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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19일 17시 11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4월 02일 10시 15분 KST

왜 포르노는 질내사정에 집착하는가

[포르노를 사유하다②]

huffpost

이 연재는 성적 대상물로만 소비되는 포르노그래피에 내포되어있는 섹슈얼리티를 탐구한다. 찬반논리로만 흐르고 있던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포르노그래피 내의 다양한 장르 및 클리셰가 현대사회와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학문적으로 사유할 것이다. 퀴어 역사 연구자 박양현월과 아티스트 민문의 대담으로 이루어진다.

박양현월(이하 박): 포르노를 사유하다 2화. 질내 사정이 그렇게 중요해? 시작해보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질내 사정이 각각 남성 육체를 지닌 사람과 여성 육체를 지닌 사람에게 어떻게 느껴지는가?

민문(이하 민): 남성의 몸 안에 사정하는 것과 여성의 몸 안에 사정하는 것의 공통점은 둘 다 뭔가 정액을 주입하는 것으로 정복욕을 확인하고 해소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가장 큰 차이는 아무래도 임신 위험이죠. 여성의 질에 정액을 사정하게 되면 그것이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것이 어쩌면 위험요소로 작용해서 스릴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박: 정복욕이 있고 스릴이 있고.

민: 네. 위험에 대한 스릴. 그건 현실이라면 당하는 사람에겐 공포지만 저지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도망갈 수도 있는 요소로 작용하는 거죠. 저질러놓고 책임부담을 지지 않을 수 있는 판타지로요. 질내 사정 포르노는 가상의 상황을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여성관객으로서도 리스크를 감당하지 않으면서 그 스릴을 즐길 수도 있겠네요.

박: 네. 정액을 뿌린다는 것이 정복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런 사례를 통해서도 알 수 있어요. 인터넷을 보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공개하는 트위터 계정을 보면, 소위 “섹계”라고 하죠. 성별과 상관없이 얼굴 위 사정을 해드린다. 상호동의의 테두리 안에서는 그걸, 정액을 배출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진을 보내드릴 테니까 그 위에 사정을 한 사진을 보내주세요. 저는 거기에 성적 쾌감을 느낍니다. 라고 부탁하는 여성도 있고, 또 반대로 이야기하면 나는 여성의 사진에 정액을 뿌리는 것을 좋아하니 요청해주시면 해드립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민: 프린트한 사진을 이야기하시는 건가요?

박: 프린트한 사진도 있고 스마트폰 액정에 뿌린 걸 찍기도 해요. 그걸 부탁하는 사람도 있고 요청하는 사람도 있는 걸 보면 그 속에 내재된 섹슈얼리티는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이 사람과 뭔가 성관계를 한 것 같은 대리만족적인 경험을 충족시켜주고, 또 정복당함에 대한 판타지가 있고. 저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고 싶어요. 왜 정액일까? 왜 정액만이 그러한 정복의 매개체로서 작용할까? 정말 빈약하게 이야기하자면 얼굴에 오줌을 싸도 되고 물을 뿌려도 되잖아요? 왜 정액만이 이렇게 정복욕을 충족시키는 매개체로써 강렬하게 작용하는가?

민: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대답이라면 아마 정액이 성적 활동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 배출물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왜냐면 다른 배출물의 경우는 일상적으로 성욕 없이도 접할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하지만 정액은 언제나 성적인 배출물이죠. 그래서 포르노에 제일 많이 활용되는 요소가 된 것 같아요.

esanbanhao via Getty Images

박: 그리고 방금 든 생각인데, 질내 사정에서도 우리는 가장 원론적인 사상을 참고할 필요가 있어요. 성경에 나오는 오나니의 기원.

민: 성경에 오나니가 나와요?

박: 우리가 자위 행위를 오나니라고 하잖아요? 그게 오난의 행위라는 뜻인데 성경에서 보면 오난이 형이 죽은 후, 자손을 남기기 위해 형수와 섹스를 하게 되는데 그게 싫어서 체외 사정을 해요. 그래서 야훼에게 벼락을 맞고 죽었다. 그게 오난의 행위. 거기서 나온 말이 오나니.

