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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스토리] 코로나19의 끝은 어디일까: 혐오를 전파하는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

감염병의 유행은 사람들의 몸뿐 아니라 정신에도 후유증을 만들어낸다.

[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 시간의 극장

제16화 코로나19 | 글 이은희 (기획: 팩트스토리) 

2003년 4월 강창광 기자의 사진. 사스는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된 신종 바이러스성 질병이었다. 2003년의 국내 방역은 지금도 성공한 모델로 꼽힌다. 사스 바이러스 역시도 채 1년이 못 되어 사라졌지만, 행운의 여신이 언제까지 인간의 편일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2003년 4월 강창광 기자의 사진. 사스는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된 신종 바이러스성 질병이었다. 2003년의 국내 방역은 지금도 성공한 모델로 꼽힌다. 사스 바이러스 역시도 채 1년이 못 되어 사라졌지만, 행운의 여신이 언제까지 인간의 편일지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겨레

 

▶코로나 팬데믹, 그 비극의 전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에스에프(SF) 작품들이 그려온 미래의 모습은 다양하지만, 그 세계관의 많은 부분은 비대면 사회를 표방했다. 과학 발전에 힘입어 점점 확장되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소통하기 위해서는 직접 대면만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0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갑작스럽게 닥쳐온 ‘언택트’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언택트 시대의 갑작스러운 개막이 달갑지 않는 것은, 그것이 세계관의 확장이나 능동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코로나19라는 지극히 전근대적인 것만 같았던 감염병으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수동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비극이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팬데믹 도래에 대한 전조는 꾸준히 있어왔다. <한겨레> 아카이브에서 팬데믹의 전조들을 살펴보고 각각의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 남긴 후유증에 대해 알아봤다.  

 

팬데믹 도래에 대한 전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비극이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인류 대다수가 무병장수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와중에서도, 팬데믹 도래에 대한 전조는 꾸준히 있어왔다.

팬데믹은 종간 장벽을 넘어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전파된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서 인간으로 전파 가능해질 때 일어난다.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다행히 종간 장벽을 넘는 데서 그쳤지만 언제까지 이런 행운이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다. <한겨레></div> 1997년 12월29일치 21면 이미지. 안종주 기자가 기사도 쓰고 사진도 찍었다.
팬데믹은 종간 장벽을 넘어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전파된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서 인간으로 전파 가능해질 때 일어난다. 조류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다행히 종간 장벽을 넘는 데서 그쳤지만 언제까지 이런 행운이 지속될지 장담할 수 없다. <한겨레> 1997년 12월29일치 21면 이미지. 안종주 기자가 기사도 쓰고 사진도 찍었다. ⓒ한겨레

전조는 가축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1997년 2월께, 중국 광둥 지역에서 처음 나타난 미지의 바이러스가 지역의 양계장을 초토화시킨 뒤 홍콩까지 퍼져나갔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아종(H5N1)에 의해 발생하는 조류독감(avian influenza)이었다. 발병 즉시 농장을 폐쇄하고 모든 가금류는 살처분하여 매장하거나 소각한 뒤 농장 전체를 소독했지만, 조류독감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사람들이 걱정한 것은 조류독감 그 자체가 아니라, 독감 10년 주기설에 의한 사람 독감의 전세계적 대유행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는 10여년 뒤 현실로 나타난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집단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응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격리이다. 사람에게는 격리 치료가 제공되지만, 가축들에게는 격리 이후 살처분이 따르는 것이 다를 뿐이다. 2008년 4월 박종식 기자가 찍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집단감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응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격리이다. 사람에게는 격리 치료가 제공되지만, 가축들에게는 격리 이후 살처분이 따르는 것이 다를 뿐이다. 2008년 4월 박종식 기자가 찍었다. ⓒ한겨레
구제역은 인간에게 전파되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구제역으로 폐사한 동물들의 사체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사체를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2차 감염과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다른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인간성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욱 씁쓸하다. 김현대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가 2011년 2월 기자 시절 촬영했다.
구제역은 인간에게 전파되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구제역으로 폐사한 동물들의 사체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사체를 이렇게 방치하는 것은 2차 감염과 환경오염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다른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인간성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욱 씁쓸하다. 김현대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가 2011년 2월 기자 시절 촬영했다. ⓒ한겨레

