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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생들이 사장님을 위해 '과식투쟁'에 나선 이유

일명 '소상공인 살리기 프로젝트: 과식투쟁'이다.

“코로나 때문에 갑자기 내일부터 아르바이트 나오지 말라는데 알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가요?” 한 포털사이트에는 이런 질문이 여러건 올라왔다. 알바들은 경기침체에 먼저 영향을 받는 약자들이다. “코로나 때문에 직원 잘라야 하나요 ㅠㅠ” 같은 질문을 올리는 소상공인 사장들도 또다른 약자가 아닐 수 없다. 약자와 약자는 어떻게 상생할 수 있을까. 알바노조의 실험 ‘과식투쟁’ 현장에 가봤다.

“지금 골목에 들어서면 가게 여기저기에서 들어오라고 붙잡을 거예요. 경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

지난 24일 점심, 서울 중구 지하철 회현역 앞에서 모인 네명의 알바노조(아르바이트 노동조합) 조합원들은 근처 남대문시장으로 향했다. 시장통에 자리잡은 갈치조림 골목 앞에 선 이들은 10여곳 늘어선 식당 앞에서 어디를 들어가야 할지 살폈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은 지나는 사람마저 줄어 휑한 느낌이었다. 가게마다 종업원들이 입구에서 행인의 옷자락을 잡았다. “여기 잘 나와. 여기로 와서들 먹어.”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갈치조림 골목’의 한산한 풍경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갈치조림 골목’의 한산한 풍경 ⓒ한겨레

‘넝쿨식당’에서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몇 안 되는 뚝배기 그릇을 불판에 올리던 김아무개(61)씨가 골목을 지나는 행인들이 무척 반가운 듯 들어오라 손을 내밀었다. 다섯이 우르르 김씨네 식당으로 들어가버리자 건너편 식당 주인의 얼굴엔 이내 미소가 사라졌다.

“갈치조림 다섯, 고등어구이 둘이요.” 사람은 다섯인데 7인분을 시켰다. “여기 음식 남을 것 같은데…” 누군가 이야기하자, 맞은편에 앉은 이가 “어떻게 그리 쉽게 예단하죠?”라고 웃으며 반문했다. 첫번째 밥그릇을 비우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탁자에선 “이모, 여기 밥 한그릇 더 주세요”란 요청이 나왔다. 조금 뒤 접시가 바닥을 드러내자, 몇분 전 너무 많은 음식을 시킨 것이 아닌가 의심한 자신들을 보고 다섯명은 다 같이 한바탕 웃었다.

“사장님, 요새 장사 잘 안되나요?” 점심시간인데도 가게 안에 빈자리가 많은 걸 보고 한명이 김씨에게 물었다. 김씨는 “말도 마. 코로나 때문에 손님 엄청 줄었지. 원래 점심 땐 2층, 3층 다 찼는데 지금은 1층부터 텅텅 비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기자에게 “경기가 진짜 안 좋다고 기사 좀 잘 써줘. 여기 다 죽어나가”라고 신신당부했다. 가게 안 티브이에선 “100조원 규모 기업구호 긴급자금 투입” 뉴스가 흘러나왔다. 보는 이들의 얼굴엔 웃음기가 없었다. “제가 일하는 카페는 다행히 괜찮은데, 영화관에서 일하는 제 친구는 코로나 때문에 다음부터 나오지 말라고 했대요. 잘린 거죠.” 한 조합원이 말했다.

우리가 ‘과식투쟁’ 나선 까닭은

아르바이트 노동자(시간제 일자리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하 ‘알바’)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2013년 조직된 알바노조는 최근 ‘소상공인 살리기 프로젝트: 과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알바들이 일하는 많은 가게들이 어려움을 겪자, 소소하게나마 알바들이 많이 사 먹어 사장님들을 돕자는 경기회복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전국 각지 조합원들이 지역 식당을 찾아가 양껏 밥을 사 먹은 뒤 그릇을 싹 비운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면 알바노조가 밥값 일부를 지원해주는 방식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소상공인 살리기 프로젝트: 과식투쟁’을 벌인 알바노조.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소상공인 살리기 프로젝트: 과식투쟁’을 벌인 알바노조. ⓒ한겨레/알바노조 제공

‘1인 2백반 사먹기 운동’이라고 별칭도 붙였다. 뜻밖에 불어닥친 경기침체에 알바들이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고 있는데, 같은 시기 매출 하락으로 고통을 겪는 사장들과 함께 사는 길을 찾아보자며 이런 투쟁을 시작했다. 혼자서도 두그릇씩 사 먹을 수 있기에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에도 지장이 없다.