민: 저는 여태까지 그걸 일본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박: 오나니즘이라는 영어어휘가 일본어 화 되어서 오나니라는 말로 굳어졌다고 해요. 그걸 생각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어쨌든 질내 사정이라는 것은 옛날에는 권장되었지만, 요즘은 터부시되죠.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인해서.

민: 옛날에는 섹스가 생식을 위해서만 하는 것이었고, 그 외에 하는 것 자체를 금기로 여겼기 때문에 체외 사정이라는 것은 임신 출산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게 죄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요? 지금은 섹스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고 좀 더 일상적으로 즐기게 되어서, 한 생명에 대한 책임이 따르게 되면 거기서부터는 유흥의 범위를 벗어나게 되니까요.

박: 근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포르노는 생식행위와는 가장 먼 행위라는 것이죠. 자식을 번식하기 위한 것과는 가장 먼 곳에 있는 행위.

민: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게 되려 매개체가 되기도 하잖아요?

박: 목적 자체만 보면 성 자체를 즐기기 위한 것이니까요. 이걸 통해서 후손을 생성하겠다, 이게 아니라 콘텐츠화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 유흥이죠. 그런데 그 포르노에서는 질내 사정이 가장 보편적인 페티쉬죠. 이걸 질내 사정의 계보라고 한다면, 질내 사정은 고대에는 권장되어왔고 현대를 거치면서 피임을 통해 금기시되었고. 그런데 성적 행위를 매개로 얻는 쾌락 중에, 그 시대의 기준으로 본다면 오난의 행위 중 가장 극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포르노에서 오난의 행위가 아닌 질내 사정을 권장하고 있어요.

민: 그게 어쩌면 되게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현대 사회에서 성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행해지는 많은 섹스가 후대를 만든다는 목적에서 벗어났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판타지의 범주에 역수입이 된 것이 아닐까 싶네요. 판타지니까 임신을 했을 때 거기에 책임이 있는 두 사람이 그 책임을 감당한다는 전제를 없애고, 뒷수습을 생각하면 복잡하고 위험해질 수 있다는 스릴까지 만들어 낸 거죠.

박: 저도 그런 결론을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요. 정복욕과는 별개로 하지 말라니까 해보고 싶은. 이런.

민: 현실에선 너무 위험하고 책임감이 따르니까요.

박: 실제로는 너무 하기 위험하기 때문에 대리만족을 해보고 싶어서. 이게 정복욕 플러스 대리만족. 이게 저는 질내 사정이 유행하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민: 판타지는 원래 현실에서 하기 힘든 행위를 대리해서 실제 행동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지지요.

박: 저는 이게 성별을 떠나서 나타나는 판타지라고 생각해봤는데, 여성 경험이 있으신 민문님의 생각은 어떠신지, 포르노 속의 질내 사정은 어떤 감상을 불러일으키는지 궁금해요.

민: 저는 저건 정말 판타지구나, 즐기기 위한 거구나, 해요. 되게 웃겨요. 특히 실제 사람이 나와서 하는 야동이 아니라 더 막 나갈 수 있는 만화 같은 매체일 경우에는 더. 그냥 질내 사정이 아니라 자궁 경부 안까지 삽입하고 자궁 내 사정을 해요. 그러면 여성 캐릭터들이 막 오르가즘을 느끼고 정액이 뜨겁다고 그런다니까요. 전혀 현실적이지 않고 정말 말도 안 되는 건데 타겟 관객인 남성들은 그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는 걸 배운 거죠. 그러면 그들은 자궁 내 사정을 당하는 여성 캐릭터를 보면서 어떤 기분을 느끼는 걸까 생각해봤는데, 정복욕 외에도 이 예쁘고 귀여운 여성이 자신의 사정으로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내 능력으로 이 상대에게 ”좋은 것”을 줬다, 하는 성취감이요.

그런데 이게 실제 섹스로 돌아오면 그러기가 굉장히 힘들거든요. 사람마다 경험이 다르겠지만 일단 저는 그렇게 타이밍 잘 맞게 상대랑 동시에 오르가즘을 느껴본 적이 딱 한 번밖에 없어요. 그건 진짜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정액은 무슨 미약 같은 게 아니라서 그게 몸 안에 들어온다고 막 오르가즘을 느끼고 하지 않거든요. 자궁 내 사정은 말할 것도 없는 게… 너무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그게 애초에 그렇게 들어가는 곳이 아닌 데다가, 억지로 어떻게 넣어본다고 해도 그만한 물건을 그런 식으로 자궁 경부에 넣게 되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거든요.