역병은 포유류에게도 나타났다. 1996년 유럽연합은 알바니아에서 발생한 가축전염병이 점차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보고했다. 구제역(口蹄疫. Foot-and-mouth disease)은, 이름처럼 발굽과 입 주변에 물집이 생기는 것이 특징인 바이러스성 가축감염병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부터 소와 돼지에게 나타나는 가축 괴질이 보고된 이래, 주기적으로 발생하여 농장 폐쇄와 살처분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다만 구제역은 사람에게는 전파되지 않기에, 구제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는 집단 살처분의 윤리적 문제와 함께 사체를 부실하게 처리해 이들이 2차적인 환경 오염의 원인이 된다는 것에 주로 몰렸다.

이종근 기자가 2000년 3월 찍었다. 감염성 질환의 전파 고리를 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감염자의 격리에서 시작된다. 환자는 격리하고 치료를 제공해주지만 동물에게는 그러한 인정을 베푸는 경우가 적다. 이들에게 행해지는 건 대개 격리 후 살처분이다.
이종근 기자가 2000년 3월 찍었다. 감염성 질환의 전파 고리를 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감염자의 격리에서 시작된다. 환자는 격리하고 치료를 제공해주지만 동물에게는 그러한 인정을 베푸는 경우가 적다. 이들에게 행해지는 건 대개 격리 후 살처분이다. ⓒ한겨레

닭과 오리를 시작으로 돼지와 소를 거쳐 유행하는 감염성 질환들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아종 혹은 변종의 등장으로 그 치명도가 이전보다 강해졌고, 밀집도가 매우 높은 현대식 축산업의 특성상 한번 발병하면 삽시간에 대규모 유행으로 번진다는 공통점을 가지게 됐다.

바이러스학자 네이선 울프는 팬데믹 상황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으로 동물과의 잦은 접촉을 통한 바이러스의 유입 및 돌연변이의 발생, 사람들 사이의 감염 전파력 등을 꼽는다. 육식의 확산으로 전세계적으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닭이 사육되며, 더 자극적인 맛을 찾아 야생동물을 남획하며, 교통과 무역의 발달로 전세계 모든 곳이 점점 더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는 인간 사회의 특성은 마치 시한폭탄처럼 팬데믹 상황을 일으키게 하는 모든 필요조건을 갖춰가고 있는 듯했다.

 

인간의 방심 

바이러스에 대한 약간의 방심도 다시금 질병의 대유행을 불러오는 불씨가 될 수 있다. 홍역의 경우, 이미 효과 좋은 백신이 개발되어서 1990년대 이전에 종식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백신에 대한 불신과 거부 운동의 확산으로 재유행하기 시작했다. 2001년 강창광 기자가 찍었다.
바이러스에 대한 약간의 방심도 다시금 질병의 대유행을 불러오는 불씨가 될 수 있다. 홍역의 경우, 이미 효과 좋은 백신이 개발되어서 1990년대 이전에 종식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백신에 대한 불신과 거부 운동의 확산으로 재유행하기 시작했다. 2001년 강창광 기자가 찍었다. ⓒ한겨레

 

여기에 인간의 방심도 한몫하기 시작했다. “위생의 기본 수칙을 어긴 주사기 재사용으로 인해 C형 간염이 확산”(2015년 12월1일 <한겨레> 김양중 기자 기사)되고, 백신의 부작용을 이유로 들어 접종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종식 선언의 최종 심사대까지 갔던 홍역과 풍진 등의 감염성 질환의 산발적 재유행”(<한겨레> 2015년 2월22일 김지은 기자)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특히 자녀에 대한 백신 접종 반대는 아동의 건강할 권리에 반하고, 사회적 자원의 낭비로 이어지는 비과학적·비합리적 행위임이 분명하나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이상하게 호의적이다. 일명 ‘안아키 사태’로 벌어지는 극단적 자연주의 육아 역시 일종의 아동 학대가 될 수 있다. ‘안아키’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를 말한다.

