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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취해 페라리 위에서 잠든 회사원에게 3년 만에 벌어진 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잠들었다.

ⓒ한겨레

2014년 9월 어느 밤, 회사원 ㅎ씨는 술자리를 마치고 경기도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집을 간신히 찾았다고 안도하며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었지만, 2시간여 만에 경찰에 피의자로 입건됐다. 시시티브이(CCTV)가 말해주는 간밤의 진실은 이랬다. 밤 11시께 만취 상태로 지하주차장에 들어선 ㅎ씨는 갈지자걸음으로 차량 서너 대 사이를 한참 오갔다. 이내 고가 외제차인 페라리 보닛을 밟고 올라선 채 옷을 모두 벗고 잠들었다. ㅎ씨가 침대라고 생각했던 것은 페라리의 소프트톱(부드러운 소재로 만든 개폐형 지붕)이었다. ㅎ씨에게 재물손괴 혐의가 적용됐다.
페라리 주인 쪽은 소프트톱과 보닛 교체에 1억2900여만원이 든다는 견적서를 수사기관에 냈다. 하지만 ㅎ씨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됐다. 정비업체에서 소프트톱이 훼손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낸 데다, 인사불성 상태였던 ㅎ씨가 고의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점이 고려됐다.

다만 사건은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차량 결함을 주장하는 페라리 주인이 자신의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을 요구하며 ‘2차 레이스’가 펼쳐졌다. 법원의 공식 감정에선 ㅎ씨가 차량에 올라타는 과정에서 소프트톱 좌우 균형이 흐트러진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보험사는 소프트톱 수리비용 등으로 1400여만원을 부담했다. 그리고 보험사는 지난해 8월 ㅎ씨에게 소송비용 400만원을 포함해 1800여만원을 물어내라는 구상금 청구소송을 냈다. ㅎ씨는 형사처벌을 면한 지 3년 만에 1천만원대 민사소송을 당하게 됐다. ㅎ씨는 “2시간가량의 수면으로 차량 결함을 초래했을 리 없다”며 버텼지만 법원 공식 감정을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법 강영호 판사는 ㅎ씨가 보험사에 740만원(수리비용의 70%)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물손괴 형사사건과 달리 민사사건에서는 고의가 아니어도 행위와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만 충분히 인정되면 되는 까닭에 ㅎ씨는 배상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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