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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혐오표현을 규제해야 하나?

ⓒhuffpost

지난해 12월 독일 경찰이 아랍어로도 신년인사를 올리자,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의 슈토르히가 “경찰 공식 계정이 아랍어로 인사를 하다니, 도대체 나라가 왜 이 모양이냐?”는 트위트를 올렸다. 그리고 이 글이 새로운 인터넷규제법에 따라 삭제되자 “그들이 지금 야만인, 무슬림, 강간집단들을 달래려고 하는 거냐?”고 항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혐오표현을 한 혐의로 검찰 조사가 시작되었다.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할 때는 그 맥락, 발화자, 의도, 내용, 영향력, 파급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그 발화자가 이 경우처럼 정치인이라면 어떨까? 유럽의 경우에는 정치인의 발언이 더 위험하다고 보는 편이다. 최소한 정치인이라고 면책된다고 보진 않는다. 2010년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 대표인 마린 르펜은 거리에서 기도하는 무슬림을 나치의 프랑스 점령에 비유했다가 기소된 바 있다.

마린 르펜의 아버지로 국민전선의 창립자인 장마리 르펜도 나치 점령이 “특별히 비인도적이진 않았다”고 말했다가 반인도적 범죄 부정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2006년 벨기에 국민전선당 의장 페레에게는 무슬림과 이민자를 반대하는 리플릿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증오선동죄가 적용되었다. 2014년 네덜란드 자유당(PVV) 대표 빌더르스도 지지자들에게 모로코 이주자를 줄이겠다고 약속했다가 혐오표현죄로 기소되었다.

ⓒaltmodern via Getty Images

하지만 정치인의 발언을 규제한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국제선거제도재단의 보고서 <선거에서 혐오표현의 대응>에도 그러한 고민이 담겨 있다. 혐오표현이 소수자의 민주적 참여권을 박탈하기 때문에 선거 시기에 오히려 더 규제되어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선거를 통해 여러 의견이 자유롭게 경쟁해야 한다는 원칙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규제와 처벌의 실효성도 문제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수사선상에 오른 혐오주의자들이 “사법적 박해”에 저항한다며 선동에 더욱 열을 올렸고, 그 과정에서 네덜란드 자유당이나 프랑스 국민전선이 더 많은 지지를 얻은 전례도 있다.

한국도 곧 지방선거다. 한국에서도 이제 혐오의 정치상품화가 시작되었다. 이미 지난 대선 때 “동성애에 반대하냐”고 묻는 정치인이 등장했고, 최근에는 몇몇 지자체의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폐지·축소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메갈리아와 무슨 관계냐” “난민을 더 받는 것에 찬성하냐”는 식의 고약한 질문을 던지거나, “이슬람화를 조장하는 기도실 설치를 막겠다”는 공약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당장 정치인의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적 차원에서 어떤 규제가 필요할지에 관한 논의는 지금 당장 필요하다. 정치적 선거라고 해서 모든 발언에 면죄부가 부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의 혐오도 문제라는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국제선거제도재단의 보고서는 정부, 국회, 정당, 사법부, 사회지도자, 시민단체, 언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이 협력하여, 평등과 반차별 원칙을 교육하고, 확인하고, 대화하고, 확산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라고 제안한다.

한국의 시민사회도 같은 생각이다. 오늘 인권·시민단체들은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를 발족시킨다. 혐오표현의 문제를 공론화시키고 함께 대응하는 공동의 경험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당장 정치인의 혐오발언이 직접적인 제재를 받진 않겠지만, 시민사회의 감시와 통제 대상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선거에서는 소수자가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소수자를 혐오하는 정치인이 공적 영역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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