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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13일 16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6월 13일 23시 29분 KST

한겨울 저수지에 빠져 목이 터져라 살려달라고 외쳤다

[소설 '물기 없는 자리'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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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작가 채이든은 최근 매스컴에서 쏟아지듯 나오는 아동 학대 관련 기사에 가슴이 아팠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해자가 되어 학대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안타까워 글을 썼다고 한다.

여덟살

 

90

어느 주말에 아빠가 약속이 잡혀서 연립에 남았다. 새엄마는 친정집에 아빠 대신 나를 데리고 갔다. 돌아오는 날, 외할머니가 나에게 쇼핑백을 건네줬다. 외할머니가 말했다.

“자! 내가 너를 주려고 옷을 한 벌 사놨다. 가져가거라.”

“엄마, 쟤 옷을 뭐하러 샀어?”

새엄마가 물었다. 외할머니는 새엄마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네 인생이 불쌍해서 사주는 거다.”

기차와 전철과 시외버스를 타고 읍내에 도착했다. 동쪽 다리를 건너오면서 새엄마가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아까 외할머니가 너에게 했던 말을 아빠에게 절대로 하면 안 돼!”

현관에 들어왔을 때 아빠는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다녀왔어요.”

새엄마가 아빠에게 인사했다.

“잘 다녀왔어?”

아빠도 우리에게 인사했다. 내가 품에 끌어안은 쇼핑백을 아빠가 궁금해했다. 새엄마가 설명했다.

“엄마가 이든이 옷을 사뒀더라고요. 올 때 안겨줬어요.”

“그래? 장모님이 이든이 옷을? 어떤 옷인데?”

새엄마도 나도 어떤 옷인지 구경을 못 했다. 나는 쇼핑백을 거실에 내려놓았다. 아빠가 쇼핑백에서 옷을 꺼내고 포장지를 뜯었다. 색깔이 진하고 원단이 두꺼운 원피스였다. 네모난 액자를 겹친 듯한 무늬가 치맛단에 수놓아져 있었다.

“이야! 굉장히 고급스러운데? 이든아, 얼른 갈아입고 와! 잘 어울리는지 봐야지!”

아빠가 나를 재촉했다. 내 방에서 원피스로 갈아입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나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우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데? 좋은 옷을 입으니까 이든이가 훨씬 예뻐 보이네!”

“내가 예쁘다고? 정말로?”

“그래! 정말로 예뻐!”

구름 위로 날아갈 듯 기뻤다. 나는 얼굴을 붉히고 아빠에게 소감을 말했다.

“아빠, 고마워!”

“외할머니가 이든이를 예뻐하시나 보다! 이렇게 좋은 옷도 사주시고!”

“그래. 맞아! 이 옷은 내 인생이 불쌍해서 사주는 거라고 했어!”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네 인생이 불쌍하다니! 당신이 말해봐!”

아빠가 새엄마를 다그쳤다. 아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고 새엄마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나는 예쁘다는 칭찬에 들떠서 새엄마의 당부를 어긴 것을 후회했다. ‘인생’이라는 말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도 못했고.

그날 저녁에 아빠와 새엄마가 안방 문을 닫고 큰 소리로 다퉜다. 이튿날, 나는 새벽에 연립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아빠의 퇴근 시간에 맞춰서 돌아왔다. 예상대로 새엄마가 벼르고 있었다.

“나쁜 년! 내가 어제 외할머니가 한 말을 아빠에게 하지 말라고 했었지! 했어, 안 했어? 응? 분란만 일으키는 계집애야! 쓸모없는 계집애야! 너 같은 건 살아있으면 안 돼! 내가 너를 죽여버릴 거야! 두고 봐! 신물 먹여서 죽여버릴 테니까!”

각오하고 있었다. 매를 맞게 될 거라고. 그런데 새엄마가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내 방으로 유리컵을 가져왔다. 그리고 나에게 내밀었다.

“빨리 마셔! 한 방울도 남기지 말고!”

새엄마는 나에게 몸을 바짝 붙이고 눈을 부릅떴다. 유리컵을 입으로 가져왔는데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찔러서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새엄마가 말했다.

“야! 마시라고! 안 마실래? 전깃줄로 목 졸라서 죽여줄까?”

유리컵에 담겨있는 내용물을 마셨다. 마시는 동안 둥둥 떠 있는 기름방울이 보였다. 강한 신맛에 혓바닥과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뱃속이 메슥거렸지만, 긴장한 탓에 구역질은 올라오지 않았다. 새엄마는 유리컵을 돌려받고 주방 세제로 꼼꼼하게 닦아냈다. 수돗물에 여러 번 헹구고 뒤집어서 선반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앞으로 네가 죽을 때까지 저녁마다 신물을 먹일 거야!”

