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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30일 10시 47분 KST | 업데이트됨 2018년 05월 30일 10시 47분 KST

최저임금 투쟁하는 노동자가 미래의 주인공이다

뉴스1
huffpost

‘블랙홀의 아버지’로 불리는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2015년 영미권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서 온라인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당시 남긴 댓글이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온라인에 공식적으로 쓴 마지막 댓글로 알려졌다. 한 네티즌이 “급격한 자동화로 대량 실업이 우려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호킹은 이렇게 답했다.

“기계로 창출된 ‘부’가 고르게 나누어지면 모두가 안락한 삶을 즐길 수 있을 것이고, 기계 소유주들이 ‘부’의 재분배에 대항하는 로비에 성공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찍하게 가난해질 것이다.”

미래 사회를 그린 많은 공상과학영화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수의 특권층이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안락한 삶을 사는 반면 대다수 서민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대립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 펑크’의 효시라고 알려진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해 <스타워즈>, <브이 포 벤데타>, <토탈리콜>, <엘리시움>, <오블리비언>, <메이즈 러너> 등의 영화가 모두 그렇다. <터미네이터>, <매트릭스> 등은 한발 더 나아가 기계 자체가 사회를 지배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현재 기계 소유주들이거나 미래 사회에 기계 소유주가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도록 함으로써 일단 ‘부의 재분배에 대항하는 로비’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에 상여금과 수당이 포함된다 해도 최저임금보다 상당히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큰 손해가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최저임금만 겨우 받고 있는 영세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는 피해가 없다”거나 “고임금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더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주장은 무식의 소치이거나 비겁한 거짓말이거나 둘 중 하나를 피할 수 없다. 최저임금 수준의 기본급과 약간의 상여금과 수당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당장 최저임금 인상 혜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어떻게 이들에게 손해가 없다고 말할 수 있나?

대기업 정규직 고임금 노동자들 중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미달해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을 저임금 노동자보다 더 많이 받고 있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최저임금은 16.4% 인상됐지만 노동조합이 있는 10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 임금인상률은 3~4% 정도에 머물렀다. 중위권 임금 정도만 받아도 최저임금 인상의 혜택이 별로 크지 않다는 뜻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곧바로 저임금 노동자 임금 인상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최저임금 제도야말로 임금 격차를 완화하는 대표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광범위한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억제해 최하위 임금에 머무르게 하는 효과가 있을 뿐이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를 달성할 수 있겠는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반대 투쟁은 평소 “대기업 정규직 중심”이라는 시선을 받는 민주노총이 영세 하청업체와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싸움이다. 그럼에도 “전체 노동자 1900만명 중 양대 노총 소속은 200만명에 불과하다. 민주노총은 너무 고집불통이다”라며 조직 노동자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 싸움처럼 비난하는 것은, 민주노총 출범에 참여했다는 노동운동 경력을 벼슬처럼 달고 다니는 여당 원내대표가 할 말은 아니다.

국회가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과거 여러 차례 언급했듯 “기업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나라들에서 최저임금 제도를 마련한 취지는 기업이 당연히 그 부담을 져야 한다는 것이고 그래야 사회 전체에 유익하다는 뜻이다. 정부 여당은 기업 부담을 걱정할지언정 최저임금 겨우 받는 노동자 생활고를 걱정하는 정당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인시켜 주고 싶은 것인가?

미래 사회에도 기계로 창출된 ‘부’를 나누기 위한 진보적 운동은 계속 필요할 것이고 그 가장 중요한 토대는 지금의 노동운동이 될 것이다. 앞에 예로 든 공상과학영화에는 공통적으로 저항세력이 등장하고 영화의 주인공은 모두 그 저항세력들이다.

* 한겨레 신문에 게재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