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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4월 17일 16시 54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17일 16시 57분 KST

퀴어 하위문화의 현장과 성노동 운동 : 활동가 도균님 인터뷰①

huffpost

터울 : 어려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도균 : 아닙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 2017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TDOR) 행사 중 도균님 발언 (2017.11.18)

트랜스젠더퀴어 정체화 과정  : ”몸을 생각하는 방식이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터울 : 우선 트랜스젠더퀴어로 현재 정체화중이신데, 유년기나 사춘기 때부터 그렇게 정체화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으셨다고 들었거든요. 어쨌든 본인이 이성애자가 아닌 어떤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도균 : 어릴 때부터 미묘하게 그런 게 없지는 않았어요. 예를 들어 엄마 화장품으로 화장을 한다든가, 동생 치마를 뺏어서 입는다든가, (웃음) 이런 짓들을 하긴 했는데, 

터울 : 게이들에게도 매우 흔하게 나타나는 에피소드죠. 

도균 : 그렇죠. 중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남학생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한 3년 정도 집착했는데, 그 때 혼자 드라마를 엄청 찍으면서 나는 아마도 동성애자인가보다, 그리고 저는 되게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난 이걸 평생 숨겨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이랑은 만나지도 못할 거고, 비밀로 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살다가, 고3 때 첫 섹스를 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러다가 정신 팔려서 재수를 하게 됐는데, 재수를 했던 곳이 말하자면 그 지역에 게이 공간이 있는 곳 주변이었어요. 그곳에서 재수를 했는데, 제가 첫 섹스를 했던 그 상대와 안좋게 끝나고, 그 때는 퀴어 단체나 이런 것에 접근할 수 있는 제반 환경이 아니었고. 그래서 저는 그 때 어쩌다 인터넷으로 만나서 원나잇 했던 아저씨한테, 거기 게이 천지 아니냐는 얘기를 듣고 게이 술집에 들어갔는데, 너무 비싼 거예요. (웃음) 돈이 없으니까, 두부 안주 하나 시켜놓고, 맥주 한 병 시켜놓고 마시는데, 그 아저씨가 안돼보였는지 잡지를 두 권 주셨어요. 잡지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성소수자 인권 어쩌구 이런 내용이 담겨 있는 잡지였고, 그걸 읽고 iSHAP이 있는 걸 알게 되어서, iSHAP에 가서 가이드북을 받고, 거기 가이드북에 있는 DVD방에 가서 섹스를 하고, (웃음) 크루징을 하면서 일종의 그런 생활을 시작했고요.

터울 : iSHAP이 굉장히 중요한 허브였군요.

* iSHAP(아이샵)은 Ivan Stop HIV/AIDS Project의 약자로, 사단법인 한국에이즈퇴치연맹에서 200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동성애자에이즈예방센터의 명칭이다.

도균 : 굉장히 중요했죠. 그러고 이제 서울에 와서 대학 입학하고 개강하자마자 성소수자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그래서 동아리 활동을 했었는데, 이상하게 좀 다른 거예요. 지금이면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트랜스젠더인 것 같은데?’ 라는 고민을 했죠. 그런데 저는 트랜스젠더라고 고민을 하면서도 뭔가, 제가 젠더 표현을 막 엄청 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되게 부정적인 반응들이었어요. 주변에 있는 성소수자 동아리 사람들도. 

터울 : 그런 고민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던 거군요.

도균 : 네, 그래서 ‘너는 되게 가방도 그렇게 더럽게 하고 다니는데 네가 무슨 트랜스젠더냐‘, ‘너는 이성애자 하고 싶어서 트랜스젠더 하려는 것 아니냐’, (웃음) 이런 말들부터 시작해서, 좀 부정하는 말들을 듣다가, 이후에 젠더퀴어로 정체화로 하게 됐죠.

터울 : 그러면 트랜스젠더로 정체화를 하셨던 그 시점에서, 보통은 트랜스젠더들이 자신에 대해 디스포리아(dysphoria, 위화감)을 겪잖아요. 어떤 포인트에서 그런 디스포리아를 겪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도균 : 음... 그 당시 알고 지내던 트랜스젠더가 했던 말이 너무 와닿는 말이었는데, 비 오는 날 젖은 청바지를 입었는데 벗을 수가 없는, 그런 기분이었어요. 공중목욕탕에 가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있는 건 너무 불편하고, 누가 내 몸을 보는 게 싫은 감정이 들어서, 새벽 시간에 가가지고, (웃음) 할아버지들밖에 없을 때 그 때 슬쩍 들어가서 목욕을 하고 나오고, 

터울 : 할아버지는 나름 괜찮았던 건가요.

도균 : 조금 편했어요. 그리고 그 때 제가 유일하게 편했던 게, 게이들이 오는 휴게텔이나 이런 데서는, 섹스에 대한 긴장감이 있으면, 오히려 또 아무렇지 않은 거예요. (웃음) 그래서 약간 더 그런 데들을 돌아다녔어요.

터울 : 거기가 더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도균 : 네, 아마 그런 데서 제가 이쪽 생활을 시작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되게 편안하게 느껴지고, 거기서 그렇게 만나면 몸 자체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상대방의 주름을 보면서, 이 사람은 평생 이런 표정을 지으면서 살았나보다, 굳은 살이나 그것의 위치를 보면서 이 사람은 어떤 일을 주로 했나봐, 이런 걸로 대화하고, 내 몸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러다보니까 어느 샌가 몸이 편해지더라고요. 

터울 : 그러면 그런 노인을 좋아하는 성적 취향과, 본인에 대해 느끼는 디스포리아가 어느 정도 연결 지점이 있는 건가요?

도균 : 좀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몸을 생각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거든요. 저는 주로 노인들과 많이 하고 다녔는데, (웃음) 그 사람의 인생이 몸에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기록되고 역사가 몸에 남는데, 몸 자체가 하나의 어떤 역사적 기록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의 몸에 대해서도, 예를 들면 수술을 하거나 트랜지션을 하면 내가 없어지고 버릴 몸이 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게 연결된 서사로서 생각되기 시작하는 거죠. 그 안에서도 크루징하는 사람들 만나다보면 CD(크로스드레서), 뭐 이런 사람도 만나고 온갖 종류의 사람을 만나면서, 이걸 설명하는 방식이 꼭 섹슈얼리티는 무엇이고 젠더는 무엇이고 이렇게 설명해야 될까-란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가 젠더퀴어라는 표현을 접하면서 젠더퀴어로 날 설명해볼까-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터울 : 그런 낯선 몸들과 조우하는 것, 그것과 동시에 본인의 몸에 대한 어떤 낯설음의 경험이 거기에 원체험으로 끼어있었던 거네요, 결과적으로는. 

