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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를 본 선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소설 '리셋' 챕터 6]

  • 조광희
  • 입력 2018.03.28 10:22
  • 수정 2018.03.30 10:04
ⓒhuffpost

조광희 작가의 미발표 신작장편 ‘리셋’은 새로운 감각의 스릴러 소설로, 현직 서울시장의 요청을 받고 전임 시장이 연루된 비리를 파헤치는 변호사의 이야기를 속도감 넘치는 필치로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뜻하지 않은 음모에 휘말리면서 한국사회의 민낯과 부패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14일부터 매주 월, 수, 금 오전에 업데이트된다.

6

인사동 막걸릿집은 평소와 달리 한산했다. 이 년 만에 찾아왔지만, 이전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동호는 ‘벽에 붙은 새로운 포스터 외에 무엇이 달라졌을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메뉴판을 보니 골뱅이 안주가 새로 추가되었다. 그는 막걸리 반 주전자와 두부김치를 시켰다. 서 대표에게서 15분 후에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왔다. 동호는 막걸리를 잔에 부어서 반쯤 들이켰다. 시큼하면서도 시원했다. 미국에서는 막걸리를 한 잔도 마시지 못했다. 어느 연극배우가 운영하다가 넘긴 이 막걸릿집은 인사동에 드나들며 문화나 예술을 업으로 하는 취객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출입하다 보면, 취객들끼리 인사하거나 합석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동호는 이 주점 단골인 서 대표에게 이끌려 몇 차례 왔었다. 벽에는 연극이나 영화 포스터들, 천상병 시인의 시 등이 두서없이 붙어 있었다. 동호는 그중에서 <아비정전>의 프랑스 개봉 당시 포스터를 좋아했다. 막걸리를 마시다 무료해지면 그 포스터 속 유가령을 무심히 살펴보고는 했다.

“어이!”

동호가 입구 쪽을 보았다. 언제나처럼 털털한 옷차림의 서 대표는 다른 테이블에 앉은 지인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를 자기 잔에 가득 부었다.

“언제 귀국했다고 했지? 여전하네.”

“며칠 됐어요.”

“몇 년을 못 만났는데도 마치 지난주에 본 것 같네.”

두 사람은 선우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영화 제작자인 서 대표가 어느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케치 몇 점을 그려달라고 선우에게 부탁했고, 그녀는 동호에세 그 계약서 검토를 부탁했다. 복잡할 것 없는 계약이었는데, 그 때문에 두세 번 서 대표를 만났다. 서 대표가 다섯 살 위였으나 마음에 맞는 점이 있어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동호가 미국에 있는 사이, 서 대표는 승승장구했다. 두 편의 영화를 개봉했는데, 한 편은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다른 한 편은 10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서 대표가 옥수동에서 압구정동으로 이사하고 차를 포르쉐로 바꿨다는 전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동호가 보기에 훨씬 활기찬 모습이기는 하지만, 원래의 소탈하면서도 친절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이 이야기 한번 들어봐.”

서 대표는 양손을 비비는 습관적인 동작을 하면서 말을 꺼냈다.

“해질녘 교외의 숲에서 어느 젊은 여자가 쫓기고 있어. 여자는 달리다가 가방도 팽개치고, 운동화가 벗겨져도 다시 신지도 못하고 그대로 도망쳐. 더 이상 뒤쫓아 오는 기색이 없자 여자는 어느 나무 밑에 주저앉아 겨우 숨을 돌리지. 숲에서 새 몇 마리가 날아오르는데, 이때 조용한 발소리와 함께 솔베이지의 노래가 휘파람 소리로 들리는 거야. 여자는 사색이 된 채 눈을 감으며 흐느껴. 그리고 다시 무더운 여름으로 장면이 바뀌어. 다른 젊은 여자가 어수선한 방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어. 여자는 메신저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비용은?’

‘1억 원. 그러나 당신이 낼 필요 없음.’

‘그럼 어떻게 하죠?’

‘다시 그놈들에게 고리로 빌려서 내게 보내면 됨.’

‘제가 뭘 준비해야 할지?’

‘그건 차차 알려주겠음. 지금은 당신의 삶이 억울하다는 것, 열렬히 새로 태어나고 싶다는 것만 내게 증명하면 됨.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함.’