첫 시작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이었다. 알바노조 조합원 다섯명이 찾아가 찌개에 동그랑땡을 잔뜩 시켜 먹었다. 17일엔 서촌 맛집 거리에 있는 파스타 가게에 몰려갔다. 코로나19 탓에 손님이 없다는 사장님의 전화를 받고서 정한 장소였다. 사무실 근처 백반집에서 두명이 밥을 먹더라도 3인분을 시켰다. 접시를 싹 비운 사진을 알바노조 에스엔에스에 올리자 응원의 댓글이 달렸다.

과식투쟁을 응원하는 후원금도 들어왔다. 근처에서 작은 인쇄소를 하는 사장이 과식투쟁을 응원한다며 지난 14일 알바노조에 5만원짜리 지폐 두장과 1만원짜리 지폐 다섯장을 보내왔다.

지역 정치인도 합류했다. 알바노조 사무실이 있는 서울 종로구에 총선 후보로 출마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 19일 관훈토론회에서 “알바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식당이 아니더라도 다른 식당이 문을 닫으면 동료 알바들이 일자리를 잃기 때문에 작은 월급을 가지고 더 많이 사 먹자, 그래야 일자리를 안 잃는다. 그런 투쟁을 하고 있다”며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부산에서 출마한 배재정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지난 24일 지인과 둘이 지역 식당을 찾아가 3인분의 식사를 한 뒤 동영상을 자신의 에스엔에스에 올렸다.

알바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고용주를 상대로 열렬히 싸우던 알바노조가 왜 이런 고용주와 알바 노동자 간 상생운동을 제안했을까. 이들이 과식투쟁을 기획한 건 요즘 노동조합으로 걸려오는 상담 전화의 내용이 평소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몇주 전, 알바노조에는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기도 한 편의점에서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인데 일자리를 잃었다는 내용이었다. 점주가 요즘 경기가 안 좋아 매출이 줄었으니 두달쯤 지나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때 다시 연락 주겠다고 했단다. 어느 날 갑자기 나오지 말라고 하는 것은 엄연한 근로기준법 위반이기에 부당해고로 신고해볼 수도 있었다. 알바노조는 아르바이트생이 취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보자 했다.

하지만 왜인지 당사자인 알바생은 머뭇거렸다. 코로나19로 경기가 워낙 좋지 않은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사장님 사정이 딱하다는 것이었다. 두달 뒤를 기다려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신정웅 알바노조위원장은 “평소 같으면 부당한 상황을 겪은 당사자가 본인의 손해를 보전할 방법을 물으며 ‘사장님에게 과태료 물릴 수 없느냐’ 같은 문의를 해왔을 텐데, 요즘엔 상황이 좀 다르다. 경기침체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마냥 사장을 몰아붙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느냐 문의하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위기는 가장 밑바닥에서 온다

전례가 없는 전염병으로 인한 경기침체는 알바에게 주요 일자리를 제공하는 자영업자에게 직격탄이 되었다. 알바노조가 ‘과식투쟁’이란 상생운동을 제안한 것은 이들이 겨누는 대상 역시 기업 생태계 최전선에서 약자라 할 수 있는 소상공인이기 때문이다. 인원을 줄인 소상공인들의 법적 책임만 따져서는 약자끼리의 진흙탕 싸움이 되어 해법이 나오기 힘들다는 인식이 있었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와 경기도가 지난 19일 발표한 코로나19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외식·도소매·서비스업종 3464개의 가맹점주 중 97%가 코로나19로 매출이 감소했다고 답했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에는 알바들의 주요 일자리인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 가맹점주들이 소속돼 있다. 실제 구체적인 위기 대응을 하고 있다는 가맹점주 1946명에게 어떤 대응 방식을 취했는지 물은 결과(복수응답) ‘영업시간 등을 축소했다’(64.4%), ‘인원을 감축했다’(52.9%), ‘대출을 받았다’(32.4%), ‘휴업이나 폐업했다’(7.8%)고 답했다.

