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공덕동 휘발유] 포털사이트의 댓글창이 없어졌다. 댓글부대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댓글창 폐쇄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알아보자.

  • 라효진
  • 입력 2020.08.21 18:08
  • 수정 2020.10.16 10:34

 

 

 

자료사진
자료사진 ⓒEva Blanco via Getty Images

한국에서 댓글 문화가 시작된 건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2000년대 초반이다. PC통신 시절보다 진일보한 인터넷 커뮤니티는 댓글창을 통해 더 많은 ‘네티즌’과 그들의 의견을 불러 모았다. 접속 환경 말고는 아무런 자격이 필요치 않은 그곳은 분명 민주적 공론장이었다. 오프라인 면대면이 기본이던 소통 방식은 급격히 변화했다. 

그러나 문화와 기술의 발전 속도에서 점점 간극이 벌어졌다. 새천년을 맞이하던 20년 전, 우리는 밀레니엄버그를 기술적으로 대비했지만 밀레니엄 시대정신은 깊게 사유하지 못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 인터넷 공간의 비대면성과 익명성에 문화적 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네티즌들이 무혈쟁취한 ‘표현의 자유‘는 무책임으로 변질돼 갔다. 인터넷 게시판에 이어 포털 사이트가 언론사 뉴스를 모아 놓고 댓글창이라는 판을 벌리자, 이곳은 ‘쉽게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댓글부대와 악플러의 소굴’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뒤집어썼다. 연예인들의 극단적 선택이라는 비보에는 언제나 악플러가 원인으로 지목됐으며, 선거철이면 여론 조작 의혹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이쯤 되면 댓글창이 완전히 ‘건강하고 자유로운 토론이 이뤄지는 공론장’이라는 기능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허나 역설적으로 그 중요성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댓글창이 있는 인터넷 공간 중 커뮤니티의 경우 그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유사한 생각을 가진 개인들이 따로 모이는 집단으로 정착됐지만, 포털 사이트 뉴스 섹션의 댓글은 그야말로 불특정 다수 대중이 집합하는 곳이다. 정치계든 기업이든, 네이버와 다음 뉴스의 댓글창에서 흐르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kieferpix via Getty Images

댓글창의 기능 변질이 비단 한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구미권 언론계에서는 이미 몇몇 회사가 2016년부터 사이트 댓글창을 닫고 개인 SNS 계정을 통해 의견을 내도록 하는 방식을 쓴다.

한국에서는 카카오가 지난해 10월 다음 연예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폐지한 후 네이버와 네이트도 각각 올해 3월과 7월 댓글창 문을 걸어 잠갔다. 이들이 먼저 연예와 스포츠에 한정해 댓글을 달지 못하게 한 까닭은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 개인을 향하는 악플이 가장 빈번히 포착되는 부문이기 때문이었다.

개인 SNS 계정을 통해 댓글을 받았을 때 기대할 수 있는 건 ‘인터넷 실명제’와 비슷한 효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다중 계정 소유자들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는다. 반면 댓글창을 아예 닫아버릴 경우 악플 수의 일시적 감소라는 결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악플러들이 댓글창과 함께 얌전히 소멸해 줄 것인가를 고려했을 때, 이는 근시안적 해결책에 불과하다.

자료사진
자료사진 ⓒJohanna Svennberg via Getty Images

악플 절대량 감소라는 일시적 순기능에 기대기엔 댓글창 폐쇄로 잃는 것이 더 많다. 먼저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공론장 자체가 없어진다. 물론 포털 사이트의 댓글 관리 강화 시도가 있었고 성과도 어느 정도 보았으나, 이를 발전시키기보다 공간을 닫아 버리는 건 검열의 궁극적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포털 사이트가 전유했던 인터넷 권력이 커뮤니티로 옮겨갈 것이라는 점도 우려를 남긴다. 언급했듯 인터넷 게시판들은 네티즌들을 각 주제별로 집합시킨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인터넷 문화가 정착될 경우 지금보다 더 극심한 소모적 여론전과 개인 시야의 축소를 가져올 수도 있다.

악플러들이 포털 사이트가 깔아둔 댓글창이란 멍석을 잃고 오히려 개인을 직접적으로 공격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일례로 최근 배우 한예슬이 공개한 악플들은 개인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여기에 익명 계정을 이용한 다이렉트 메시지까지, 악플러들의 송곳은 오히려 더 날카롭고 잔인하게 피해자들을 후벼 팔 수 있게 됐다.

특히 방송 출연자, 유튜버나 SNS 인플루언서 같은 ‘유명한 일반인‘들은 연예인들보다 더 쉽게 악플에 노출된다. 가수 홍진영의 언니 홍선영은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후 숱한 악플 고충을 토로해 왔다. 그는 7월 1대1 메시지로 받은 ”솔직히 동생이 홍진영인 것 외에 잘난 게 뭐가 있나. 도대체 왜 공인이라고 당당히 올리는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 걸고 살 빼도 그냥 그쪽은 못생긴 차원을 넘었다”는 악성 메시지를 공개해 충격을 줬다. 각 SNS에 댓글 차단 기능이 있다지만 이들이 소통을 차단했을 때 얻는 리스크는 막심하다. 때문에 ‘유명한 일반인’들은 댓글창 폐쇄 같은 네티즌과의 절연을 시도하기가 더욱 어렵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와 댓글 장사는 혁신이었지만, 이 역시 시대정신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에 작금의 문제를 일으켰다. 결국 정당한 비판 의견까지 막아버리고 만 댓글창 폐쇄에 앞서 근본적으로 ‘건강한 댓글 문화‘에 대한 사유가 시급하다. 이 시대의 도덕은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 ‘남의 물건을 훔쳐선 안 된다’ 선에서 머물러선 안 된다. 자기 자신의 손 끝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문화적 공유가 필요한 때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뉴스 #악플 #네이버 #카카오 #댓글 #다음 #네이트 #공덕동 휘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