‘왜 이런 일을 하시지요?’

다시 장면이 바뀌면, 목포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야. 어둠이 짙어 가는데 갑자기 비명이 들리지. 한 여자가 자기 친구가 물에 몸을 던졌다고 아우성이지. 승객들은 웅성거리고 선원이 달려오는 거야. 배가 멈추고, 다들 검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지.

다시 장면이 바뀌면서 이제는 난지한강공원이야. 한 여자가 벤치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고 있어. 무척 편안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이때 한 남자가 선글라스를 끼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벤치 앞에서 멈춰. 남자는 자전거를 벤치 옆 나무에 기대어 놓고 물통의 물을 마시지. 여자는 긴가민가하고. 여자를 가만히 보면 얼굴이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아까 키보드를 두드리던 여자야. 이때 남자가 여자에게 말하는 거야.

‘만족하십니까?’

여자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말하지.

‘정말 고맙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악수를 청한 후, 자전거에 몸을 싣고 매우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가지. 여자는 사라져가는 자전거를 계속 바라보고.”

서 대표가 동호의 표정을 살폈다.

“어때?”

동호가 물었다.

“혹시, 괴로운 인생을 새롭게 살게 해주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인가요?”

“그렇지!”

“일단 시작은 좋네요. 그런데 주인공은 왜 그런 일을 하죠? 혹시 처음에 쫓기던 사람이 가족인가요?”

“굿.”

“누나나 여동생이겠죠? 제목은?”

“리셋이 어떨까 하는 중이야.”

“인생을 리셋한다는 뜻? 나쁘지 않네요.”

“시나리오 나오면 정재한테 우선 줘보려고.”

‘리셋?’ 동호는 자신의 마음을 가늠해보았다. ‘나도 리셋이 필요할까?’ 삶에서 쓰라린 부분이 없지 않으나, 아예 리셋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한 부분이라도 지우고 싶은 것이 있을까? 굳이 뭘. 아님 승철이 재판을 맡은 거? 하지만 그 부분을 지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동호는 막걸리를 다시 들이키는 그 짧은 순간 동안 삶을 스캔해보았다. 쓰라린 시간들은 어디로 흩어졌는가. 동호가 문득 벽을 바라보자 유가령은 무엇인지 짐작되지 않는 생각에 사로잡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서 대표는 두 편은 상업영화, 한 편은 예술영화, 다시 두 편은 상업영화, 다시 한 편은 예술영화, 이런 순서로 일흔 살까지 영화를 만들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영화 제작에 대해 잘 모르는 동호는 그것이 가능한 이야기인지, 가능하다면 쉬운 일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런 삶은 제법 괜찮겠지.’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서 대표가 동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까 오면서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그 앞 커피빈에 선우 씨 있더라. 원래 거기 잘 가잖아. 손 흔들어주고 길을 건넜는데, 지금 보니 문자가 와 있네, 어디 있냐고. 답을 하면 보자고 할 수도 있는데 어때, 괜찮겠어? 내가 사실 정확히 물은 적은 없는데, 둘이 연락을 전혀 안 하나? 오라고 하면 부담스러울까? 독일인 남자 친구가 생긴 것은 알고 있지? 몰랐나?”

“연락은 안 하지만 소식은 들었어요. 나랑 있다고 하면 알아서 오거나, 안 오거나 하지 않을까요? 나는 봐도 괜찮아요.”

동호는 마음속으로 반문했다. ‘정말 괜찮을까?’ 동호가 생각에 잠긴 동안 서 대표가 메시지를 보냈다.

“30분 후에 온다는데.”

“네.”

ⓒ아비정전

동호는 다시 유가령의 묘한 표정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열려 있는 좁은 마당에 비가 투닥투닥 내리기 시작했다. 서 대표는 동호에게 선우가 여전히 분투 중이나 몇몇 미술관에서 그녀에 작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알려주었다. 동호는 ‘현대미술은 철학’이라는 선우의 말을 기억해냈다. 여러 차례 듣다 보니 가까스로 알아듣기는 했지만, 오늘날 예술 분야 중 왜 유독 미술이 더 철학적으로 변했는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풍부한 표현력을 가졌으되 실용성을 추구하지 않는 엘리트 예술은 그렇게 귀결되는 걸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이 남았다.