또 다른 판타지는 질내 사정된 정액이 뜨겁다는 건데, 신체 구조가 질은 체내에 있는 기관이고 페니스는 밖에 있어서 질이 훨씬 따뜻해요. 그러니 정액은 오히려 미적지근하다면 모를까, 전혀 뜨거울 리 없고요.. 또 무슨 휘핑크림처럼 그렇게 부아악- 하고 엄청 많이 나오지도 않는단 말이에요.

박: 한 달을 참으면 또 모를까.

민: 한 달을 참아도 그렇게는 안 나와요. 몇 년도 그렇게 안 되고, 오히려 신체가 그렇게 정액을 쌓아두면 건강상 괜찮을까 싶기도 해요. 만에 하나 야망가에 나오는 그 양이 배출 가능하다고 해도, 그렇게 하고 나면 발기부전이 오지 않을까요…?

박: 그렇게 데포르메(만화적 축소 혹은 왜곡)하는 이유가 내가 좋으니까 쟤도 좋겠지? 라는 일차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상대의 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도 클테고. 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런 말을 했잖아요. ‘이런 건 말이야. 실제로 어린애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 그런 관찰 못 하면 못 그리지. 이걸 안 하고 아무것도 못 보고, 자기 자아밖에는 관심이 없고 그런 일상생활만 보내고 있고. 인간관찰을 싫어하는 인간이 하고 있는 거야.’ 여성에 대한 관찰보다는 과장되게 데포르메 된 야망가와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보고 그게 섹스인 것처럼 그리니까. 이건 어쩌면 너무 편항적인. 정말 그런 야망가를 그리는 사람 중에서 실제 자신의 섹스 경험을 녹여내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싶어요. 혹 그런 사람이 있다 한들 이미 과장되게 굳어진 데포르메를 탈피하는 것도 어렵겠죠.

민: 맞아요. 저는 “내가 좋으니까 너도 좋지?” 의 감성도 느꼈어요. 야망가에서 과장되게 그리는 걸 보면 딱 그 느낌이 들어요. 섹스 끝나고 나는 하나도 안 좋았는데 상대가 어깨 걸치면서 ‘좋지?’라고 묻는듯한 무지가 느껴져요. 섹스를 통해 마음의 안정도 얻고 싶은 게 있는 거죠. 이런 식의 남성 1인칭 시점의 포르노가 남자가 사정하면 여자도 오르가즘을 느끼는 걸 클리셰로 삼고 기정사실처럼 표현해버리니까, 실제 헤테로 섹스에서 상대도 쾌락을 느꼈으면 하는 감정을 실제 상대와 대화로 소통하는 게 아니라 남성 쪽에서 이미 그랬을 것이라고 넘겨짚어 버리고, 결국 섹스에서 오르가즘을 못 느끼는 여성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박: 그래서 정액을 매개체로 사용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야망가 속에서 정액을 싸면 자지러진다. 즉 나도 느꼈으니까 저 사람도 느꼈겠지. 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줌으로써 남성의 무의식적인 불안감을 해소해주는 거죠.

민: 남성 독자들은… 저는 잘 몰라요. 야망가의 남성 소비자들이 실제로 섹스를 할 때 그런 불안함을 느낄지를.

박: 야망가의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남성 신체를 지닌 사람의 불안감 이라고 생각해요. 남성의 성을 주제로 한 섹스 칼럼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해요. 크기. 만족. 그리고 인터넷에서 뉴스를 보면 뉴스 사이트 옆에 그런 광고가 뜰 때가 있잖아요. ‘조루 남성 이것을 했더니 헉?’ 현재 남성에게 섹슈얼리티 관련 상품을 파는 성 산업의 기본은 그 불안함을 자극시켜서 장사를 하는 것 같아요. ‘내가 정말 상대를 만족시켰을까?’ 그리고 그 불안함을 없애주는 물건이나 아니면 아예 그런 불안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섹스토이를 판매하죠.