도균 : 저는 있었던 것 같아요.

터울 : 그리고 그게 디스포리아였던 거군요. 그러니까 이 얘기를 안 하면, 이성애자 남성으로 패싱될 법한 외모를 갖고 계시기 때문에, 거꾸로 오해를 많이 받으실 것 같아 재차 여쭤본 거였어요.

도균 : 저는 그래서 일부러 더 그러는 게 있어요. 치마를 입지만 다리를 제모하지 않는다든가, 제가 생각하는 어떤 식의 편한 젠더 표현들을 하지만, 일부러 더 면도를 제대로 안한다든가, 그럼으로써 사람들한테 그런 긴장감을 주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오히려 약간. 

터울 : 그게 어찌보면 스스로가 갖고 있는 긴장감의 투사일 수도 있을 것이고, 

도균 : 그렇죠. 

터울 : 네, 이해가 어느 정도 되네요.

▲ 부산 범일동 iSHAP.

학내 성소수자 동아리 활동과 총여학생회 선본과의 만남 : ”저는 형이란 표현을 쓰고 싶지 않았어요”

터울 : 그리고 대학교 들어가셔서 성소수자 인권운동 단체에 들어가셨는데, 회장을 하셨다는 걸 듣고 놀랐어요. 

도균 : 네, 회장을 했었어요, 2010년에. 

터울 : 대학은 그럼 언제 들어가신 거예요?

도균 : 2009년이요. 

터울 : 어떠셨어요? 저는 사실 상상이 잘 안돼요. (웃음) 회장을 하셨다는 게,

도균 : 최악이었죠. (웃음) 일단 게이 선배들의 무리와 전혀 친하지 않았고, 그 선배들이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그 선배들이 원했던 후보는 제가 아니었고, 그런데 제가 친했던 레즈비언, 여성 회원이 제게 몰표를 줬고, 1표 차로 제가 당선이 됐어요. 그랬는데 저는 막 눈치를 보는 사이에, 제가 눈치보는 것에 대해서 여성 회원들이 실망해서 동아리를 떠났고, 저는 거기에 남아서 1년을 버텼죠. 

터울 : 게이 선배들이랑 친하지 못하게 지냈던 이유가 어떤 게 있을까요?

도균 : 제가 아까 말했던, 저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야기들을 가장 많이 했던 게 그 사람들이기도 했고요. 그 사람들은 형, 동생, 이렇게 부르고, 같이 게이문화를 공유하면서 친해지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데, 저는 거기서 어긋나는 지점이 있었고, (웃음) 저는 형이란 표현을 쓰고 싶지 않으니까, 그런데 오빠라는 표현도 쓰기가 싫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선배’라고 했는데 그런 걸 이제 거리감을 느끼는구나-라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터울 : 2010년에도 그런 문화가 있었군요. 

도균 : 그래서 저한테 막 ‘선배라고 부르지 말고 멀게 느껴지니까 형이라고 불러’, 제가 몇번이나 커밍아웃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웃음) 그런 상황들이 있었고,

터울 : 성별정체성에 대한 인정을 거의 못 받으셨던 거군요.

도균 : 당시에 졸업생이나 활동을 거의 안하는 분들을 제외하고, 활동하는 재학생들 중에 트랜스젠더라고 정체화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기도 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그리고 바이섹슈얼이나 트랜스젠더에 대한 몰이해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게이였고, 나머지는 거의 레즈비언들이었어요.

터울 : 성소수자 대학동아리에서의 게이 헤게모니 문제는 요즘도 심심찮게 불거지고 있죠. 

도균 : 네, 그러다가 저는 총여학생회 선본 친구들이랑 친하게 지냈죠. (웃음)

터울 : 그 때 페미니스트인 여성들과 많이 친하게 지내셨을 텐데요, 그 때는 어떤 느낌이셨을까요.

도균 : 거기에 이미 비수술 트랜스젠더 여성인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자신이 비수술 트랜스젠더라고 써놓은 글을 봤었고, 그게 그 시기에 저한테 굉장히 위안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 때 상대 총여 선본이 기독교쪽이었는데, 그 쪽에서 요즘 표현으로 말하면 ‘빻은’ 말을 많이 해서 반박하는 대자보를 제가 썼었어요. 그 때 대자보를 쓰면서 성소수자 동아리의 이름을 걸었는데, 그 당시로서 저는 걱정이 되는 거예요. 내가 혹시 이런 걸 괜히 썼다가, 페미니즘 총여 선본이 떨어지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 있었고, 걱정이 돼서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갔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너무 좋다고, 그런 걱정 왜 하냐고, 쓰라고 해서 위안을 받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미묘한 괴리감이 없진 않았는데, 그 당시에 다들 뭐 페미니즘을 그렇게 아주 많이 공부한 것도 아니고, (웃음) 언어가 많지 않으니까, 그냥 우린 비슷한가봐-라고 생각했어요.

터울 : 그들 사이에서는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많이 인정받으셨던 편이었어요, 총여 사람들이랑은?

도균 : 어쨌든 그 동아리에서보다는 훨씬 더 승인된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건 있었어요. 예를 들어 미국에서 예전에 여성들만을 위한 음악축제에서 트랜스젠더들이 입장 거부당하는 사례들을 읽고, 이거 너무 부당하지 않냐고 제가 화를 내면, ”도균은 왜 그걸 이해 못해?” 이런 반응을 하는 거죠. (웃음) 그러면 저는, 지금 같으면 ”너는 왜 날 이해 못해?” 라고 얘기할텐데, 당시에는 아 내가 잘못했나보다, (웃음) 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상대도 그 상황에서 그 얘기가 자신과 분리가 안되고, 저와는 연결이 안되는 상황에 있었던 것 같아요.

