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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5일 15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10월 15일 15시 26분 KST

내가 30년 전 성폭행 사건을 지금까지 고발하지 않은 이유

성폭력은 폭력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RHONDA POOLE
huffpost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가 30년 전 성폭행 사건을 고발하지 않은 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녀는 80년대의 강간 문화를 살아남은 피해자 중의 하나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반대하는 여성들(Women Against Violence Against Women)‘의 강간긴급센터는 강간 문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사회는 ‘강간하지마‘라는 교육 대신 ‘강간당하지마’를 가르친다.” 강간 문화는 지금도 활발하지만, 포드 박사를 지지하는 의미에서 이 글로 80년대를 기억하고자 한다.

나는 80년대에 강간당했다. 당시 만 14세였는데 상대방은 ”자기 아파트까지 있는 ‘쿨’한 친구의 친구”였다. 나는 강간당했다는 사실을 고발하지 않았다. 불행스러운 일이었지만 나만 겪는 일도 아니었을뿐더러 강간 행위 그 자체가 그리 고통스러운 건 아니었다. 강간의 가장 나쁜 면은 그런 범죄를 가능케 한, 게다가 그 사실을 홀로 조용히 참고 창피한 일로 여기게 하는 강간 문화였다.

성폭행은 재수 없는 누군가에게 재수 없는 날 일어나는 그런 일이 아니다. 폭행은 유일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폭행에는 전례는 물론 미래도 있다. 내가 성폭행을 당한 이유는 그런 행위를 아무 걱정 없이 할 수 있다고 역사가 남성들에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내가 그 사실을 폭로하지 않은 이유는 사회가 나를 그렇게 억압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30년이 지난 지금 와서야 강간당한 사실을 밝히는 이유는 바로 그런 강간 문화 때문이다. 캐나다 성폭행센터에 의하면 우리 문화는 지금도 성폭행 생존자보다는 그 가해자를 더 두둔한다. 뿐만 아니다. 폭력 범죄 중 오로지 성폭행만 증가하는 추세다.

사건 당일, 처음으로 술에 만취한 날이었다. 가지 말아야 할 곳, 하면 안 될 행위를 생각하며 흥분했던 기억도 난다. 나는 ‘착한 소녀’였지만 호기심도 많았다. 여느 십대와 마찬가지로 섹스에 대한 호기심도 높았다. 남자친구와 9개월째 사귀고 있었고 함께 서로에게 순결을 바치기로 약속한 바였다. 그런데 다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렇게 내 십대는 꼬이기 시작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 기억에서 빨리 사라지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강간이 잊히기는커녕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많은 친구를 가진 밝은 소녀에서 우울하고 괴롭힘당하는 외톨이로 변했다.

강간 생존자들이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캘리포니아 스테이트대 교수 코트니 아렌스 심리학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생존자들이 강간을 고발하지 않는 이유는 동료, 친구, 가족들로부터의 부정적인 반응 때문이다. 피해자는 이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믿어줄지, 이들로부터 자신의 탓이라는 소리를 들을지, 이들이 사건을 성폭행으로 인정할지를 걱정한다.

나는 나를 탓했다. 여성 섹슈얼리티에 관한 당시의 사회적 인식과 이에 대한 언어는 성폭행에 대한 자책을 요구했다. 어떻게 자신을 그런 상황에 처하게 했지, 모르는 남성의 집에서 만취된 상태로? 네 잘못이었겠지... 부모 말을 들었다면... 법을 잘 지켰다면... 극장에 같이 가자고 한 남자친구의 초대를 받아들였더라면... 파티를 좀 더 일찍 떠났더라면... 그런데 네가 그걸 바란 것 아니야? 섹스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리고 만취 상태인 내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상대방이 착각할 수 있는 말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만해’라는 나의 말을 그가 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내 남자친구에게는?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바람을 피운 것‘일까?... 쓰레기?... ”헤픈 여자”만 그런 ”상태”에 빠진다... 영화 ‘아직은 사랑을 몰라요‘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처럼 말이지... 쓰레기... 여성들은 ‘섹시’하게 구는 다른 여성을 그렇게 부르지 않는가... 엄마는 그런 여성은 문제를 자초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자신의 행동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나 생기는 일이라고 했고... 내 잘못이라고 했고... 내가 더 책임감 있게 행동했다면... 그렇다면 그냥... 그냥... 그냥... 그냥 침묵하고 말지...

그러나 강간당한 사실을 누구에게 밝히지 않았다고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회가 세운 성적 기준에서 벗어난 80년대 여성은 극심한 괴롭힘을 감수해야 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남의 섹스 정보를 악용하는 여학생들이 많았다. ‘포스: 강간 문화를 뒤엎다’라는 책에 따르면 성폭행 수용과 지속에 이바지하는 언어, 이미지, 체계 등의 강간 문화가 자기 신체에 대한 여성의 주권을 앗는다. 여학생들은 자기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다른 여성을 재정의하며, 그 결과 피해자 여성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주권을 가진 모든 이와 자기가 동등한 인격체라는 사실을 상실하게 되었다. 

내가 ”어떤 남성”에게 순결을 잃었다는 소문, 남자친구를 두고 ‘바람을 피웠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나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농담조‘로 부르기 좋고 웃음을 자아낼 수도 있는 악칭이었다. ‘쓰레기’라는 말로 새로 정의되면서 나는 나를 정의할 능력을 잃게 되었다. 그 결과 친구들도 잃었고 성적도 떨어졌다. 툭하면 학교를 빠졌고 아무 일에나 핏대를 올렸다. 선생님과 가족 관계가 무너졌고 남자아이들은 하나 같이 나를 쉬운 섹스 대상으로만 여겼다. 끊임없는 괴롭힘에 시달리다 결국 전학을 했다. 강간을 계속 당하는 느낌이었다.  

성교육이 거의 없었던 80년대를 지낸 십대는 사실 섹스에 대해 무지했다. 눈먼 상태에서 ‘아직은 사랑을 몰라요’나 포르노 잡지에 대한 설명을 근거로 섹스라는 세상을 더듬어 알려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강간당한 게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당시 깨닫지 못한 건 무리가 아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쯤 나는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불안감으로 똘똘 뭉친 여성이었다. 자존감을 되찾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내 ‘더러운 비밀’이 혹시 새어나가 다시 피해를 보게 될까 봐 내 십대 삶을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이렇게 정신을 차리고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지안 고메시 사건 때문이다. 고메시 사건과 최근에 있었던 브렛 캐버노의 연방대법관 공청회를 통해 우리는 아직도 포식자를 두둔하는 반면 여성의 침묵을 기대하는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섹스 범죄를 줄이려면 섹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왜냐면 성폭력은 폭력 행위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허프포스트CA의 글을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