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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장과 열차 사이 틈에 휠체어 바퀴가 끼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에 법원이 내린 결정은 울화가 치민다

법원은 차별 행위 인정하면서도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

2019년 4월 ㄱ씨의 전동휠체어 바퀴가 끼었던 신촌역 3-2 승강장. 
2019년 4월 ㄱ씨의 전동휠체어 바퀴가 끼었던 신촌역 3-2 승강장.  ⓒ한겨레

지체장애 1급인 ㄱ씨와 ㄴ씨는 지난해 12월 1천만원 상당의 소송비용 청구서를 받았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승강장과 열차 사이 틈에 전동휠체어 바퀴가 끼어 다친 뒤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차별구제 청구 소송을 냈다가 패소하면서, 공사의 소송비용까지 이들이 물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공익소송에도 적용되는 이런 ‘패소자 부담 원칙’이 자칫 사회적 약자의 공익소송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은 2019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ㄱ씨는 당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쪽 병원에 가기 위해 2호선 내선순환행 열차를 탔다. 여느 때처럼 휠체어 전용칸에 타려했지만, 열차가 바로 도착하는 바람에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가까운 3-2 승강장에서 열차에 올랐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가 내릴 신촌역 3-2승강장은 열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이 12㎝였다.

서울 내 지하철역 풍경. 
서울 내 지하철역 풍경.  ⓒ뉴스1

내릴 때 전동휠체어 앞바퀴가 이 틈에 끼이면서 ㄱ씨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시민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열차에서 내릴 수 있었지만, 그는 더는 신촌역 3-2 승강장을 이용하지 못하게 됐다. ㄱ씨는 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고 트라우마가 얼마나 큰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공포”라고 했다. ㄴ씨도 2017년 5월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승강장에서 열차에 오르려다가 승강장 틈에 전동휠체어 앞바퀴가 끼면서, 사람만 열차 안으로 튕겨 들어가는 사고를 겪었다.

ㄱ씨 등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9년 7월 소송을 냈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 간격이 넓고, 두 곳의 높이차(단차)로 휠체어 이용이 어렵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1·2심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차량과의 간격이나 높이차로 휠체어 사용자가 장애가 없는 사람과 동등하게 (지하철) 승하차를 하기 어려운 승강장의 경우, 차별행위가 존재한다고 할 것”이라면서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에 대해 편의를 제공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며 공사 쪽 손을 들어줬다. 이들 장애인이 상고하지 않아, 이 판결은 지난해 9월 확정됐다.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경복궁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관련 지하철 시위 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경복궁역에서 장애인 이동권 관련 지하철 시위 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 ⓒ뉴스1

문제는 패소가 확정되면서 서울교통공사의 소송비용까지 이들 장애인이 물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민사소송법 98조에서 규정한 ‘소송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한다’는 소송비용 패소자부담주의 원칙 때문이다. 소송비용에는 변호사비용도 포함된다. 원고가 패소한 경우, 재판부 재량으로 소송비용을 원고와 피고가 각자 부담하게 하는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법원은 패소자에게 기계적으로 법원에 지불해야 하는 소송비용인 인지대를 비롯해 소송서류가 오가는데 필요한 송달료, 상대방의 변호사비용까지 부담하게 한다. 공익사건 전담 변호사를 통해 무료로 소송을 제기했던 ㄱ씨는 “법원의 이런 행태는 소송비용이 부담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입을 막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억울하거나 불편해도 그냥 살아야 하는가. 이런 원칙은 사안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법조계에서는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소송에도 패소자 부담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2014년 ‘염전노예 사건’ 피해 장애인들이 국가와 전남 신안군을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냈으나 패소한 사건에서도 법원은 소송비용을 피해 장애인들이 부담하도록 했다. 2018년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가 야생동물의 생태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제기한 시민단체의 공익소송에서도 법원은 시민단체가 소송비용을 부담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른 문제제기가 반복되자, 2020년 2월 법무부 산하 법무·검찰 개혁위원회는 공익소송 패소비용에 관한 감면규정을 마련하도록 법무부에 권고했고, 대법원도 공익소송 비용 경감 문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진척은 없는 상황이다. 이를 개선하려면 패소자 부담을 규정한 민사소송법 개정이나 새 입법이 필요한데, ‘실익 없는 무분별한 소송을 방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소 남용 방지’ 논리가 법원 안에서 여전히 힘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법조계 설명이다.

ㄱ씨와 ㄴ씨 사건을 대리하는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소송비용 부담 결정에 불복해 항고를 제기하는 한편, 패소자 부담 원칙을 규정한 민사소송법 98조·109조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공익성을 가지고 제기하는 소송에 일률적으로 패소자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하라고 하는 것은 재판 청구권을 저해할 수 있다”며 앞으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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