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봉준호 감독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미래에 주는 의미

아카데미 결과는 그 해 할리우드가 어떤 가치를 높게 샀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기생충
기생충 ⓒLLUSTRATION: DAMON DAHLEN/HUFFPOST; PHOTOS: NEON + CJ ENTERTAINMENT/GETTY

엄청난 쾌거다.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최초로 외국어 영화가 작품상을 차지했다.

한국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도전은 그리 순조롭게 시작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5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기생충’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고 최근 오스카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행보를 밟아나갔다.

미국 내에서도 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영화는 북미 내 상영관 수를 늘려나가며 흥행에 성공했고, 봉준호는 ‘정치적 풍자를 대중적인 블록버스터로 위장시키는 데 능숙한 감독’이라는 명성을 굳건히 했다.

다만 오스카를 품에 안을 수 있을지는 불분명했다.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자막 달린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시상식 시즌 초반에는 ‘기생충’이 한 부문이라도 후보에 오를 수 있기를 바랐다.

봉준호는 지난 몇 달간 전 세계를 누비며 ‘기생충‘을 홍보하는 동안 록스타급 인기를 얻었다. 그의 따뜻한 미소와 헝클어진 머리는 모두를 미소 짓게 했고, 거대 팬덤을 결집시키기도 했다. (그의 팬클럽 ‘봉하이브’(Bong Hive)는 비욘세의 팬클럽(BeyHive)를 따라 이름 지어졌다.) 그리고 오늘(9일, 현지시각) 그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그리고 각본상을 수상하며 새 역사를 썼다.

봉준호 
봉준호  ⓒVALERIE MACON via Getty Images

‘기생충‘이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아이리시맨‘, ‘조커‘, ‘포드 V 페라리’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이 출연한 영화와 작품상을 두고 겨루는 동안 봉준호는 모두에게 지지받는 예상밖의 ‘대통합자’로 떠올랐다.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는 대중문화의 현 상태, 적어도 그 해 할리우드가 어떤 가치를 높게 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 역할을 한다. 지난해 아카데미는 ‘로마‘나 ‘더 페이버릿‘, ‘블랙 팬서’ 같은 전향적인 영화 대신 ‘그린 북‘에 작품상을 건네며 시대를 역행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린 북’은 30년 전에 개봉했다고 해도 놀랍지 않았을 영화에 불과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 재판과 동시에 진행된 올해 시상식 시즌에서 아카데미 회원 8469명은 조금더 진보적인 선택을 하고 나섰다. 전 세계 빈부격차 문제에 불을 붙인 계층 간의 갈등에 대한 외국어 영화에 표를 던진 것이다. 

봉준호는 지난해 11월 ‘기생충‘이 전 세계에서 공감을 산 이유를 묻는 질문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분석할 수조차 없다”라고 답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기생충’이 우리네 인생을 다룬 이야기이기 때문일 수도, 국가에 관계없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빈부격차를 다룬 영화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개최일이 다가오자 ‘기생충’의 가장 강력한 경쟁작으로는 ’1917’이 거론됐다. ‘1917’이 아카데미 수상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 불리는 일부 시상식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다. ‘기생충’은 미국 영화배우 조합(SAG) 시상식에서 앙상블상을 거머쥐며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가능성을 높였다. 그러나 ‘1917’이 영국 아카데미(BAFTA) 시상식과 미국 감독 조합(DGA) 시상식, 미국 제작자조합(PGA)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에 해당하는 상을 연이어 채가면서 그 기세가 꺾이는 듯했다.

기생충 스틸컷
기생충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사실상 우승 후보가 두 작품(’1917′과 ‘기생충’)으로 좁혀진 시합이었다. 1차 세계 대전을 다룬 전쟁 드라마 ‘1917’은 아카데미로서는 뻔한 선택지였다. (전쟁 영화는 아카데미상 창설 이래 작품상 후보에 오를 때마다 수상에 성공한 바 있다. 오스카 최초의 작품상 트로피는 1차 세계 대전에 대한 무성 영화 ‘날개’(Wings)에 돌아갔다.)

반면 ‘기생충’은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격동을 거치고 있는 할리우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경로를 보여줬다.

아카데미는 최근 ‘백인만의 잔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여성과 유색인종 영화인을 회원으로 위촉했다. 그리고 ‘기생충’에 오스카를 안기며 노력의 결실을 맺었다. 

그렇다고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완벽했다는 건 아니다. 지난달 13일 아카데미 최종 후보가 발표됐을 때, ‘기생충‘은 각본상, 감독상, 미술상, 심지어 편집상 후보에 올랐지만 연기상 부문에서는 후보 지명이 불발됐다. ‘기생충’ 출연진이 미국 관객 사이에서는 유명하지 않은 만큼, 연기상 노미네이트 불발은 그리 충격적인 일이 아니었으나 아카데미의 편향성을 보여주는 결과임에는 분명했다. 

아카데미상, 더 나아가 할리우드는 영화가 노예제도나 다른 끔찍한 사건들을 다를 때에만 작품에 출연한 비백인 배우들의 공헌을 인정한 바 있다. 이는 올해 시상식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올해 연기상 후보에 오른 비백인 배우는 영화 ‘해리엇‘의 신시아 에리보가 유일했다. 만약 ‘기생충’이 말처럼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면 아카데미는 왜 출연진을 인기상 후보에 올리지 않을 걸까?

연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덕일까,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은 더욱 대단한 쾌거로 다가왔다. ‘기생충‘은 2008년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후 연기상 후보에 오르지 못하고도 작품상을 차지한 첫 영화로 기록됐다.

새로운 10년이 우리 앞에 펼쳐진 지금, ‘기생충’ 덕에 우리는 마침내 ‘이런 작품이 작품상을 받아야 한다’는 통설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것으로 보인다. 

 

허프포스트US의 ‘‘Parasite’ Winning Best Picture Is A Huge Leap Forward For The Oscars’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허프포스트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관 검색어 클릭하면 연관된 모든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영화 #기생충 #봉준호 #아카데미 시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