▲ 1962년 1월 20일 제정·시행된 군형법의 계간죄 조항.
▲ 2009년 11월 2일 개정·시행된 군형법의 계간죄 조항.
▲ 2014년 1월 14일 개정·시행된 군형법의 항문성교 처벌 조항.

군대에서의 디스포리아 경험과 성노동 시작의 경위  : “7달만에 80kg에서 57kg까지 살이 빠졌어요”

터울 : 성노동자이시잖아요.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도균 : 제가 성노동자인 것의 맥락을 다르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20살 때 공원에서 크루징하고 DVD방 가고 이러면, 아저씨나 할아버지들이 작게는 5천원 주면서 차비 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DVD방에서 만났는데 같이 모텔을 가요. 그러고 이제 나오면서 자기같이 나이든 사람이랑 놀아줘서 너무 고맙다고, (웃음) 보통 사람들이 잘 안놀아주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그런데 저는 좋으니까 같이 놀았는데, 고맙다면서 5만원씩 막 줘요. 그럼 저는 ‘제가 이런 것 받으려고 한 건 아닌데’ 이러면서 받고. (웃음) 받아서 그걸로 다시 DVD방을 가고, 술집은 비싸서 못 가지만 휴게텔 같은 데 가서 거기서 또 사람 만나고 그렇게 했던 것 같고.  또 다른 맥락으로는, 정신질환 때문에 제가 군대 훈련소에서 퇴소를 당했어요. 

터울 : 그 때가 몇 년도였나요.

도균 : 2011년이었어요. 그런데 그 때 제가 상태가 많이 나쁘다고 해서 나가라고 해서 나왔고, 3주간 폐쇄병동에 입원을 했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 7년 가까이 치료를 계속 받고 있는데, 그 때는 환청을 듣고 너무 심했어요. 막 죽으라는 얘기가 들리고 이랬는데. 그 시기에 가족들 입장에서는, 그냥 대학 잘 가서 잘 다니던 애가 어느날 갑자기 군 문제 생기더니 제대로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러니까, 걱정돼서 돈을 안주는데, 그 당시에 제가 퀴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서울에 오는 것밖에 없고, 애인도 서울에 있고, 페미니스트 친구들도 다 서울에 있으니까, 저는 이제 또 서울에서 집이 머니까, 한두달에 한번이라도 서울에 와서 그 친구들을 만나지 않으면 진짜 죽겠는데,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갈 돈이 없는 거예요. 

터울 : 그럼 그 질환이 생기게 된 시점이 언제였나요.

도균 : 조울증은 이전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대학 다닐 때도 12시간 이상 매일 자거나, 칠십 몇 시간씩 깨있거나 이럴 때들이 있었고, 그리고 기복이 되게 심한 편이었는데, 군대 훈련소의 경험이 저한테는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 당시에 저는 목욕탕에도 제대로 못들어가던 시기였는데, 아주 좁은 공간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라는 거예요. 몸이 다 이렇게 맞닿는 공간인데. 그래서 저는 이제 안 씻었어요, 닷새동안. (웃음) 그런데 죽을 것 같은 거예요. 여름에 가까워지는데 땀은 나고, 이래가지고 내가 자대까지 가면 2년간 이러고 살 수는 없고, 그것뿐만 아니라 잠자는 공간, 생활하는 공간이 다 붙어있고, 거기에 어떤 마초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위기에도 적응을 전혀 할 수 없고, 거기다 그 당시에 애인이 있었는데, 애인이랑 제가 휴가 때 나와서 섹스를 하면 제가 잡혀간다는 거예요. 

터울 : 그 정보를 언제 알게 되셨어요? 들어가서?

도균 : 들어가서 공군에서 이제, 거기서는 시험을 잘 치면 좋은 자대로 배정을 받는다고 해서, 계간죄 이런 얘길 듣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몰랐는데, 시험을 친다니까 그 책자를 보면서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전 좋은 델 가고 싶으니까. 그런데 거기에 보니까 문제 중에 하나가, ”사병이 나와서 동성간 성관계를 했을 경우에 상대가 된 일반인은 처벌을 안 받는다”에 대한 문제가 있었어요. 저는 처벌을 받고. 그런데 저는 그 문제를 푸는 순간 안도를 하는 거예요. 내 애인은 안 잡혀가겠네-란 생각을 하니까. 그러고 있는 순간들이 너무 끔찍했고, 그러고 있다 공군훈련소를 나오게 됐죠.  이후에 한번 더 공익 훈련소를 갔는데, 거기서도 너무 끔찍했어요. 제가 남성간 성행위를 한다는 이런 정보가, 상담과정에 있던 게 거기로 전달이 됐고, 

터울 : 어디에서 받았던 상담 내용이, 

도균 : 처음에 훈련소에 들어갈 때 비밀을 유지해준다고 했을 때, 그 말을 믿어선 안됐는데, (웃음) 비밀을 유지해준다고 하니까 난 이런 게 있는데 너무 힘들다, 

터울 : 군에서 그런 상담을 받으셨군요. 