<한겨레>는 이에 대해 ‘안아키 하다 안아키(병 안 나게 아이 키우기) 못한다’고 보도했다. 병을 무서워하는 심정이 백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이를 사랑하는 감정이 아이를 해치는 이상한 극단으로 치닫는 것이다.

 

사스와 신종플루 

2009년 ‘신종플루’는 처음에는 돼지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서 돼지독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에 모든 수입 돼지고기들에 대한 검역이 강화되었고, 돼지고기 수요 역시 떨어지자 이름을 신종플루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이정아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2009년 ‘신종플루’는 처음에는 돼지에서 유래되었다고 해서 돼지독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에 모든 수입 돼지고기들에 대한 검역이 강화되었고, 돼지고기 수요 역시 떨어지자 이름을 신종플루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이정아 기자가 찍은 사진이다. ⓒ한겨레

사람을 대상으로 한 집단 감염병이 시작된 것은 2003년이었다. 당시 중국 광둥성 지역에서 시작된 이 ‘원인불명 폐렴’은 홍콩의 국제 호텔을 방문한 확진자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면서, 전세계는 신종 ‘괴질’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일명 사스(SARS)의 출현이었다. 사스의 원인은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로 파악되었지만, 길은 거기서 막혔다.

사스에는 대응책이 없었다. 백신도 치료제도. 사스는 순식간에 37개국으로 퍼져나가 총 8237명을 감염시켰고, 이 중 775명의 삶을 앗아갔으나, 이듬해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대로 사라졌다. 국내의 경우 발병 초기에 철저한 대응으로 총 3명의 환자(사망자 없음)만으로 그쳤고, 이 결과는 엉뚱하게도 한국인의 솔(soul)푸드인 김치의 이미지 상승에 기여하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늘 이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2009년 신종플루는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 선언을 했던 질환이었다. 국내에서도 약 76만명이 감염되어 270여명이 사망한 바 있다. 특히나 집단생활을 하는 경우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가 빠르기에 각급 학교들은 2학기 개학을 미루고 임시 휴업·휴교 선언을 하기도 했다. 박종식 기자가 촬영했다.
2009년 신종플루는 21세기 들어 처음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 선언을 했던 질환이었다. 국내에서도 약 76만명이 감염되어 270여명이 사망한 바 있다. 특히나 집단생활을 하는 경우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가 빠르기에 각급 학교들은 2학기 개학을 미루고 임시 휴업·휴교 선언을 하기도 했다. 박종식 기자가 촬영했다. ⓒ한겨레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멈춘 것은 2009년 3월이었다. 미국과 멕시코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돼지독감(swine influenza)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이러스 유전체 분석 결과, 이 신종플루의 원인이 바로 1918년 수천만명의 희생자를 냈던 스페인 독감과 같은 H1N1 형태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공포감은 증폭되었다.

공학 방역에는 비상이 걸렸고, 마스크와 손소독제 같은 개인위생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는 기사들이 연일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신종플루의 확산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세계보건기구(WHO)는 2009년 6월11일 사상 두번째로 팬데믹을 선언했다.

첫번째는 1968년 발생했던 홍콩 독감이었다. 세계보건기구는 신종플루로 인해 672만4149명의 감염자와 1만844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2009년 여름이 지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방역에 성공적이었던 국내에서도 총 76만명이 감염되어 이 중 270명이 숨졌다.

그나마 신종플루는 사망률이 낮은데다(국제 기준 0.3%, 국내 기준 0.025%), 백신과 함께 치료제인 오셀타미비르(상품명 타미플루), 자나미비르(상품명 릴렌자) 등이 개발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시 사회의 멈춤 정도는 잠시 눈치 보며 쉬어가는 정도에 그쳤다. 몇몇 정보기술(IT) 집단을 중심으로 재택근무가 실시되었지만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지는 못했고 집단 휴학도 대개 1~2주 선이었다. 그렇게 대유행의 위기는 그럭저럭 넘어가는 듯했다.

이후 신종플루는 일반적인 계절성 독감으로 남아 다소 귀찮은 정도 수준으로 전락했다. 우리는 위기를 잘 넘겼고, 이 상황이 인류의 보편적 질병 모델 시스템이 될 것이라 사람들은 생각했다. 대규모 감염병의 발생 자체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효과적으로 대응하여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생각.

