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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선생님의 필경(筆耕) 60년

역사를 단절과 새로운 창조가 아닌 연속적인 발전 과정으로 파악하는 법학의 기본방법론을 저는 선생님의 저술에서 확인했습니다. 시대와 시대, 세대와 세대 간의 분절현상이 과도한 우리의 문화적 풍토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를테면 일제 말기 지식청년들의 고뇌가 소재인 '학병세대'의 문학은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오래토록 우리 문학사에 커다란 공백으로 남아있었지 모릅니다. 또한 당신이 익숙한 세대의 작품에 경도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후세 작가들의 작품을 한결 같은 애정과 엄정한 눈으로 읽어내시는 열정에 실로 경탄을 금치 못할 뿐입니다.

  • 안경환
  • 입력 2015.10.12 13:04
  • 수정 2016.10.12 14:12

저는 1948년생입니다. 선생님과는 시쳇말로 '띠동갑'입니다. 선생님 세대나 마찬가지로 저희 세대도 문자에 목말라 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눈앞에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관심을 키워왔습니다. 그 난독과 남독의 과정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쓰는 글을 문학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쳤습니다. 그런 문학작품을 특별한 관점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비평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창작과 비평에 소요되는 자질과 능력이 다르고 수련의 과정도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문학작품은 읽는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비평은 다시 읽을 책무를 부과한다는 사실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김윤식 교수님의 글을 읽는 일은 제 일상의 중요한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지극히 세속적인 학문, 법학을 밥벌이로 살았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법학을 일러 '빵을 굽는 학문(Brotwissenschaft)' 우리말로 옮기면 '법학은 밥학' 이라고 부릅니다. 필연적으로 눈앞에 벌어진 현상에 집착하게 됩니다. 언제나 창의의 결핍을 절감하게 되지요. 그래서 무언가 보다 깊은 가치를 동경하게 됩니다. 문학, 역사, 철학, 예술, 그 어느 것도 법학의 선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윤식선생님의 글에서 이 모든 것을 배웠습니다. 선생님의 표현대로 일제말기 지식인들의 '교양주의'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흔히 혼을 앗긴 독자가 그러하듯이 선생님의 어휘는 어느 틈에 제 일상의 어휘 속에 자리 잡기도 했습니다. '선연한 울림'과 같은 거지요. 행여 저작권'의 침해가 아닐지 저어하면서도 그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이광수, 염상섭, 김동리, '작가와 그의 시대'를 다룬 저술들에 드러난 실증적 자료를 중시하는 선생님의 저술 방법에 크게 감명 받았습니다. 법학자는 나름대로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지적훈련을 연마하지요. 철저한 자료의 검증과 검증된 자료의 균형 있는 분석이 따라야만 제대로 된 문헌이 됩니다. 선생님의 저술에서 격조 높은 법학저술을 확인한 셈이기도 합니다.

또한 역사를 단절과 새로운 창조가 아닌 연속적인 발전 과정으로 파악하는 법학의 기본방법론을 저는 선생님의 저술에서 확인했습니다. 시대와 시대, 세대와 세대 간의 분절현상이 과도한 우리의 문화적 풍토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를테면 일제 말기 지식청년들의 고뇌가 소재인 '학병세대'의 문학은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오래토록 우리 문학사에 커다란 공백으로 남아있었지 모릅니다. 또한 당신이 익숙한 세대의 작품에 경도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후세 작가들의 작품을 한결 같은 애정과 엄정한 눈으로 읽어내시는 열정에 실로 경탄을 금치 못할 뿐입니다.

문외한 독자의 입장에서 무수한 선생님의 평론에 일관되게 발견되는 미덕은 무엇보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려는 애정이었습니다. 이따금씩 '작가와 독자 사이를 떼어놓으면서 자신의 고유영역을 확보하려는 설익은 평론가들을 대할 때 느끼는 미숙한 독선이 안쓰러웠습니다. 선생님의 친절은 대가만이 베풀 수 있는 여유일 것입니다.

글 가꾸기, 필경(筆耕) 60년, 140권의 저서, 200자 원고지 10만 자로 축적된 선생님의 업적은 '김윤식학'으로 되어 후세에 남긴 소중한 기록 문화유산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외람된 사적 고백을 하나 하겠습니다. 저의 황홀경이 빚어낸 환각인지 모릅니다만 언제부터인가 선생님께서 저를 기특하게 여기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따금씩 그윽이 건네주신 눈길에 담긴 격려와 은근한 질책에 가슴이 벅차고 머릿속이 어질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선 제 자신이 더없이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자리를 함께 한 여러분들과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된 선생님의 독자들의 마음을 모아 한 말씀만 드립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김윤식도서 전시회는 한국현대문학관에서 11월 20일까지 열리고 매주 금요일 오후 4시에 대표저술에 관한 전문가들의 강의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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