도균 : 네, 훈련소 들어간 첫날에 한쪽에서 1:1 분위기로 얘기하게 해주면서, 비밀 유지가 다 된다고 얘기를 했는데, 그 말을 믿었어요. 정말 바보같았던 거죠. (웃음) 그랬더니 다음 날 갑자기, 아침에 조례 때 수백명이 서있는데 조금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이 든 군인이 부르는 거예요. 그러더니 저보고, 남자랑 섹스를 하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제가 한다고 했더니, 얼마마다 섹스를 하냐며, 너는 넣는 쪽이니 받는 쪽이니, 이런 걸 묻는 거예요. 앞으로 하냐 뒤로 하냐 이런, 굉장히 모욕적인 질문들을 받았고, 나중에 나오고 보니까 그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다 금지를 권고한 건데, 거기서는 다 소용이 없는 거죠. 그런 얘기를 듣고,  심지어 제 컵을 누가 훔쳐가는 상황에서 물을 못 마셔서, 컵을 달라는 이야기를 하기가 무서워서 물을 못 마셔서 약을 못 먹었어요. 그래서 밤새 환청을 듣고 못 잤는데, 아침에 그 얘기를 하고 군의관을 만나고 싶다고 했는데 접견이 거부되었고, 그 얘기를 하고 나니까 옆에 있던 훈련생들이 저한테 와서, ”야, 죽으라고 얘기를 하면 그러지 말라고 얘기를 해야지” 이러면서 놀리는 거 있잖아요. 되게 빈정거리는 거죠. 그리고 제가 공황발작이 중간에 한번 와서 훈련받던 도중에, 아무 별 것 아닌 훈련이었어요. 그냥 줄 맞춰서 서는 훈련이었는데, 그 도중에 막 주저앉아서 벌벌 떨고 있어서 거기서 빠졌는데, 그걸 빠지는 것부터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거죠. 쟤는 뭔데 왜 저걸 빠져- 이렇게 되니까. 저를 보면서 ”어, 안 죽고 살아있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죠. 그런 상황들을 총체적으로 겪다가, 사흘만에 바깥에 나오면서 엉엉 울면서 퇴소한 거죠. 다른 사람들은 다들 그냥 심드렁한 표정으로 퇴소하는데, 저만 울면서 퇴소하는 거죠. (웃음) 그런 상황을 겪고 신체검사를 여섯 번을 더 받았는데, 재신검을. 그 모든 과정이 저한테 너무 끔찍하고,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고, 두려운 거죠. 그 상황에서 정신질환이 점점 악화되면서, 환청이 들리고 이명이 들리고 망상이 들고, 뭐 차를 타면 공황발작 쇼크가 온다든가, 사람들이랑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갔고,  그 때 몸무게가 80kg 정도였는데, 57kg까지 7달만에 살이 빠졌어요. 그 때는 정말 걷고 말하는 것도 제대로 못했는데, 알바를 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그 상황에서. 그리고 그런 자식에게 부모들이 돈을 많이 주지 않죠, 어쩔 줄 알고. (웃음) 그런데 저는 한두 달에 한번은 무조건 서울에 와야겠는 거예요. 그 때 이제 성노동을 했었어요. 소액을 받았는데, 그거라도 몇 번 받으면 그 당시 저한테는 그렇게 잠깐 와서 페미니스트 친구 얼굴을 잠깐 보고, 퀴어 친구 얼굴 잠깐 보고, 애인 얼굴 잠깐 보는 게 유일한 희망? 그걸 기다리고 한 달 사는 거죠 뭐. 그랬던 것 같아요. 

▲ 퀴어이론문화연구모임 WIG, , 사람생각, 2008.

부산에서의 퀴어 관련 사회적 자원의 변화 : ”어떤 중년분이 부스 앞에서 결국 말을 못 걸고 가는 걸 봤어요”

도균 : 그 때 그래서 부산에서 뭐가 그런 게 너무 없어서 퀴어 책읽기 모임을 만든 적이 있었어요. 한 대여섯번 실패하고 마지막에 겨우 만들어서,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라는 책을 한 반년 정도 읽었는데, 반년 뒤에 흐지부지되고, 저도 서울로 올라왔고, 그거 할 때도 사람 모으는 게 너무 쉽지 않았고, 몇 명 모이지도 않았는데, 그것도 이제 많이 와야 3명 오고, 어떨 때는 2명 오고, 어떨 땐 저 혼자 가고 그랬었어요. 

터울 : 당시 부산에서 퀴어 관련 사회적 자원이 없음을 실감하셨던 거군요.

도균 : 그 때는 너무 없었죠.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에 부산 퀴어문화축제 갔을 때 여행자 깃발 들고 흔들고 막, (웃음)

터울 : 되게 기분이 새로우셨을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안 갔거든요. 저도 부산 사람인데, 얼굴 팔릴까봐, (웃음)

도균 : (웃음) 저는 진짜 부산에서의 기억을 정말 닫고 살았어요. 그걸 생각하고 싶지가 않았는데, 퀴어문화축제 가서 원피스를 입고, 여행자 깃발 들고, 저도 그 때 범일동 술집 가서 책자 두 권 받은 걸 막 지하철 화장실에 숨어가지고 막 보다가 집에 못 들고 가고, 너무 죄스러운 마음을 느끼면서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오고 이랬는데, 그날 부스를 서는데 여행자 책자를 어떤 분들이 와서 사지를 못하고 막 보고 있는 거예요. 그게 너무... 제 경험이랑 분리가 안되는 거죠. 그리고 어떤 중년분이 오셔서, ”힘내라, 그리고 부럽다” 이렇게 쓰고 가는데, 아 너무 죽겠는 거죠. 그런데 그 분이 막 친구사이 부스 앞에도 왔다갔다 하다가 결국 말을 못 걸고 가는 걸 보는데 막... 그게 저한테는 너무너무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터울 : 그러셨군요. 술 먹고 싶네요 갑자기. (웃음)

성노동 현장에서 조우한 퀴어 하위문화 : ”게이 문화에 들어갈 수 없는 게이, 혹은 게이-아닌 어떤 존재가 있는 거죠”

터울 : 그렇게 해서 성노동을 시작하시게 됐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제가 ‘퀴어 하위문화’라고 이름붙이긴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의 성노동에 몇 가지 특징들이 있는 것 같아요. 거의 1:1로 계속 만나신 거잖아요. 알선책을 거친다든지, 그런 건 아니었던 거죠?

도균 : 네, 업소에서 일한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터울 : 그러다보니 상대방이 정말 랜덤하게 골라지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진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셨을 것 같아요. 말씀하실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 사람들에 대해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도균 : 그런 경우도 있었어요, 되게 부자인 게이들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짜증나는데, (웃음) 부자인 게이 몇 명이, 대기업 다니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만 조그만 그룹을 만들어서 노는 거예요. 그 밖으론 절대 안 나가고. 그 안에서 이제 자기들끼리 연애는 못하니까, 젊은 대학생 아이들을 골라서 돈을 주고 만나면서 자기들끼리 파티하고 노는 거죠. 그런 데 갔다온 경험도 있었고, 아니면 정말 쪽방촌에 살고, 내가 이 아저씨한테 돈을 받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 일인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웃음) 그런데 그 아저씨는 자기가 저한테 돈을 지불할 수 있음이 너무 중요한 사람인 거죠. 그런 관계에서 제가 음식을 해서 싸가지고 쪽방촌으로 만나러 가고, 그렇게 만났던 사람도 있었고.  되게 폭력적인 사람도 있었고. 아웃팅 협박하고, 강간하고, 때리고 이런 사람들도 있었고, 

터울 : 네, 그 얘기는 이따 따로 여쭤볼 게요. 