민: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 느끼게 해주고 싶다.

박: 그리고 성기간 삽입을 통해 상대를 못 느끼게 하면 그 남자는 되게 실패한. 이것도 되게 맨박스(남성다움에 대한 강요)죠. 상대가 그걸 괜찮다고 하면 상관없기도 하고, 또 성기간 삽입만이 성관계의 정석은 아니란 말이에요. 손장난을 배우면 얼마든지 보완이 가능할 텐데. 결국, 그러한 불안함을 사회가 만드는 거죠. 그리고 그걸 야망가 속에서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질내 사정, 그리고 극도로 흥분하는 데포르메를 보여줌으로써 남성 독자들의 불안감을 달래준다.

민: 어쩌면 그게 남성의 남근 숭배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박: 크고 여성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남근을 어쩌면 남성들이 숭배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그런 메타포는 고대 그리스 때부터 있었어요. 필리아모스라는 신이 있는데,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숲 요정인 판과 결혼하여 낳은 자식인데… 커요. 한… 배꼽 위까지? 그 신을 남성들이 숭배하는 거죠. 왜냐면 팔리아모스의 성기 조각으로 된 목걸이를 지니면 정력이 세진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민: 유구하군요. 한국에서도 정력에 좋다고 하면 불티나게 팔리는 것처럼.

박: 그렇다면 저희가 너무 그림만 이야기한 것 같은데. 동영상에서의 질내 사정은… 그런데 이게 또 일본이랑 서양이 다르잖아요. 일본 야동은 정액을 넣는다는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남성 배우 여럿이 모여서 싸서 그걸 모아서 깔때기에 넣고…

민: 특수 기구 같은 게 있고.

박: 그리고 질내 사정을 한 여성 배우의 성기를 카메라로 보여줘요.

민: 어쩌면 되게 의학적이고 사람의 몸을 어디까지 소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듯 해요.

박: 서양에서 질내 사정을 보여주는 것은 주르륵 흘러내리고 끝나잖아요.

민: 일본 야동에서 그렇게 극한의 경우가 있을 뿐이지 다른 야동들을 보면 주로 남자배우는 사정하지 않고 몇십분 동안 여자들만 수차례 절정을 맞는데, 마지막에 끝났을 때 드디어 남자 배우가 사정하면 그 사람은 떠나고 질내 사정된 곳을 클로즈업하죠.

박: 제가 말하는 건 그런 스펙트럼이 서양보다 일본이 보편적이라는 거죠.

민: 저는 여성 경험자로서 야동의 질내 사정을 볼 때 드는 생각은 ‘끝났다’ 예요. 이제 이 영상이 끝났다는 뜻이죠. 그것 이외에는 별생각이 없어요. 여성 배우는 피임을 했을 테고 저는 질내 사정에 대한 판타지가 없기 때문에, 왜 할리우드 영화 보면 기승전결 있잖아요. 예상할 수 있는 것. 저에게 있어 질내 사정도 똑같아요.

박: 포르노에서 질내 사정은 할리우드의 키스신 같은 거군요?

민: 하하 맞아요.

박: 다시 투디 포르노로 돌아가면 ‘내 아이를 낳아라 그아아앗!’ 이런 게 있잖아요.

민: 실제로 책임을 지지는 않지만, 씨앗은 심어야겠고, 책임은 네가 지고 즐거움은 내가 가지고. 너에게 내 자아를 연장시키고 싶어,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자아의 연장 욕구에 대해서 더 얘기해보자면, 예술에서도 몸의 배설물이나 부산물은 더럽게 여겨지는데 그것이 새로운 무언가로 용도를 찾으면 바깥에 버려졌을 때랑은 다른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되거든요. 내 정액, 보통 밖에 있으면 닦아지고 버려지는 더러운 것을 타인의 몸 안에 주입함으로써 가치를 부여하는 거죠. 어쩌면 질내 사정이 정복욕 말고도 그런 욕구를 자극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요. 체내사정을 통한 자아의 연장 같은 느낌으로.