비가 거세졌다가 다시 잦아들 무렵, 주막 문이 열렸다. 선우는 사람을 처음 바라볼 때 늘 고개를 오른편으로 조금 기울이면서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걸어오면서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동호를 쳐다보았다. 선우는 말없이 둥근 철제 테이블에 앉았다. 30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동호는 다시 유가령을 바라보았고 서 대표는 불편한 듯 몸을 뒤척였다.

“분위기 심상치 않구먼. 나는 한 잔만 더 마시고 갈게.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할 것 같아.”

동호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려 했으나 선우의 무표정을 보고 말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서 대표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둘이 지난 이야기 좀 하셔. 나는 안 그래도 이재용 감독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

무표정한 얼굴로 선우는 단호하게 끝맺었다.

“서 대표님, 제가 또 연락드릴게요.”

서 대표가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사라질 때까지 동호와 선우는 말을 나누지 못했다. 그사이 동호는 막걸리를 한 잔 더 마셨고 종업원이 가져다준 선우의 잔에 막걸리를 가득 부었다. 선우는 목이 말랐던지 단숨에 잔을 비우고는 입을 열었다.

“다른 곳으로 갈까?”

“생각나는 데 있어?”

“늘 가던 서래마을 카페는 너무 멀고. 참, 지금 어디에 묵어?”

“남산 밑에 있어.”

“그럼, 이태원으로 갈까?”

동호는 히레사케 잔을 만지작거리며 비가 그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팔에 온통 한글 문신을 한 서양인이 하이힐을 신은 여자와 팔짱을 끼고 지나갔다. 선우가 묵혀둔 말을 꺼냈다.

“서래마을 로바타야키집에서 헤어진 이후에 왜 연락 안 했어? 그날따라 분위기는 무거웠고 이야기도 자꾸 엇나갔었지. 그래도 나는 그날이 마지막일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 맞아, 그날 이후에 내가 문자를 보냈었어. 무슨 일 있느냐고. 그런데 너는 ‘……’라고 보냈어. 그게 마지막이었지. 네가 미국으로 떠나기 한 달 전 이야기야. 무슨 일이야? 싫어졌으면 싫어졌다고 하든지. 미국 가는데 어차피 같이 갈 게 아니면 헤어지자고 하던지. 그런 정도 이야기는 나누어야 되는 사이 아니었어? 나 혼자 꿈을 꾸고 있었니? 아, 너 출국하기 전날 ‘내일 간다’라는 문자는 받았네. 그래서 어쩌라고. 거기에 무슨 답을 하겠어?”

동호는 가만히 들었다. 선우 옆쪽으로 둘의 대화를 못 들은 척하고 있는 바쇼 주인이 보였다.

“같이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사이에 어떻게 하자고 말할 수도 없고. 미안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야기를 나누면 점점 더 미궁에 빠질 것 같아서 회피했나 봐. 정말 미안해. 내가 못났어.”

동호의 변명이 어처구니가 없는지 선우는 말을 더 잇지 않았다. 동호는 자신이 그때 왜 그랬는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뭔가 그렇게 행동할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아니, 동호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각자 잔을 들어 히레사케를 한 모금씩 마셨다. 주인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주방 안에서 스시를 만들고 있었다. 동호는 그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마지막으로 만나기 며칠 전, 동호는 서 대표를 만났다. 서 대표는 일상적인 대화 끝에 이렇게 덧붙였다.

“그저께 선우 씨랑 어떤 놈이랑 셋이 술을 왕창 마셨는데, 그날 둘이 심상치 않더라고. 아무튼 술자리를 파하고 나와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너무 안 잡히더라고. 할 수 없이 조계사 쪽으로 한참을 걸었는데, 둘이 함께 모텔에 들어가는 걸 봤어. 얘기 안 할까 하다가 그냥 한다. 알고는 있는 편이 낫다는 게 내 소신이라서.”