2009년 신종플루의 국내 유행은 개인위생의 강화 및 공공장소에서의 체온 측정을 당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확산세가 매우 컸는데도 치사율이 낮고 백신과 치료제가 모두 개발되었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의 경각심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시험장에 들어서는 학생들 중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이를 나타낸다. 이종찬 기자가 찍었다.
2009년 신종플루의 국내 유행은 개인위생의 강화 및 공공장소에서의 체온 측정을 당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확산세가 매우 컸는데도 치사율이 낮고 백신과 치료제가 모두 개발되었다는 점 때문에 사람들의 경각심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시험장에 들어서는 학생들 중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 이를 나타낸다. 이종찬 기자가 찍었다. ⓒ한겨레

 

메르스, 초기 대응 실패 

2015년 6월 강재훈 기자가 찍은 낙타 사진. 메르스 국내 유행은 우리 정부의 과학적 인식 수준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중동 지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동물원에서 태어나 평생 우리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는 동물원 낙타에 대해 메르스 검사를 벌이고, 낙타고기나 낙타유를 먹지 말라는 것을 버젓이 국민들에게 권고하기도 했던 사실은 감추고 싶은 해프닝이었다.
2015년 6월 강재훈 기자가 찍은 낙타 사진. 메르스 국내 유행은 우리 정부의 과학적 인식 수준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중동 지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는 이유로, 동물원에서 태어나 평생 우리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는 동물원 낙타에 대해 메르스 검사를 벌이고, 낙타고기나 낙타유를 먹지 말라는 것을 버젓이 국민들에게 권고하기도 했던 사실은 감추고 싶은 해프닝이었다. ⓒ한겨레

이 막연한 자신감은 얼마 못 가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국제적으로 그것은 에볼라로, 우리에게는 메르스로 다가왔다. 에볼라는 원래 1976년 자이르(현재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강 근처에서 처음 인식되었던 질환으로, 90%에 이르는 사망률로 현지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질병이었다. 하지만 에볼라는 그 증상이 아주 심하고 사망률이 너무 높아 숙주가 되는 인간이 채 바이러스를 퍼뜨리기도 전에 숨졌기에 역으로 질병이 널리 퍼지기는 어려웠다.

최초 발견 이후 40여년 동안 아프리카 해당 지역의 풍토병으로만 남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2014년 상황이 달라졌다. 아프리카의 개방성 증가와 이전보다는 낮은 치명도(그래도 사망률은 40%를 웃돈다!)를 가진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의 등장이 맞물려 아프리카를 벗어나 다른 대륙으로 옮겨갔으며, 세계 8개국에서 2만8616명이 이 병에 걸려 이 중 1만1310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벌어진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에볼라로 시끄러울 때도 상대적으로 우리의 일상은 평온했다. 국내에는 전파되지 않았기에 강 건너 불구경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새로운 불씨가 피어나고 있었다. 중동 지역에서 최초로 발병하여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메르스)이라 불리던 질환이 2015년 5월 국내에도 나타났고 병원을 통해 2차 감염자가 양산되면서 무서운 속도로 번져나갔다. 이미 사스와 신종플루 사태를 겪었음에도,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준 정부의 대응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메르스가 중동 지방의 낙타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을 근거로 우리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는 서울대공원의 낙타들을 검사하는 해프닝은 애교 수준이었고, 제대로 된 지침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관련 정보를 숨기기에 급급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킨 것이다.

결국 메르스는 초기 대응 실패로 그해 7월 말까지 총 186명이 감염되고 이 중 36명이 숨지는 비극을 만들어내며 대한민국을 잠시 멈춤 상태로 이끌었다. 이를 기점으로 시민들은 정부에 대한 불신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메르스는 분명 위험한 병이었으나, 병원 감염이 주된 전파 경로였기 때문에 초기에 병원만 제대로 공개하고 대응했어도 사태의 확산은 막을 수 있었다는 의견이 공론으로 모아지면서, 질병 자체의 원인이 아니라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무능함에 더 큰 책임을 지웠기 때문이다.