도균 : 네, 또 좋았던 사람들도 있었어요. 저는 단골 장사 좋아하거든요. (웃음) 단골 장사가 제일 안전해요. 자주 보고, 감정적인 교류가 어느 정도 생기면. 그렇게 되다보면, 만나는 할아버지들 중에 발기가 안돼요. 이 사람은 섹스가 목적이 아닌 거예요. 친밀감의 관계를 누군가랑 맺고 싶고, 그런데 어떤 게이 문화로 들어갈 길이 도무지 없는 사람들이고, 돈은 조금 있고, 정말 저를 데리고 아울렛 같은 델 가서 옷이고 가방이고를 다 사줘요. 그 자리에서 수십만원어치를 다 긁어요 그냥. 그러면서 그냥 제가 좋은 옷 입고 좋은 가방 메는 게 좋은 거예요, 그 사람들은. (웃음) 그러고 섹스는 안하고, 제가 오르가즘을 느끼는 과정까지를 즐거워해요. 그냥 같이 안고 있고, 제가 사정하는 거 보는 걸 좋아하고, 보통 같이 만나면 밥먹고, 술마시고, 여행 가고, 보통 우리가 데이트에서 하는 것들. 그걸 하면서 되게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물론 그 중에 그렇게 돈많은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단골 장사를 주로 많이 하고,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조건만남 같은 식으로 빠르게 바텀알바 같은 걸 하는데, 그건 돈이 별로 안되죠.

터울 : ‘퀴어‘가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때, 아까 말씀하셨던 게이 헤게모니에서 적응할 수 없는 것, 트랜스젠더퀴어가 갖는 일정한 퀴어성은 정체성 차원에서의 ‘퀴어‘인 거고, 문화 차원에서의 ‘퀴어’는, 게이 문화에 들어갈 수 없는 게이, 혹은 게이-아닌 어떤 존재가 있는 것인데, 예를 들면 노인을 좋아하는 사람도 퀴어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어떤 의미에선 이해받지 못하고, 이런 것들이 있는 셈이어서. 

도균 : 그런데 저는 그걸 ‘퀴어’라고 부르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 어떤 힘들이 작동하고 있고 그게 어떤 구도를 만드는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되게 그런 욕망들을 느껴요. 저랑 얘기하는 사람들이, 제가 나이든 사람을 좋아하고 만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낭만적으로 보거나 좋게 보려고 하면서, 제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욕망은 굉장히 추악하고 더러운 것으로 보고 싶어하는 거죠. 자기보다 스무 살, 서른 살 어린 사람을 만난단 말이야?-라고 생각하는 그 욕망들이 날것으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 그러니까 젊은 청년과 만나고 싶어하는 노년의 욕망을, 거기에 물론 권력 구조가 개입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 구조만으로 제가 만난 그 수많은 나이 든 온갖 아저씨, 할아버지를 다 설명할 수 있나 생각해보면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터울 : 그러니까 그런 구조가 있긴 한데, 계급이나 계층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것만이 전부일 수는 없다는 거군요. 

도균 : 네. 

터울 : 알겠습니다. 더불어 기억에 남는 성구매자와의 에피소드를 하나만 더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도균 : 구매자 분들이, 특히 단골 손님이 되면, 저와의 관계를 어떤 거래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해요. 그 사람들은 이건 용돈이야-같은 식으로 생각하고 싶어하고, 그래서 오히려 돈의 금액을 높게 받을 수 있다기보다, 돈은 그냥 어느 정도로 받으면서 선물 같은 걸 받기가 되게 좋아요, 오히려. 약간 네가 너무 추울 것 같아서 이 외투를 사주는 거야-라든가, (웃음) 네가 너무 신발이 낡아보여서 너한테 새 신발을 사주고 싶어-라든가, 저 지금 끼고 있는 안경도 그렇고, 제가 걸친 대부분의 것들이 선물받은 것들인데, 그런 식으로 필요한 것들을 좀 충당하는 편이거든요. 저는 그럴 때 그 사람들에게 어떤 욕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관계는 돈으로 딱딱 얘기될 수 있는 관계는 아니고, (웃음) 그리고 이런 낙인이 저한테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자리를 빌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웃음) 저 예전에 이쪽 사우나에 갔다가 어떤 분과 굉장히 만족스런 섹스를 하는 도중에, 그 분께서 갑자기 ”너는 퀴어문화축제나 이런 거 나오는 거 어떻게 생각해?” 라고 얘기를 해서, 저는 되게 쫄아서 약간 부정적인 생각은 안해요, 이런 식으로 얘기했는데, 친구사이 활동을 하셨다고 얘기했고, 

터울 : 지금도 활동하시는 분인가요? (웃음)

도균 : 잘 모르겠어요. <종로의 기적>에 얼굴 안나오고 출연하셨다고 들었는데, (일동 웃음) 그런데 그 순간에, 저도 저 트랜스젠더퀴어고 성노동운동해요~ 라고 얘기하면 좋겠는데, 그 분은 그냥 우리 둘다 이런 거 물고빨고 즐기다가 나 운동하는 사람이야-라고 얘기했는데, 제가 그 순간에 제가 하는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니까, 방금까지 너랑 물고빨고 하던 애는 사실 성노동자야, (웃음) 그리고 나는 치마 입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이런 걸 얘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되게 애매하게 잠들길래, 자고 일어나서 빨리 튀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자고 일어나 나오려고 하는데 저랑 같이 따라나오시고, 막 되게 잘 대해 주시고, 한번 더 보자 그래서 차마 어떻게 거절을 못해가지고 한번 더 보고, 그 때 되게 재미없게 굴어가지고 그냥 연락이 끊겼는데요, (웃음)  이후에 모 단체의 후원주점에 갔다가 제가 치마입고 들어갔는데 그분이 건물 밖으로 나오다가 마주쳤는데, 그 때 굉장히 정말 죄지은 기분이 들면서 약간, 죄송하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번 기회를 빌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웃음)

터울 : 잘못했다는 느낌이 왜 드셨어요?

