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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 22일 16시 18분 KST

7년 만에 복귀한 김민식 PD는 대본을 읽으며 울컥했다

MBC
‘문화방송 정상화’에 앞장서 온 김민식 피디가 7년 만에 연출을 맡아 화제를 모은다. 배우 박진희가 커피차를 선물하고, 김 피디 팬들이 축하 화환을 보내는 등 이례적으로 피디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 피디는 “온 신경을 드라마에만 쏟을 수 있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며 웃었다.

“야호 나도 이제 드라마로 인터뷰한다아~!” 최근 서울 상암 <문화방송>(MBC) 사옥에서 만난 김민식 피디는 양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드라마 피디가 드라마 이야기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도, 그는 아이처럼 좋아했다. “드라마 관련 인터뷰는 2012년이 마지막이었어요. 그동안 인터뷰는 정말 많이 했는데 연출과 상관없는 인터뷰만 했죠. 하하하.” 그는 2012년 <문화방송> 노조 부위원장으로 파업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이후 비제작 부서를 전전했다.

지난달 26일 시작한 <이별이 떠났다>(토 밤 8시45분)는 김민식 피디의 ‘7년 만의 복귀작’으로 관심을 끈다. 2015년 <여왕의 꽃>에 서브 연출로 참여한 적은 있지만, 메인 연출은 2011년 1월 종영한 <글로리아>가 마지막이다. “드라마 피디로 복귀 못 할 줄 알았어요. 지난 1월에 이 드라마 연출 제안을 받았어요. ‘연출 김민식’이란 이름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더라고요. 지하철에서 대본을 읽으며 울컥했어요. 이렇게 재미난 일을 그동안 못했다니….”

<이별이 떠났다>는 남편의 바람에 상처받고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킨 50대 여자 서영희(채시라)와 뜻하지 않은 임신으로 혼란을 겪는 20대 여자 정효(조보아)가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연대와 소통의 이야기다. 1회 5.6%로 시작해, 12회 10.3%(닐슨코리아 집계)까지 오르는 등 서서히 반응이 오고 있다. 채시라의 열연과 두 여성이 연대하며 사회적 편견에 맞서 독립적인 개인으로 나아가는 사뭇 다른 시선이 비결이다. “그동안 드라마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더 젊고 유능한 남자를 만나 새 삶을 살았잖아요. 우리 드라마는 여성과 여성이 서로를 보듬는 게 달랐던 것 같아요.”

그는 2010년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등 이전에도 여성의 연대와 소통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유를 물으니 “원래 여성스럽다”며 웃었다. “타자에 공감을 잘해서 그런지, 정치, 권력 다툼보다는 타인에 공감하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남자 피디인 그가 “결혼은 나를 갉아먹는 짓이야. 여자만 빼고 모든 게 다 변해” 같은 극 중 서영희의 대사를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는 “아내 덕분에 충분히 이해한다”며 재미있는 사례를 들려줬다. “전 명절 때마다 아버지를 데리고 단둘이 여행을 가요. 일부러. 하하하. 아내는 친정에 보내죠. 일할 때도 힘든 아내가 명절까지 시댁에 가서 뭔가를 한다는 건 스트레스잖아요.”

한겨레
김민식 피디의 드라마 복귀를 축하해 배우 박진희가 보낸 ‘커피차’ 앞에서 김 피디가 활짝 웃고 있다.

30살에 예능 피디로 입사해 3년 만에 <논스톱>으로 신인 연출상을 받은 뒤, 40살에 드라마국으로 옮긴 그는 2009년 <내조의 여왕> 공동 연출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려던 찰나 이명박 정권이 시작되며 경력이 단절됐다. 40대 초반 이후 어떤 일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돌아오니 51살이다. “연출이 너무 올드하다는 댓글 보고 빵 터졌다”거나 “복귀작을 고교 시절 짝사랑하던 채시라씨와 함께 하다니 인생 살아볼 만하다”며 애써 웃지만, 지난 시간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남겼다. 그의 연출관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별이 떠났다>는 평소 “코미디를 좋아하고 어떻게 하면 웃길 수 있을까를 생각해 온” 김민식 피디의 작품치고는 너무 어둡다. “이젠 마냥 웃고 떠드는 밝은 걸 못 만들겠어요. 싸우면서 너무 어두운 걸 봐버렸어요. 지난 몇 년간 느낀 건 ‘나는 로맨틱 코미디를 못하겠구나, 쉽지 않겠구나’였어요. 로코는 사랑에 대해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나는 지난 몇 년간 힘들고 괴로울 때 아무도 없다는 걸 느꼈어요.”

이 작품에 매료됐던 진짜 이유도 “주인공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서영희는 남편의 배신을 알게 된 뒤 은둔형 외톨이처럼 집에 자신을 가두고 지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라고들 말하는데 제가 실제로 편성으로 쫓겨났을 때, 주위에서 나를 지켜주지 않았을 때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영희처럼 지냈어요. ‘그러게 살살하지’ 등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싫었고, 좋은 대본이 있어도 편성 받을 수 없다는 것에 위축감도 들고, 결국 영희처럼 내 탓을 하게 되더라고요. ‘내가 좀 더 유명했다면’, ‘내가 좀 더 연출을 잘했다면’….”

2008년 <비포 앤 애프터 성형외과>를 연출할 당시 피디 세 명이 함께 작업하는 체제를 시도하는 등 자신감 넘쳤던 마음도 크게 위축됐다. “잘 안되면 어떡하지 그런 부담이 컸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연출은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해요. 근데 몇 년간 드라마를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게 전혀 없어요. 드라마 연출로서 자존감이 바닥난 제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조금씩 조금씩 해봐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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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월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도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올바른 방송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은 더 커졌다. 그는 “‘연출하게 해달라더니 저런 걸 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야 하니 좋은 드라마를 만드는데 더 많은 고민을 한다”고 말했다. 52시간 근무도 주요 관심사다. “이 드라마를 촬영하면서도 되도록 자정을 넘지 않고, 휴식 시간을 보장해 주는 등 좋은 근무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앞으로 사전제작 제로 가거나, 드라마 시간을 줄이거나, 시트콤 등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작품이 다시 활성화되지 않을까요?”

그는 <문화방송> 드라마가 정상화되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금방 오지는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돌아와서 느낀 건 지난 몇 년간 시스템이 정말 많이 망가졌구나 였어요. 그래서 이렇게까지 망가뜨린 지난 경영진에 더 화가 났어요. 그간 많은 피디들이 나갔어요. 남아 있는 피디들도 자괴감이 있고요. 올해부터 신인 연출들이 입봉을 많이 해요. 점점 좋은 드라마가 많이 나올 겁니다.”

마음껏 드라마 얘기만 하고 싶었는데, 인터뷰 내내 지난 ‘7년’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문화방송>처럼 그 역시 아직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영희가 아픈 정효를 구하려고 처음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던 것처럼, 그도 한발짝 한발짝 지난 시간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