박: 정복욕의 연장 선상이군요. 그런데 아까로 다시 돌아가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요. 왜 일본 야동은 서양 야동에 비해 여성에게 정액을 주입하는 것에 집착하는가. 서양은 있어도 하드코어한 그런 식으로 뭔가 방법을 써서 하지는 않잖아요.

민: 일본 야동은 어떻게 하면 창의적으로 정액을 주입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박: 이건 일본이 포르노 산업이 크기 때문도 있는 것 같아요. 강한 자극을 원하는.

민: TED 토크를 보면 포르노와 뇌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걸 보면 포르노가 뇌에 끼친 안 좋은 영향이 뭐냐 하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는 거예요. 요즘 포르노는 온갖 창의력을 동원해서 이 세상에 없었던 작품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요. 그건 예술도 마찬가지지만요. 야동은 아무도 해보지 않은 섹스를 하려는 것으로 발현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더 강한 것을 찾게 되고, 여러가지 페티쉬와 섹스 방법을 발명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박: 그 말에 함정이 있는 게, 그 말을 그렇게 쓰려고 하는 경우도 있죠. 그러니까 포르노는 해로운 것이다, 자극적이고 정서적으로 좋지 않으니까… 그런데 모든 예술이 다 마찬가지죠. 그렇지만 창작물을 만들 때, 분명 이것이 현실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생각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민: 일단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사람마다 다른 거라고 생각을 하고 그쪽에서는 자신의 입맛의 맞게 실존하는 연구결과를 써먹는 것이고.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잖아요?

박: 쐐기만 한번 박고 싶었어요. 이 말을 자신들의 입맛에 유리하게 써먹는 경우가 있다고. 그것도 있고 일본이 서구권에 비해 여성 혐오가 강하다는 느낌도 들어요.

민: 그렇죠. 여성을 인격체가 아닌 도구로 만드는 거예요. 저는 실은 이 대담을 준비하면서 일본 포르노는 그 나라의 제국주의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건 일본뿐만이 아니라 식민주의자의 입장에 있던 강대국들이 다 한 거긴 한데, 그들이 식민지로 만든 땅의 여성들에게 침입자가 질내 사정을 해서 아이를 만들고, 그래서 혼혈인이 나오면서 문화적으로나 인구 적으로나 식민화를 시키는 전략이 있었죠. 그걸 통한 실질적인 정복욕 충족 같은 것도 있었을 거고요.

박: 식민지 경험에서 나온 일본의 역사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민: 좀더 풀어서 이야기해 주세요.

박: 일본군 성노예분들의 회고담을 보면 소위 여성을 정액 배출구화 하는 일본 포르노의 묘사와 크게 다른 점이 없어요. 그런 역사적인 경험이 각인되었기 때문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고 싶어요. 역사적인 경험이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은유적으로든 계승되어온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포르노 여성 배우에 대한 정액 배출구 화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민: 궁금한 게 생겼는데요, 2차 대전 전에는 그런 게 없었다가 일본이 식민주의자가 되면서부터 그게 생긴 걸까요? 아니면 원래 그런 식으로 일련의 변태성이 있었는데 2차대전 때 실천 화가 된 걸까요?

박: 일본 자체가 성적인 터부가 덜했던 건 사실이에요. 보쌈이라고 의역할 수 있는 요바이 문화도 있고, 남녀 혼탕도 있고. 성적인 개방성이 있었던 건 맞아요. 그것이 식민지배를 할 수 있는 나라와 무한한 폭력성을 가할 수 있는 나라라는 두 특성이 혼합되어서 나온 것이 일본군 성노예 분들에 대한 폭력성으로 나타났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서구 국가들은 어땠냐? 서구국가들 또한 식민지배를 했고 그 과정에서 성적인 폭력과 착취가 일어났지만, 그것을 일본처럼 국가 기관에서 주도하지는 않았어요. 적어도 겉으로는 식민지 비백인들을 개화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짐이다. 라고 위선적으로 말했으니까요. 그래서 벨기에 레오폴드 2세의 콩고 착취에는 서구국가들도 ‘그 정도가 심했다’라면서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욕했죠.