이불을 뒤집어쓰고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걱정했다. 신물! 신맛이 느껴지는 물과 기름방울! 단순히 수돗물과 식용유와 식초를 생각했다.

‘그런데 조미료를 먹고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

이튿날 아침, 나는 살아있었고 저녁에 또 신물을 마셨다. 며칠이 지나도록 새엄마가 그만두지 않았다. 매일 신물을 마시다 보니 알게 되었다. 새엄마가 신물을 만들어오기 전에 뒷베란다에 들른다는 것을. 뒷베란다는 내 방의 창문 너머에 있었다. 반투명 창문으로 새엄마가 허리를 굽히는 모습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빨간색 물체를 집었다가 내려놓는 모습도. 하루는 몰래 창문을 열고 베란다에서 빨간색 물체를 찾았다. 그리고 기겁했다. 석유통 뚜껑이 빨간색이었다. 나는 보일러의 기름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오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돗물에 신맛을 내는 어떤 것을 첨가해서.

“저 계집애는 말을 너무 안 들어! 툭하면 말썽이고! 두고 봐! 내가 신물 먹여서 저 계집애를 죽여버릴 테니까!”

외갓집에 다시 갔던 날, 식구들 앞에서 새엄마가 장담을 했다. 그리고 내가 부렸던 말썽을 낱낱이 고했다. 식구들은 씁쓸한 표정을 지을 뿐 새엄마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당장 죽지 않아도 신물은 서서히 효과를 보였다. 아침에 속이 쓰리고 어지러워서 걸음을 내딛기조차 힘들었다. 나는 학교까지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서 지하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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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일요일 저녁, 친정집에 다녀온 새엄마가 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얘! 내 머리 어떠니? 파마를 새로 했는데! 괜찮지? 내가 파마약 사서 직접 한 거야. 내일 너도 해줄게.”

월요일 저녁, 새엄마는 내 방에 신문지를 깔고 내 목에 비닐을 둘렀다. 내 머리에 크림을 바르고 꼬리 빗으로 빗어 내렸다. 나는 귀가 드러나는 커트 머리였다. 롯트에 머리카락을 말아야 하는데 길이가 짧았다. 새엄마는 있는 힘을 다해서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억지로 롯트에 끼워 맞췄다. 목이 자꾸만 뒤로 꺾였다. 중화제를 뿌린 후에 비닐봉지를 뒤집어썼다. 머리를 감고 물기를 털어냈더니 머리카락이 제법 꼬불거렸다. 새엄마는 기뻐했다.

“어머나! 파마가 잘 나왔다! 나 읍내에 미용실 차려도 되겠다.”

화요일 아침, 파마가 풀려있었다. 머리카락이 뻗쳐있기만 할 뿐 파마했던 흔적이 온데간데없었다. 새엄마는 갸우뚱했다.

“이상하다……. 중간에 실수했나?”

저녁에 새엄마가 다시 파마를 해줬다. 수요일 아침, 내 머리카락은 원래대로 풀려있었다. 새엄마는 짜증을 냈다.

“머리카락도 쓸모없는 년! 참 생머리라서 파마가 어지간히도 안 먹히네! 내 머리는 파마가 이렇게 잘 나오는데! 야! 남은 파마약이나 먹고 뒈져버려!”

나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며칠이 지나면 흐지부지될 거라고. 목요일 아침저녁, 새엄마가 내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금요일 아침저녁, 새엄마가 내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토요일과 일요일, 새엄마가 친정집으로 갔다. 월요일 아침저녁, 새엄마가 내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화요일 아침저녁, 또 주먹을 날렸다. 수요일 저녁, 견디다 못해 새엄마에게 물었다. 왜 때리느냐고.

“네가 내 말을 안 들었잖아! 내가 파마약 먹고 죽으랬잖아. 왜 안 먹는데?”

“내일 아침에 먹을게요.”

“그래? 알았어. 믿어보겠어.”

목요일 저녁, 새엄마는 나에게 주먹을 마구 날렸다. 말을 안 듣는 것도 모자라서 거짓말까지 했다고.

“망할 년! 약속을 했으면 지켜라! 언제 먹을래?”

새엄마가 달력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는 일주일 중에서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토요일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금요일을 편안히 보냈다.

토요일 아침, 나는 고민했다. 선반에 놓여있는 파마약은 두 종류였다.

질퍽대는 크림과 출렁대는 중화제. 어느 것을 먹으라는 말이 없었고 어느 것을 먹어야 죽는지도 알 수 없었다. 크림을 먹으려면 숟가락이 필요했다. 손가락에 묻으면 닦을 게 없었다. 중화제는 마시면 되니까 중화제를 선택했다. 뚜껑을 열었더니 역겨운 냄새가 올라왔다. 혀로 살짝 맛을 봤는데 지독하게 썼다. 옷소매로 입구를 닦아내고 목으로 중화제를 넘겼다. 즉시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어서 쓰레기통에 토했다. 그리고 등교했다.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 허락을 구했다.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재래식 변소는 학교 건물과 동떨어져 있었다. 건물 뒤편으로 나와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변소까지 걸어가지 못하고 땅바닥에 토했다. 계속.