도균 :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 속이지 않았는데 나는 속였다는 점 때문에요. 그 분은 그 상황에서 배신감을 느꼈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

성노동 현장에서 바라본 성구매자 처벌과 변화의 논리 : ”성노동 비범죄화를 위해서는 성구매자 문화의 변화가 필수적이에요”

터울 : 저는 이성애 성매매와 퀴어 성노동이 다른 이유가 세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제 생각이에요, 이건. 뭐 틀릴 수도 있고요. 양자가 결과적으로는 이어지는 것일 수 있겠지만, 어쨌든 퀴어 성노동은 제도로서의 이성애 성매매가 아닌 것 같아요. 제도로서의 이성애 성매매의 설명에 따르면, 첫째로 ‘창녀‘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정숙한 가정주부‘가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고, 따라서 ‘창녀’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성매매 제도와 가부장제 체제 안에서 구조적으로 위치지워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두 번째는, 이성애 성매매를 매개하는 체계 자체에 국가와 자본이 너무 깊게 개입한다는 특징이 있고요. 세 번째는 그렇기 때문에 이성애 성매매에서 남성 성구매자가 벌이는 굉장히 자의적인 폭력들이 구조적으로 창출된다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퀴어 성노동의 경우, 제도로서의 이성애 성매매의 특징이 되는 이 세 가지 지점 전부에서 해당이 안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거든요. 

도균 : 그런데 저는 성노동 현장에도 폭력이 되게 많다고 생각해요. 

터울 : 그렇군요. 그럼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말씀해주세요.

도균 : 네, 우선 퀴어 성노동에도 제도화된 부분이 있죠. 초이스 되는 가라오케나 이런 데서 일하는 분들도 많이 있고, 여성을 상대로 일하는 남성 성노동자도 있는데, 그걸 다 제껴놓고 이야기하자면, 폭력이 굉장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죠. 일단은 어쨌든 이것도 처벌을 받게 되는데, 알려질 경우 처벌이 되지만 약간 사문화되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저같은 사람의 업종에서는. 그런데 그럴 때, 구매자 측에서 ”쟤가 감히 어떻게 뭘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느껴요, 저를 대하는 태도에서. 

터울 : 협상력이 없다고 판단하는 거군요. 

도균 :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아니면 내가 얘를 건든다고 해서 나에게 뒷탈이 생기지 않을 거야-라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네가 경찰을 부를 거야 어쩔 거야?-라는 마인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래서 보통 어떻게든 친밀감을 쌓으려고 하고, (웃음) 이걸 쌓는 게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아니면 정말 저는 오히려 저의 힘을 드러내기보다, ”내가 이렇게 약한데 네가 나를 때릴 거야?” 같은 식의 방법을 취할 때가 있어요. ”네가 나를 때리면 너는 정말 인간쓰레기 같은데?” 같은 생각을 느끼도록 만들면, 사람들이 생각보다 그렇게 함부로 굴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터울 : 네, 이런 사례에 대해 고통스러우시겠지만 조금만 더 사례를 구체적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잘 모를테니까요, 낯선 경험이고. 

도균 : 제 주민등록증이나 이런 걸 보게 된 사람이 그걸 찍어서, 너희 집에다가 네가 이런 일을 한다는 걸 알릴 거야,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러니까 네가 나를 한달마다 만나서 나랑 섹스를 해라-라든가, 이런 종류의 요구? 이건 협박이죠 그냥. 실제로 그런 협박 때문에 강간을 당한 적도 있고요. 돈을 주고받고 SM 플레이를 하기로 약속했는데, 이게 제가 묶여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태도가 돌변해가지고 제 몸 사진을 찍는다든가, 갑자기 강압적으로 행동을 한다든가, 그랬던 경우도 있었고요. 돈 안 주고 튀는 경우들이 많이 있었어요. 처음에 많이 당했는데, 지금은 다 선불로 받아버리지만, 돈 안 주고 계속 말 빙빙 돌리다가 섹스하고 튀거나, 아니면 샤워하러 들어간 사이에 지갑을 훔치고 튀거나, 아니면 네가 나를 한 다섯 번 만나면 내가 너한테 다섯 번마다 얼마를 줄게-라고 얘기하고 네 번 만나고 연락 두절되고 사라져버리거나. 그럴 때마다 약간, 경찰을 부르고 싶죠. (웃음)

터울 : 그래서 저는 사실, 그런 폭력적인 경우에 있어서 구매자를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성노동 운동의 입장은 구매자 처벌을 하면 안된다는 것인데, 그 차이와 간극에 대해서 설명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도균 : 구매자 처벌 자체가 안된다기보다, 구매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이 안에서 그런 폭력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런 폭력과 문제를 일으킨 얘네를 처벌해야 된다는 쪽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그냥 구매자를 다 처벌하면, 장사를 할 수가 없거나, 어떤 경우엔 구매자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줘야 겠죠. 지금은 예를 들어 판매자를 함정수사하고 단속하는 경우에 미루어봤을 때, 구매자를 처벌하게 될 경우에 일어날 일들을 생각해보면, 네가 경찰이 아닌 걸 입증해봐, 네가 성노동자인 걸 입증해봐, 내가 너한테 이걸 하고도 뒷탈이 안난다는 걸 입증해봐, 아니면 네가 나한테 굉장히 유리할 수 있게 여기로 와-같은 식의 요구를 할 때, 일을 하려면 그걸 거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사람들이 그만두면 좋겠는데, 그거랑 별개로 모든 사람이 다 그만둘 수 있나,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못 그만두거든요. 당장 저도 고정 수입이 많이 생기지 않는 이상 아마 못 그만둘 것 같은데, 그 때 그러면 좋은 당위에 따라 구매자 처벌 조항이 실정력을 갖춘다고 했을 때, 나한테 실제로 일어날 일들이 어떤 일들일까 생각해보면... 저는 그러니까 제가 느끼기에는 구매자에 대한 거부감, 이런 부분을 떠나서 이런 식으로 제도가 됐을 때 현실에 존재하는 각각 이러이러한 사람들의 상황을 어떻게들 바꿀 것인가에 대해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터울 : 현장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성구매자 처벌이라는 게 별로 효용에 닿지 않고 부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도균 : 네. 그리고 저는 솔직히 말하면 법을 어떻게 하는 것만으로 이걸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떤 법을 이야기하든 간에 다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고요. 차라리 저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부양의무제 폐지, 장애등급제 폐지, 아니면 의료적 트랜지션 보험적용 같은 방안이, 성노동에 유입되는 사람을 줄이고 상황을 낫게 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 성매매특별법에 의한 성매매 관련 형량 (출처: 서대문구청 블로그)