공기의 흐름을 통제하는 특수 병실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외부의 오염된 공기가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양압병실이 대부분이었다. 수술실과 신생아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메르스 이후, 감염병 환자가 있는 공간의 공기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압력을 반대로 걸어주는 음압병실의 확보가 감염병 환자 치료에 주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오염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2015년 6월 신소영 기자가 촬영했다.
공기의 흐름을 통제하는 특수 병실은 이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외부의 오염된 공기가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양압병실이 대부분이었다. 수술실과 신생아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메르스 이후, 감염병 환자가 있는 공간의 공기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압력을 반대로 걸어주는 음압병실의 확보가 감염병 환자 치료에 주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오염의 방향이 바뀐 것이다. 2015년 6월 신소영 기자가 촬영했다. ⓒ한겨레

 

메르스가 남긴 상처 

감염병의 유행은 사람들의 몸뿐 아니라 정신에도 후유증을 만들어낸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나누던 게시판인 메르스 갤러리가 여성 혐오를 그대로 남성에게 반사하는 미러링 기법을 주요 전략으로 삼는 사회운동의 시발점이 되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2016년 송권재 기자가 디자인했다.
감염병의 유행은 사람들의 몸뿐 아니라 정신에도 후유증을 만들어낸다.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나누던 게시판인 메르스 갤러리가 여성 혐오를 그대로 남성에게 반사하는 미러링 기법을 주요 전략으로 삼는 사회운동의 시발점이 되리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2016년 송권재 기자가 디자인했다. ⓒ한겨레

 

비록 메르스는 2015년 이후 국내에서 다시 유행하지는 않았지만, 메르스가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컸다. 가장 큰 생채기는 질병 그 자체보다 역시나 인간 사회 쪽에서 등장했다. 메르스 초기 시절부터, 환자들과 이들이 입원한 병원에 대한 차별과 거부감은 매우 컸다. 호흡기로 감염되는 질병의 특성상, 아무리 조심해도 감염 경로를 완벽하게 차단하기 어렵기에 바이러스 감염자(혹은 감염 의심자)가 기피의 대상이 된 셈이었다.

더 큰 문제는 환자를 둘러싼 시선이 아니라, 사회적 시선 그 자체에서 발생했다. 2015년 5월 말 메르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인터넷 게시판 ‘메르스 갤러리’가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메르스 갤러리는 본래의 질병 정보 공유의 목적보다는 사회에 팽배한 여성 혐오 현상을 그대로 ‘미러링’하는 남성 혐오의 장으로 변모하고 만다.

이를 기점으로 우리 사회는 본격적으로 혐오의 표현을 마구 양산해 내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규모 재난이 한 차례 사회를 휩쓸고 지나가면 사람들은 분노를 풀 희생양을 찾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21세기 대중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나와 다른 그룹을 특정짓고,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조롱하는 방식으로 표출했다. 그리고 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코로나19의 끝은 어디일까

코로나19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언택트’ 시대의 개막이다. 타인의 존재가 바이러스의 숙주이자 전파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의학적 사실에 아이티(IT) 기기를 통한 비대면 접촉이 가능하다는 기술적 결과가 더해지면서 업무, 회의,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집은 휴식과 생활의 공간인 동시에 일터이자 학교가 되었다. 2020년 4월16일 백소아 기자가 찍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언택트’ 시대의 개막이다. 타인의 존재가 바이러스의 숙주이자 전파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의학적 사실에 아이티(IT) 기기를 통한 비대면 접촉이 가능하다는 기술적 결과가 더해지면서 업무, 회의,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집은 휴식과 생활의 공간인 동시에 일터이자 학교가 되었다. 2020년 4월16일 백소아 기자가 찍었다. ⓒ한겨레

그렇게 메르스는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에 매우 큰 생채기를 남기고 사그라들었으나, 그 불씨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2020년 지금, 우리는 바이러스 대유행의 한복판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이를 목도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변종의 세계적 대유행은 우리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겨울에서 봄을 거쳐 여름을 지나 가을에 들어설 때까지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바이러스의 대유행은 삶의 모든 국면에서 타인과의 접촉을 막는 방향으로 우리를 내몰았다. 아이들은 머리맡에 놓인 컴퓨터나 티브이를 통해 등교하고, 직장인들은 온갖 메신저와 화상회의 창을 컴퓨터에 띄워놓은 채 집에서 업무를 본다.