“이든아, 괜찮아? 네가 변소에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선생님이 나가보랬어. 많이 아파?”

정임이가 나를 찾아와서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입에서 자꾸만 침이 흘러내렸다. 침은 바보가 흘리는 건데 창피해서 정임이 에게 교실로 돌아가라고 했다. 1교시를 마치는 종이 울렸다. 일어났는데 눈앞이 빙빙 돌았다. 구역질도 여전했다.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웅크린 채로 종소리를 네 번 들었다. 수업이 모두 끝났다는 걸 알았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이든아, 집에 가자. 선생님이 너랑 가까운데 사는 애가 있으면 손들어보라고 해서 내가 들었어. 네가 많이 아프니까 집에 데려다주래. 어서 가자.”

정임이가 책가방 두 개를 앞뒤로 메고 양손에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 움직였다.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새엄마가 친정집에 갔을 테니까 연립으로 돌아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내 방에서 담요를 덮으면 통증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런데 걷지 못했다. 한 발자국 내디디고 주저앉아서 배를 움켜잡았다. 운동장이 끝없이 넓어 보였다. 내 옆에서 정임이가 어찌할 줄 몰라 했다. 운동장 한복판에서 토하는데 정문으로 나갔던 봉고차가 우리 곁으로 되돌아왔다. 문을 열어젖히는 소리와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임 선생님, 얘네 우리 반 애들이에요. 저 아이가 아침부터 아팠어요. 집까지 태워다줄 수 있을까요?”

먼 곳에 사는 선생님들은 봉고차를 함께 타고 출퇴근했다. 토요일이라서 낮에 퇴근하는 선생님들을 태운 봉고차가 되돌아온 것이었다. 정임이가 집으로 가는 길을 선생님께 설명했다. 운전대를 잡은 선생님이 말했다.

“같은 방향이구나! 그런데 집까지 데려다주는 건 곤란하구나! 하천을 건너가서 내려주마.”

봉고차를 타고 서쪽 다리에서 내렸다. 연립까지 금방 갈 수 있는데 걷지 못했다. 정임이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이든아,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래? 내가 너희 집에 가서 너희 엄마를 불러올게.”

“괜찮아. 너는 이제 집으로 가. 나는 집에 천천히 가도 돼.”

어차피 새엄마는 연립에 없었다. 혹시라도 있으면 큰일이었다. 내가 아직 살아있으니까.

“혼자서 어떻게 가려고? 걷지도 못하는데. 그러지 말고 내가 너희 집으로 빨리 달려가서…….”

“안 돼! 우리 엄마는 불러오면 안 돼! 절대로 안 된단 말이야!”

정임이에게 고함을 질렀다. 배가 꼬여서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정임이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입술을 깨물고 재빨리 달려갔다. 나는 담장에 기대있다가 정임이가 멀어졌을 때 주저앉았다. 그리고 길에 드러누웠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뺨으로 흙을 문질렀다. 궁금했다.

‘왜 아직도 살아있을까? 언제 죽는 걸까?’

눈을 감고 기다렸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어른의 신발이 보였다.

“이든아, 많이 아프구나. 일어날 수 있겠니? 아줌마한테 업혀라. 집에 데려다주마.”

정임이가 새엄마 대신 자기 엄마를 데려왔다. 나는 고함을 질러서 미안했다. 그리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 아주머니는 허름한 바지에 짙은 남방을 걸쳐 입고 두꺼운 작업화를 신고 있었다. 정임이는 우리 반에서 손꼽히는 예쁜 아이였다. 정임이는 엄마를 닮았고 아주머니는 미인이었다.

‘아주머니가 왜 남자처럼 옷을 입었을까? 멋을 부리면 새엄마보다 예쁠 텐데…….’

아주머니 등에 업혔더니 배가 따뜻해졌다. 고무줄로 묶은 머리카락에서 좋은 냄새가 풍겼다. 엄마의 냄새였다. 나는 가슴이 울컥했다. 부끄럽지만, 아주머니 머리카락에 코를 박았다.

목공소 앞에서 아주머니가 정임이를 들여보냈다. 나를 업고 연립으로 들어갔다. 현관문이 잠겨있지 않았다. 새엄마가 집에 있었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몸이 말짱해졌다. 내 방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어머나! 정임이 어머님이 우리 집에 웬일이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새엄마가 아주머니를 반겼다. 가스레인지에 찻주전자를 올리고 찬장에서 커피잔을 꺼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문틈으로 들려왔다. 방문을 열고 새엄마가 나에게 빵을 건넸다.