2년 전 대구 수성구에서 식당을 창업한 김희준(가명·33)씨는 하루 매출 70여만원이던 가게가 요즘은 5만~6만원대 매출을 올리기도 힘들다고 했다. 코로나가 대구 전역을 휩쓴 2월 중순 2주가량 문을 닫았다가 최근 다시 가게를 열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긴급대출도 받았다. 무엇보다 김씨가 가슴을 쓸어내린 일은 고용이었다. “몇달 전 알바를 채용하려다 잠시 미뤘는데 만약 채용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 골목 가게 사장님들 휴업하는 동안 울며 겨자 먹기로 알바를 내보냈는데 법 위반이란 것 알면서도 피할 수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코로나19로 임차료와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소상공인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알바에게 전가되는 현실에서 공공부문에서라도 알바의 고통을 흡수하자는 대책들이 나왔다. 하지만 혜택을 받는 이는 많지 않다. 서울시는 코로나19로 알바가 끊긴 청년층에 두달간 100만원을 지원하는 긴급수당을 실시했다. 지난 9일부터 500명 안팎을 모집하자 9일간 신청자 1157명이 몰렸다. 신청서를 제출하려면 사업주에게 1월20일∼3월20일 사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비자발적으로 퇴사했다는 서명을 받아야 한다.

신청에 문턱이 있는데도 신청 열기가 뜨거웠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장이 미안한 마음에 긴급수당 혜택이라도 받으라며 챙겨주는 경우가 많았다. 코로나로 인한 총체적 경기침체에 사장과 알바가 대립구도가 아닌 경우가 상당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사용자에게 알바 해고로 인한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했다.

경기 고양시도 지난 16일부터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시간제 아르바이트 100명을 추첨해 공공일자리 알바로 채용하는 ‘알바100’ 사업을 시행했는데 일주일간 신청자 533명이 몰려 5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그래도 내 권리 내가 챙겨야

코로나19로 경기가 어렵다고는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기도 한다. 조민진(가명·30)씨는 코로나19가 한국에 막 퍼지던 2월 중순 일하던 헬스장을 그만두게 됐다. 주 5일 하루 2시간씩 수건을 정리하는 업무였다. 한달 반 정도 일했을 때 조씨는 몸이 안 좋아 일하던 중 기침을 했다. 사장은 “다 낫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고 조씨는 5일간 치료를 받으며 일을 쉬었다. 기관지염이었다.

그런데 다시 일하려니 사장은 “(코로나19) 완치 판정서를 받아 오라”고 요구했다. 조씨는 “다 치료해 몸이 나았고 코로나를 앓은 것이 아니다. 기관지염 진단서가 있다. 코로나 완치 판정서라는 것은 없다”고 소명했지만 사장은 조씨가 스스로 그만뒀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조씨는 사장의 권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도 없이 일한 탓에 제대로 다퉈볼 수도 없었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시기에 알바에게 부당해고 같은 노동권 침해 상황이 많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위기 때 고용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알바들이 자신의 권리를 알고 있는 게 중요하며 계약서가 있다면 권리를 꼼꼼히 살피는 게 좋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해고 때 적어도 30일 전 예고해야 하고, 이를 어겼을 때 30일분 이상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코로나19에 대한 염려로 사업주가 판단해 알바에게 쉴 것(휴가나 휴직)을 권한다면 평균 임금의 70% 이상을 휴업수당으로 지급해야 한다. 휴업수당은 5인 이상 사업장이라면 정규직, 계약직, 알바 등 고용 형태에 관계없이 받을 수 있다.

지난 25일 고용노동부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도록 앞으로 3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모든 업종에 고용유지 지원금으로 휴업·휴직수당의 최대 90%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조은혜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 사무차장은 “고용유지 지원금조차 신청하지 않고 근로자를 해고하는 사업장에 대한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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