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2022년 03월 24일 16시 20분 KST | 업데이트됨 2022년 03월 25일 11시 43분 KST

"사과하지 않아서 화가 났다" 박근혜에게 소주병 던진 남성은 인혁당 피해자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4·9통일평화재단의 공식 발표다.

뉴스1
박근혜.

[기사 수정] 25일 오전 11시39분

 

고향으로 돌아온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향해 소주병을 던진 남성은 ‘인혁당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낮 12시15분쯤 대구 달성군 유가읍에 박근혜씨가 도착했고, 박씨는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말을 전했다.

박씨가 ”돌아보면 지난 5년의 시간은 저에게 무척 견디기 힘든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저의 정치적 고향이자 마음의 고향인 달성으로 돌아갈 날을 생각하며 견뎌냈습니다”라고 말할 때, 현장에 소주병이 날아들었다.

뉴스1
경호원 보호받는 박근혜.

소주병이 산산조각 나며 깨졌지만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소주병을 투척한 남성은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남성은 ‘인민혁명당에 가입해달라’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문제의 남성은 박근혜씨가 사저에 도착하기 1시간 전부에 취재진 대기구역에 있었다. 

남성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이 사법 살인에 대해 사과하지 않아서 화가 났다” “집에서 마시던 소주 병을 들고 나왔다”라며 자신을 ‘인혁당 사건’ 피해자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관련 단체 ‘그런 사람 없다’ 

4·9통일평화재단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1975년 4월8일에 형이 확정된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는 사형수 8인을 비롯해 총 25명”이라며 “당사자들 또는 당사자의 배우자들은 현재 모든 70세를 넘긴 고령이시고 자녀나 손자녀들 중에도 A씨와 같은 분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라고 밝혔다. 4·9통일평화재단은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인혁당 사건) 희생자 추도기관이다. 

‘인혁당 사건’은 박정희 정부의 대표적인 사법 살인 사건이다. 1964년 1차 사건과 1974년 2차 사건으로 구분되는데, 독재에 반대하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간첩 사건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특히 1974년 중앙정보부에 의해 인민혁명당 재건위 관련자로 지목된 8명은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뒤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이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이었다는 결론을 냈다.

도혜민 기자: hyemin.do@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