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어느 대학의 무기정학 사유

ⓒjakkaje808 via Getty Images
ⓒhuffpost

ㅅ은 지난 5월, 대학교에서 폴리아모리(비독점 다자연애) 관계라는 이유 등으로 무기정학을 당했다. 기독교 재단인 한동대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대학 측은 폴리아모리라는 ‘문란한’ 관계 방식이 기독교 설립 이념과 대학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무기정학을 당한 ㅅ은 작년 겨울, 이 학교에서 열린 페미니즘 강연과 연관된 학생이었다. 강연 전에 학생처장 교수는 강연을 주최한 학생들을 불러서 한동대의 교육이념에 반하는 강연은 열 수 없다고 말했다. 이미 허가가 완료된 강연을 강연 당일에 열 수 없다는 건 부당하다며 학생들은 강연을 취소할 수 없다고 했고, 강연이 시작됐다.

강연 내용이 우려스러웠는지 대학교수와 몇몇 기독교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강연장으로 들어왔다. 피켓에 써 있는 문구들은 이랬다. ‘동성애 조장 반대‘, ‘창조질서 교란하는 페미니즘 반대한다‘, ‘자유섹스 하라는 페미니즘 반대한다’.

강연이 끝난 후 한 교수는 학생 ㅅ이 강연하러 온 사람과 연인 사이이며, 폴리아모리라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동료 교수들에게 전체 메일을 보냈다. 학생에게 들은 개인의 사적 관계를 학교의 교수들에게 보낸 것이다. 이때부터 ㅅ의 실명과 사적 관계는 대학교수들과 학생들 사이에 공개되고 회자되었다. 이후 학교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그는 무기정학 징계를 받게 됐다.

무기정학 통보 며칠 전 한동대학교는 교육부에 다음과 같은 답변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한동대 학생으로서 학교의 교육이념에 용납될 수 없는 다자성애(폴리아모리)를 정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학생지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기간을 종료하고 학교에 복귀할 수도 있음.” ㅅ의 연인과 헤어지라는 걸까? 학교가 학생의 연애에 간섭하고 헤어지지 않으면 무기정학을 보내겠다고 한다. 학교 측은 ㅅ의 부모님에게도 전화해서 ㅅ의 연인 관계를 언급했다. 이상한 일이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도 학생의 연애관계를 두고 무기정학을 하거나 부모님에게 통지하는 일은 없었는데.

징계 결정 통지서에는 “학생으로서 모든 권리가 정지되며 수업을 받을 수 없음”이라고 써 있다. 대학 몇 년 동안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해오던 ㅅ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도 존중한다는 이유로 학생으로서의 권리가 정지되고 수업조차 들을 수 없게 됐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실명과 관계 지향, ‘문란한’ 관계라는 딱지가 붙은 채. 징계 통보가 알려지자 학생 몇몇이 ‘폴리아모리를 이유로 내쫓을 수 없다’는 펼침막을 들고 캠퍼스에서 가두시위를 했다. 이에 학교 측은 시위를 한 학생들을 또다시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려고 한다.

학교 측은 ㅅ에게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라는 이행요구와 함께 무기정학을 통보했다. 치료라도 하려는 걸까. 하긴 동성애 치료센터 설립을 공약으로 걸고 나오는 정치인도 있다. 한 사람의 관계 지향, 성적 지향을 병적 증상으로 진단하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려면 얼마나 오만해야 하는 걸까.

무기정학 통보를 받은 후 ㅅ이 쓴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젠 학교에 조금의 미련도 남아 있지 않다. 좋든 싫든 7년 가까이 지낸 곳이지만, 이쯤 되면 이렇게 된 게 나은가 싶다. 혐오로 가득 찬 공간에서 허우적대느니 차라리 잘려나가 아가미를 얻은 게 나은 듯하다. 그래도 내 몫의 꿈틀거림은 보여줘야겠다. 법정에서 봅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 #무기정학 #비독점 다자연애 #폴리아모리 #한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