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2018년 06월 21일 09시 33분 KST

16년째 난민 신청…“고향 정치적 박해보다 더 상처”

제주도에 온 예멘 난민들이 19일 대한적십자사의 구호품을 받고 있다. 

19일 제주시내 한 고등학교 1학년생 단체카톡방에 한 학생이 “여자들이 시청 근처 다니면 예멘인들이 덤빈대”라는 소문을 전했다. “헐, 정말?” “무서워” “우리 엄마도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더라고”라는 답이 줄지어 달렸다. 난민에 대한 혐오와 공포는 이 카톡방만의 일이 아니다. 예멘 난민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한 지난 15일부터 닷새 동안 회원 수 8만6천명이 넘는 제주도 엄마들의 카페엔 난민을 반대하고 걱정하는 글이 80여개 올라왔다. 제주도청 홈페이지에도 19일 하루 만에 난민 반대 관련 글이 40여개 올라왔다.

이들은 대체로 “난민들에게 턱없이 관대한 정부 정책”을 비판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제주에 들어온 예멘인의 출도(육지로 나감)가 제한된 4월30일 이후 다른 지방으로 나간 예멘인은 5명이다. 이들 중 4명은 한 가족으로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고, 1명은 질병 치료가 필요한 임산부라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으로 보내졌다. 이들이 육지에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이미 한국에 난민 신청을 했던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자료: 법무부

한국에서 난민 인정 신청을 해서 결과를 받기까지는 통상 3~5년이 걸린다. 한국은 난민 인정률이 4.1%로 세계 평균 난민인정률 38%에 견줘 한참 낮지만 심사 중에 ‘철회 및 취소’(11.1%)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에 실질적인 인정률은 3% 정도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턱없이 긴 심사기간 동안 인권 침해나 생계 곤란으로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코트디부아르에서 무용수를 하다 2002년 한국에 온 아만(36)씨는 16년째 난민 신청자로 살고 있다. 난민 신청이 거부된 뒤 재심과 3심을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같은 시기 독일에 난민 신청을 했던 동료 무용단원 8명은 모두 난민 자격을 인정받아 독일에서 살고 있다. 난민 캠프를 떠돌다가 2012년 한국에 온 마틸다의 난민 심사도 아직 ‘진행 중’이다.

더구나 난민 신청을 한 뒤 6개월 동안은 취업이 금지돼 난민들은 극빈층으로 살아가게 된다. 생계비 지원 제도가 있으나 2017년 난민인권센터 조사에선 지난해 생계비 지급 대상자 1만3294명 중 실제로 생계비를 지원받은 난민 신청자는 436명(3.2%)뿐이다. 또 한 사람당 평균 3개월10일 동안 40만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책 <우리 곁의 난민>을 쓴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난민 심사 중인 신분으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외국인노동자 보호법조차 적용받지 못해 부당노동행위의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아도 출생 등록을 하지 못해 무국적 신분을 대물림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겨레
지난 19일 제주도의 난민 관련 기관들이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예멘 난민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우리의 난민 심사 장벽이 길고도 높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정책의 부재다. 전문가들은 난민심사기구와 심사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문제를 짚는다. 난민 심사를 담당하는 출입국·외국인청은 전국에 총 10곳, 심사관은 39명뿐이다. 예멘 난민 문제가 불거지면서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는 2명의 심사관이 500여명의 난민을 심사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공익인권법인 공감 박영아 변호사는 “난민 신청자 적체가 20년 넘게 지적됐지만, 그동안 정부는 관련 예산이나 시설을 늘리기보다는 난민 신청자를 걸러내는 데 집중해왔다”고 비판했다. 난민인권센터 김연주 변호사는 “지난 5월 소수민족으로 터키를 경유해 난민 신청을 한 중국의 위구르인 2명이 입국불허됐다. 같은 시기 예멘인 11명도 관광 목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경유국으로 돌려보내졌다. 한국 정부가 자의적 해석에 따라 난민들을 강제송환하는 것은 아닌지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는 “이들은 외형적으로 난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자들로 송환이 아니라 입국 불허”라고 해명했지만 불허 사유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700여명 중 1명꼴로 인정받는다는 난민 심사를 통과해도 한국에서 살기는 쉽지 않다. 많은 난민들은 언어 장벽, 이슬람 등 다른 문화에 대한 혐오, 인종차별 등을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점으로 꼽는다. 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 난민 신청자는 ‘본국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을 때보다 한국에 온 뒤 더 큰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난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잘 보여주는 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