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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huffpost

로마는 하루에 건설되지 않았다. 총창 위에 세운 ‘로마의 평화’는 적어도 5세기 이상 무수한 전쟁으로 쟁취한 것이었다. 총창의 힘에 기대지 않는 평화를 만드는 과정은 결코 이보다 쉽지 않다. 최근 있었던 난기류를 성찰의 계기로 삼는다면 그래도 진전은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종전선언을 선포한다고, 심지어 평화협정을 조인한다고 해서 평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드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은 틀림없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먼 길을 나서는 첫걸음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어느 날 갑자기 관계국 정상들이 만나서 발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종전선언을 이루기 위해서도 남북과 미국은 무수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쟁상태를 계속할 의사가 없다고 확인에 재확인을 해야 한다. 구체적 조치들로 그 말들을 뒷받침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직후 휴전선 일대에서 확성기를 제거한 조치는 그래서 중요한 것이었다. 평양을 다녀온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우리는 확실한 안전 보장을 제공해야만 할 것”이고 발언한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었다. 반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북의 일방적 핵 폐기, 그것도 선제적 조치를 요구한 것은 그래서 부적절한 것이었다. 소위 ‘전략자산’을 동원한 한-미 군사훈련을 시작하고, 남북 고위급회담을 열기로 한 날까지 축소 조치조차 취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 부적절한 것이었다.

비핵화를 두고 북을 믿을 수 있는지 의심을 하는 것은 합리적이다. 비핵화에 상응하는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의지를 의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합리적이다.

텍사스 에이앤엠(A&M) 대학의 시프린슨은 최근 충격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은 1990년 소련과의 협상에서는 탈냉전 유럽에서 협력적 구조를 만들자고 하면서 뒤로는 미국이 압도하는 체제를 만들고 있었다.” 국제안보 부문에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는 미국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이고, 2017년 미국 국제정치학회 외교연구분과의 최우수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최근 공개된 외교문서를 면밀히 검토하고 러시아의 입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푸틴은 “독일 통일 후 나토가 동쪽으로 확장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었다”고, 고르바초프 역시 “냉전 종식 후 나토는 독일 경계선 이상으로 팽창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이 약속했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미국은 1990년 소련과의 협상에서 이러한 약속을 공식문서로 남기지 않았고, 지금도 이러한 약속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물론 현재의 상황은 1990년과는 다르다. 하지만 북은, 중국은, 러시아는 미국을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문재인 정부를 믿을 수 있을까?

북은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선언했고, 구체적 행동에 들어가고 있다. 그사이 청년동맹, 조선직업총동맹, 여성동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 등 근로단체들뿐만 아니라 당 중앙군사위원회까지 소집하여 당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의 “강령적 과업을 철저히 관철”할 것을 다짐했다. 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는 핵·경제 병진노선을 마무리하고 이를 대체하는 ‘경제건설 총력 집중’을 새 노선으로 제시한 회의였다.

물론 한국은 북과 다르다. 정상회담 합의를 이행하는 방식과 속도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건설하기 위해 지금 여기서 해야 할 말과 행동들을 충분히 하고 있는가?

평화는 어느 날 갑자기 도둑처럼 오지 않는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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