했고, 그녀는 고집이 세고 감정 조절에 문제가 있었다. 동호는 둘 중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지, 누가 더 많은 잘못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가끔 승철이 푸념을 했으나 동호는 그것이 승철이 생각하는 자기만의 서사일 뿐이라고 여겼다. 이혼을 막기 위한 마지막 방편으로 승철은 청평의 펜션에 놀러 가자고 아내에게 제안했다. 그리고 이틀째 밤, 그녀는 자상과 타박상을 입은 채 죽었다. 그 시각 승철은 지인인 펜션 주인과 계곡 아래의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심야에 돌아온 그는 아내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은 승철이 술을 마시던 중에 펜션으로 돌아와 아내를 살해하고 다시 식당으로 가서 술을 마셨다고 결론지었다.

“지난달에는 시원이가 왔었어. 그동안은 오고 싶다는 것을 말렸는데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어서. 보는 게 정말 힘들었는데, 의외로 딸이 늠름해서 다행이었어.”

“안 그래도 오늘 찾아가기로 했어.”

“여러 가지로 고마워.”

“뭐가?”

“생활비 보내주는 것도 알고 있어.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고.”

“적은 돈이야. 신경 쓰지 마. 그냥 가끔 시원이랑 외식이나 하시라고 보내드리는 거네.”

“아무튼 고맙네.”

동호는 자신이 승철의 처지라면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아내가 죽었는데 누명을 쓰고 수감되어 있다면 세상을 향한 무한한 분노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승철은 동호가 미국으로 떠날 무렵에는 모든 것을 포기했는지 차라리 평온해 보였다. 동호는 그 평온함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한 달 정도 한국에 있을 거야. 더 길어질 수도 있고. 그사이에 몇 번 더 들를게. 시원이나 어머니께 전할 말이 있어?”

“시원이가 학교에서 무슨 우울한 일이 있었다는데, 뭔 일인지 물어보고 토닥거려 줘. 난 잘 있다고 전해주고. 또 보자.”

승철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며 걸어가는 동호를 계속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은 승철이었는데, 오히려 그가 동호를 위로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다. 동호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sinsy via Getty Images

안국역에서 감사원으로 가는 길에 고개가 있다. 동호는 고개가 시작되기 직전에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은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로 이어졌다. 중간에 오르막길이 둘로 나뉘는 곳에는 유난히 커다란 저택이 있었고 그곳을 지키는 경비원들도 몇 명 눈에 띄었다. 동호는 그들을 지나쳐서 계속 오르막길을 걸었다. 오르막길의 끝에 작은 한옥이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구멍가게가 있었다. 문이 닫힌 구멍가게 앞에 흰색 털과 갈색 털이 섞인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 한옥의 문이 열리면서 한 소녀가 걸어 나왔다. 시원이었다. 동호가 부르려는 찰나, 시원이는 고양이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아이가 앞에 서자 고양이는 발을 내밀었다. 고양이의 발을 만지작거리던 시원이가 동호의 기척을 느꼈는지 그제야 바라보고는 조그맣게 웃었다.

동호는 마루에 걸터앉아 집으로 따라 들어온 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는 대문 옆에 있는 장독에 올라 앉아 있었다. 승철의 어머니가 참외를 쟁반에 담아 포크와 함께 내놓았다. 시원이는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고르는 게 오래 걸리는 모양이었다. 승철의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학교에서 잘 지내는 편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학교 가는 걸 힘들어하길래 꼬치꼬치 캐물었지. 처음에는 말을 안 하더라고. 그래서 학교를 가봤지. 그랬더니 선생이 묻는 거야. 부모님은 어떻게 됐느냐고. 그래도 있는 대로 다 말할 수 있나. 엄마는 일찍 세상을 떴고 아빠는 돈 벌러 외국에 가 있다고 했지. 그런데 안 믿는 표정이더라고. 아니, 뭔가 아는 눈치야. 누군가에게 들었겠지. 그렇다고 설마 선생이 애들에게 말하지는 않았겠지. 그런데 선생들끼리 얘기하는 걸 누가 들었던가. 특별히 못되게 굴지는 않는다지만 애들 눈초리가 다른 걸 시원이도 안 거지. 견디기 힘든가 봐. 어린 마음에 어떻겠어. 그래도 저렇게 반듯하니 다행이지. 전학을 시켜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러려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동호는 아무 말 없이 참외를 포크로 찔렀다. 참외의 단맛조차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복잡한 마음과는 별개로 혀를 감싸고 도는 단맛이 어딘가 낯설었다. 동호는 포크를 내려놓고 고양이를 응시했다. 고양이는 다른 장독으로 조용히 도약했다. 오후의 햇살이 고양이털에 반사됐다. 대문 위로는 뭉게구름이 강렬한 흰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찬란한 가운데 동호의 마음만 들끓고 있었다. 그때, 시원이가 손에 과자를 들고 들어왔다.

“아저씨, 아빠 만나고 오셨어요?”

“음, 집에 오기 전에 만나고 왔어. 건강해 보이시더라. 아빠 만나러 갔었다면서?”

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잘 이해가 안 돼요. 죄가 없는데 어떻게 감옥에 있는 건지. 밤에 가끔 생각해봐요. 혹시 아빠한테 죄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내가 아는 아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아빠는 죄가 없다. 그런데 아빠는 감옥에 있다. 감옥에 있는 사람은 죄를 지은 사람이다. 그런데 아빠는 죄가 없다. 죄가 없는 사람은 감옥에 가지 않는다. 그런데 아빠는 감옥에 있다. 이러다 보면 도저히 생각이 끝나질 않아요. 그 생각에서 맴맴 돌다가 잠들어버려요.”

동호는 시원의 손을 잡았다.

“시원이도 뭔가 착각할 때 있지?”

“네.”

“어른들도 너처럼 착각할 때가 있어. 열심히 생각했는데, 잘못된 생각에 이르는 거야. 아빠 재판을 맡은 사람들도 열심히 생각했지만 내용이 너무 복잡해서 헷갈린 거야. 그리고 그 사람들은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잖아? 그래서 일단 죄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지. 그런데 ‘죄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잖아? 그래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데, 그때 착오를 일으켜 엉뚱한 결론을 내린 거야.”

“그럼 정말 나쁜 사람 아니에요? 죄 없는 아빠를 감옥에 가뒀으니까 그 사람들도 감옥에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하지만 어리석다고 감옥에 보내지는 않아.”

시원은 그 부분에서 이해가 잘 안 되는지 화난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는 이제 장독에서 내려와 어슬렁거리며 동호 쪽으로 다가왔다. 그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는 걸음을 멈추고 동호를 바라보았다. 그 무표정함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대문 위 뭉게구름은 담 너머로 흘러가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승철의 어머니는 마루에 앉아 대화를 듣다가 눈물을 글썽였고, 동호는 뭐라 더 말하고 싶었으나 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