“얘! 학교 다녀와서 배고프겠다. 이거 먹으렴!”

그리고 빵이 담긴 접시를 거실로 들고 갔다. 나는 빵을 뜯어 먹고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에 구역질하고 수돗물에 입을 헹궜다. 세면대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쳤다. 눈동자가 새빨갛게 변해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아주머니가 안절부절못했다. 아주머니가 새엄마를 불렀다.

“이든이 엄마, 이든이가 아침부터 아주 아팠다고 하더라. 정임이가 그러는데 오늘 수업을 한 시간도 못 받았데요. 저것 좀 봐. 지금도 심하게 토하잖아.”

“괜찮아요. 쟤는 뭐. 가끔 토하더라고요. 그보다……. 커피 맛은 어때요? 언제부터 여기서 사신 거예요? 아저씨랑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아주머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기……. 내가 일하던 도중에 나왔거든? 이만 일어나도록 할게. 시간이 없어서.”

아주머니가 돌아가자 새엄마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머리에 주먹을 날렸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약속한 날에 파마약을 먹었으니까 맞지 않을 줄 알았는데. 새엄마가 말했다.

“야! 너 아침에 쓰레기통에 토하고 갔지? 네 방에서 썩은 내가 진동했어!”

그날, 아빠가 늦게 퇴근했다. 오후 네 시쯤에 연립으로 들어왔다. 아빠는 오자마자 외갓집에 갈 채비를 했다. 거실에서 새엄마가 아빠에게 넌지시 내 이야기를 했다. 아빠가 달려와서 내 방문을 열어젖혔다. 내 이마를 만져보고 새엄마에게 고함을 질렀다.

“애가 중화제를 마셨다고? 그런데 당신은 뭘 하는 거야?”

“왜요?”

새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에게 되물었다.

“아침에 중화제를 마셨다면서! 지금이 몇 시야? 애를 병원에 데려갔어야지! 집에 있었으면서 여지까지 뭘 하고 있었느냐고!”

읍내를 돌아다녀서 문이 열린 의원을 간신히 찾아냈다. 의사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선 손 쓸 방도가 전혀 없어요. 아마 의정부 병원으로 가도 어려울 거에요.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가보세요.”

밖으로 나왔을 때 새엄마가 깜짝 놀랐다. 아빠가 큰 소리로 택시를 불기 때문에.

“여기가 어디라고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가요! 요금이 어마어마할 텐데!”

새엄마가 불만을 표시했지만, 아빠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에서 날이 저물었다. 기사는 지름길을 자신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산등성이를 넘어가는데 통행금지 표지판이 나타났다. 표지판 뒤에서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기사가 택시를 세우고 군인에게 부탁했다.

“이봐요! 어린애가 아파요! 응급상황이니까 한 번만 지나갑시다! 원래 가도 되는 길이잖소!”

군인은 나에게 눈길을 주고 고개를 저으며 걸어갔다. 아빠가 문을 박차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군인에게 달려가서 매달렸다. 기사도 따라 나가서 아빠를 거들었다. 뒷좌석에 나와 새엄마가 앉아있었다. 새엄마가 나에게 몸을 기울이고 속삭였다.

“너, 내가 파마약 먹으라고 시킨 거 누구한테도 말하지 마! 말하면 죽일 거야!”

서울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대학병원은 대낮처럼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나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입구로 달려갔다. 그리고 되돌아와서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나 이제 하나도 안 아파요. 병원에 안 가도 되니까 집으로 돌아가요.”

거짓말이었다.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고 어지러웠다. 새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

“애가 괜찮아졌네요. 다시 택시를 타고 서울역으로 가요. 아직 막차가 남아있을 거예요. 이대로 우리 집으로 가요. 네?”

“전부 조용히 해! 여기까지 장난삼아 온 줄 알아?”

아빠는 고함을 질렀다.

“우유인 줄 알고 마셨어요.”

중화제를 마셔본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급하게 꾸며낸 거짓말을 모두 믿는 분위기였다. 의사가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계속 토해내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거라고. 나는 응급실에서 위 세척을 받았다. 주변에 끔찍한 환자들이 넘쳐났다. 피를 쏟아내는 사람들과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위 세척 도중에도 구역질이 올라와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의사의 무릎에 토했다. 하얀 가운이 토사물로 더럽혀졌다. 나는 의사의 주먹이 날아올까 봐 벌벌 떨었다. 의사는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

“이런! 꼬마야, 토할 것 같으면 미리 말을 해주라. 내가 번개처럼 피하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 아니다. 말보다 구토가 빠른가? 왜 농담을 해도 안 웃지? 겁내지 말고. 또 메스꺼우면 침을 삼켜봐.”