하지만 일본은? 인권이라는 개념이 서구 국가보다 약했고, 덴노(일왕)를 중심으로 하는 전체주의 성향이 강한 국가였고,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슬로건 아래 인종과 국적에 등급을 매기고 차별했죠. ‘위안부’ 중에서 일본인도 있었지만, 그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성 노동자 대접을 해줬어요. 일본군 장교 대상이었고.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 동남아. 일본과 적국이거나 식민지배를 당하는 민족의 구성원이 성노예가 되었을 때는 인간으로 대하지 않았던 거지요.

무엇보다 전후 재판에서 일본의 성노예 행위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어요. 물론 페미니스트 겸 저널리스트 마츠이 야요리가 모의재판이라는 형식으로, 하지만 국제법 법조인을 초빙하는 등 철저한 고증과 절차를 거쳐 덴노가 일본군 성노예의 책임자이다. 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지요. 하지만 역사의 선례로써 일본군 성노예의 책임자들은 처벌받지 못했어요. 따라서 그 폭력성이 잔존하여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일본 야동에 나오는 과도한 극도로 대상화하고 정액을 들이붓는 그런 행위로 아직까지 영향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민: 결과적으로 지금의 한국과 일본을 살아가고 있는 세대는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포르노는 창작물로서 계속 제작이 되다 보니까 그런 인식이 계승되고 역사적 경각심이나 인권의식의 맥락이 탈구되어 페티쉬로 소비되는 구조로 변한 것 같네요.

박: 일본 야망가 생산자들의 우익 성향 또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여성의 도구화를 자신의 만화에 자주 쓰는 미즈류 케이라는 작가를 보면, 작품 내에서 ‘일본군 성노예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이다’라는 식으로 발언한 적이 있었죠. 일본 내 우경화된 생산자들, 그러니까 일본군 성노예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여성의 도구화를 성적 소비체로서 생산한다. 단순한 우연이라기엔 기분 나쁠 정도예요. 저희가 1화에서 비판하던 찬양하던 일단 알아야 한다고 했죠 이러한 소비와 생산에는 비판이 따라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역사적인 폭력의 맥락을 무시하고 재생산하고 있잖아요.

민: 저도 동의해요. 다시 현대의 포르노로 돌아오자면, 정복욕에 기인한 몸 안의 사정에 대한 위험성은 실질적으로 특히 헤테로 관계의 남녀 섹스에 있어 피임하지 않은 질내 사정이 보편적인 것이 될까 봐 우려가 돼요. 왜냐면 제가 지금까지 겪었던 섹스 파트너 중에서 콘돔을 씌우면 서지 않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거든요. 저는 그게 포르노의 영향이라고 봐요. 대다수 사람들이 포르노를 성교육 자료로 쓰고 있는 상황에서 노 콘돔을 당연한 것으로 표현하잖아요. 이 비공식 성교육 자료가 실제 상황에서 피해자가 생길 까봐 우려가 되어요.

박: 그러면 그런 대안이 필요하겠네요. 질내 사정이 나오는 포르노 앞에 ‘임신이 되지 않기 위해, 의학적으로 적합한 피임 절차를 거쳤으며 그렇지 않은 질내 사정은 임신 및 성병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고문을 붙이고, 포르노를 통한 성교육을 해야 해요.

민: 제 성교육 지론도 같아요. 성교육은 무조건 섹스하지 말고 무조건 금욕적으로 살라는 게 아니라 안전한 섹스를 하게 이끌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 심지어 소아성애를 부추긴다고 비판을 받는 일본의 코믹 LO라는 만화잡지가 있는데, 심지어 걔들도 비판이 두려워서 ‘현실과 가상의 소아성애를 구분합시다’ 라는 경고문을 붙여놨어요. 물론 저는 이게 되게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최소한 그 정도는 한단 말이에요.

민: 최소한의 브레이크는 거는군요.

박: 동의하지 않는 콘돔 미착용과 질내 사정으로 인한 여성의 임신과 성병. 이것에 대해 포르노 매체들이 어디에도 경고문을 붙이지 않는 것은 되게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민: 그리고 강간과 여성 오르가즘을 섞어서 보여주면서 거부를 긍정의 표현으로 나타내는 포르노도 많잖아요.