생필품은 인터넷 쇼핑으로, 영화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식은 배달앱으로 해결한다. 어쩔 수 없이 타인과 마주해야 할 때면 마스크를 쓰는 것이 예의이며, 서로 간의 접촉은 거부한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인 ‘밥 한번 먹자’가 매우 위험한 발언이 된 셈이다. 소위 말하는 ‘뉴노멀’의 시대는 너무도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2020년 4월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투표장에 나온 모든 국민들에게 마스크를 쓰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것을 강제했다. 바이러스라는 자연적인 존재가 선거라는 사회적 시스템과 맞물린 결과다. 김봉규 기자가 찍었다.
2020년 4월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투표장에 나온 모든 국민들에게 마스크를 쓰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할 것을 강제했다. 바이러스라는 자연적인 존재가 선거라는 사회적 시스템과 맞물린 결과다. 김봉규 기자가 찍었다. ⓒ한겨레

코로나19로 인한 시대적 변화는 우리 모두가 몸소 느끼고 있는 것이기에 많은 말을 보탤 필요는 없을 듯하다. 나와 내 가족 외 모든 이가 ‘불가촉 타인’이 되는 세상에서 과연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타인에게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메르스 사태에서는 이것이 성별에 따른 혐오로 두드러졌다면, 2020년 코로나19 사태 땐 확진자와 그 접촉자에 대한 거부는 물론이거니와, 대상도 국적, 성적 정체성, 세대, 지역, 종교 등으로 더욱더 다양하게 확산되었고, 그 혐오의 결과 골 역시도 더욱 날카롭고 더욱 깊어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우리에겐 이만큼의 거리가 필요하다. 나를 지키고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마음만은 이보다 더 멀리 가진 마시길. 2020년 5월6일 박종식 기자가 촬영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우리에겐 이만큼의 거리가 필요하다. 나를 지키고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마음만은 이보다 더 멀리 가진 마시길. 2020년 5월6일 박종식 기자가 촬영했다. ⓒ한겨레

바이러스가 생존하기 위해 인간에게 더욱 널리 깊게 침투하도록 진화하듯이, 혐오라는 사회적 밈(사람에서 사람 사이에 전파되는 어떤 생각, 스타일, 행동) 역시도 나름 진화를 통해 확산을 가속화하는 상황인 셈이다. 어쩌면 바이러스의 입장에서는 숙주가 되는 인간의 개체수가 70억명을 웃돌 만큼 많고, 숙주의 이동이 잦아 새로운 숙주를 만날 기회가 높은 지금의 사회가 지금껏 존재해왔던 수십억년의 세월 중에서 가장 황금시대일지 모른다.

냉혹한 진화의 공존장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물리적인 바이러스의 차단 경로를 끊을 것. 그러나 인간다움과의 단절을 피하기 위해서는 혐오 밈에 휘둘리지 말고 마음의 눈과 손이 닿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그것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갈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뉴노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 해설자 이은희는 대중과학저술가입니다. 생물학을 전공했으나 곧 연구실을 뛰쳐나와 과학책을 읽고, 쓰고, 알리고, 기획하는 일을 하며 인생의 반을 보냈습니다. ‘하리하라’라는 필명으로 <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등 여러 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과학을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기획: 팩트스토리] 팩트스토리는 전문직, 실화 소재 웹소설·웹툰 및 르포 기획사입니다. 저널리즘 바깥으로 확장하는 실화를 추구합니다.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아 ‘시간의 극장–한겨레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선보입니다. 33년 기사와 사진 아카이브를 활용하여, 중요 사건과 인물을 현대사 콘텐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입니다. 해당 주제를 잘 아는 해설자가 ‘시의성 있는 과거’와 관련한 한겨레 사진과 기사를 선정하고 독자에게 해설합니다. 한번도 소개된 적 없는 비컷(B-cut)사진 필름도 발굴하여 공개합니다. 르포, 전문직 소재 웹소설 기획사 팩트스토리가 기획하고 한겨레와 공동으로 제작합니다. 주간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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