위 세척을 마쳤다. 새엄마가 나를 병실로 안고 가서 침대에 눕혔다. 지쳐서 잠이 들었다. 잠결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 어쩌려고 그런 흉한 것을 먹었니……. 맛이 이상하면 뱉어내지 그랬어. 괜찮을 거야. 괜찮아야 하고. 잘못되면 안 된다. 꼭 나을 거다. 우리 아기…….”

따뜻한 손들이 나를 쓰다듬었다. 눈을 떠보니 머리맡에 친척들이 모여있었다. 소식을 듣고 한밤중에 달려온 친척들이었다. 나는 용기를 냈다.

“큰엄마! 있잖아…….”

차가운 물수건이 내 이마를 스쳐 지나갔다. 이마를 닦아낸 수건이 내 눈가를 닦아내고 입가도 닦아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배게 옆에 세숫대야가 놓여있었다. 새엄마가 물에 수건을 적셔서 내 얼굴을 닦아주고 있었다. 새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울먹이며 친척들에게 말했다.

“다 제 탓이에요. 제가 애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이런 사고가 생겼어요.”

친척들이 새엄마를 위로했다. 누군가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어린 환자들이 자는데 폐를 끼치지 말자고. 친척들은 조용히 병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깊이 잠들었고 아침에 일어났다. 지난밤에 누가 왔었는지 일일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병실에 넷째 큰엄마가 남아있었다. 아기를 업고 밤을 지새운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이 났다. 큰엄마가 물었다.

“이든아, 정신이 들어? 말할 수 있겠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형님, 이든이가 자는 동안 수액을 맞아서 오줌이 마려울 거에요. 화장실부터 다녀올게요.”

새엄마가 나를 부축해서 화장실로 데려갔다. 수액병을 들고 내가 오줌 누는 것을 지켜보았다. 화장실 문을 가로막고 새엄마가 속삭였다.

“나는 진심이 아니었어. 사람은 홧김에 막말할 수 있는 거야. 나가라고 할 수도 있고 죽으라고 할 수도 있어. 나도 마찬가지야. 홧김에 파마약을 먹으라고 한 거야. 그 말을 믿은 네가 미련한 거야. 어젯밤 눈 떴을 때 생각나니? 내가 네 곁에서 밤새도록 너를 간호했어. 우리 이번 일은 기억에서 지워버리자. 비밀로 묻어버리자.”

지난 일은 잊어버리기로 새엄마와 약속했다. 병실로 돌아와서 넷째 큰엄마를 안심시켰다.

“정말로 별일 없는 거지? 큰엄마는 이제 집에 가봐야 해. 짱구를 옆집에 맡겨놓고 왔어. 아기도 힘들어하고. 이든아, 큰엄마한테 안부 전화 좀 해. 집에 전화기도 놨다면서…….”

내 입원 기간은 열흘로 결정됐다. 매일 수액을 맞고 혈액을 검사했다. 채혈하는 간호사에게 새엄마는 꼼꼼히 캐물었다. 혈액 검사로 무엇을 알아낼 수 있는지, 어디까지 알아낼 수 있는지. 아마도 신물을 먹였던 것이 드러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 아빠와 새엄마는 병실에서 새우잠을 잤다. 여러 아이가 입원한 병실에서 새엄마는 누구보다 열심히 간호했다. 하지만 점심시간이 되면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내 손등에 수액 바늘이 꽂혀있었다. 오른손에 꽂혀있으면 숟가락을 들 수 없었다. 바늘 꽂힌 손을 움직이면 피가 역류해서 수액 병으로 빨려 들어갔다. 왼손으로 서툴게 수저질하면 침대에 음식을 흘릴 것 같았다. 그래서 오른손등에 바늘이 꽂혀있으면 점심을 걸렀다.

“왜 밥을 안 먹었니? 병원 밥이 얼마나 비싼 건데.”
새엄마는 점심을 사 먹고 돌아와서 아깝다며 남은 밥을 먹어치웠다.

나는 회복 속도가 빨랐다. 하루에 세 끼를 먹고 틈틈이 과일과 간식을 먹었다. 누워서 치료받고 충분히 잠잤다. 심심하면 만화책을 빌려와서 읽었다. 하루는 간호사에게 주사기를 달라고 졸랐다. 맞은편 아이와 물총 싸움을 벌여서 병실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였다. 새엄마는 화내지 않고 대걸레로 바닥을 묵묵히 닦아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오빠가 휠체어를 구해왔다.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오빠는 다리를 다쳐서 목발을 짚고 있었다. 미안해서 내려달라고 했더니 오빠가 활짝 웃었다.

