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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지법 앞 주차장 사장이 붙힌 안내판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다. 웃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법정구속된 손님이 남겨놓은 차는 사장에게 짐짝일 뿐이다.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지방법원 앞 한 민영주차장 관리인이 내건 안내문.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지방법원 앞 한 민영주차장 관리인이 내건 안내문. ⓒ온라인커뮤니티 갈무리

“손님, 오늘 법정구속될 것 같으면 24시간 주차비가 15만원 되니 주차장 사무실에 차 열쇠와 차 인수할 분 전화번호 꼭 남겨주세요.”

경기도 의정부시 의정부지법 앞 한 주차장 울타리에는 이런 문구가 쓰인 안내판이 붙어있다. 삐뚤빼뚤한 손글씨에는 법원 앞에서 주차장을 운영하는 이의 고충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안내판은 의정부지법 앞에서 20여년간 주차장을 운영한 석아무개(80)씨와 그의 큰아들이 내걸었다. 31일 석씨는 <한겨레>에 법원 앞에서 주차장을 하다 보니 생기는 ‘특별한 사정’을 털어놨다.

“차 주인이 법정구속되면 무한정 차를 대놓고 나중에 찾아오거나, 돈이 없어서 그런지 (차를 찾으러) 주차장에 안 와요. 주차장 임대계약 기간이 몇 개월 뒤면 끝나는데, 그때까지 차가 비워지지 않으면 제가 책임을 져야 하거든요.”
차를 찾아가지 않는 이들 때문에 속을 끓인 그는 2주 전 큰아들과 함께 굵은 매직펜으로 안내판을 써서 걸었다고 한다. 주차장 부지 임대계약이 얼마 남지 않아 내린 고육책이다. 그는 “안내문을 예쁘게 써 놓으면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을 것 같았다. 주의를 끌기 위해 매직을 사다가 써 본 것”이라고 했다. 손글씨도 나름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법정구속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 재판장이 즉시 구속영장을 발부해 법정에서 피고인을 구속하는 조처를 뜻한다. 석씨가 안내판에 ‘오늘 법정구속이 될 것 같으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재판에 참여하는 피고인 가운데 자신이 구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 여기서 법원 앞 주차장의 고통이 시작된다. 시간당 6천원을 받는 이 주차장에서 구속된 피고인이 차량을 장기간 방치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주차공간은 차지하면서 당장 주차비는 내지 않는 짐을 석씨가 떠안게 되는 것이다.

석씨는 최근 몇달째 방치된 차량 두대의 주차비 정산과 차량 이동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구치소로 차주 면회를 가기도 했다고 한다. 문을 잠그지 않고 간 차량은 문을 열어 차량등록증을 확인하고, 문이 잠긴 차량은 차 유리로 보이는 서류에 쓰인 이름과 주소를 보고 차주 정보를 찾았다. 석씨는 의정부구치소에서 두명의 차주를 각각 만나 동의를 받은 뒤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 근처 골목으로 옮겼다. 석씨는 “한 명은 차를 팔아 주차비 정산을 하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진 않았다. 어쨌든 이 사람이 출소해 먹고 살려면 차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싶었다. 경매로 팔 수도 있었지만 악착같이 돈을 받고 싶진 않았다”고 했다.

주차장에 방치된 차량은 차주의 처지나 생활 수준을 보여주기도 한다. 석씨는 “사실 웬만한 외제차는 2~3일이면 누군가 차를 찾아간다. 찾아가지 않고 남은 차들 중에는 고리대금업자들에게 담보 대출이 잡힌 것들도 많다. 집도 없고 차만 있는 나홀로 인생들도 많다. 사정이 딱해 우리도 주차비 제값을 다 정산받진 못한다”고 했다.

석씨의 안내판은 효과를 내는 듯했다. “(안내판을 붙인 뒤로) 뭔가 찝찝해 구속이 될 것 같은 손님들은 열쇠를 맡기고 차를 대신 가져갈 사람을 적어두기도 한다”는 것이다. 안내문 덕분인지 현재는 주인 잃은 차량은 주차장에 없다. 한 현직 판사는 “법정구속된 피고인은 법정 옆 구치감으로 나가 곧장 구치소로 직행하기 때문에 차량 사정까지 살피긴 어려울 것이다. 그런 문제 때문에 선고 전 신변에 변화가 생길 수 있으니 차량을 가져오지 말라고 안내하는 판사들도 있다”고 했다.

석씨는 작은 바람이 있다고 했다. “판사님, 법정구속할 때 아무리 죄인이라도 ‘당신 차 가져왔나?’라고 물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차가 있는 사람에게는 전화할 시간만 주셔서 처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겨레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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