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2020년 06월 03일 16시 17분 KST

시위 진압에 군 병력 투입을 위협한 트럼프로 곤경에 처한 국방부

국방부 전현직 당국자들도 트럼프의 군대 동원이 가져올 부정적 영향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REUTERS/Carlos Barria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백악관 경계에 투입된 워싱턴DC 주방위군 관계자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는 비무장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강압 체포로 사망한 사건에 분노한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2020년 6월1일.

워싱턴 (로이터) -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를 언급하면서 쓴 단어는 바로 ”전투공간(Battlespace)”이었다. 그런 다음, 미국 군을 지휘하는 그는 1일(현지시각) 저녁 워싱턴DC 도심에 군복 차림의 병력과 함께 등장함으로써 전투공간의 이미지를 한층 고조시켰다. 

전시 임무 수행 중이라고 오해하기 쉬운 미군 헬리콥터들은 미니애폴리스 백인 경찰관에 의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에 분노한 워싱턴 시위대의 머리 위에서 비행하며 위력을 선보였다.

전국적인 동란을 맞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점점 더 군사적인 레토릭에 의존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군은 이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현직 관계자들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고, 가장 많은 재정을 지원받고 있는 기관 중 하나인 미국 군에 닥쳐올 위험을 크게 우려한다.

″미국은 전장이 아니다. 우리 동료 시민들은 적이 아니다.” 합참의장을 지냈던 4성 퇴역 장군 마틴 뎀프시가 트위터에 적었다.

미국 군, 우리의 아들 딸들은 동료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생명의 위협도 감수할 이들이다. 해외에서 그들의 임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들다. 고국에서는 더 힘들다. 그들을 존중하라. 그들은 여러분들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장이 아니다. 우리 동료 시민들은 적이 아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현직 군 관계자는 군이 ”정치적 소품”으로 동원되는 것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통령은 왔다가 가는 것이지만... 전투복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이 관계자가 말했다.

REUTERS/Tom Brenner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나와 라파예트공원을 거쳐 세인트 존스 교회를 방문하는 길에 시위 대응에 투입된 경찰과 군 병력을 향해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교회 앞에서 성경책을 든 채 사진 촬영에 임한 짧은 '이벤트'를 벌이기에 앞서, 이곳에서 평화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는 최루가스와 고무탄 등에 의해 해산됐다.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군에 의존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는 정치중립적이어야 할 군대가 트럼프의 정치적 목표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 위험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는 이전에도 불법적인 이민을 저지하는 데 군대를 동원했으며, 멕시코 국경장벽을 짓는 데 국방 예산을 활용했다.

하지만 지난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돼 미국 전역으로 번진 시민들의 소요사태에 대응하면서 군대를 끌이들이는 것은 특히나 더 문제적이다.

가장 큰 이유 중 핵심에는 이 하나의 아이디어가 있다. 미국 군은 해외의 적국으로부터 미국 시민들을 보호하고, 시민들의 평화시위 권리를 분명히 보장하고 있는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주방위군 사령관 스스로도 국내적 위기 사태에 대응하는 것은 병력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지금까지 총 2만여명의 주방위군 병력이 지역 사법당국의 시위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동원됐다.

″이번 임무는 불편한 임무다. 병력들은 이를 수행하기를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조지프 렝겔 주방위군 사령관의 말이다. 

REUTERS/Tom Brenner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세인트 존스 교회 앞에서 성경책을 든 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2020년 6월1일.

 

에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1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인근 교회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 자리를 함께했다. 그에 앞서 경찰과 군 병력은 이 지역에서 평화롭게 시위를 벌이던 시위자들에게 최루가스와 고무탄을 발사해 이들을 해산시켰다.

그 자리에서, 트럼프는 ”국내 테러 행위”를 규탄했고, 미국이 전문적인 무정부주의자들과 폭력적인 무리들, 방화범들, 약탈꾼들, 범죄자들에게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고위 군 관계자는 에스퍼 장관이나 밀리 의장은 당시 시위 대응 방안에 대해 새로운 내용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 당시 백악관에 있었으며 이 ‘기념 촬영’ 행사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회의가 끝나자 대통령은 (백악관) 바깥에 배치된 병력을 한 번 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고, 장관과 합참의장이 동행했던 거다. 당시 상황이 그렇게 됐던 거다.” 익명을 요청한 이 관계자가 말했다. 

REUTERS/Ken Cedeno
트럼프 대통령의 교회 방문 '기념촬영 이벤트'에 앞서, 진압경찰은 라파예트공원과 교회 인근에서 평화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했다. 2020년 6월1일.

 

보수 성향의 정책연구기관인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 외교·국방 정책 연구를 담당하는 코리 샤키를 비롯해 미국의 민간-군 관계 전문가들은 에스퍼 장관과 밀리 의장이 그와 같은 행사에 동행하기로 한 ”충격적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그들은 ‘대통령님, 제가 그렇게 하면 좋지 않은 시그널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샤키의 말이다.

국방부 관료를 지낸 앨리스 프렌드는 에스퍼 장관과 밀리 의장이 ‘전투공간’ 따위의 표현을 써가면서 미국 내의 미국 시민들과 전쟁터의 적들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시민들을) 갈라놓고 정복하기 위해 미국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정부의 강압적 권력을 믿기 힘들 만큼 확대하는 행위다.” 현재는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으로 있는 프렌드의 말이다.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한 질문에 한 고위 국방부 관계자는 에스퍼 장관이 군 지도자로서 평소에 익숙하게 쓰던 표현을 사용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현역 군인들을 투입하기로 결정할 경우, 국방부는 금세 시민 소요사태에 더 깊에 얽혀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 미국 군은 그동안 그와 같은 상황을 주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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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교회 사진촬영 이벤트'에 동행한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가운데).

 

1일,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미국 현역 군인들을 미국 도시들에 투입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국내 사법집행에 군대를 투입하려면 트럼프 대통령은 반란진압법을 발동해야 한다. 이 법이 가장 최근에 사용된 건 로스앤젤레스에서 ‘로드니 킹’ 폭동이 벌어졌던 1922년이다.

하원 군사위원회의 공화당 중진의원은 반란진압법에 대한 논의는 미국 군 병력을 ”정치적 노리개” 전락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그와 같은 논의가 우리의 군인들을 국내 정치적, 문화적 위기의 한복판으로 너무나도 쉽게 밀어넣게 될 것이라는 점이 우려스럽다.” 맥 숀베리 의원(공화당)의 말이다.

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민주당 애덤 스미스 의원은 에스퍼 장관과 밀리 의장의 의회 출석을 요청했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재적으로 보이는 통치와 그것이 우리 군 지도자들의 판단에 끼치는 영향에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

″우리 민주주의의 운명은 우리가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느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