박: 소아성애를 부추긴다고 비판할 수도 있는 코믹 LO만큼이나 다른 포르노 제작사들이 더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는 거죠.

민: 맞아요. 소아성애만 위험한 게 아닌데 말이예요. 저도 경고문 부착이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질내 사정이 판타지로 존재하는 것 자체는 괜찮다고 봐요. 그러한 판타지적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매체가 존재하는 게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그걸 현실에서 행함으로써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대리 해소를 하는 것은 건강한 거죠.

박: 판타지로 소비하는 게 더 건강하죠. 사람 죽이는 게임을 한다고 해서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잖아요? 그러면 안 되는 걸 알고 판타지로 소비하면 건강한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거죠. 물론 게임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해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충분한 교육을 어릴 때부터 했다면 방지할 수 있는 재난이었어요.

민: 법적인 시스템과 사회적인 교육 둘 다 갖춰져야 해요. 여성 인권과 결합해서 이야기하자면 아직도 낙태죄 폐지가 의제인 나라가 많은 상황에서 이렇게 질 내 사정 판타지에 대한 브레이크가 없이 유지되는 건 결국에는 악순환이 되어버리는 거죠.

박: 교묘하게 정말 맞물려있죠. 여성의 인권을 후퇴시키는데 의도적인 결탁 없이 이 두 가지 요소가 정말 교묘하게 담합을 하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일단 포르노 생산자들이 이러한 경고문을 붙이는 게 시작되어야 하지 않나.

민: 경고문도 붙이고, 낙태죄도 폐지하고, 학교에서 교육도 하고, 좀 더 접근성이 쉬운 피임 방법들을 만들고, 여러 가지 방법이 있잖아요. 이미 성공적으로 행해지는 선례가 있고요. 저는 반포르노 진영이 아니고 포르노가 없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가 이걸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이미 성교육 자료로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이 자료들을, 어떻게 하면 좋은 성교육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하고요.

박: 그리고 진영을 떠나서, 포르노를 전부 없애는 것과 질 내 사정이 나오는 포르노에 경고문을 붙이는 것 중에서 뭐가 더 빠를까요.

민: 당연히 후자가 빠르죠.

박: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설마 전자가 된다 쳐도 후자가 정말 빠르다는 건. 지금 피해받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냐는 거에요. 시간이 오래 지나서 포르노가 없어지는 날이 온다고 해도 일단 경고문을 붙이는 게 지금은 더 도움이 된다는 거죠.

민: 그게 실현되면 반복교육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야동을 보는 사람은 대부분 야동 하나를 한 번만 보고 평생 안보는 게 아니잖아요? 같은 문구를 꾸준히 띄우다 보면 머릿속에 각인이 되기 마련이고요. 아까 이야기했던 대로 적법한 피임 절차를 거쳤고 이것은 판타지라는 메시지를 띄우고, 그것이 꾸준히 머릿속에 인식된 사람이 실제로 섹스를 할 때 머릿속에서 빨간불이 켜진다면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방지가 되겠어요.

박: 저희는 이번 화에서 질 내 사정이 현실에서는 많은 경계가 필요하지만, 포르노에서는 페티쉬로 소비되는 것은 괜찮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이것이 강간 포르노가 되면 좀 생각이 달라져요.

민: 엇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 주제에 대해서는 사실 할 말이 많은데, 제가 제일 많이 소비하는 포르노가 강간 키워드의 포르노거든요. 그런데 또 놀라운 사실은 제가 실제 강간의 피해자라는 거예요. 너무 신기한 건 제가 여자 친구들이랑 포르노 얘기를 하면, 강간 판타지를 즐기는 여성들이 꽤 된다는 거예요. 이게 뭘까, 대체 왜일까, 하는 생각을 꽤 오래 한 것 같네요.

박: 요리에 비유하자면 강간 포르노는 복어 급이죠. 그 자체에 독성이 있고, 이것을 잘못 처리하면 심각한 위험이 존재하니까요. 독성이 있죠. 하지만 주의 조심, 외의 부분 외의 회색지대도 말해보고 싶어요. 방금 민문님이 말씀하신 것처럼요.

민: 좋아요! 다음 주제가 정해진 것 같네요. 다음은 그럼 강간 포르노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