“괜찮아. 너는 꼬마라서 힘들지 않아! 나도 심심했으니까 잘 된 거야!” 오빠는 복도에서 휠체어를 힘껏 밀어줬다. 나는 놀이기구 타는 것처럼 즐거웠다. 오빠랑 엘리베이터를 타고 높은 층도 올라갔다. 전망 트인 자리에서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퇴원을 앞두고 새엄마가 나에게 물었다. 집에 돌아가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하고 싶으냐고.

“의자에 카디건을 걸어뒀어요. 주머니에 오백 원이 들어있어요.”

“그래? 그 돈으로 뭐하려고?”

“문구사에서 과자 사려고요.”

“너도 참 시시하다. 여기에 먹을 게 천지인데 군것질을 그리워하니?”

지난 금요일에 용돈을 받았다. 입원하지 않았더라면 주말 식량을 마련할 돈이었다. 퇴원하면 문구사에서 과자를 사고 싶었다. 새엄마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정임이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퇴원은 예상보다 빨랐다. 금요일에 퇴원했으니까 일주일만이었다. 나는 연립으로 돌아오자마자 내 카디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주머니를 뒤집어보고 방바닥을 훑어봐도 동전이 없었다. 어리둥절해서 새엄마를 바라보았다. 새엄마의 비웃음을 보고 살아있는 것을 후회했다.

“대충 정리하고 거실로 모여봐.”

아빠가 새엄마와 나를 거실로 불렀다. 아빠는 새엄마를 먼저 야단쳤다. 위험한 파마 약을 아이 손이 닿는 장소에 놓아둔 것에 대하여.

“왜 나를 탓해요? 내가 애 머리를 꾸며준 게 잘못이에요? 내가 일주일 동안 쪽잠을 자면서 애 병시중을 들었어요!”

새엄마가 아빠에게 대꾸했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아빠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멍청이다.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 나는 중화제를 우유라고 끝까지 마셔댄 한심한 새끼.

“너, 이번에 병원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알아? 오십 만원이야! 오십 만원이 나왔다고!”

짐작할 수도 없는 큰돈이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아빠도 야단으로 끝내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집어 들고 나에게 휘둘렀다. 내가 웅크리면 발길질을 했다. 나는 매를 피해서 조금씩 기어 다녔다. 아빠는 내 옷자락을 끌어당겨서 두드려 팼다. 온몸이 퉁퉁 부어올랐다. 오죽하면 아빠가 학교를 쉬라고 했다. 결석에 진저리치는 아빠가. 토요일은 학교에 가는 날인데. 의사의 말이 신통하게 맞아 들었다. 학교에 언제 갈 수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열흘 후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었다. 나는 주말 내내 앓아누웠다. 밥도 방에서 받아먹었다. 새엄마가 쟁반에 밥을 차려서 내 방으로 가져왔다. 쟁반을 내려놓고 새엄마가 말했다.

“이런 병신 같은 년! 크림을 먹어야 죽는 건데 왜 중화제를 마신 거야? 죽으랬더니 병신이 되기로 작정했어? 하마터면 내가 네 똥오줌을 받아낼 뻔했잖아!”

100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임금님이 있었다. 효심이 지극한 임금님은 아버지의 무덤을 옮겨주고 어머니와 함께 살 터전을 마련했다. 그 터전에 도시를 건설하고 성곽을 짓고 저수지를 만들었다. 저수지가 농사에 보탬이 되어서 쌀이 만석이나 늘었다고 한다. 가뭄을 걱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공섬이 자리 잡은 넓은 저수지였다. 눈대중으로 짐작한 저수지 크기는 학교 운동장의 여덟 배였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계집애! 나가 뒈져라! 저수지에 빠져 죽으라고! 거기는 해마다 애들이 빠져 죽는다더라! 너도 빠져서 콱 뒈져버리라고!”

새엄마는 예전에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애들은 교통사고로 잘 죽는다더라. 너도 트럭에 치여 죽어라!”

나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저수지에 가려고. 새엄마의 말이 아니어도 진즉부터 저수지에 다니고 있었다. 옥상 창고에 머물러도 새엄마가 질색해서. 낯선 동네에 친구가 없어서. 학교를 찾아냈지만, 머물기에 적당하지 않아서. 운동장은 찬바람을 피할 수 없었고 쇳덩어리 놀이기구는 차가워서 만질 수도 없었다. 저수지를 찾아가면 소나무 곁에서 바람을 피할 수 있었다. 솔방울도 주워볼 수 있었다. 둘레길을 걸으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오가는 길에 다른 집 마당에서 키우는 강아지도 구경할 수 있었다.