그때 동호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런 이야기를 전달하는 서 대표의 무신경함이 서운했다. ‘하지만 모르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동호는 그날 서 대표가 본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것이 누가 누구에게 따지거나 금지시킬 수 있는 일인지 판단할 자신이 없었다. 논리적으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호는 이제 분명히 깨달았다. 뉴욕으로 떠나기 전, 선우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것은 그녀의 분별없는 행동을 벌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갑자기 선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이 무슨 대수라고.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행동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따져 묻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동호는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해 대화를 회피하고 몰래 연인을 처벌한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다. 이미 선우에게는 새로운 연인이 있다. 그는 자괴감과 함께 선우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선우는 동호의 어조에서 그러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네 작업을 좋아하는 미술관들이 생겼다면서?”

“이제 시작이야. 한참 가야 해. 덜 외롭기는 하지. 가끔 돈도 들어오고.”

“아름다움을 지향하지 않는 예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튼 잘 이해가 안 돼.”

“변호사의 이해까지는 바라지 않아. 아름다움 자체와 예술이 지향하는 목표가 서로 구별된다는 것만 잊지 마.”

동호는 선우와 이야기할 때면 뭔가 심오한 내용을 공유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 좋았다. 그녀는 일상과 예술이 분리되지 않은 삶을 그대로 살아내려고 애썼다. 동호는 자신이 선우를 왜 좋아했는지 다시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독일인 애인이 있다. 다시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동호 씨 친구이신가 봐요. 이 참치 회 몇 점 들어보시죠. 그냥 드리는 겁니다. 혹시 성함이?”

대답을 못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선우에게 동호는 그냥 말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홍선우입니다.”

“저 기러기여, 네 아름다운 날개가 비에 잠긴다.”

선우는 웃으면서 대꾸했다.

“제 성은 ‘넓을 홍’인데 ‘기러기 홍’이 됐네요.”

“시가 중요하지 족보가 뭐 그리 중요합니까?”

주인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자신이 가져온 참치 회가 어떤 부위인지 장황하게 설명한 후 주방으로 돌아갔다.

“미래화랑이라고 혹시 알아?”

“미래? 오미영 관장이 하는 데 말인가? 알지. 오 관장을 개인적으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가끔 전시 오픈할 때 만나면 인사 정도는 해. 그런데?”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

“이번에 한국에 온 것과 관련 있는 거야?”

“의뢰 받아서 조사 중인 사건이 있어. 너는 모르는 척해. 혹시 아는 것이 있으면 알려줄 수 있나?”

“나도 아는 것은 별로 없는데. 좀 특이한 화랑이지. 미술계와 잘 어울리지는 않는 편이고. 어디서 생기는지 돈이 무척 많다는 소문이 파다해. 그림을 후하게 거침없이 사들여서 작가들은 좋아하고. 외국에서 공부를 했는지, 유명한 외국 작가의 작품을 잘 들여 와. 몇 억씩 하는 것들. 재벌 사모님들하고도 잘 지내는 것 같던데. 아, 수장고가 그렇게 죽인다던데.”

“수장고?”

“미술품 보관하는 곳 말이야. 그냥 창고는 아니고, 습도나 온도를 정밀하게 맞추어야 되지. 도난 방지 시스템도 있어야 되고. 공공 미술관도 아닌 사설 갤러린데, 수장고가 끝내준다고 들었어. 그분 있잖아, 우리 같이 본 적 있는. 늘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중절모 쓰고 다니시는 분. 그분한테 들었어. 양평 어디에 있다던데. 거기 가본 사람은 몇 명 안 된다고, 대단한 그림이 많다고 흥분해서 말씀하시더라고. 들어가려면 홍채 인식을 해야 한대.”

“혹시 그 화랑이나 수장고에 대해 좀 더 알아봐줄 수 있니? 하다못해 수장고 주소라도.”

“그 선생님하고 오랜만에 차 한잔하면서 들어볼게. 화랑은 수장고가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걸 원치 않는 눈치라던데. 위치를 알게 되면 문자로 보내주면 되지?”

 

두 사람이 바쇼를 나올 때도 비가 내렸다. 택시가 나타나자 선우가 먼저 탔다. 그리고 택시가 출발하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창 밖 동호를 계속 바라보았다. 택시가 출발하자 선우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동호는 선우의 마지막 표정에서 자신이 용서받았음을 깨달았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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