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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10일 10시 45분 KST

교육 당국이 새 표준으로 삼으려 하는 '원격수업'에 불만이 나오는 까닭 (일화 모음)

올해 1학기에 원격수업을 받은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겨레
코로나19로 수원지역의 한 대학생이 비대면 방식 수업인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다

 

교육부가 9일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디지털 기반 고등교육 혁신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코로나19로 준비 없이 맞은 ‘원격수업’을 앞으로 대학 학사운영의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정립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교육당국의 포부와 달리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원격수업 질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다. 1학기 내내 강의실에 앉지 못했던 대학생 상당수는 “교육이라기보다는 그저 수업하는 시늉에 불과했다” “과연 이걸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한다.

올해 상반기에 모든 학교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되자, 정부는 유·초·중등교육 분야에 대해 온라인 개학, 등교수업 재개 등 다양한 대책을 내놓기에 바빴다. 그러나 대학에 대해서는 ‘원격수업 전면 허용’만이 유일한 조처였다. 잊힐 뻔한 고등교육 분야의 실태는, 학생들이 “등록금 반환” 요구 목소리를 내면서 그나마 관심을 끌었다.

뉴스1
등록금 반환 촉구 대학생 국토대장정을 마친 전국대학생학생회네트워크 관련 학생들이 6월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집회를 갖고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온라인 수업에 따른 등록금 반환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교육부가 발표한 ‘디지털 기반 고등교육 혁신 지원방안’은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풀었던 원격수업 관련 규제를 아예 없애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반기에 총학점의 20% 이내로 묶여 있던 원격수업 운영 기준 지침을 없애고 각 대학이 학칙을 통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이날 온라인 화상회의를 열어 각 대학 총장들에게 원격수업 관련 내용을 안내했다. 1학기에 이어 2학기 개강 뒤에도 당분간 전면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는 대학은 144곳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겨레>는 올해 1학기에 원격수업을 받은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종이 건반으로 피아노 수업

‘원격수업’에 대한 대학생들의 불만은 실습·실험·실기 등 대면수업 상황에서만 제대로 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과목들에 특히 집중됐다. 상대적으로 비싼 등록금을 내는 예술계열 대학생들은 학교 실습실조차 드나들지 못하면서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았다. 신민준 예술대학생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미대 같은 경우는 집에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음대 같은 경우는 연주 등을 녹음해서 교수에게 보내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그나마 실시간 수업을 해도 출석만 확인하고 교수는 자기 작업을 하러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고 덧붙였다. 실습할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사비를 투자하기도 했다. “교수가 가로 160㎝짜리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라는 과제를 내주면 이걸 집에서 할 수 없지 않나. 결국 사설 작업실을 구해서 할 수밖에 없었다.”

예대처럼 실습 수업이 많은 교대에서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공주교대 2학년 박건진씨는 “음악교육 가운데 피아노 수업이 있는데, 대다수 학생들이 피아노를 직접 쳐볼 수 없으니까 각자 종이에 건반을 그려서 쳐보라고 했다”며 “소리도 안 나는데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고 허탈해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초등학교에서 생존수영이 의무화돼 생존수영 수업도 들어야 했는데 유튜브에서 생존수영 동영상을 찾아보고 과제를 제출하는 데 그치기도 했다.

이공계 역시 실험·실습 수업의 비중이 높은데, 기존에는 과별로 마련된 실험실에서 직접 실험을 해보고 그 결과를 제출했지만 온라인 강의 상황에서는 그저 동영상으로 교수가 실험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과제를 내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집에서 과제를 수행하는 기본 프로그램조차 제대로 제공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경기도의 한 전문대 기계공학과 1학년 노경대씨는 1학기에 총 열 과목을 수강했다. 이 가운데 기계 설계 프로그램을 다루는 두 과목이 100% 실습 과목이었다. 노씨는 “다행히 한 과목은 학생용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다른 과목은 교수님이 60일 한정 체험판 프로그램을 줬다. 60일 안에 과제를 완성하지 못한 학생은 과제를 제출조차 못 했다”고 말했다.

재정이 풍족하지 못한 지방대학들의 경우 온라인 강의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학습관리시스템(LMS)조차 갖추지 못해, 사설 사회관계망(SNS)을 활용해 강의 동영상을 올리거나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대학에서 별다른 지원을 해주지 않아, 교수나 강사들이 마이크나 카메라 등을 본인 돈으로 사서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무료 유튜브 강의가 낫다?

실습·실험·실기 수업과 달리 이론 수업은 상대적으로 낫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학생들은 “그마저도 대면수업 때와 질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컸다”고 입을 모았다. 화상회의 앱으로 실시간 강의를 진행하거나 사전에 녹화해둔 강의 동영상을 올려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교수자와 학습자 또는 학습자 사이에 꼭 필요한 상호작용은 거의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경기도 지역의 한 대학생은 “인쇄한 종이에다 손으로 글씨를 쓰면서 설명하는 걸 휴대폰으로 녹화해 올리는 등 무성의한 교수도 있었다”고 했다.

특히 교수 간에 원격수업을 할 수 있는 역량 차이가 큰 데 대한 불만이 컸다. 서울의 한 사립대 학생은 “일부 교수들은 10년 전에 찍어둔 강의 동영상을 그대로 활용하기도 했다. 배경지식이 없는 저학년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다’며 수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이럴 거면 무료로 유튜브 강의 보는 게 낫겠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왔던 배경이다. 일부에선 원격수업이 시작된 뒤 한참 동안 수업을 진행하지 않다가, 기말고사 직전에야 수업을 몰아서 한 사례도 있었다.

교수자들 입장에서도 지난 1학기는 힘든 시기였다. 수업 기획과 운영, 평가 등 온라인 강의의 전반적인 책임이 교수자 개개인에게 맡겨졌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이나 대학당국이 제때 지침을 내려주지 않아 불확실성을 키운 점도 있다. 강명숙 배재대 교수(교육학)는 “온라인 강의의 체계나 원칙에 대한 대학 구성원들의 논의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예측불가한 대학의 지침을 따라야 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말했다.

뉴스1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대학들이 개강을 연기하고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던 지난 3월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캠퍼스 풍경. 학생들 없이 한산한 모습이다.

 

애초 대면으로 시험을 보기로 했다가 감염병 유행에 따라 하루아침에 갑자기 온라인 시험으로 전환되고, 이에 따라 상대평가 방침을 절대평가로 바꿔야 하는 일도 있었다. 강 교수는 “지난 학기에 진도도 나가고 시험도 봤지만, 과연 수업 내용이 제대로 전달됐을지, 학생들이 앞으로 심화된 과정을 따라올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전다현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공동의장은 “대면이냐 비대면이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의견 수렴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해지(이화여대 사학과 4학년)씨는 “학기마다 벌어지는 수강신청 전쟁, 60~70명이 빽빽하게 몰려 있는 강의실, 그곳에서 이뤄지는 단순 지식전달형 수업, 취업률만을 목표와 성과로 삼는 대학본부 등 대학교육에 대한 불만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더 증폭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