날씨가 혹독했다. 며칠째 이어진 한파로 저수지가 얼어있었다. 오늘은 대문 틈으로 강아지를 볼 수 없었다. 추워서 집안에 들여놓은 것 같았다. 둘레길을 서너 번 돌았다. 잠깐 비추는 햇살을 골고루 몸에 쬐었다. 바람을 피하려고 소나무에 기댔는데 어림없었다. 두 손에 입김을 모으고 둘레길을 다시 돌았다. 인공섬으로 걸어가던 도중에 통발을 발견했다. 통발 속에 물고기가 몇 마리 잡혀있었다. 나는 감격했다. 주위가 온통 얼음인데 통발 속은 물이 출렁거렸다. 물고기가 끊임없이 헤엄친 덕분에 얼어붙지 않은 것이다. 나는 물고기를 구해주고 싶었다. 풀어주고 살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잡아당겨도 통발이 올라오지 않았다. 운동화 발로 쳐내도 끄떡없었다. 가위로 잘라야 할 것 같았다. 내일 가위를 챙겨오겠다고 다짐했다. 물고기를 위로하고 응원했다. 다시 둘레길을 돌았다.

겨울은 낮이 짧았다. 한 줌의 온기를 보태주던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빛을 뿜었다. 새하얀 얼음 저수지 위로 붉은 노을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라보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내 기억은 노을과 함께 시작되었다. 해가 저무는데도 할머니를 만나지 못해서 대문을 열고 골목을 훑어보았다. 내 고향! 공장 근처에 시멘트로 지은 집들과 시멘트로 포장된 골목들. 잿빛의 동네를 노을은 매일 잠깐씩 주홍빛으로 물들였다. 그래서 일까? 오산 시장에서 주황색 천막을 보면 가슴이 설레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엄마가 집을 나갔다. 노을은 나에게 시계가 되었다. 아빠가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골목에 혼자 남아서 노을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덤으로 변신한 할머니와 살겠다고 결심했을 때 노을은 나를 흔들어서 옥탑방으로 돌아가게 했다. 시골로 이사 왔을 때 노을은 나에게 신호등이 되었다. 지금쯤이면 집에 들어가도 괜찮을 거라고 신호를 보냈다.

저수지 한가운데 물이 고여있었다. 아름다운 웅덩이였다. 잔잔한 물결이 노을빛을 받아서 반짝거렸다. 이만 돌아가야 하는데 아쉬웠다. 찬바람을 들이켜서 목이 말랐다. 반짝이는 물로 목을 축이면 갈증과 허기가 사라질 것 같았다. 웅덩이로 걸어가면서 전래동화를 떠올렸다.

옛날 옛적에 깊은 산골 마을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나무를 하다가 신비로운 샘을 발견했다. 마실수록 몸이 젊어지는 샘물이었다. 젊은이로 변한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할머니도 샘물을 마시고 젊어졌다. 이웃에 사는 할아버지도 신비로운 샘을 찾아갔다. 이웃 할아버지는 욕심쟁이라서 샘물을 잔뜩 마시고 갓난아기로 변했다. 갓난아기는 젊어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거둬주었다.

‘저 물도 젊어지는 샘물이었으면 좋겠어. 나도 잔뜩 마시고 갓난아기로 변하고 싶어. 그렇게 되면 누군가 나를 주워가서 키워주겠지. 혹시 모르잖아. 그 집에서는 나를……!’

발밑에서 불안한 기운을 느꼈다. 귀로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내려다볼 겨를이 없었다. 몸이 얼음 밑으로 가라앉았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차가웠다. 수천 개의 칼날이 몸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뜨거웠다. 눈물은 너무 뜨거워서 얼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이 넓은 저수지에 나 혼자였다. 무엇이든 잡으려고 몸부림쳤다.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살려달라고.

‘틀렸어! 이제 진짜로 죽는 거야! 그렇구나. 방법이 없구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여전히 비명이 들렸다. 내가 지르는 소리는 아니었다. 눈물 너머로 사람이 아른거렸다. 여자아이 두 명이 발을 구르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한 명은 주저앉고 한 명은 어딘가로 달려갔다. 달려간 아이가 어른을 데려왔다. 어른이 아이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아이들이 달려가서 더 많은 어른을 데려왔다. 남자들이 널빤지를 던지고 배를 깔고 기어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나를 끌어당겼다. 그런데 몸이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어이쿠! 애가 무겁다! 옷이 물을 먹었나!”

“기다려봐! 가만있어봐!”

어떤 할아버지가 얼음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뒤에서 나를 밀어 올렸다.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나를 끌어당기고 할아버지도 끌어올렸다. 나는 목까지 물에 젖었고 할아버지도 가슴까지 물에 젖었다. 뭍으로 걸어 나와서 주저앉았다. 여자아이가 내 옆에 주저앉아서 울음을 터뜨렸다.