터울 : 저는 이 문제에 있어서, 국가가 어떤 상인가가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형법에서의 국가 상이 있을 것이고, 아까 말씀하셨던 차별금지법이나 부양의무제 폐지라든지 건강보험도 사실은 주체가 국가일 수 있을 텐데, 누가 봤을 때 국가가 법으로 성노동을 처결하면 안된다고 하면서도, 또 국가가 결국은 필요한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 국가의 성격이 이 문제에 개입했을 때 어떻게 발휘되어야 할지에 대해서,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만 현장에 계신 입장에서 이 부분에 대해 한번만 더 정리해서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는데요. 

도균 : 저는 일단 당장 함정수사, 단속 좀 그만뒀으면 좋겠어요. 저도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고, 제 친구들도 그렇고, 이게 한번 단속 맞으면 사람들이 트라우마가 와요. 그렇다고 당장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그런데 이렇게 되면 법적으로 기록이 남잖아요. 법적으로 기록 남으면 더 일하기 어렵고. 진짜 제 친구들은 거의가 성노동자 아니면 성소수자들인데, 오피에서 일하는 친구들의 경우 빠루로 경찰들이 문 뜯고 들어오거나, 업소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경찰 들어오면 콘돔 삼키고 질 안에 숨긴 것 빼내려고 하고 이런 얘기를 듣거나, 아니면 조건만남 하는 친구들 함정단속 당해서 그 뒤로 경찰만 보면 심장 벌렁벌렁거리고 하는 걸 보면 너무 화가 나요. 저는 특히 함정수사 이야기를 들으면, 함정수사하다 사람 죽은 게 몇 년이 지났다고, 너네 진짜 아무 것도 안무섭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국가가 자기 역할을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회적 소수자를 위한 넓고 구체적인 안전망, 그러니까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게 대충 어디에 기준을 정해가지고 찍찍 선긋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각각의 개인들이 다양한 자기 조건 속에서 미끄러질 때 이걸 받칠 수 있는 튼튼하고 촘촘한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 역할을 국가가 했으면 좋겠거든요.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터울 : 그런 맥락에서 성노동이 노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국가가 인정하는 어떤 형태의,

도균 : 네, 저는 그래서 사실 성노동이 노동이다, 아니다 가지고 싸우는 게 좀, 그게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이 좀 들 때가 있어요, 가끔, 솔직한 마음으로. 그것보다 저는 질문을 바꿔서, 성노동이 노동이 되면 어떻게 달라질까, 성노동이 노동이게 될 때 우리에게 어떤 선택지들이 생길까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거든요. 

터울 : 사실 그 부분에서도 이야기가 갈릴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도균 : 많이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터울 : 왜냐하면 노동이라고 했을 때, 그 노동을 국가에서 얼마나 보증했는가-에 대한 전례들이 있고, 그 다음에 규제의 측면에서도, 만약에 국가에서 성특법 이전에 규제를 열심히 했으면 외국과 유사한 형태의 성노동 운동 전선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한국과 외국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한국은 정말 성산업을 육성하고 방치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일관된 국가의 행정력이나 공권력의 성격을 사람들이 믿을 수가 없는 부분들이 좀 있는 거죠. (웃음)

도균 : 사실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람들을 밀어내기는 겁나 잘 밀어냈지만, 성노동이 국가가 보증한 노동으로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할 것들이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하고, 평생 동안 운동한다고 해서 이게 다 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다만, 당장 조건하러 갔다가 두들겨 맞고, 갖고 갔던 돈까지 뺏기고 오는 이런 상황은 좀, 하다못해 경찰에 신고라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터울 : 성노동 비범죄화가 되면, 

도균 : 사람들이 다양하고 취약한 노동의 현장에서 못된 짓을 많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느 정도의, 정말 최소한의, 이 사람을 당장 죽이지 않는 선을 지키는 이유는, 어쨌든 어떤 시스템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합의라는 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런데 저는 성노동 현장의 경우 이것으로부터마저 미끄러지는 것은 좀, 이 상황은 좀 나아져야 하지 않나, 

터울 : 그러니까 그것의 일환으로 ‘노동’을 주장하시는 거잖아요. 성노동 현장에 있어 최소한의 어떤 기본적인 안전망과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는 걸 이야기하시는 거잖아요. 

도균 : 네. 그리고 그건 법제화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닐 거고, 되면 이제 다시 계속해서 성노동 운동이든, 성산업을 다루는 운동들에서, 다른 운동에서도 태스크포스 꾸리고 요구하고 정치적으로 세력화하거나 주장하거나 따내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걸 하기 위한 기본적인 발판도 없는 느낌이에요, 지금은. 

터울 : 저는 사실 그래서 성노동자분들 당사자의 성노동 논리가 뭔가 좀 지푸라기 같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이게 노동에 대한 신실한 어떤 거시적인 목표가 있다기보다, 제발 이거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실은 어떤 의미에서 좀더 튼튼한 인프라나 안전망이 가능해질 수만 있다면 결국 노동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는, 어떤 그런 맥락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도균 : 그러니까 그런 것을 상상할 수 있거나 제안받을 수 있는 자원이 너무 부족한 느낌이죠. 저는 사실 성노동 합법화 되게 싫어하거든요. 대만 사례를 봐도 그렇고, 진짜 저는 그럼 일 못해요 일단. (웃음) 아니면 저는 계속해서 불법의 상태에 남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성노동 전면 비범죄화가 된다고 했을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게 여기에 들어올 어마어마한 자본에 대한 견제책이라고 생각해요. 

터울 : 굉장히 중요하죠.

도균 : 네, 여기 개입할 자본에 대한 견제책이 없으면 저는 되게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터울 : 사실 저는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성노동론에 대해 많이 오해하는 것 같아요. 

