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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전용주차장 설치 논란을 보며

아직 운동장은 아주 심하게 기울어져있다

ⓒhuffpost

어떤 모임에서 여성전용주차장은 필요한가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필요하다고 하는 논리도 그렇지 않다는 논리도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고 있어서 한 쪽으로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금 예상 밖이었던 것은 여성들의 다수가 그 필요성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성을 기본적으로 운전이나 주차에서까지 약자로 분류하는 기준부터가 치욕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난 전용 주차장을 찬성하는 편이긴 했지만 여성이 남성에 비해 주차실력이나 그 밖의 운전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는 것도, 좁은 공간을 비집고 주차를 하는 것도 특별히 남성이 낫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nonnie192 via Getty Images

신체의 반사적 반응이나 운동신경이 평균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성이 조금 우위를 점하긴 하겠지만 그것이 여성전용 주차장을 만들어야만 하는 이유가 될만큼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성전용주차장의 필요성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은 운전과는 직접 관련 없는 인식이나 환경의 요인으로부터 출발한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미투운동만 보더라도 이시대를 함께 사는 여성들은 그들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관계 없는 불쾌한 위험들에 무방비로 노출되고는 한다.
사회적 편견도 무의식적인 폭력들도 남성보다는 여성을 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수년전 수십년전에 비하면 나아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아직은 남녀가 서 있는 운동장은 아주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우리가 사는 대부분의 시간과 공간에서 남성은 여성에 비해 유리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태생적이고 선천적으로 누리고 있는 무의식적인 우월적 지위를 남성들은 공격적으로 여성들에게 나눠줄 필요가 있다.

근본적인 문제들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겠지만 당장 그럴 수 없다면 무언가의 노력쯤은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지하철의 여성전용칸이 있는 것도 여성가족부라는 부처가 존재하는 것도 여성운동과 여성학이 발전하는것도 기계적인 평등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도 비정상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현실적 불평등을 돌려놓기 위한 의도적 설계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성만을 위한 주차장이 그들의 사회적 지위 혹은 인격적 대우와 단순하게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난 그런 보상마저도 진정한 평등으로 가는 과정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최소한으로 양보해야 하는 작은 보상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으로 살다보면 각종 복지적 혜택을 누리고 산다.

우선권을 가지고 배치가 되기도 하고 각종 할인과 무료의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두 다리 튼튼한 내게 주어지는 노약자석이나 직장 멀쩡한 내게 베풀어지는할인혜택은 그다지 어울리는 복지는 아니다.

때로는 내게 주어지는 과분한 배려나 복지들이 자존심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나도 강하게 거부하기도 한다.

여성전용 주차장을 치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러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 있는 또 하나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나라가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도 아직은 그것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한 평평한 운동장으로 가는 과정임을 나는 확신한다.

나도 궁극적으로 여성주차장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장애인 복지라는 용어 자체도 언젠가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여성을 위한 정책도 장애인을 위한 배려도 아무도 생각하지 않아도 그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이라면 그것들은 아무런 필요성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두가 편한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는 지금 이시간은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불평등하고 불편한 시간이기도 하다.

당장 바꿀 수 없다면 바뀌는 시간 동안 작은 보상은 필수적인 것이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로 불려지지 않는 날이 오는 시간동안 여성전용주차장은 꼭 필요한 작은 보상이다.

그것이 불만이고 불편하다면 남성과 여성이 완벽히 동등한 사회를 위해 조금 더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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