“내 방에서 친구랑 숙제하고 있었는데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래서 친구한테 물어봤는데 친구는 안 들린다는 거야. 바깥에 나가보자고 했는데 추워서 싫다는 거야……. 결국, 나와봤더니 저수지에 꼬마애가 빠져있잖아! 나는 정말 놀랐어! 아기가 죽을까 봐 너무너무 무서웠다고!”

나를 꼬마애, 아기라고 부르는 소녀도 기껏해야 국민학교 고학년이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어른들이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나는 도리질 쳤다. 어른들이 전화번호를 물었다. 나는 침묵했다. 어른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집에 가겠다고 일어섰다. 어른들이 소녀에게 나를 바래다주라고 했다. 내 입술이 새파랗다고. 당장 쓰러질 것 같다고. 날이 저물어 있었다. 젖은 옷으로 바람이 파고들었다. 나는 누비 솜바지와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옷과 걸음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3층까지 올라와서 망설였다. 옷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빨래하면 되는데 거실을 어떻게 통과해야 하나? 물방울이 떨어질 텐데……. 나 대신 소녀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새엄마가 문을 열어주고 깜짝 놀랐다.

“아주머니, 얘가 저수지에 빠졌었어요. 제가 발견해서 어른들께 알렸어요. 어른들이 얘를 구해줬어요.”

“그래? 알았다. 늦었으니까 어서 돌아가거라.”

나는 은혜를 입었다. 그런데 생명의 은인에게 물 한 잔도 보답하지 못했다. 토요일이었다. 아빠가 외갓집에 오긴 했지만, 외출 중이었다.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주방으로 들어가서 밥을 꺼내먹었다. 곁에서 새엄마가 물었다.

“너, 죽으려고 저수지에 뛰어든 거니?”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숟가락질을 계속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제대로 설명할 기운도 없었다. 새엄마가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아유, 기특해라. 말도 잘 듣네!”

이맛살도 찌푸렸다.

“그런데 이 바보야! 너 혼자 왔어야지! 아까 걔는 왜 달고 왔어? 걔가 우리 집이 어딘지 외웠을 거 아니야!”

내가 저수지에 빠졌다는 것을 온 식구가 알게 되었다. 외출한 아빠가 돌아왔고 거실에서 회의가 열렸다. 아빠가 나에게 저수지의 위치를 물었다. 새엄마가 끼어들어서 자세히 설명했다. 아빠가 채비하고 길을 나섰다. 새엄마는 따라나섰다.

“그래. 애를 구해준 집은 찾았나? 어떻게 했나?”

저수지에서 돌아온 아빠와 새엄마에게 외할머니가 물었다. 아빠와 새엄마는 긴 한숨을 쉬었다. 식구들이 거실에 둘러앉았고 아빠가 입을 열었다.

“담배 한 보루를 사서 찾아갔는데 사람들이 안 받더라고요. 사례할 필요가 없다면서요. 그런데요. 할아버지 한 분이 저수지에 뛰어들어서 이든이를 밀어냈대요. 그래서 가슴팍까지 물에 잠겼었는데 나올 때 구두 한 짝이 벗겨졌대요. 며느리가 시집올 때 장만해준 구두래요. 백화점에서 사 온 구두라고. 아까운데 같은 거로 사줄 수 없냐고 해서……. 그래서 구두값을 물어주고 왔어요.”

온 식구가 한숨을 쉬었다. 내 목숨값으로 담배 한 보루를 예상했는데 구두값을 치러서 마뜩잖은 것 같았다. 아빠는 창피해 하고 나에게 고함을 질렀다.

“너는 진짜 멍청이같이! 도대체 저수지에 왜 간 거야? 추운데 집에 있어야지! 그 저수지는 해마다 아이가 빠져 죽는다잖아! 그리고 얼음이 두꺼운지 얕은지 구분도 못 해?”

토요일이니까 아빠를 마주치면 월요일에 새엄마가 때리니까 다른 건물에 숨어보기도 했는데 막막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시간도 멈춰버려서 견디기 힘들었다. 풀이 죽어서 고개를 숙였다. 내 오른손이 보였다. 엄지의 흉터도. 옛날에 아빠가 “어뜨”를 알아들었다. 내 손가락을 잡고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죽을뻔했어도 관심이 없었다. 아빠는 나에게 정이 완전히 떨어진 표정이었다. 일요일 밤에 아빠가 출근하려고 연립으로 돌아갔다. 새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쥐어박았다.

“야! 너 저수지에 빠졌을 때 구해달라고 외쳤다면서? 살려달라고 외쳤다면서?”

“네.”

“죽으려고 뛰어든 게 아니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내가 시켜서 뛰어든 줄 알고 미안해하고 있었잖아! 하여간 너는 사람 뒤통수 치는데 일가견이 있다니까! 나쁜 년! 저수지에 빠져 죽은 귀신이나 달라붙어라!”

 * 소설 ‘물기 없는 자리’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