도균 : 네. 그래서 저는 되게 다양한 산업들에 대해서 국가에서, 비범죄화는 그냥 합법화와는 다르고, 예를 들어 국가에서 공창제를 시행하는 이런 종류의 방향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만약 비범죄화가 된다면, 여기에 개입할 수 있는 자본에 대해서 국가가 어느 정도 규율하고 방어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거 없이 그냥 전면 비범죄화 하자는 건, 그럼 이제 상상이 되죠. 대기업이 룸살롱 사업에 뛰어들어서 지들끼리 사업하고 다 해먹겠구나, (웃음)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이미 어마어마하게 자본들이 들어와있는 산업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것들에 대한 견제라든가 이런 얘기를 하려면, 이게 어떤 일종의 논의로서 제대로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논의같은 논의로 뭐가 되기 위한 발판조차 잘 마련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그 점에서 답답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제 의견인 거고, 성노동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정말 엄청 리버럴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웃음) 어떤 사람들은 실제 성노동자인데, 나는 계속 성특법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면, 나는 업소 안에서 일하면 처벌 안 당하는데, 왜냐하면 이 가게가 다 경찰과 커넥션이 있어서, (웃음) 그런데 이 법 없어지면 화대가 싸질 것 같다, 이런 얘기 하는 사람도 있어요. (웃음) 그런데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쁜 것과 별개로, 그냥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야만 해-라는 어떤 말이 갖는 취약성이 거기 있다고 생각해요. 당사자를 어떤 단일한 집단으로 상상하게 되거나, 몇 개의 분류로만 상상하게 되는 어떤 지점들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좀 그래서 법제화에 대한 논의도 할 거면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법체계는 이런 방식이고, 이 안에 이런이런 방식으로 다른 산업들을 규율하는 방식이 있는데, 가령 노동자를 보호하는 이런 장치들이 있는데, 그 안에서 법 구성을 어떤 식으로 함으로써, 아니면 어떤어떤 법이 보조함으로써 이것이 지켜질 것이다-같은 식으로 얘기가 되는 게 저는 법제화 논의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 성산업을 둘러싼 담론이 거기에 도달한 적이 있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저는 회의적이라고 생각해요. 이 점은 한 명의 활동가로서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 성노동자네트워크 손.

터울 : 이게 사실 성노동 비범죄화를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동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성구매자에 대한 변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거라고 생각해요. 특히 이성애 성매매에서의 구매자요. 노르딕 모델(성판매 비범죄화, 성구매 처벌)이 출발하게 된 이유도 사실 구매자를 못 믿겠다, 구매자에 의한 악의적 폭력이 성매매 현장에서 난무한다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고, 따라서 비범죄화 논리와 잇닿으려면 구매자가 바뀌어야 되는 문제가 있는데요.

도균 : 이 부분에 대해 좀 까고 말할 게요. 적잖이 짜증이 나는 것이, 대만 같은 경우에는 성구매자 운동이 있어요. 구매자들이 이 안에서의 어떤 일종의 윤리 같은 걸 이야기하고, 성노동자로서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우호적으로 접근하면서 같이 바꿔나가려는 노력을 하는데, 한국처럼 성구매자 살기 편한 나라에서, 왜 그와 같은 운동이 등장하지 않는가, 살기 편하니까 운동을 안하겠죠. (웃음) 왜 운동은 성노동자나 성판매자라고 부르는 사람만 나와서 온갖 낙인을 뒤집어쓰고 해야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러면서도 저는 어쨌든 구매자 불법의 방법으로 가지 않는다고 했을 때, 어쨌거나 그럼에도 이 산업 안에 남게 될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아무리 이게 어렵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저는 구매자들을 바꾸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바꿀 수 있어서라기보다 바꾸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저는 여기에 접근하는 방식들을 계속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구매자들의 어떤 태도라든가, 그 사람들의 구매 문화라든가. 그 사람들이 그냥 우리 좋게 말해주면 좋게 말할 거예요-같은 나이브한 접근이라기보다는, 이거 안바꾸고서는 안되는 거예요. 

터울 : 그렇죠. 그리고 구매자의 변화를 추동함에 있어, 범죄화가 아닌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도균 : 사실 범죄화는 이 사람들의 문화를 바꾸겠다는 방식이라기보다는, 그 범죄화란 말도 이상해요, 이미 범죄인데. (웃음) 그 사람들을 바꾸기 위해서는 훨씬 더 다양한 방식의, 대중의 인식 개선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그룹화해서 만들려는 노력 같은 것들? 저 작년에 일본에도 다녀왔었는데, 성노동 관련한 어떤 단체에서 초청해줘서 갔었어요. 그런데 거길 갈 수 있었던 게, 구매자가 기부해서 기금을 만든 거예요. 

터울 : 아, 성구매자가 조성한 기금으로 가셨던 거군요.

도균 : 네, 경비 중 일부가 그 기금에서 나온 것으로 알아요. 그런데 구매자들이 이 운동에 대해서 되게 한국처럼 무관심하고, 아니면 이상한 방식으로만 받아들이는 곳도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전 이게 기본적으로 한국 남성들의 기본적인 문화나 생각이라는 것이 깊이 개입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터울 : 그러니까 성노동 담론과 운동에서 성구매자의 몫을 환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말씀해주셨던 것 같아요. 흔히 한국에서 성노동을 이야기할 때 가장 외면적으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야, 구매가 자유로워졌어~” 라고 하는 남성 성구매자인데, 그리고 마치 성노동의 외연이 그것처럼 오인되는 측면도 굉장히 많은데, 그것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말씀해주신 거잖아요.

도균 : 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는 구매자들 어차피 지금도 잘 먹고 잘 살고 있어서, 걸려봤자 그 사람들은 그냥 존스쿨(John School: 성구매자 재범방지교육기관)이니 뭐니 해서 잘 빠져나가요. 전 그래서 구매자 범죄화의 효과가 현장에서 그리 잘 작동하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겠어요. 저는 이들에 대한 법제화 적용이나 어떤 다양한 방식의 제도가, 결과적으로 성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들을 미칠 것인가, 그게 포인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저도 싫은 구매자들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싫어요. 왜 안 그렇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