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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는 힘이 세다

ⓒhuffpost

한반도 평화체제를 향한 거대한 움직임이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오랜 염원이 마침내 이뤄질 그 순간이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일자리와 양극화 등 경제적 문제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저출산 고령화와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일과 생활’에 관계된 새로운 종류의 사회적 위험은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 확대, 공정경쟁 강화, 불로소득 근절 등 많은 노력에도 그 효과가 가시적으로 확인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겠다.

노동이나 일의 성격 자체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사회적경제는 기존의 분업방식 및 사회적·경제적 질서를 바꾸고 새로운 유형의 일과 사회적 만남을 가능케 할 공간이자 자족적 삶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경제의 역할을 높게 평가하고 정책적 지원을 확대하는 데에는 이러한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경제는 전세계적으로는 오래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과 자본의 타협을 통해 완전고용과 복지국가를 이뤄냈던 ‘포디즘’ 체제가 기술변화·경제불황·유가급등·재정악화에 따른 실업, 지역 쇠퇴, 복지서비스 축소 등으로 위기를 맞았는데,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사회적·경제적 약자의 권익옹호·역량강화에 헌신했던 사회적경제 조직들이 그 해법으로 대두했기 때문이다. 결국, 취약계층에 복지서비스나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부의 파트너 역할을 부여받았고 큰 성과를 낼 수 있었다.

ⓒSIphotography via Getty Images

사회적경제는 이후 두 방향으로 발전했다. 사회적경제 조직은 사회적 문제를 경제활동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경제적 사업체’로서의 성격과 ‘시민적 결사체’로서의 성격이 공존한다. ‘경제적 성격’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시장의 긍정적 잠재력, 기업가 정신의 고취, 경제적 효율을 내세운다. 이 ‘시장경제의 보완’ 노선은 사회적경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주요한 행위자로 참여하고 시장에 인간적 숨결을 불어넣기를 기대한다.

‘사회적 성격’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자본주의의 외부에서 지역적 연대의 자족적 경제를 가능케 할 든든한 터전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 이 ‘시장경제의 대안’ 노선은 새로운 형태의 연대를 바탕으로 기존의 방식이나 질서와는 크게 다른 새로운 삶의 양식을 실험하는 데 적극적이다.

한국의 사회적경제는 외환위기를 전후로 빈민운동 및 생협운동 활동가들의 적극적 노력으로 본격화되었고 정부의 제도화 노력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동안의 정부 정책이 관련 법 제정과 같은 제도화, 인건비 지원 등 직접지원과 세제혜택, 우선구매, 정책자금 지원 등 간접지원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앞으로는 시민들의 자발성을 고취하고 구성원들의 협동력을 높이며 사회적경제·정부·영리 부문의 파트너십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사회적경제의 생태계를 가꾸는 데 정책적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사회적경제는 다양한 동기를 지닌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의 각양각색의 연대와 제휴를 바탕으로 온갖 종류의 꽃을 만들어내는 ‘백화제방’의 정원에 비유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를 아름답게 꽃피우기 위해서는 건강한 개인주의와 공정한 경쟁질서 안에서 작동되는 ‘윤리적 시장’과, 외부와의 접촉과 교류에 적극적인 호혜의 ‘열린 공동체’와, 공익 실현에 충실한 ‘유능한 정부’가 골고루 중요하다. 이들 각 영역에서 자발성과 헌신성과 사명감과 장인정신과 같은 내재적 동기들로 충만한 시민들이 각자의 필요를 협동의 힘을 통해 충족하고 자신들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면서 우리 모두의 ‘좋은 삶’을 가꾸는 훈훈한 모습을 꿈꿔본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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